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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디까지 간사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요즘 나는 내 간사한 행동과 생각들에서 흐물흐물 올라오는 어떤 비겁함 들에 대한 일련의 불안감이 작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나 간사함 덕분인지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겉으로 잘 포장되어진 채, 내 진심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세련된 가면을 쓸 때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소위 사회에서 한 쪽으로 격리시키기 마련인데, 반대로 아무 문제도 없는데 오직 타인보다 똑똑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 속의 정신적 괴리감에 빠지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가,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이끌고 있는 쉰네 살의 르네와 열두 살의 팔로마이다. 나이도 있고 수위인데다가 사회계층에서는 하층에 속하는 르네와 어린 나이며 부모님의 후광으로 높은 사회계층에 속하고 있는 팔로마는 그 큰 나이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신적 교류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르네와 팔로마 각자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자가 느낀 생활의 단면이라든지, 인생 전반에 대한 허구와 무의미등을 다루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던 관계로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철학적 사색들이 곳곳에, 아니 책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어서 때론 다시 읽어야 이해가 됐던 부분도 굉장히 많았다. 그만큼 내가 이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책에 나온 철학적 이야기들 중 한 면을 내놓자면, ‘움직이는’ 것에 대한 단상이었다. 그동안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깨닫게 해주는 바람에 뒤통수 심히 띵했다. 지금까지 어디로 간다는 것에 대해 그 자체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을뿐더러, 생각해봤자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식으로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우리의 천재소녀인 팔로마는 그 ‘움직이는’ 단상에 대해 항상 사람은 주변이나 상대방에 대한 일련의 행동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는 사람은 얼마 없을뿐더러, 그런 사람은, 그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책 “움직이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단순한 행동마저 이렇게 철학적 사색들을 내놓으니 어찌 사람 뒤통수 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건 오직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니, 얼마나 광대한 철학적 사색들이 등장하는지 대략 짐작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도대체 왜 제목이 고슴도치의 우아함일까? 나의 짧은 생각으로, 고슴도치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 단단하고 뾰족한 가시를 내세운다. 책의 주인공인 르네나 팔로마는 자기가 속한 사회에 소위 아웃사이더에 해당됐지만, 르네는 오랜 세월 그 부분을 감추며 상대방이 인식하고 있는 수위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팔로마는 르네에 비해 좀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과 사람은 그야말로 허무하기 짝이 없던 관계로, 자기가 살아갈 어떤 의미를 몰랐던 모양이다. 그런 관계로 과감하게 자살을 행하는 날짜까지 잡는 소녀였다. 너무 똑똑해서 생각이 많은 것도 때론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하지만 팔로마는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소녀라는 느낌 역시 지울 수는 없었다.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표지가 형광 빛이 나는 주황색인데다가, 일러스트가 예뻐서 단순 코믹정도의 소설로 착각한다면 그야말로 이 책에 대한 모독이고 그 착각으로 인해 독자는 어질어질하게 될 것이다. 정확히는 소설을 빗대 철학서라고 해야 되겠지만, 소설이 갖추고 있는 감동적인 부분도 등장한다. 이런 책 쉽게 만나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가득이다. 10월 초에 작가가 방한하는 것으로 안다. 사인회를 연다면 직접 가서 이 작가의 예쁜 얼굴을 보고 싶다.(사진이 예뻤다) 그리고 악수한번 해주고, 말은 안 통해도 씨~익 웃어 보여주고 싶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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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녀는 가시로 뒤덮여 있어 진짜 철옹성 같지만, 그러나 속은 그녀 역시 고슴도치들처럼 꾸밈 없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다고 직감했다. 일부러 나태하고, 맹렬하게 홀로 있고, 어마어마 하게 우아한 작은 짐승인 고슴도치.. 프랑스 아마존 3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책은 제목부터가 흥미로움을 주는 책이였다. 날카로운 침으로 상대로 부터 자신을 지키는 고슴도치가 우아하다니.. 이책의 주인공은 두명이다. 르네와 팔로마~ 팔로마가 살고 있는 고급아파트의 수위를 하는 르네, 어찌보면 공통점이 전혀 없어보이는 두명의 이야기는 릴레이 처럼 펼쳐진다.
