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41%
  • 리뷰 총점8 41%
  • 리뷰 총점6 16%
  • 리뷰 총점4 2%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7.0
  • 40대 8.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내용보기
2002년에 출간된 책이 아직도 이렇게 잘 들어맞고 있다니 똑똑한 진중권의 무서운 통찰력에 여러 번 놀랐다. 요즘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을 읽고 있는데 이 책 여러 군데에서 니체의 영향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판 반시대적 고찰. 니체가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누구 하나 걸려들지 않을 수 없었던 넓은 비판 범위와 농담하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니체나 진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내용보기

2002년에 출간된 책이 아직도 이렇게 잘 들어맞고 있다니 똑똑한 진중권의 무서운 통찰력에 여러 번 놀랐다. 요즘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을 읽고 있는데 이 책 여러 군데에서 니체의 영향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판 반시대적 고찰. 니체가 욕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누구 하나 걸려들지 않을 수 없었던 넓은 비판 범위와 농담하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니체나 진중권이나 비판을 하겠다고 이념적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해서 실제로 비판을 하는 실천을 하고 있기에, 겉모습은 가벼워 보여도 사실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모두를 비판하고 적으로 만들어서야 용케 잘 살아계신다 싶어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하지만 용기내어 광대 역할 맡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말도 안 되게 썩어가는 일을 조금은 막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종교를 믿는다는 점에서, 도덕교사라는 점에서, 맹목적인 태도를 가지고 진중권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나도 그의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피해자이면서도 더이상 폭력 당하기 싫어서 가해자 편에 서려는 이상한 현상, 정말 교실에서 보았던 풍경이 연상된다. 따돌림 정도가 아니라 이지메 수준의 '마이너스1의 평화'는 우리 사회에서 미시적으로도 거시적으로도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학교는 신화적 폭력의 세계다. 이 무한경쟁의 세계에서 만인은 만인의 적이다. 네가 자고 있을 때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쉬지 않고 넘어간다. 네가 쉬고 있을 때 '친구'라고 불리는 적들은 사정없이 네 머리를 밟고 위로 올라간다.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유일한 정의는 폭력이다. 그래서 그들은 질서를 수립해야 했다. 어떻게? 서로에게 행하는 폭력의 잠재력을 오직 한 명의 약자에게 집중적으로 투사하기로 야속하는 것이다. 다대다의 어지러운 폭력이 다대일의 조화로운(?) 폭력으로 이행할 때 비로소 학급에는 질서가 생긴다. 위대한 마르크스. 과연 그의 말대로 인류의 역사는 학급투쟁(Klassenkampf)의 역사였던 것이다.(p.20)

 

지금 레드 컴플렉스로 똘똘 뭉쳐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념은 '국가주의'와 '자유지상주의'란다. 종교와 정치라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신화를 뒤집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 개인, 진정으로 타인과 연대하는 주체가 되어야하지 않겠느냐고 그는 말한다.

'길들이기'에 대항하는 싸움은 정체성(=동일성) 자체를 거부하고 주체성 자체를 거부하는 소극적인 방향이 아니라, 후기 푸코가 지적한 대로 주체의 윤리적인 자기 구성이라는 적극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계보학적 폭로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의 권력 의지를 활용하여 자신을 적극적으로 주체로 만들어나가는 존재미학의 실천으로 문제의식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p.239)

 

