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을 진리를 찾는 절대 도구로 확립했습니다. 그의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절대명제는 근대의 출발점입니다. 로마 제국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진 유럽은 중세기 내내 기독교의 사상과 제도를 빌려 사회의 기본틀을 세우고 유지했습니다. 종교의 절대성 안에서 각종 제도와 관습의 정당성이 유지되었고, 우리가 암흑기라 알던 것과 달리 중세기 동안 나름의 사상과 문화의 발전을 이룹니다. 르네상스는 그런 중세의 성과와 비잔틴 제국이 보전하고 있었던 로마의 고전 사상, 그리고 아랍의 실용지식이 만나면서 이루어진 성과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회를 유지해 왔던 종교의 틀이 성장한 인간 정신을 옥죄는 억압의 수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16-17세기 많은 회의론자들이 등장해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던 기독교 사상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것을 알 방법이 없다’는 회의론자들의 공격은 당대의 철학적 논리로는 방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회의론자들의 공격에 대해 데카르트는 회의론자들의 방법을 빌려 절대성을 지켜내는 데 성공합니다. 감각에서 비롯되는 관념들과 그로부터 비롯된 학문들을 의심한 끝에, 그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철학의 제일원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증명하지 않아도 ‘판명’하게 드러나는 객관적 인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우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철학과 과학, 사상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정신 안에 들어와 있는 사물로부터 비롯된 관념들은 불완전하지만, 수학 공식처럼 우리의 정신 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완전한 관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신이라는 절대적 관념의 존재를 입증하는 그 첫 출발이 됩니다.
문제는 그가 신이라는 절대성을 입증하는 기본 바탕으로 인간의 정신을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인간의 이성은 신의 계시에 비하면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의 이성은 신이 부여한 절대적인 그 무엇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또 그것이 가능하도록 이성을 단련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계몽주의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과학혁명이 촉발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데카르트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성과 육체의 이원론적 시각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방법서설에서 주장한 감정과 감각의 불완전성은 인간의 주관적 감정들을 이성에 비해 불합리한 것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남성보다 감성이 풍부하다고 믿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시각을 더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죠. 동물들을 이성이 없는 기계와 같다고 생각하고, 어떤 인간도 동물보다 나은 존재라 생각한 인간중심적 시각도 문제였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시각은 후일 자연을 도구적 존재로만 보게 만들었습니다. 자연을 지배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 그 안의 생태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생각하지 않게 것입니다.
17세기의 인물인 데카르트는 우리가 주관적 대상으로 생각한 ‘정신’을 탐구해, 이성 역시 객관적인 도구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우리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안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사상을 모더니즘적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생각은 포스트 모더니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적 문화의 특징으로 권위의 해체, 절대성에 대한 부정, 탈체계, 탈조직, 탈국가, 모든 존재의 평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데카르트의 이성 중심의 이원론은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추상적 대상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루고자 한 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단력이 갖춰지면 의지는 그 결정을 따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 데카르트의 태도는 현대의 자기계발족과도 비교됩니다. 나의 마음을 잘 다독이고, 타인에게 잘 웃어주고, 타인과의 관계를 잘 설정하고, 보고서를 잘 쓰고, 돈을 잘 벌고 식의 자기계발과 비교해, 그의 이성계발론은 인간이 가진 능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부딪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진 수단을 최대한 단련하고 구체화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철학. 그것이 제가 본 데카르트 철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