여기서 말하는 고슴도치는 르네를 말한다. 15년전 남편이 암으로 죽어 과부이며, 고급아파트에서 27년째 수위를 하는 그녀~ 못생겼고, 오동통하고, 발에는 못이 박혀있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일거리를 줄때만 그녀의 존재에 주목하는 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리인 아줌마라는 범주로 고착시킨 사회적인 믿음과 아주 잘 부합하는 외모를 가진 그녀, 하지만 뛰어난 지능과 문학.예술에 관심이 많고 독서를 열심히 하지만 거만한 수위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우아함은 감추고 있는 겉모습은 고슴도치이다.
부자인 아빠가 있고, 머리가 뛰어난 팔로마또한 일부러 아둔한척을 하며 자신의 우아함을 감추고 있는 고슴도치이다. 12살 소녀는 자살을 결심하고 수면제를 모으며 규체적인 계획을 세워둔다. 일본인 오주가 이사를 오면서 르네가 숨어사는 박식한 공주임을 알아보고 팔로마와 그녀의 능력을 알아보자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르네와 팔로마의 만남이 있다.
서로를 파악하고 있지만 전혀 만나지 않았던 두명의 고슴도치가 언제 만날것인가 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그녀들의 박식한 지식과 논리적이고 지적인 생각들이 나의 짧은 생각으로 이해하기 조금 어렵기도 했지만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집중해서 읽게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의 안타까운 반전~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가 참 박식하다는 생각과 일본을 좋아하는 작가 인듯 싶은, 책에 많이 나오는 일본에 관한 내용들, 그 두명과 소통을 한 유일한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약간은 맘에 안들었다. 유럽인이 쓴 책을 보면 일본에 대한 환상이 많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네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난생처음 친구를 만든 르네와 자신의 주위의 누구에게도 잘 해줄수 없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음을 깨달은 팔로마~ 그둘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깊은 사색의 시간이 남는 책이다. 보여지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고착화 되어버린 나의 잘못을 깨달게 되었고 다시한번 집중해서 읽어보며 그들의 내면세계를 좀더 이해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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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언어의 표현에 많이 신경쓰는 것같다. 섬세한 언어의 차이를 이용해서 약간 냉소적인 유머를 많이 구사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단순한 줄거리의 나열보다는 문장하나하나에 숨겨놓은 이중적의미, 철학에 기반한 사색을 즐기는 것 같다.
최근에 내가 읽은 프랑스 문학에서 느낀 공통적인 느낌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 역시 이 느낌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 지적인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그들이 훌륭한 문학이라 일컷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내용에 초점을 두기보다 어떤 철학서적을 인용했는지 누가 무슨말을 했는지, 이 내용은 어떤 심리와 철학사에 더 어울리는지를 나열하려 노력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때때로 플롯을 놓치게 된다.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구성이 가장 좋은 소설이라 생각하는데 이 책을 프랑스어 원본으로 읽는다면 그 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기대가 동시에 든다.
가장 최근에 읽은 프랑스 책인데 프랑스 문학 특유의 유머와 독특함이 살아있는 책이다. 아무생각없이 읽으면 중반까지는 구조가 주는 독특함과 내용의 철학적 느낌때문에 자칫 지루해지기도 하고 무슨내용인지 파악이 안될 수 있다. 실제 난 3번이나 중간까지 다시 읽어야 했다. 누가 주인공인지 누구의 입장에서 설명을 한건지 도데체 알길이 없기에... 근데 이러한 매력을 알고 읽으면 문장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철학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를 담은 유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들의 독특한 유머와 문화를 100% 이해하진 못하지만 어느정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정도라고 할까? 근데 정말 이상한건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그게 문학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구조라도.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표현속에서 느끼는 공감이라는 것 말이다... 그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으로 생긴 사회적 계층을 뛰어넘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이 궁극을 나타내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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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책을 주문하고 허리우드 영화보다는 유럽영화를 보아야 할 것 같고 문화적인 사치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 스스로를 친구와 함께 지적허영심이란 말로 우리를 표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란 제목을 보는 순간 보여지는 제목 속에 숨은 무언가가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고슴도치가 우아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그건 보여지는 모습만을 보고 판단 하게 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속내를 들여 다 볼 수 있는 깊은 눈과 열린마음으로 본다면... 아마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오지 않을까?