책 읽는 동안 광우병 파동 때 그가 현장 중계까지 해가며 투쟁 했던 것이 생각났다. 요즘은 그의 트위터를 애독하고 있는데 '진보 그만하게 되어 홀가분하다'는 말이 종종 보인다. 누가 더 진보고 누가 덜 진보라는 등급 매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책 내내 그는 우리 편 너네 편 나눠서 우리 편 사람이 잘못된 말을 해도 감싸주고 너네 편 사람이 맞는 말을 해도 잘못된 말인양 화내지 말자고 말하고 싶어하는듯 하다. 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오래 오래 광대 역할 해주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0.10.05. 신고 공감 5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철학함의 의미
"철학함의 의미" 내용보기
철학은 상아탑 속의 고귀한 귀족적 학문이 아니다. 진중권은 그것을 입증한다. 최근 철학은 인문학의 위기와 더불어 어떻게 현실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외로 관습의 패턴을 벗어나기란 정말로 힘들다. 진중권은 텍스트와 현실을 엮고, 텍스트를 현실의 지평 위에서 새롭게 읽는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건 철학 뿐만이 아니라 현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의
"철학함의 의미" 내용보기
철학은 상아탑 속의 고귀한 귀족적 학문이 아니다. 진중권은 그것을 입증한다. 최근 철학은 인문학의 위기와 더불어 어떻게 현실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외로 관습의 패턴을 벗어나기란 정말로 힘들다. 진중권은 텍스트와 현실을 엮고, 텍스트를 현실의 지평 위에서 새롭게 읽는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건 철학 뿐만이 아니라 현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의 학문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문은 어떻게 현실과 접목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도 텍스트 읽기의 공허함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이 책을 보라. 영감을 줄 것이다.
d****p 2003.05.20.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강추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추천.
"강추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추천." 내용보기
진중권. 연예인 팬클럽이나 스포츠선수도 아닌 이에게 팬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 좀 부담스럽지 않나 싶다. 팬클럽이란 아이돌을 숭배하는 것이고, 그 숭배는 신앙이다. 신앙은 대개 합리성이 결여되고, 맹목적이기 마련. 그래서 노무현 팬클럽에도 조금은 뜨악한 맘이 없지 않은 건데... 유일.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물게, 진중권은 팬클럽격의 지지자들이 존재하는 지식인이다. 어
"강추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추천." 내용보기
진중권. 연예인 팬클럽이나 스포츠선수도 아닌 이에게 팬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 좀 부담스럽지 않나 싶다. 팬클럽이란 아이돌을 숭배하는 것이고, 그 숭배는 신앙이다. 신앙은 대개 합리성이 결여되고, 맹목적이기 마련. 그래서 노무현 팬클럽에도 조금은 뜨악한 맘이 없지 않은 건데... 유일.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물게, 진중권은 팬클럽격의 지지자들이 존재하는 지식인이다. 어느 지식인을 막론하고 그의 사상적 편향에 따라 좌우가 나뉘고, 그의 어떤 이론이나 발언에 대체로 동조한다는 식이 아니라 "진중권" 자체를 지지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만큼 진중권이 좌로 부딪치고 우로 돌격하며, 어떤 사안이든 양비론이나 어정쩡한 중도를 표방하지 아니하고,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싸움은 자신의 삶을 파괴할 정도로 강위력해보이는 이미지는 아니기에 대부분의 나약한 소시민들...그러나 맘 속에는 울컥하는 일면은 비겁한 정의감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치는 것이고...왜? 자신의 삶은 안전하기에. 그리고 진중권의 스타일은, 그 미학은 비장함보다는 오히려 풍자이기 때문이다. 룰루랄라 즐거운 투쟁, 으랏차차 신나는 투쟁...하면서 억지로 재미를 강요하는 투쟁의 구호가 아니라 그의 글은 재미가 우러난다. 곱씹을 가치가 있고, 사골마냥 계속 재탕해먹을 골수가 있다. "폭력과 상스러움- 엑스 리브리스"는 그가 전에 냈던 "시칠리아의 암소-한줌의 부도덕"과 대체로 비슷하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있고, 그 전투 중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린 탄피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시칠리아의 암소"가 M16A1이라면 "폭력과 상스러움"은 M60? 그만큼 좀더 무게가 있지만 그 무게가 읽는 이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엑스 리브리스는 "책 속에서"라는 의미의 라틴어. 진중권은 이곳 저곳에서 따온, 인용한 문구들로 자신의 글을 만들어갔다. 그가 비판하는 것의 정체를 한마디로 일별하면 그것은 "폭력"이다. 그 폭력에 대항하여 그는 "상스럽게" 잡글의 폭격을 퍼부어댄다. 훌훌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노혜경 시인의 "진중권론"에 의하면 그는 한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자라기보다는 "인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식이 강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실천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긴장감을 준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p******9 2002.04.27.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폭력과 상스러움
