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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베토벤과 동시대인이라 한들 베토벤의 ‘월광’은커녕 베토벤의 이름이나 들어봤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베토벤의 친구다. 아내의 프라다 백보다 수백만 배는 명품인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컴플리트 앨범’을 단돈 65,300원에 구매했다. (원가는 80,600원이다.) ‘베토벤’ 아저씨. 오늘은 ‘열정’을 들려주세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가 ‘스테레오’의 혜택을 누리는 일이다. ‘인터넷’은 편리함을 주고 진중함을 뺏어갔고, ‘휴대폰’은 신속함을 선물하고 구속감을 청구했지만, ‘오디오 시스템’은 나에게서 아무 것도 앗아가지 않고 살아있음을 행복하게 여기게 해주었다. 우울할 때 더 우울해지길 원하든, 우울함을 해소하길 원하든, 기쁠 때 더 기쁘길 원하든, 혼자 기쁨을 독점하길 원하든, 다른 이들과 공유하길 원하든, 언제든 어디서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재생(Renaissance). 내가 꿈꾸던 유토피아이자 문명의 올바른 혜택이다. 내가 상상하는 천국에서 천사들은 하나같이 악기를 들고 있다.
‘글렌 굴드’의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1955년 레코딩의 리마스터링 에디션)’ CD의 트랙들은 무손실 음원인 flac 파일로 변환된 뒤, LG V20의 Hi-Fi Quad DAC를 통해 SONY MDR-1R 헤드폰을 거쳐 내 귀에 입력된다. 오늘 밤은 쇼팽이 아닌 바흐, 야마하가 아닌 스타인웨이(굴드의 두 번째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은 야마하 피아노로 연주되었지만, 첫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녹음되었다.), ‘조성진’이 아닌 ‘글렌 굴드’다.
전기(傳記)물은 오글거린다. 전기물을 쓰는 작가는 그 오글거림을 이겨낼 뻔뻔함을 지녀야 한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故 김영삼 前 대통령 위인전, 2012년에 읽었던 반기문 前 유엔 사무총장의 일대기를 다룬 책은, 특정 인물에 대한 호의적 평가와 찬양은 그 당사자가 죽고 난 이후에야 들어줄 만하다는 교훈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 작가들, 부끄러움에 지금은 아마 영혼까지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클래식 애호가인 나는 (‘헤비 리스너’라고 나름 자부하지만) 굴드의 음악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저자의 글에서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음악을 좋아해도 음악에 문외한인 나는, 피아노적인 소리를 싫어했던 굴드가, 피아노가 없던 시절에 작곡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왜 하프시코드(쳄발로)가 아닌 피아노로 연주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저자의 굴드에 대한 해석’은 - 오글거리지는 않았지만 - ‘굴드의 바흐에 대한 해석’보다 난해했는데, 확실하게 공감했던 대목은 딱 두 군데였다.
“그의 연주에 대해 말하라면 나는 몇 마디밖에 할 말이 없다. 그의 연주는 멀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며, 뭔가 정상을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p.105) “앎이 사랑을 확장시키고 활력을 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절대로 사랑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해하려면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p.185)
그래. 내가 있기 전에 음악이 있었다. 내가 사라져도 음악은 남는다. 이해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련다. 내가 사랑한 바흐, 내가 사랑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아닌, 굴드가 사랑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글렌 굴드의 연구를 20년 동안이나 들어왔으면서도 나는 아직 그의 연주에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에게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p.203)
굴드를 사랑한 저자도 익숙해지지 못한 굴드의 연주. 나는 그의 연주를 겨우 1년 들었는걸. 저자의 그 발언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굴드 연주 특유의 ‘또렷함’. ‘긴장감’. ‘천진난만함’. 그런데 굴드 아저씨. 그 부분 연주할 때 왜 ‘스타카토’로, 또 다른 부분에서는 왜 ‘악셀레란도’로 연주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첼리스트 ‘요요마’의 경우에도 바흐의 곡을 빠르게 연주하는 편이지만 요요마의 ‘알레그로’는 일관된 편이라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거든요.) 어쨌든 다른 버전의 같은 곡(예컨대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들과 너무 다르게 연주해서 신선했지만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웠거든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바흐는 이래야 한다.’는 암묵적 룰과 클리셰를 비틀어버렸음(에도 사랑받는 것은, 그리고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사실 그런 식의 사랑을 받길 원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연주를 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겠지요. 당신은 단순한 ‘테크니션’이 아닌 ‘아티스트’니까.