소설의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철학적 접근을 담은 그래서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글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처음엔 어렵다는 느낌도 들었고 다른 소설처럼 쉽게 넓어 가지는 않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속도를 내며 읽지 않아도 되는 정말 음미하면서..토론하면서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철학소설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다.
물론 저자가 철학선생님이었다는 사실로 이 책을 철학 소설이라고 단정 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제목 자체가 이미 하나의 철학적 화두였다고 본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모두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열린 마음으로 대상을,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
우린 얼마나 많이 자주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 자기식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는 지를 잘 알고 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그런 나의 보이지 않는 잘못과 오류들에 대해... 말해 주고 있었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 해야 할 것 같은 열린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해 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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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줄거리를 '굳이' 말하자면,
엄청나게 지적이고 그 인격이 우아한, 하지만 그것을 애써 감추고 있는 수위 아줌마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똑똑하고 생각이 깊지만 주위사람들과 자기의 생각을 나누려 하지 않는 꼬마숙녀가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게 되고 우정을 나누고 그로인해 주변과도 화해해 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렇게 간단한 줄거리로 말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대단한 반전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소설보다도 더 깊이있는 반전이 숨어 있다.
하지만 역시 '대단한 반전.. 운운' 하는 식으로 유혹할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제목이 왜 <고슴도치의 우아함>일까 하는 궁금증이 이 책의 첫인상이었는데
아하, 그들은 모두 고슴도치였던 것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슴도치의 '가시'만 느껴지겠지만
우아한 두 고슴도치는 서로의 우아함을 알아보았다.
우리도 때로 이런 경우가 있지 않나.
어떤 장소, 어떤 상황, 어떤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모습 전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 속의 일부분만 보여주면서 나를 포장/위장 하는 생활.
목적이 있어 일부러 그러는 때도 있겠지만 주로 나의 전부를 보여주었을 때 상대방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리라는 예상 때문에, 편하고 둥글둥글하게 세상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까칠하게 살지 말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점점 그러다가 내 속의 일부분이 나의 전체인 것처럼 결정지어지는 주변 상황 속에서 당황한 경우도 있었다.
이 책의 두 사람도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그 틀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으려고 나섰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줌마는 떠나게 되고(스포일러를 주의하느라.. ^^;)
대신 어린 팔로마의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읽을 때처럼 산뜻한 느낌도 들고,
코엘료의 책을 읽을 때처럼 철학적이고 오묘한 깨달음이 오기도 하고,
얄팍하지 않은, 깊이있는 반전에 가슴을 치기도 하면서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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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소설을 한권 접했다. 책읽는 내내 급한 문제가 생겨서 바깥외출이 많은데다 책을 들고나가 읽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내가 읽어낸 부분까지 르네와 팔로마의 의식의 흐름을 쫒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들어와서 기본적인 일들을 처리해놓고는 얼른 손에 잡게 되는 책이었다. 책속에서 언급한 '자두테스트'라는 흥미로운 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호마이카 테이블 위에 과일과 책을 놓고, 과일을 깨물어 먹으면서 동시에 책에 덤벼든다.