"폭력과 상스러움" 내용보기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국 문학이나 명작, 고전, 가벼운 수필 중 주로 여행기 등을 읽었고 사회과학 서적은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진보적인 지식인의 글을 읽어 볼 기회가 없었다. 문어체와 구어체의 섞임, 비꼬는 듯한 반어법이 페이지 페이지 마다 가득 차 있어서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읽어나가다 보니 그 나름의 미학에 적응되어 갔다. 이 책은 그 동안 나와
"폭력과 상스러움" 내용보기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국 문학이나 명작, 고전, 가벼운 수필 중 주로 여행기 등을 읽었고 사회과학 서적은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진보적인 지식인의 글을 읽어 볼 기회가 없었다. 문어체와 구어체의 섞임, 비꼬는 듯한 반어법이 페이지 페이지 마다 가득 차 있어서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읽어나가다 보니 그 나름의 미학에 적응되어 갔다. 이 책은 그 동안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주의와 가족주의, 파시즘, 극우, 공동체와 같은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사회란 하나의 커다란 구조가 덩그러니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구조들이 모이고 그 모임이 반복되어 구성된다. 왕따를 ‘마이너스1의 평화’라는 제목 아래 분석한 글은 참 인상적이였다. 초등학교부터 직장까지 만연되어 있는 왕따는 결국 사회 분위기를 누구 하나 튀어나오지 못하게 가둬놓는다.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를 획일적으로 만들어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을 심어놓으면 그 집단은 필연적으로 외부에 대해 배타적, 공격적이 된다는 것이다. 내부에서 마이너스 1을 찾던 그들이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왕따 현상을 파시즘과 제국주의에 연결시켜 놓았다. 놀라운 접근 방식이다. 저자의 독특한 시각은 가족 동반자살을 보는 데서도 나타난다. 중국,한국,일본 등의 동아시아에서 가족을 중요한 사회의 단위로 보고 중요시하는데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있다. 그것이 바로 잇카신주-가족동반자살이다. 또한 가족주의가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사고 방식이 아니라 극우성향을 가진 단체들의 사고 속에서도 가족은 중요한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가족주의의 역기능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오직 인간으로부터 자립한 압제적 권력에 대항하는 희생, 허구적 이념과 주관적 드라마를 ‘탈극화’하여 현실로 돌아오는 냉철한 희생, 집단이나 이념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자기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희생. 이런 희생만이 진리를 세울 수 있다. 전태일의 희생이 값진 건 그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h****y 2004.10.2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언어 밖으로, 해석 밖으로, 텍스트 밖으로
"언어 밖으로, 해석 밖으로, 텍스트 밖으로 " 내용보기
진중권의 <폭력과 상스러움>을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은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으며 일고 싶어졌던 책이다.  사실 그 책을 통해 난 읽고 싶은 몇 권의 책을 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들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겠다 혼자 다짐을 하고 아홉여달이 지난 이제사 읽게 되었지만, 아무튼 내게는 제법 서둘러 읽게 된 책이기도
"언어 밖으로, 해석 밖으로, 텍스트 밖으로 " 내용보기
  진중권의 <폭력과 상스러움>을 이제서야 읽었다.  이 책은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으며 일고 싶어졌던 책이다.  사실 그 책을 통해 난 읽고 싶은 몇 권의 책을 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들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겠다 혼자 다짐을 하고 아홉여달이 지난 이제사 읽게 되었지만, 아무튼 내게는 제법 서둘러 읽게 된 책이기도 하다.  왜 이토록 이 책이 읽고 싶었냐고?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나는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그래서였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백분토론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그의 언변이 얼마나 유창한지, 또 얼마나 논리적으로 탄탄한지 말이다.  솔직히....  솔직히 말이다.  그냥 '진중권, 당신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  내심 뭐 이런 불손한 의도로 이 책을 집었다.  이게 다다.

