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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천안함 희생자들의 합동영결식이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냉전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 유적지에서 우리는 오늘도 살고, 또 그렇게 한동안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원인도 모른 채 숨져갈 때 켸켸묵은 이념의 선전문구만 그들의 죽음을 감싸고 있었다. 아주 낡은 꼬리표처럼. 나는 그 46명의 젊은이들을 보내며 이 세상에서 이념의 제물이 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희생을 담보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생각할 때, 이데올로기의 환상은 세대를 두고 끝없이 재생산되어 누군가의 배를 불리워 주리라는 끔찍한 상상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라 비올렌씨아!(폭력의 시대)하면 어느 팝송의 제목 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콜롬비아 자유당과 보수당의 내전으로 20만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이것을 일컬어 폭력의 시대(라 비올렌씨아)라고 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FARC)과 정부군 또는 우익 민병대와 부호들의 개인 사병에 이르기까지 자국내 무장 세력들간의 끝도 없는 충돌과 약탈, 납치 등으로 가족을 잃고 재산과 땅을 잃은 사람들이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내전으로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심신까지 파괴된 콜롬비아의 열악한 환경을 딛고 그들만의 마음의 안식처를 마련한 가비오따쓰 생태공동체의 이야기이다. 미국의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는 베테랑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에게 세계적인 환경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기록하는 일을 맡겼다. 그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 나라의 무질서 속에서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 <가비오따쓰> 생태공동체를 듣게 되었다. 지구의 환경파괴 대가로 발전을 거듭한 세계적 도시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살육의 현장에서 그는희망과 승리의 상징을 발견한 것이다. <가비오따쓰>라는 마을은 <야노쓰>라는 거대한 열대 사바나의 젖은 사막, 표토의 깊이가 2센티미터 밖에 안 되고 그마저도 산성화되고 알루미늄 독성에 오염된, 콜롬비아에서 가장 척박한 땅 <야노쓰>에서 유토피아가 되었다. 저자는 이런 척박한 곳에서의 성공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 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사막이란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일 뿐, <가비오따쓰>는 상상력이 만발한 오아시스였다. 앨런 와이즈먼은 계속 그곳을 방문하며 <가비오따쓰>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소설 형식을 빌려 다큐멘터리와 같은 생생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 준다. 1971년 이탈리아 이민 2세대인 파올로 루가리는 일단의 콜롬비아의 이상주의자들과 기술자들을 이끌고 야노쓰로 향했다. 그는 야노쓰야말로 열대지역을 대신하여 이상적인 문명을 펼치는 데 가장 완벽한 환경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자연을 닮았고 가장 환경 친화적인 도구들을 개발하였다. 진창과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는 개울로 이뤄진 땅에서 깨끗한 물을 찾기 위해 수동펌프를 발명하고 식수의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태양열 주전자를 개발하였다. 또 열대바람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풍차, 비가 올 때도 작동되는 태양열 온수기, 식용 및 약용작물 재배를 위한 수경재배법 등도 고안했다, 1990년대에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라져 가는 열대우림을 되살려 또 하나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처럼 30여년 동안 이 생태환경마을에 사는 과학자, 장인, 농부, 길거리를 떠돌았던 소년들, 그리고 인디언들은 세계적인 구호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현실로 일궈낸 것이다. "가비오따쓰는 카오스에서 무작위로 태어난 것들의 총체입니다. 가비오따쓰는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기회가 만들어지는 장소, 경쟁 대신 협동이 들어서는 장소입니다." 가비오따쓰는 또한 분쟁지역 한가운데서 정부군과 게릴라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중립지대를 고수함으로써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침탈받지 않고 생태마을을 가꾸어 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생태공동체가 하나의 축이라면 또 다른 축은 좌우 이념의 대결을 넘어 피로 물드는 갈등을 겪지 않을 대안 사회에 대한 가능성이다. 가비오따쓰 공동체의 설립을 주도한 파올로 루가리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변호사이자 지질학자였으나 19세기 콜롬비아 대통령의 고종손녀와 결혼하면서 콜롬비아 엘리트층에 진입하였고, 이런 덕분에 루가리는 콜롬비아 내에서 최고 엘리트에 드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발전이라는 한 신부님의 말에 감명을 받은 루가리는 보고타 국립대학을 졸업한 후 제3세계 발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시아와 남미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그가 선택한 곳이 바로 가비오따쓰였다. 그는 태양열 이용이 걸음마 단계였던 70년대 초반 고립무원의 제3세계 오지에서 태양력, 풍력과 같은 대체에너지만 이용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보인 것이다. 76년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곳을 공동체 모델로 선정했고, 이후 유엔을 비롯한 국제단체들은 가비오따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석유위기를 거쳐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가비오따쓰는 80년대에 세계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콜롬비아의 동쪽 초원 가비오따쓰는 정부나 반군 모두 콜롬비아의 미래로 인식하고 있다. 가비오따쓰인들은 이제 그들이 심었던 온두라스산 소나무에서 최고급의 송진을 채취하여 시판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였고, 코카 재배를 대체할 약용식물의 재배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코카를 능가할 수익성이 보장되는 약용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콜롬비아는 세계적 마약 국가에서 친환경적 모범국가로 탈바꿈 하고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제1세계가 파괴한 지구환경을, 그들이 멸시하고 환경 파괴의 피해만 물려주었던 제3세계의 국가 콜롬비아 오지에서 가비오따쓰인들은 지구 환경 복원의 작은 씨앗을 틔우고 있는것이다. 