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선택하신 분은, 아마도 이쪽 중국철학에 전공하려고 하는 초년생이거나, 아니면 사서를 보아야 하는 한의학 전공자일 것이다. 만약 한문을 전문적으로 다뤄야 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은 어울리지 않다. 성백효 선생님은 대단한 분이시지만, 그분이 내신 사서집주를 가만히 살펴보면 분명 한글번역에 있어서 한계점들이 명백히 나타난다. 뜻을 풀이하지 않고 그대로 한자로 읽는 번역문이 그 대표적인 한계점인데, 혼자서 공부하다가 이런 번역문을 그대로 넘긴다면, 공부한 것이 모두 헛것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명문당 책을 권한다. 명문당 책의 문제점은 현토가 붙어있지만 그 해석이 없고 원문해석조차 옛글로 적혀 있어 명백하진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의 세로 읽기에서 오는 감칠맛과 또 해석본이 없다는 장점(?) 때문에 추천하는 것이다. 혼자 공부하는데는 이 책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서당에 가거나 민추나 한림원같은 한자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데 이 책만큼 적합한 것은 없다. 반대로 성백효 선생님의 책은 혼자 공부하는데는 적합하다. 또 구입할 책이 있는데 그것은 경서이다. 경서는 한글현토가 아니며, 주자주는 아예 점조차 없다. 그러나 역시 고문을 읽는데는 경서만큼 적합한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책을 모두 구입하는 걸 권한다. 명문당 책으로 공부하고, 정 풀리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성백효 선생님 책을 보고, 나중에 복습하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보거나, 또 외울 때는 경서를 이용해라. |
| 고전을 읽는다는 일은 그자체가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거기다 생경한 문자와 만난다면?! 글쎄... 맹자를 읽은지 한 10분쯤 지나면 머리가 멍멍해져 버려서 내가 무얼하는지 모를 정도다. 그렇게 책을 붙잡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가버려서 허망하다. 지금 맹자를 붙들기 시작한지 2달이 다 되어 가지만, 그 본뜻을 헤아리기가 너무 벅차다. 난 처음에 이 책이 아닌 대만본 한문대계로 시작했다. 그 책에는 주주만이 아니라 장지, 집소, 조주와 그외의 주들이 함께 있어 맹자에 대해 논의 한 부분의 상이점이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읽다보면 자세히 읽을 수는 있으나, 한번 다 보는데는 무한한 시간이 걸릴거 같아서.. 이 책을 구입했다. 주희의 주를 먼저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비교해 볼 생각이다. 책이 우선 가로쓰기로 되어 있어 편하다. 물론 해석이나 한자에 오류가 없는 건 아니다. 대전본이나 다른 책하고는 다른 해석이나, 한자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해석중에는 그래도 나은 것 같다. 어짜피 한문은 자신이 해석하는 것이다. 직접 읽어서 해석해보고 다른 자료를 찾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문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해석을 너무 중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약 맹자를 원전으로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당연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전통문화연구회 홈피에 가면 각종 고전을 인터넷 강의 하니 참고해도 좋을 듯 싶다. 또한 주희의 주를 다 읽고 나면 조주나 그외 맹자를 해석한 여러사람의 견해를 함께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몇천년전의 사람과 만나는 대화인데, 자꾸 멍멍해지는 머리를 붙들고 가는 시간을 잡아가면서 열심히 읽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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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孟子(맹자)』 14편과 朱子(주자)의 章句集註(장구집주)를 懸吐(현토)하고 國譯(국역)한 것이다. 孟子(맹자)(B.C 372-B.C 289)는 戰國時代(전국시대)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孔子(공자)의 학문사상을 계승하여 仁義(인의)를 제창하고 王道政治(왕도정치)를 행할 것을 강조한 인물로, 후대에 亞聖(아성)이라 稱號(칭호)하여 공자와 함께 推尊(추존)되고 있다. 『맹자』의 주석서는 여럿이 있으나 주자의 집주가 가장 정확하고 알기 쉬운 주석서로 알려져 왔다.
주자가 평생의 정력을 바쳐 수많은 학설의 異同(이동)을 절충하여 四書集註(사서집주)를 만들었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程朱學(정주학)을 신봉한 나머지 永樂大全(영락대전)을 內閣(내각)에서 간행 반포함으로써 오로지 주자의 집주만을 읽어왔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문헌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주자의 집중에 입각한 논어의 해석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이 역주자의 주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四書三經(사서삼경)중에서 『孟子(맹자)』가 가장 흥미진진하다. '오십보백보' 등 비유를 절묘하게 사용하여 더 이상 대항을 못하고 항복하게 만드는 대웅변가이다. 그러나 맹자는 스스로 변론을 좋아해서가 아니고 부득이해서라고 말하고 있다(p. 189)
김용옥씨는 『맹자』라는 책의 초두에서부터 梁惠王(양혜왕)이나 타 治者(치자)들과 논란을 벌렸던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인구의 확보라는 단순한 사실로 귀착된다(『노자철학 이것이다』, 김용옥, 통나무, 89년3월 중판, p. 312)고 한다. 맹자와 양혜왕 등과 이야기하는 富國强兵(부국강병)의 실내용은 人口(인구)의 팽창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구란 곧 노동력을 의미하고 전국시대에는 전쟁의 시기이자 무한히 개척할 땅이 있던 시기이므로 인구의 팽창이 곧 부국강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맹자』에 나오는 여러 구절에서 확인된다.