 

  폭력과 상스러움.  폭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자비함과 상스러움이라는 단어의 경박함.  그러나 난 이 표제가 싫지 않았다.  도리어 단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훌렁 벗어던질 수 있는 멋진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책이 담은 내용을 이처럼 함축적인 표제로 쐐기를 박을 수 있음이란.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책에서 말한 그의 개인적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진중권, 그가 이 책을 이리 간단 명료한 두 단어 속에 담았다는 것은 제법 경쾌했다.

 

  먼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 책은 그의 말을 빌자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인용'과 거기에 붙인 그의 코멘트로 이루어져 있(머리말에서)'다.  다시 말해, 한 문장을 씹고 삼켜 제 나름대로 걸쭉하게 배설해냈다는게 아닐지.  그러니 나는 이제 진중권의 똥맛을 볼 일만 남았다.  얼마나 이쁘게 잘 싸놨는지 말이다.  오오, 이 책은 정말 아주 특별할 뻔 했다.  또 다시 그의 말을 빌자면, '실현되지 않았지만 원래의 의도는 인용에 붙인 코멘트마저도 남의 말의 인용으로 채우는 것이었(역시 머리말에서)'단다.  이 책이 이렇게 쓰여졌다면 필시 나는 읽기도 전에 이 책을 나의 베스트에 단숨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발터 벤야민의 <파사주>에서 '인용부호를 붙이지 않고 인용을 하는 법....(또 머리말이야)' 이라는 대목을 거론했다.  한 마디로, 그는 인용구의 코멘트들을 전부 남의 말의 인용으로 채우지는 못했으나 결국 인용구를 붙이지 아니하고 남의 말의 인용으로 채우려는 자신의 의도와 그리 멀지 않게 접근한 글이라는 점을 짚어 주었다.  논증 없이 주장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을 아는 자 다운 서술이 아닌지.       

 

