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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애절함 뿐이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암울함은 그녀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기 안으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그녀의 세상은 실로 넓지 못했고, 그 좁은 세상마저도 모조리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묘한 기분 속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것은 일종의 우울함을 야기했다. 노골적으로 슬픔을 토해낸 것도 아니건만. 그녀의 시가 지닌 세련됨은 그녀가 가지고 있었을 상처들의 흔적을 훌륭히도 감당해내고 있다. 하지만 그 감추어진 상처들을 발견하는 그 순간 느껴야 하는 아픔은 배로 컸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슴’은 그녀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자아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잃어버린 전설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분명 그녀는 현실 아닌 과거에 속한 자신의 모습을 원하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 하고 있는 슬픈 형상을 그녀는 전혀 다른 이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는 쓸쓸함을 고귀한 자태로 승화시킨다. 무척이나 높은 족속이었던 것 같은 한 사슴의 모습은 그녀가 그리워하는 영광스러운 지난 날의 자신의 모습이다. 그렇게 그녀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즉 먼산을 바라보는 한 마리의 사슴일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서글프게 만들었던 것일까. 이어지는 시 ‘자화상’은 이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었다. ‘사슴’에서 두드러졌던 나르시시즘의 형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모멸감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 모멸감을 불러 일으키는 주체는 그녀 자신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가 차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의 성격이 그녀의 모습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녀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힘이었다.
이런 정서는 그녀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다. 그녀가 노래하는 모든 것들은 현실 아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택한 것은 다름 아닌 도피였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세상을 동경하고, 하늘을 수놓는 별을 바라보며, 그렇게 그녀는 현실에서 스스로 금기시해버렸던 희망을 은밀히 속삭인다. 그 희망은 어느 순간 그녀도 모르는 사이 너무도 강렬하게 돌변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를 소유하고 있는 거지가 부럽노라고 말하기도 하고, 조국과 민족의 독립이 약속된 날이 분명 있으리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불행스럽게도 그렇게 그녀가 노래한 희망들은 너무도 먼 곳에 존재했고, 그 희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녀는 가시밭을 헤치고 걸어야만 한다고 절규했지만, 분명 그것은 희망이었고, 그녀로 하여금 그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시대가 달라졌고 세상이 변했지만, 이 세상에서 분명한 희망을 읽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의심하고 이미 내려버린 결정들에 대해 번복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을 부정해버림으로써 괴로움에 대한 책임을 모면해보려 든다. 그녀가 택한 방법이 나르시시즘이었다면 내가 택한 방법은 철저한 자학이었다. 어쩌면 난 한 마리의 사슴을 노래해야만 했던 걸지도 모른다. 비록 그 사슴이 슬픈 형상을 하고 날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내게 필요했던 건 슬픈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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