만약 이 둘이 서로 상대의 강력한 공격에 저항한다면, 또 자두가 나로 하여금 글에 의심을 품게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또 책이 과일 맛을 없애지 않는다면, 그때 나는 내가 아주 중요한, 말하자면 아주 예외적인 저작물을 접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바로 나의 자두테스트를 그럴싸하게 통과했다고 해야하나?? 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잠시 딴생각을 하며 몇줄을 지나쳐도 책읽어나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책들은 아주 꺼리는 편이다. 책에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몇장을 읽어내도 도무지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알수없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책들을 좋아한다.(예를들면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전날의 섬'...나를 너무 괴롭히고있나?^^) 물론 몇장을 그냥 흘려보냈다고해서 스토리 전개에 영향을 끼칠리는 만무하다.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자랑하는 책들이 아니므로...하지만 그렇게 지나치다보면 전체적으로 재미없는 책이 되고만다. 이 책도 그런 우를 범할 소지가 다분하다. 르네와 팔로마의 문학 철학 그림 음악 영화를 넘나드는 현란한 사유의 세계가 미천한(?) 그저 평범한 독자의 머리를 꽤나 아프게 한다. 그래도 조금은 쉽게 읽어낼 수있는 이유를 들자면 5쪽에 이르는 목차에서 보듯이 호흡을 길게 가져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끊어준 저자에게 있다고 할 수있다. 르네의 생각을 쫒아가다 머리가 아파지려고 하면 적당한 선에서 팔로마의 '깊은 사색'을 끼워넣어서 분위기를 바꿔준다. 머리아픈 건 매한가지라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지식이 전무한 분야에 대해서는 생각의 흐름을 쫒아가기에 조금 힘에 부쳤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빠리의 정제계 문화계 주요인사들이 거주하는 그르넬가 7번지 아파트의 콧대높은 거주자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르네와 팔로마,카쿠로 오주 세사람이다. 르네는 15년전 남편과 사별하고 고양이 한마리와 살고있는 이 아파트의 수위다. 르네의 삶의 표면은 사회적인 빈자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녀의 내면은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문학과 예술전반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깊은 자기성찰과 세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과부고 못생겼고 아침엔 가끔 입에서 냄새도 풍겨주는 수위아줌마라는 모습 뒤에 철저하게 숨어사는 한마리의 우아한 고슴도치라 할수있다.
팔로마..열두살 천재소녀다. 국회의원 아버지를 둔 부잣집 딸이지만 그녀(?)가 속한 부자들의 세상...문학이나 예술을 과시용 치장거리로 전락시키는 부자들의 허영심과 타인에 대한 무시와 특유의 거만함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6개월뒤 열세살이 되는 날 자살을 결심하며 그 결정에 확신을 주기위한 혹은 자신의 결정을 재고해 볼수있을 만한 이유를 찾기위한 마지막 여정으로 '깊은 사색'일기와 '세상의 움직임에 대한 일기'를 써나간다.
이 두여인의 내면의 모습을 간파해내는 아파트의 새로운 입주자 카쿠로 오주... 작가의 일본취향이 작용한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다. 부자들마저도 관심을 갖을 정도로 돈이 많고 사회적인 약자에게 또한 편견없이 너그럽고 지적인 면모까지 갖췄으니 더이상 바랄게 없다. 카쿠로는 두 고슴도치 여인들의 내면의 모습을 간파해내고 그들과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르네를 과거의 상처속에서 건져올려 그녀에게 마지막이 될 행복의 순간들을 선물한다. 작가의 맹목에 가까운 일본취향이 좀 거북스러운 느낌이 든다. 다른건 다 참아주겠는데 일본여자들이 기모노의상 안에 갇혀서 종종걸음 치는 모습에까지 찬사를 쏟다니..작가의 취향이니 내가 어찌할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머리아픈 책은 질색이라고 하는 분이라면 조만간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니 영화를 기다려보라고 말하고싶다. 영화를 보고나서 책에 대한 호기심이 동한다면 그때 읽어봐도 좋으리라. 물론 책을 읽은 나는 영화가 궁금해진다.이 책 전반을 장악하고있는 문학과 예술분야를 넘나드는 지적퍼레이드를 화면에 어찌 담아낼지 무척 궁금하다. 이책을 읽으면서, 읽고나서 서양철학사를 차근차근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예전에 읽었던 '안나 까레리나' 또한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르네 아줌마라면 즉시 도서관으로 달려갔겠지만 지적호기심은 왕성한데 순발력이 떨어지는 나는 그래서 '그저 평범한 독자'로 남는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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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다. 고슴도치를 봤을때 어떤 생각이 들까? 이책의 전개는 르네라는 쉰네살의 수위 아주머니와 팔로마라는 열두살의 꼬마 여자아이의 개인적인 생각과 이야기로 전개가 된다. 시점이 두개인지라 마치 "그남자 그여자"라는 책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책은 그책과 달리 주인공 두명이서 서로 다른 상황에서 그들만의 생각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책 뒷표지 맨위에 "철학 콩트, 매력적이면서 유머 가득한 우정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쉰네살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 천재소녀의 감동 어린만남!" 