  그런데 이는 비단 책의 머리말에서 뿐만 아녔다.  1장 폭력에서 첫 chapter인 '마이너스1의 평화' 를 읽고는 감탄했다.  '오호~ 최고봉 논객다워'  그는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에서의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라는 인용구에 붙임글이었다.  아, 르네 지라르라는 자가 말한 이 문장은 그의 이름처럼 얼마나 지라-ㄹ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니, 그렇지 않다면 이 문장을 한국어로 초기번역한 자의 죄로 치부해야 할까?  그런데 진중권은 이 문장을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것도 아주 알아 듣기 쉽게.  (근데 뒤로 갈수록....  음, 소위 말해 지식인만이 해독할 수 있을 법한 어투와 단어로 내게 큰 소외감을 안겼지만 말이다.)  나는 이 chapter를 읽고 그에게 살짝 매력을 느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근데 이 매력이 오래갈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폭력에 이어, 죽음, 자유, 공동체, 처벌, 성, 지식인, 공포, 정체성, 민족, 힘, 그리고 프랙털을 끝으로 그의 엑스리브리스는 끝이 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고(그가 거론한 자들과 사건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이 책을 읽었음에) 답답하기도 했고 또 톡쏘는 탄산음료 한 잔을 원샷하고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알싸함을 느껴야 했다.  이 여러 cahpter 중 특히 내게 관심이 있었던 chapter는 5장 처벌이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내 관심사이자 고민의 대상이 되어왔던 사형제 존치, 폐지에 대한 대립과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우스 12세의 <국제형법에 관하여>에서 형벌의 보복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p.127' 라고 빌어온 것을 보면 굳이 가릴 필요는 없겠지만 그는 사형제 폐지론자인 듯.  이건 뭐 중요한 건 아니다.)  여하튼 그는 사회적인 이슈와 화두를 곱게 지나치지 못한다.  꼭 칼질을 하든, 똥칠(어떤 것을 소화하고 자기 방식대로 뱉아낸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을 하든 하고야 만다.  어쩌면 이는 이 시대를 사는 생명력있는 철학자가 되고 싶음이 아닐런지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고 싶다.  혹자는 '지가 뭔데 자꾸 여기 저기 들쑤셔?''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자가 정말 수준높은(아무도 규명한 일은 없음) 논객이 맞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는 대목 또한 여럿 있었다.  이를테면, 독자의 무지와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이 단죄하고 정죄할 자에 대해서는 거침없다는 점이다.  왜 그러한지, 그들이 왜 그리 당신께 욕을 잡숴야 하는지는 거두절미하고 막말을 해댄다.  어쩌면 그의 이런 태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침없고, 일부러 고상한 척 하지 않는 그의 언변으로 인해 때로는 통쾌해지기도 하고 우리와 같은 단어의 욕지거리를 하는 자라는데서는 동질감을 느끼며 그에게서 매운 고춧가루의 후끈함을 찾는게 아닐까 싶다.  이에 너무 심취하다보면 이게 무김치인지 배추김치인지도 모르고 그저 매운 맛만 알게 되는게 아닐지 염려스럽다.  비슷한 예로 와이텐 뉴스의 전유경기자가 변희재를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고 공중파 방송에서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놈이 듣보잡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신인데 왜 우리가 그를 듣보잡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듣보잡이고 아니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각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몹쓸 것으로 단죄할 수 있느냔 말이다.  (나 살짝 흥분한듯;;)

 

  각설하고 이 책은 굉장히 강렬하다.  그가 빌어온 인용구들에서부터 그러하고 '김이 모락모락나게 예쁘게 눈' 그것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진중권이라는 자에 대해, 그의 사유방법에 대해 조금이나 접근하게 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미학 오디세이>도 한 번 읽어보련다.  아무튼 이 책은 나에게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진중권씨,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요....

 

