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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그 답을 유추하는 과정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의 화자인 <나>와 누군지 알 수 없는 대상인 <너>와의 관계는 한없이 모호하고 난해하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無名의 어둠에>는 너 혹은 나조차도 실질적인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1연 1행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는 화자를 한낱 동물 정도로 치부하는 대담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나의 열등의식의 표출이자, 다른 자연현상이나 동물이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어둠이나 짐승, '나' 혹은 '너'가 모두 다 동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동등함이란 동일함과도 상통하는 것인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고 있다.
이 시는 인간 존재에 대한 고백의 일종이므로, 딱히 거창한 주제를 포착해내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1연 2행의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은 나와 너의 관계 맺음이 '너'를 변화시켜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1연 2행의 끝맺음은 <너는 어떻게 변화하였다>가 아닌 <너는>이다. 이는 너의 변화가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지를 궁금하게 여기게끔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1연 3행에서 알 수 있듯이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으로 변모한다. 시의 내용에서 표출되고 있는 존재의 심연은 <미지>나 <無名> 등의 어휘를 통해서도 그 뜻을 드러낸다.
<어둠>은 빛이나 밝음과는 반대의 개념으로써 사물을 구별해내는 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 배경이다. 이는 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더욱 간절한 것으로 만드는 이미지이다. 또한, 2연에 제시되고 있는 <無名의 어둠>이나 <한밤>을 통해 어둠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뒤에 가서 언급하겠지만 <-얼굴을 가린>은 어둠 즉, '나'라는 존재를 더욱 몽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결국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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