이라는 글귀가 있다. 내가 이 문장을 인용한것으로 보아 알수 있겟지만 이책은 철학적인 요소가 진하다. 르네 아주머니는 쉰네살이고 수위라는 직업이지만 우리의 편견대로라면 그는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그냥 허무하게 지내며 뚱뚱한 고양이 한마리에게 밥을 주면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떠는 그정도의 수위에 그쳐야 우리의 편견에 맞겠지만 르네 아주머니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수위로 있는 아파트 또한 평범하지는 않다. 높은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만 사는 그런곳이다. 그런곳의 수위로 있는 사람이라면은 이런 컨셉도 어울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겉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훌륭한척 교양있는척 고상한척 하지 않는다. 내가 르네를 매력적으로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르네는 우리들이 지금 살고 있으면서 하고 있는 너무 많은척들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다는점.. 그것이 바로 고슴도치같은 그녀의 우아함이라고 할수 있다. 그녀는 누가 무슨말을 한마디 한다던지 한마디의 또 하나의 주인공 팔로마는 열두살의 똑똑한 소녀이다. 정신과 의사를 협박하고, 학교 선생에게 무안을 주는등 그는 똑똑하며 싸이코가 아니다. 그는 단지 이 세상에 허영심과 자기만족감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에 대해 적대심을 느낄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들과 자신의 같은 아파트에 사는 허영심많고 잘난체 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팔로마는 또다른 고슴도치인것이다. 그녀는 평소에 아주 조용해서 남들이 그녀가 똑똑한지 어리석은지도 잘 모를정도로 조용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잘난체 하고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한 천재소녀이다. 사회 비판적인 면이 너무 많아서 나이에 너무 걸맞지 않지만 그녀는 이 책에서 또한 매력적인 주인공중에 하나이다. 책의 줄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빨려 들게 하는 그런요소는 없다.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처음 접해본 프랑스 소설은 너무나도 어렵다라는 생각이다. 프랑스인들의 이름 누가누구인지 계속 헷갈렸다. 결국에는 마지막에는 팔로마와 르네 카쿠로오주 그리고 고양이들 (레옹,헌법,국회)야옹이들 밖에 확실히 기억을 못할만큼 프랑스인 이름은 너무나도 어렵다 -_- 외우기도 어렵고 다 거기서 거기인 이름같고 등장인물도 초반에는 너무 많은지라 안그래도 이름을 기억하는데 너무나도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책을 읽는데 한가지 팁을 주자면은 책의 맥 뒤쪽 책표지를 보면은 아파트층별로 사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있다. 등장인물들이 나올때마다 그곳에서 그 사람이 몇층을 사는지 안다면은 사람이름을 기억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을 받을수는 있을것이다. 나는 왜 그 사실을 책을 다 읽고나서 프랑스에서 꽤 인기가 오래동안 많았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한국민의 정서의 맞을만한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아무래도 예술적인면이 강한 나라니깐 문학작품이나 영화같은것을 많이 언급해놓은 이런책들이 좋은가 보다. 그렇지만 나의 지적 능력이 부족한건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사상들이나 문학작품은 아는것이 단 한개도 없었다. 그리고 등장인물중에 오주라는 일본인이 나오는데 작가는 아무래도 일본문화를 많이 좋아하는것 같다. 그래서 일본문학과 영화등에 대해서도 책에서 많이 언급을 했는데, 안그래도 어려운 프랑스문화에 일본문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어려움을 계속 주었다. 이책의 등장인물중 일본인 오주대신에 한국인 한명을 집어넣었다면은 이책을 읽는데 나는 프랑스작가가 한국의 문화를 동경하고 멋지게 전개해주는 사실에 감사하며 읽을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책은 너무나도 철학적이다. 주인공 르네 아주머니께서는 자동차사고로 죽는 순간까지도 철학적인 생각을 하신다. 머리를 식히기에는 약간 복잡스러운책인것 같다. ^^ 철학적인 지식과 예술적인 지식을 어느정도 가지고 계신분들께는 아주 재밌게 읽힐것 같은책이다. 그렇지만 이책을 일반인들이 읽는데 재미는 있다. 우리가 원하는 높은 사회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허세와 거만을 떨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들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척하면서 사는 시대에 이런 고슴도치와 같은 우아함을 가지며 사는것이 정말로 멋지게 사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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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재미있으면서 뭔가 난해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잠시 고민을 한 책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책을 읽게 되었다.
