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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사실 일상에서 유래하고 일상과 밀착하며 일상에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부터 철학이 이처럼 인간의 평범한 행복과 유리되고, 일부 선택받은 지적 소수의 특권과 배타적 놀이터로 떨어지고 말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안출에 몰두함도 물론 의미가 적진 않겠으나, 그런 원대한 숙제의 해결보다는 당장 본인 자신의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소중히 가꾸는 게 더 우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튼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철학이 이런 당신의 작은 보람을 싹틔우고 그 작은 데서 비롯한 파장이 인생을 온통 훈훈한 웃음으로 물들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는 거죠.
<방법서설>은 그 너무도 축약된 제목 때문에 우리 현대인들에게 더 난해한 인상을 오래도록 남긴 책입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방법한다'라는 우스개가 떠돌기도 했지만, 방법이란 다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개별의 여러 구체적 방법론들이 있을 뿐이지, 자신을 귀착점과 다른 시발점으로 삼는 독자적, 보편적인 어떤 실체를 상정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 "무엇무엇을 위한" 방법론이지(목적이 먼저 있고 그에 따른 방법이 고안되고 찾아지는 것이지), 추상적으로 "방법" 하나만이 떨렁 맥락 없이 존재한다니 그 연상만으로 우습지 않을 수가 없죠. 이런 전능한 해답으로서의 "방법"이 존재할 수가 없기에, "방법하다"라는 일반동사의 파생도 여태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 재미를 추구해 보려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이런 어휘는 쓰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다름 아닌 데카르트 같은 현인이고 보니, 우리들 현대인은 물론이거니와 당대인들도 "허, 정말 그가 보편적 방법론을 만들어내기라도 했나 보다." 같은 착각에 충분히 빠질 만도 했습니다. 실제로 원제에 그(이런 번역제목)만큼 오만한 의미가 대뜸 풍기지는 않지만, 책을 읽어 보면 어느 정도 그도 의도한 바가 다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뭐 후대의 철학자인 칸트도 그렇고 다른 거물급 저술가들 거의 모두, 이런 본격 저서(당시에는 대중서 개념이 없었죠)에다가는 극히 추상적인 제목을 붙이기 마련이었습니다.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erité dans les sciences" 같은 긴 어구가 정식으로는 따로 붙었다고 하지만, 어차피 이 어구도 추상적이고 범용적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 들어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케인즈의 그 책도 줄여서는 "일반이론"이라고만 하는데, 정말로 일반이론이 그 안에 들어서가 아니라(체제의 여러 국면 중 당대 경제 불안 요소에 대한 처방이므로, 아무리 거시경제 담론이라 해도 그에 "일반이론"이란 말이 붙을 수는 없습니다. 일반"경제"이론도 과하죠), 편의를 위해 약칭이 그리 붙었을 뿐입니다. 그렇게만 줄여도 사람들이 다 누구 책인지 알아 들을 만큼 보편적 동의와 지지를 얻기도 했고 말입니다.
아무튼 줄어도 너무 줄어든 "방법서설"이란 제목은 그래서 위압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는 그러나 칸트나 헤겔 등 다른 거목들의 저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예컨대, 어떻게 "판단력"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ㅎ 물론 여기서 "판단력"은 물론 "비판"도 일상의 의미가 아니긴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실제로 데카르트는 여기서 종래의 모든 사고를 대폭 효율화하거나, 막연히 감지되던 걸 명징화하거나, 심지어 정말 일반 방법론을 하나 개발해 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야심찬 사고의 산물을 혁신적으로 제안도 합니다. "연역법"이 데카르트 이전에 설마 없기야 했겠습니까만 우리가 그게 연역인 줄 알게 된 건 데카르트의 최초 상기, 지적 덕분이죠. 대륙과는 정반대의 기풍이 학문 조류를 휩쓴 영국에서조차, 그 대중 문예가 낳은 대표적인 스타 셜록 홈즈는 자신의 재능과 취미를 두고 "연역의 과학"이라 즐겨 부르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탐정식) 추리"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철학이나 그보다 넓은 범위에 두루 통할 방법론은 아니지만, 수학의 거대 물꼬를, 여태 없는 방향으로 쾅 뚫어 놓은 놀라운 업적이 바로 "직교좌표계"의 고안입니다. 그 전에는 번거로운 말로 일일이 설명하거나, (전산장치의 디자인, 드로잉이 아닌 이상) 부정확한 인간의 손(생각해 보니 아니군요, 자와 컴퍼스를 이용한 작도는 꽤나 정확하고, 이 작도의 가능 여부가 별개 수학 영역을 구축하기도 합니다)에 의해 그래픽으로만 도형을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처음 만들어낸 이 방법론(책 전체의 주제는 아니고요, 일부 토픽인 "해석기하"가 바로 그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방정식으로 도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저술가나 도안가(제도사)의 능력과 개성, 견해 차에 무관하게 만인 공통의 표준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방법론을 통해서야말로 비로소 기하와 대수가 하나가 되었다고 평가가 가능합니다. 그림이 방정식과 일대일대응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세계, 우주는 표준적으로 해석, 표기, 예측, 설계가 가능해졌다며 전 유럽의 지성인들이 설렐 만도 했던 것입니다. (문제 풀이에 능했던 수재이자 동시대인인 청나라의 강희제가, 혹 이 해석기하를 놓고는 뭐라고 반응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저서를 두고 현지어 프랑스어로 쓰여진 본격 철학서라며 또다른 의의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 말이 맞다면, 공연한 현학이라며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여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봇물을 이루는 온갖 담론(디스꾸르)의 개조이기도 한 게 이 책입니다. 현대의 디스꾸르가 무책임한 모호성과 아집, 개별화의 일탈에 주저함이 없는 반면, 이 시초의 디스쿠르는 일반 대중과의 소통, 보편을 위한 "방법론" 제시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데서 큰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현대에 들어 철학하는 이들, 학문의 비의를 궁구하는 이들이 그 초심을 잊지 않고 경각심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일독 다독 정독이 필요한, 영원한 지성인의 등대라고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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