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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사르비아문고판입니다. 이전에도 삼중당문고에서 이 두 권을 묶어 간행한 듯한데 저는 같은 전규태 선생의 역본이라 그리 되지 않았을까 짐작했으나, 홍신문화사의 전영진 역은 물론, 어린이책 두 종류도 이 두 편을 함께 엮고 있어 의아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둘 다 저자가 미상이긴 하나 저술 연도가 서로 큰 차이가 날 듯하며 시대 배경은 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계축일기>는 누구의 눈에도 뚜렷하게 어느 궁녀의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수기입니다. 이 기록에선 내내 광해군이 "대전"이라 지칭되는데 물론 (원문 자체가 아닌) 전규태 선생의 번역문 중 태도이긴 하나 그 주어에 호응하는 동사가 일절 존대형을 띠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대전'이란 지칭도 꽤나 무례하게 읽히는데(역자의 의도인 듯도 합니다), 기록 내내 "상"이나 "주상"이란 표현이 등장하지 않은 채 오로지 "대전" 하나로 일관하고 있어 그렇습니다. 물론 대전에 거(居)하는 분이니 그리 부를 수 있으나(중전처럼) 혹 이것이 삼가는 지칭이라면(그럴 리가 없지만) 그에 걸맞은 존대가 따라야만 합니다. 광해군은 최근 들어 한명기 교수 같은 이들의 연구에 비로소 비롯한 게 아니라, 그 재평가가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시도되었습니다. 범우사르비아문고가 일반에 널리 읽힐 무렵이면 그 시기 독자들이 벌써 국정교과서(!)에서 다룬, 중립외교론이라든가 실리주의 같은 토픽에 익숙해 있을 무렵입니다(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는 뜻). 다만 폐모살제 같은 이슈 때문에 이 군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을 수 있으나, 이는 훨씬 이전 시대부터 이어져 온 교조적 충효관, 혹은 연산군과 더불어 신하들에 의해 폐출된 양대 폭군으로 엮인 선입견 때문이지 어떤 정치적 사정에 기인한 건 전혀 아닙니다. 아무튼 이 기록을 읽다 보면 일개 궁녀에게도 존중을 못 받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동작 하나하나가 신랄히 조롱 받은 천하의 무능한 군주였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기록일 뿐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반면 "폐모"당한 당사자인 인목대비는 그야말로 비운의 주인공으로 묘사되는데 특정 시기까지 목숨을 부지한 걸 보면 정치감각과 처세술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현왕후전"은 물론 소설인 사씨남정기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기록문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현왕후 역시 정치적으로 매장된 상태에서 죽음을 그대로 맞이한 게 아니라 비록 시기가 늦긴 했으나 엄연히 복권, 복위를 통해 명예를 되찾고 생을 마친 인물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친정, 널리 그 속한 정치진영(공교롭게도 둘 다 서인측입니다)을 재부상으로 이끌었으니 역사의 승자라 할 만합니다. 비록 제재가 비슷하기는 하나 각 작품이 배경으로 삼는 시기는 서로 큰 간격을 사이에 두니 독자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겠네요. |
| 게축일기나 인현왕후전은 궁중의 비극을 쓴 소설이다. 왕비가 중심된 소설인데 조선의 왕비는 화려해보이는 자리다. 하지만 실속은 그렇지않다. 군주는 무치라고 해서 얼마든지 여자를 가질 수 잇다. 이쯤 되면 아내로서 속 편할 날은 없다. 거기에 외척과 왕실과의 싸움.. 내명부를 다스리는 일만 아니라 권력다툼의 한 중앙에 있다. 인현왕후가 폐출된 것은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다툼의 소산이다. . 인목대비의 비극도 거기에 있다. 의붓아들간의 권력다툼의 일환이다. 그들도 권력다툼에 말려 한 여인으로서는 행복하질 못했다. 화려해보이지만 외롭고 고독한 자리. 그것이 왕비의 실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