m*********m 2009.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콜라 한잔을 마시며
"콜라 한잔을 마시며" 내용보기
청량음료의 그 시원함,톡 쏘는 느낌. 진중권씨의 글을 읽으면 항상 그랬다. 레퀴엠,폭력과 상스러움,시칠리아의 암소 모두 시원하고 통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글을 출판하고도 목숨을 온전히 부지할 수 있는 이 사회의 진보적인 성향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누구나 이 사회에 비판을 가할 수 있고 논할수는 있지만 지면에 활자화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비치게 하
"콜라 한잔을 마시며" 내용보기
청량음료의 그 시원함,톡 쏘는 느낌. 진중권씨의 글을 읽으면 항상 그랬다. 레퀴엠,폭력과 상스러움,시칠리아의 암소 모두 시원하고 통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글을 출판하고도 목숨을 온전히 부지할 수 있는 이 사회의 진보적인 성향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누구나 이 사회에 비판을 가할 수 있고 논할수는 있지만 지면에 활자화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비치게 하기까지는 그 사람의 시대를 보는 눈과 문장실력 못지않게 출판에의 용기와 시대의 진보성이 보장되어야 할것이다. 그런면에서 진중권씨의 모든 글에서 보여지는 통쾌한 비판과 시사는 시대의 진보성과 함께 그 빛이 더 밝게 보인다. 한 두 사람의 외침으로 이 사회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외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또 박수를 쳐주는 사람 더 나아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외칠 수 있게 되기까지 이런 글들이 더 많이 서점가를 차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c****9 2003.10.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 시대 진정한 좌파, 진중권.
"우리 시대 진정한 좌파, 진중권." 내용보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이후 읽은 진중권의 저서다. 이 책에서도 진중권은 좌파적 시각을 잃지 않고 한국의 각 분야의 꼴통 수구 보수들을 몇가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진중권 식의 독특한 인용문으로 글을 이어나가는 방식은 여전하다. 그리고 미학과 출신답게 철학 각 분야의 이론들을 도용해서 수구 보수들의 논리를 공박하고 있다. 진중권 등의 리버럴한 논객들의 글
"우리 시대 진정한 좌파, 진중권." 내용보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이후 읽은 진중권의 저서다. 이 책에서도 진중권은 좌파적 시각을 잃지 않고 한국의 각 분야의 꼴통 수구 보수들을 몇가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 하고 있다. 진중권 식의 독특한 인용문으로 글을 이어나가는 방식은 여전하다. 그리고 미학과 출신답게 철학 각 분야의 이론들을 도용해서 수구 보수들의 논리를 공박하고 있다. 진중권 등의 리버럴한 논객들의 글을 읽는 것은 한국이 빨리 수구보수가 주도하는 나라에서 벗어나 진정한 탈근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수구적 의식들을 씻어 내는 일이다. 이런 리버럴한 입장의 글들을 접해 읽은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 그동안 20년이 넘는 세월을 수구의 논리에 내 정신이 지배되어 왔다는 얘기가 된다. 무의식중에 이런 논리들이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그것이 가장 두렵다. 그러기 위해 끝없이 진보진영의 글을 읽는다.
y******a 2003.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중권은 개그작가인가
"진중권은 개그작가인가" 내용보기
그가 다루는 주제는 정말로 다양하다. 그 다양함 속에서도 주제가 흐트러짐이 없다. 또한 가볍고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게 비꼬는 구절들은 사회의 부 조리와 모순들의 급소만 골라서 잔인하게 찌른다. 이 사람의 직업이 무엇일까. 처음 그의 글을 접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부정적인 것들 뿐인가. 하지만 그가 바라본 시각이 우리 현실이란 걸 깨닫는건 그리
"진중권은 개그작가인가" 내용보기
그가 다루는 주제는 정말로 다양하다. 그 다양함 속에서도 주제가 흐트러짐이 없다. 또한 가볍고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게 비꼬는 구절들은 사회의 부 조리와 모순들의 급소만 골라서 잔인하게 찌른다. 이 사람의 직업이 무엇일까. 처음 그의 글을 접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부정적인 것들 뿐인가. 하지만 그가 바라본 시각이 우리 현실이란 걸 깨닫는건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가 늘 고민하고 갈등해 온 문제들이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기에 그의 독설이 글로써 유쾌하기만 하다. 그의 직업은 글쟁이이다. 우리가 바라던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에 불과한 프로 글쟁이인 것이다. 환타지에서 환상을 찾듯이 그의 글에서는 변화에 대한 갈망을 찾는다.
k*******0 2003.02.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 사회의 지배적 멘탈리티를 파헤친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멘탈리티를 파헤친다!" 내용보기
진중권. 나는 그의 글들을 좋아한다. 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극우주의자들의 글을 단지 포스트모던 적으로 해체, 결합시키는 것만으로 그들 글의 모순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능력에 감탄했다. 이 글은 만큼 논리정연하고 길게 각주제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주적이 누구이며, 그들의 모순이 어떤 식으로 분출되는지에 대해 여전히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나는 그와 같은