라이브보다 레코딩을, 공연장보다 스튜디오를, 사람들의 환호보다 고독을 선호했던 그를 귀와 눈으로, 음악과 책으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보다 더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뮤지션이라면 ‘글렌 굴드’에 대해, ‘글렌 굴드’가 드러내고자 했던 음악에 대해, 또는 ‘글렌 굴드’가 음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무엇’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만남을 가졌으리라.
p.s 그 무엇. 붙잡으려 하면 달아나고, 체념하면 어느 새 곁에 다가와 있는 그 무엇. 음악을 듣는 동안, 즉 살아 있는 동안,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아직 살아 있음을 알려주고, 죽어갈 때조차 함께 하고픈 그 무엇. 그 무엇에 대해 나보다 가까이 다가가 있는 (그리고 그 무엇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그 사실을 알려준) - J.S.바흐, 글렌 굴드, 피아졸라, 엔리오 모리꼬네, 빈소년합창단, 정명훈, 조수미, 한스 짐머, 비틀즈, 마이클 잭슨, 윤상, 이승환, (지금 애쉬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유키 구라모토, 집에 있는 (모델명) C-80 야마하 클래식 기타를 만든 누군가, 내일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를 이름 모를 전국의 성가대원, 바흐의 곡들을 정성스럽게 라이브로 (무엇보다 무료로, 해설까지 붙여서) 들려준 JHD 선생님(선물로 준 브람스 심포니 3&4번 CD도 잘 듣고 있어.),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하다보니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지만 분명 고맙고 고마운 - 모든 뮤지션들에게 (이 책의 저자인 ‘미셸 슈나이더’의 마음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
|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대한 평전입니다.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빛을 던저주는 피아니스트라는 말에 매혹되었습니다. 글렌 굴드의 연주를 듣다보면 매우 단단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책에서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이글로 세계적인 상을 수상했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
|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를 좋아해서 자주 들었다. 연주하면서 흥얼거리는 그의 소리를 듣고 글렌 굴드를 자세히 알고 싶어져서 찾아보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굴드의 성장과정과 성격, 강박 등등을 알 수 있어서 앞으로 그의 연주를 더욱 풍부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
| 보통의 사람으로 항상 범상치 않은 예술가들의 삶을 읽는 건 즐겁고 부러운 일이다. 비록 괴팍하고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유리같은 섬세함을 간접적으로 느끼기도, 공감하기도 하면서 흠모하는 순간, 바흐 곡은 어떤 피아니스트라도 역시 글렌 굴드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다양한 해석의 연주들이 호기심을 자극 하지만 늘 마지막엔 글렌 굴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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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굴드라는 네임드 피아니스트는 이미 알고있었다. 그가 등장하는 소설 작품이 있고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그의 기행?은 음알못들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으니. 시작은 단순한 독서욕구였는데, 표지부터 내 스타일에 한번쯤은 읽어보고싶어 도서관에 가보았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이 책은 없었다. 가볍게 전자책이라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전자책은 없었고 협소한 소장공간 때문에 종이책은 더이상 구입하지 않을거라는 결심을 깨고 결국 종이책을 주문했다. 단순히 글렌굴드의 기행만 나열해도 재미는보장 이라는 생각으로 구입했는데 이게 왠걸. 기행따위는 아무렴 상관없을 정도로 아주 묵직하고 수려하다. 문장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거추장스럽지않고 깔끔하다. 한 인간의 고뇌, 고독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 책의 원서가 훌륭한 이유도 있지만 번역이 정말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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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떤 작가의 서재, 라고 하는 일종의 추천 책 리스트에서 발견한 것 같다. 유명한 소설가가 권하는 전기이기에 흔히 접하는 평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고, 물론 그랬다. 게다가 클래식(!) 음악계의 유명한 기인이였던 글렌 굴드. 일반적 사실의 나열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고, 역시 그랬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깊은 예술성을 전기라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독서로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순수한 예술을 설명하는 순수한 글은, 결국 순수한 문학의 결정체와 닮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예술가는 예술가를 알아보는 법.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예술의 핵을 느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와 그의 예술적 삶을 글로 전달해내는 뛰어난 작가. 그 둘이 연주하는 초월적인 소나타를 감상한 것 같다. 물론 나같은 범인은 그 감성을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슬프지만 어쩌겠는가. |
| 가끔은 내가 알 정도로 유명한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천재들의 음악을 듣고 나면 왠지 모를 처연함이 온 몸을 휘감을 때가 있습니다. 그건 다른 이들의 감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만 그렇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처연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
| 그의 음악을 느닺없이 접하고 관심갖게되고 사랑하게되었다면 또다른 지식의 전달 매체인 활자를 통해 좀더 깊이있게 접근할수있게됩니다. 한시대를 표현하고 대표할수있는 예술가의 삶을 질문과 답을 통해 들여다볼수있는 지침서라할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