'寡人(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도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더 적어지지 않으며, 寡人(과인)의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p. 20)
'천하의 백성들이〈魏나라로〉올 것입니다'(p. 23)
'땅을 다시 더 개척하지 않으며 백성을 더 모으지 않더라도'(p. 80)
'심하지 않으면 몸이 위태롭고 나라(국토)가 줄어든다'(p. 200)
맹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나라는 '5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70세 된 자가 고기를 먹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구절은 3군데(p. 22, p. 42, p. 391)에서 나온다.
그리고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眞興王巡狩碑(진흥왕순수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巡狩(순수)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 책에 보면 巡狩(순수)란 天子(천자)가 諸侯國(제후국)에 가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p. 53, p. 358)(『서경집전(상)』, 성백효, 전통문화연구회, 98년7월 초판2쇄, p. 47)
이 책을 읽으면 맹자의 당당함을 읽을 수 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양혜왕이 '老人(노인)께서 千里(천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하자. 맹자가 말하기를 '왕은 하필 利(이)를 말하십니까? 오직 仁義(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말하고 있다.(p. 15) 맹자가 한 번 움직이면 따르는 食客(식객)이 상당히 많았을 터인데도 당당히 인의을 주장하고 있다.
이 것은 다음구절에서도 확인된다. 팽경이 물었다. "뒤에 따르는 수레가 수십 대이며 從者 수백 명을 거느리고 諸侯王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 그 道가 아니라면 한 그릇의 밥이라도 남에게 받아서는 안되지만, 만일 그 道라면 舜임금은 堯임금의 天下를 받으시고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으셨으니, 그대는 이것을 지나치다고 여기는가?"(p. 175)
'惻隱之心(측은지심)은 仁之端(인지단)也(야)요 羞惡之心(수오지심)은 義之端(의지단)也(야)요 辭讓之心(사양지심)은 禮之端(예지단)也(야)요 是非之心(시비지심)은 知之端(지지단)也(야)니라'(p. 104)라고 하여 '四端(사단)'을 말하는데 이 구절이 『중용』에 나오는 '喜怒哀樂之未發(희노애락지미발)을 謂之中(위지중)이요,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을 謂之和(위지화)(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情(정)이 發(발)하지 않는 것을 中(중)이라 이르고, 發(발)하여 모두 節度(절도)에 맞는 것을 和(화)라 이르니)'(p. 61)라는 구절과 관련하여 조선 중기 退溪(퇴계) 李滉(이황)(1501-1570)과 그의 제자인 高峰(고봉) 奇大升(기대승)(1527-1572)간의 8년간에 걸친 유명한 四端七情論爭(사단칠정논쟁)의 단서가 되는 구절이다.
조선시대는 학자와 정치가가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가 고등학교 도덕시간에 배운 주기론, 주리론, 이기호발설 등등을 지금은 단지 학문적인 논쟁으로만 여기지만 조선조 중기의 서인인 尤庵(우암) 宋時烈(송시열)(1607-1689)과 남인인 미수 許穆(허목)(1595-1682)간의 禮訟論爭(예송논쟁)에서 보듯이 단순한 학문적 논쟁이 아니고 정치적 함의가 있는 논쟁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회사에 근무하니까, 이런 어려운 고전책을 읽지 않고서도 살아가는데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經濟(경제)란 단어가 영어 economy의 번역어지만 이 것은 원래 經世濟民(경세제민)의 약자로서 정치적 용어이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경제를 어떻게 이해했을까하는 것을 알려면 고전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대학시절에 읽은 수많은 사회과학 책들이 현재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거의가 절판되었거나 자료를 찾을 수조차 없다. 일시적 유행의 일종이 어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소위 四書三經(사서삼경)은 적어도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읽은 스테디셀러인 것이다. 한국경제나 매일경제를 보면 매주 기업체 사장들의 인터뷰가 실리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취미가 독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읽은 책의 대부분은 얄팍한 경영·경제서적일 경우가 많다. 그러한 책들의 대부분은 몇 년 있으면 모두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질 책이다. 그러한 책보다는 오랜 역사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고전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天下(천하)의 넒은 집(仁)에 거처하며, 天下(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天下(천하)의 大道(대도)(義(의))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道(도)를 행하여, 富貴(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貧賤(빈천)이 절개를 옮겨놓지 못하며, 威武(위무)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것 이를 大丈夫(대장부)라 이르는 것이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이 사람에게 내리려 하실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 心志(심지)를 괴롭게 하며, 그 筋骨(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 體膚(체부)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空乏(공핍)(빈궁)하게 하여, 행함에 그 하는 바를 拂亂(불란)시키니, 이것은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 능하지 못한 바를 增益(증익)해 주고자 해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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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는데 나도 모르게 이 책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사실 이 책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실 좀 무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은 이 책은 맹자를 공부하기 위한 책이며 혼자서는 좀 무리이다. 혼자서 이 책을 읽고 공부하여 맹자를 다 깨우친다는 것은 사실 너무도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아는 친구에게 배웠는데 사실 나로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가 21세기를 살아가면서 그동안의 도를 모른다면 그것은 얼마나 난처한 일인가 과거를 알아야지만 현재 앞에 떳떳이 설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맹자 공부를 하기에 앞서 이 책을 먼저 탐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런 연후에 이 책을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인상깊은구절] 혹높은 자와 친한자가 반드시 어질지 못하면 반드시 소원한 어진이를 등용하여 써야 하니 이는 낮은 자로 하여금 높은 이를 넘게 하며 소원한 자로 하여금 친한 이를 넘게 하는 것이니 예의 떳떳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삼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좌우의 신하가 그를 어질다고 말하더라도 허락하지 말며, 여러 대부들이 모두 어질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아서 어짊을 발견한 후에 등용하며 좌우의 신하들이 그를 불가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며,여러 대부들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하더라도 듣지 말고, 국인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한 후에 살펴 보아서 불가한 점을 발견한 뒤에 버려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