"우리 사회의 지배적 멘탈리티를 파헤친다!" 내용보기
진중권. 나는 그의 글들을 좋아한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극우주의자들의 글을 단지 포스트모던 적으로 해체, 결합시키는 것만으로 그들 글의 모순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능력에 감탄했다. 이 글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만큼 논리정연하고 길게 각주제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주적이 누구이며, 그들의 모순이 어떤 식으로 분출되는지에 대해 여전히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나는 그와 같은 지식인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 피곤할 것이다. 인간관계의 끈끈함 때문에 아무리 잘못된 주장을 해도 단지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암묵적인 동의 속에 그 모든 관계를 넘어 틀린 건 틀린 거라고 얘기하는 용기와 지성을 높이 산다. 그의 냉정한 이성이 부럽고, 그의 전투적 글쓰기는 오늘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인상깊은구절]
그렇잖아도 우리 사회는 강제성을 띤 정체성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원치 않는데도 생존을 위해 이러저러한 인간관계 속에 들어가 정체성을 뒤집어써야 할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하는 마르크스의 심오한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좀 엉뚱한 것을 의미한다. 즉 자아의 형성이 주체성의 형성과는 별 관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제 주체성을 과감하게 버리고 자기를 끈적끈적한 인간관계의 망 속에 내던져 그 그물에 친친 얽매이는 것, 그것으로 인간의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잘할 때, 즉 '마당발'이 될 때 비로소 "사람이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s****w 2002.08.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만적인 연막 거두기
"기만적인 연막 거두기" 내용보기
진중권씨의 패러디 솜씨는 알아주어야 한다. 아마 전에 내놓은 책의 타이틀이『한 줌의 부도덕』이었다. 아도르노의 『한 줌의 도덕』을 패러디한 거다. 아도르노의 자못 육중한 모더니즘적 톤에 비해서 가볍고 포스트모던(?)하다. 아도르노가 미쳐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한 줌의 도덕으로 버티는 고민많은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진중권은 한 줌도 안되는 꼴통들과 패거리들에 의해
"기만적인 연막 거두기" 내용보기
진중권씨의 패러디 솜씨는 알아주어야 한다. 아마 전에 내놓은 책의 타이틀이『한 줌의 부도덕』이었다. 아도르노의 『한 줌의 도덕』을 패러디한 거다. 아도르노의 자못 육중한 모더니즘적 톤에 비해서 가볍고 포스트모던(?)하다. 아도르노가 미쳐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한 줌의 도덕으로 버티는 고민많은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진중권은 한 줌도 안되는 꼴통들과 패거리들에 의해 온 나라를 미쳐돌아가게 하는 한심한 꼴을 조소하고 전복했다. 그 패러디의 기조는 『폭력과 상스러움』에서도 이어진다.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패러디했다. 지라르는 희생양만들기라는 폭력을 통해 세워지는 성스러움(혹은 자기 동일성)을 다룬다면, 진중권은 우리 사회의 폭력과 그것이 구현하는 상스러움에 대해 다룬다. 르네지라르나 아도르노가 '근대의 작용과 부작용'에 대해 다룬다면 진중권은 탈근대는 커녕 근대에도 이르지 못한 한국의 전근대가 어떻게 근대의 이름표들과 불륜을 벌이는지 간단하게 파헤친다. 방법은 간단하다. 연막을 헤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근대인 척 하지만 그게 다 연막이고 핵심에는 전근대적 요소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다. 우리 사회에게 아직 '근대'란 '귀찮은 것'이다. 일본인들 중 일부가 식민지와 전쟁책임을 외치는 아시아인들을 '귀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지 금방 '탈근대'에 열광한다. 진중권이 말하는 바는 다른 게 아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워라!' 이게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이 우익 포스트모더니즘의 바탕에는 괴상한 모순이 깔려있다. 가령 그(함재봉)는 "동서양의 사상을 동등한 차원에 올려놓고 비교검토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양자를 비교검토하기 위해 동서양의 사상을 과감하게 통약한다. 물론 유교가 더 낫다는 결론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유교가 매사 서구의 사상보다 낫겠는가? 그래서 자기에게 불리한 맥락에서는 다시 문화 간 통약 불가능성을 주장한다. "근대 서구사상과 유교... 중 어느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거나 과학적이라는 거을 판단해 줄 제3의 담론이나 기준은 없다." 말하자면 양자를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공통분모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교가 서양의 근대사상보다 더 낫다고 판단할 제 3의 주장은 있는데 '못하다'고 판단할 "제3의 담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