먼저 두 주인공은 너무 조용한 인물이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는 이해받지 못하는 인물, 남들이 보기에는 어떤 '문제'로 보이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양하고 매력적이다.
서로 각각 한 아파트에서 한 명은 수위로, 한명은 부잣집 막내 딸로 서로의 이야기를 각각 전개해나가다 아파트에 새로운 입주자 들어오면서부터 둘은 만나게 된다. 아니, 서로가 세상속 사람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사람임을 눈치챈다.
수위 아줌마는 아주 박식하다. 문학, 철학, 회화, 영화, 음악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이런 수위 아줌마는 남들이 각인시켜놓은 '수위'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녀의 박식함을 감싸고 또 감싼다. 자신이 박식함이 드러나는 순간, 그녀는 이상한(?) 수위 아줌마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상이 정해놓은 못생기고 가난하고 냄새나는 수위여야 했다.
부잣집 천재소녀 역시, 자신을 조금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면 자신이 세상사람들로부터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일기를 쓴다.
이 둘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박식함을 조금이라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 것에 비교하면 이 수위 아줌마와 천재소녀는 더욱 특별하다. 조금이라도 아는 척, 있는 척,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에 비하면 말이다. 대신 수위 아줌마와 천재소녀는 글을 쓴다. 글로 풀어낸다. 그게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으로부터 그녀들의 박식함을 선물로 받게 된다.
딱 대놓고 말해, 이 소설은 조금 난해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무지 재미있다. 읽을수록 좀 전에 넘겼던 앞 장의 내용이 다시금 상기되고, 읽으면서도 또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으면서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돈 주고 사도 안 아까울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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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르네의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다. 그것은 꼭 독서나 예술에 대한 고상한 취미 뿐 아니라 어떤이에게는 자전거 타기가 될 수도 있고 어떤이에게는 텃밭가꾸기가 될 수도 있고.. 그 취미안에서 우아해지는 그래서 그 안에서는 자신이 왕이고 여왕이 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시간과 돈에 쫓기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쫓기지 않고 누리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다 우선 나와 내 주위 사람들 부터라도...
이 책을 읽으며 오버랩 되던 것들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바그다드 까페. 건방진 말이지만 아직까지는 농익지 않은 소설이라서 다음 책이 오히려 더 기다려지기도 한다 물론 이책도 간간히 눈시울 붉혀가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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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부인, 그녀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녀는 가시로 뒤덮여 있어 진짜 철옹성 같지만, 그러나 속은 그녀 역시 고슴도치들처럼 꾸밈없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다고 난 직감했다.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참 괴팍한(?) 소설이다. 적당한 수준의 철학과, 적당한 수준의 미학, 적당한 수준의 사색과 적당한 수준의 고전과 문화,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일본 문화에 대한 애정이 혼재된 흔치 않은 소설. 그렇기에 어쩌면 이 부분들에 대한 적당한 수준의 참을성(?)을 갖지 않으면 '뭐야, 이건'이라고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이나 최근 소설들의 경향처럼 '시적 서사'(바리데기에 대해 황석영 작가가 밝혔던 것처럼) 혹은 '영화적 연출' 등의 빠른 전개나 긴장감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이 책의 주인공인 쉰 넷 먹은 수위아줌마 르네와 열 둘 먹은 천재소녀 팔로마의 끝없는 사유가 번갈아서 맴돈다. 그리고 독자는 이런 사유 속에서 작가가 펼쳐내는 이야기를 즐기게 된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