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478페이지, 20줄, 22자.
표면상으로는 19세기 말 갑자기 일찍 닥친 겨울 때문에 북극해에서 조업을 하고 귀향해야 할 배들이 배로 곶 근처에 갖히게 되고 선원 275명이 사망할 위험에 처하자 알라스카의 경비선 베어 호에 대통령의 명령서가 도착합니다. 구할 방법을 찾으라고. 늙은 선원 저비스와 당시 누니바크 섬에서 학술활동을 할 계획이었던 맥앨런은 당시 알래스카에 에스키모 사업의 일환으로 제공된 순록을 몰고 가서 그들을 구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감동된 여러 사람들이 동조하여 1894년 3월 말에 조난자들에게 도착하여 최소한의 희생자만 남기고 무사히 구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적으로는 내부에 두 가지의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102-178페이지의 [에스키모 조] 이야기(찰스 프랜시스 홀의 폴라리스 호)와 295-406페이지의 [물의 정령 탐험] 이야기(래브라도 지역)가 기나긴 폭풍우 속 밤을 채우는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아마도 서로 다른 이야기로 생각되는데, 작가가 한 사람의 공통자(저비스)를 내세워 엮은 듯싶습니다.
권미에는 같은 작가의 [북서항로의 비밀]이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전에 읽었던 [느림의 발견]과 비슷한 사건을 다룬 것 같습니다. 즉, 북극해를 가로질러 가는 항로를 찾으려 했던 프랭클린의 탐험대 이야기입니다.
130420-130420/130420 |
|
12월 밤열차를 타고.... 겨울도시에서 바다가 있는 시골로의 여정. 밤열차를 타고 시골로 간다 보이지 않는 밤을 달린다. 열차가 시골로...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별이 보이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열차에 싣고 달린다 덜컹거리지만 의아한 자신을 주체치 못해 분주한 시름은 잊기도 한다. 나름의 세상을 보고 마디의 말미에 서서 급히 올라탄 열차는 단원의 막차이지만 마디짐을 견주어 보니 이른 첫차와 같기만 하다. 아침 새벽과도 같고 어두운 말미의 낭떨어지기와도 같다. 세상의 단원은 시차를 견주기 힘들어도 이른 새벽에 남긴 여명과 같으니 버젓이 다가서는 빈틈의 바람이 시럽기만 하다. 그 무수한 욕망은 어디로 가고 그 많던 동경은 어디에 숨었나? 간밤에 놓아 버린 비움의 가시밭에 서서 난 지난 꿈을 새긴다. 전부이리라 믿던 이기는 한낱 떨리는 두려움이 되고 버젓한 방침이라 믿던 동경은 날개를 잃었다. 가름하기도 전에 몰려오는 회의는 도리킬길 없는 허망만을 남긴채 스멀거리고. 뒤를 돌아다보는 룰을 범한 굴레낀 범인처럼 그렇게 자신을 숨죽이고 있다. 추스릴수 없는 잔재만을 남기고 말았으니 전부롭지 못한 희망은 부질없는 메아리만 남아 밤의 철로를 달린다. 어디로 가야 하나? 무심코 올라 탄 열차의 시간이 내리고 보니 보이지 않은 이질된 공터가 어지럽다. 봉황의 말미를 따랐고 새로운 용두머리를 휘잡진 못했지만 무던히도 나 아닌 나를 탈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만큼을 위한 그 자리에만 서성인다. 열차와 나 사이는 인생의 마디로 볼때 단원의 차이는 너무 상이하다. 너무 멀고도 차이가 있기에 그 만큼 틈새 운신의 폭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 만큼은 다달은 것같다. 이기가 충만할때 기획하고 도모한 시간이 도래하고. 나직히 기억되는 어디론 지나가야 하는 목마른 흔혼은 헤메이고 목마르다. 막차에 도달한 남루한 흔적일 뿐일까? 이른 여명처럼 선견한 질주의 시차일까? 혼미한 시간의 공백은 마치 정점에 도달한 막루처럼 실의만이 가득하다. 이젠. 새로운 시간에 귀빈으로서의 중후한 예약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질주스럽게 올라탄 막차의 시련은 모든 노략과 동경으로 물이들고 남겨진 잔재의 영광으로 남으니 그런 희비의 결과마저도 내릴 막차의 빈틈에 공허가 광활하여 다시오를 단원을 헤아리기 힘들다. 언젠간 뜻하지 않은 공백의 빈틈이 메꾸어 지리라 희망한다. 나아닌 타인들도 그렇게 지나야하는 공백의 틈새가 아닐까? 삶이란 무엇으로도 자신의 전부를 이룰 수 없다. 정 하여진 굴레아래 삶의 그 만큼으로 남는 인생의 섭리는 누구도 꿈의 나래를 넘을 수 없다. 인생은 바랜 허망의 유희 같은 것이지. 체념과 수용하는 비움이 지난 시간을 바래가는 흔적속에 묻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말미의 막차를 탔거나 새로운 여명의 첫차를 탔거나 기다란 말미에 드리운 그림자를 어찌할 수 없는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색다른 열차에 다시 올라타야 난 어디든 갈수 있다. 물론 그럴 이유나 의미도 이젠 퇴색되어 질주같은 탑승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삶으로 인생으로 나의 단원의 첫차를 기다려 본다. 그리 환희스럽거나 포만스런것이 아닌 질주하며 남긴 잔재의 흉터를 찾아. 때론 체념으로 때론 실의로라도 나를 일으켜 남긴 모든 이상에 최선의 최후를 따라야 한다. 우린 어느 마디를 당신의 막차라 일컸는가? 막차를 내리면 바로 여명의 첫차를 타라..... 그리고 떠나라. 당신의 길은 마음이 요원한 최후에 남길 마음에 고향이 남기어 있으니 나그네의 회귀처럼 일어나라. 본연의 고향으로 돌아가야할 것이 아닌가? 어느덧 계사년 한해가 간다. 무척이나 힘들었던 개인적인 한해였다. 밀려오는 틈새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수용하기 의아한 낯설은 그림자 때문이었다. 바람이 흘러가듯 시련도 고뇌도 지나가리라. 시작은 정점에 이르고 정점은 새로운 단원의 진혼을 전개하기 마련이다. 우리 다음 어디로 가야할지 묻지 말고 어디론지 흘러보자. 전부도 끝도 아닌 서성임은 아련한 무료만을 남긴다. 다가오는 갑오년은 모두 건강하시고 자신의 해동을 위해 정진하자. 아직 우리는 남겨진 흔혼이 아름답다. 최후에 남길 진귀한 흔적에 본연을 다해 최선을 다 하자. 인생이란 그렇고 그렇게 비슷하거나 그런것...... 특별하거나 의아하지 말고 당당히 처음의 마디처럼 힘차게 흘러가자. |
|
1956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품.
2004.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