인종과 직업에 의해 차별 받거나 무시되지 않는 사회,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없는 평등한 사회, 경찰도 군인도 존재하지 않지만 법죄가 없는 사회, 교육과 의료 노후대책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꿈의 도시를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아브람도 도서실 지붕을 고쳐야 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우리 부서의 사람들을 모두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그가 뽐삘리오에게 말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그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파올로 루가리는 가비오따쓰인들이 늘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차분한 토론을 통해 결론에 이르는 모습을 경외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위협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그들은 해결점을 찾았고 또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특징이었다. (P.341-342) 떠나면 그리워지고, 머물 때는 떠나고 싶지 않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 그 영혼의 안식처를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내 마음 한 귀퉁이에 내 영혼의 안식처를 꿈꾸게 되었다. 나는 그곳으로의 귀향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 흔히 '발전'發展에 대해 말하면, 미개국이나 후진국에 대한 개발도상국을 대비하거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을 대비해 이해하기도 하며, 이전의 불편한 단계에서 한 단계 편리한 단계로 전환했을 때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발전의 진정성을 찾아본다면 국민총생산이 얼마인지 혹은 국내총생산이 얼마인지, 무역수지의 흑자 전환이나 달러 보유액의 상승 추세, 그리고 자유무역으로 인한 기득권 확보나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주식 상장 등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발전은 국민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길을 닦거나 공장을 세우는 데 자금을 쏟아 붓기 전에, 정말로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아보는 데서부터 진정한 발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의 편린片鱗들을 조합해 펴낸 책이 있으니 『가비오따스』(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말)이다. 이 책은 우익 정부와 좌익 반군의 내전이 50년째 계속되고 있는 나라인 콜롬비아의 수도로부터 동쪽으로 약 16시간 거리에 해당되는 나무도 숲도 없던 오리노코 강 지류의 대 평원을 생태마을로 바꾼 과정들을 다루고 있다. 지금도 그곳에 닿으려면 정부군과 반군의 바리케이드를 통과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밝혀 주고 있다. 처음 그곳은 1만 헥타르의 땅이었다는데, 그런 험난한 곳에 파올로 루가리를 비롯한 여러 명의 대학교수, 교사, 엔지니어, 공학자, 토양학자, 음악가, 의사 등의 20 여 명 남짓한 숱한 주인공들이 이주해 와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훌훌 털어 내고 어떻게 원주민 야네로들과 유랑민 과이보 인디언들과, 그리고 농민들과 함께 합류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일궜는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30년 가까이 함께 한 손끝에서 햇볕으로 화석에너지를 대체했고, 바람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첫 숙제는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고, 진창 같은 개울만이 흐르는 그곳에서 깨끗한 물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그들은 깊은 지하수를 끌어올리려고 수동 펌프를 고안해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것을 어린이 놀이터의 시소와 그네에 연결시켰는데, 결국 아이들의 놀이를 동력으로 바꿔냈다고 한다. 그런 일련의 아이디어로 인해 계속해서 식수의 세균을 없애려는 생각 끝에 태양열 주전자를 만들어 내게 되었으며, 미약한 열대 바람을 에너지로 바꾸려는 고심 끝에 풍차를 고안해 냈으며, 비가 올 때도 작동할 수 있는 태양열 온수기도 만들어 냈고, 마약조차 자랄 수 없는 산성 땅에서 먹거리를 기르려고 결국 수경재배법도 생각해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생각한데서부터 시작한 아이디어들임에 분명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하여 가비오따스는 일약 세계의 이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중 태양열 이용은 76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공동체 모델로 선정될 정도였고, 석유 위기를 거쳐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될 무렵엔 유엔의 주목까지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가비오따쓰가 나무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그곳에 600만 그루의 온두라스산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훗날엔 그 소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들도 많이 옮겨 심게 되었고, 그들 나무로부터 송진을 채취하거나 다른 원료들을 채취해 물감이나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했다고 전해주고 있다. 그토록 놀라운 생태공동체의 기적을 일군 가비오따쓰이지만 오늘날 세계화로 접어든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들을 향해 진정한 개발을 이뤄 냈다고 극찬하지는 않을 게 뻔하다. 그것은 경제발전이나 생산력 증대를 이뤄낼 수 있는 문명의 전환을 가져온 게 결코 아니라는 시큰둥한 반응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친親자연환경의 토대 위에서 모든 사람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염원하고 있는 그들 가비오따쓰 사람들은 그 누가 뭐래도 진정한 발전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비록 나라는 다르고 풍토는 다르지만 환경오염 시대에 순수한 천연자원이 고갈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이 책에 귀를 기울여 봐야 할 때가 아닌 가 싶다. (2003년 10월 28일, 권성권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