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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때 책을 보곤 다소 놀랐던 점 몇가지. '선언'이라는데 생각보다 길더라는 것,(물론 백산서당에서 출판된 공산당 선언은 영문까지 있어서 더 그렇다는 점도 있긴 하다만) 오늘날에도, 이 책 속의 몇몇 문구들이 종종 인용이 많이 되는 편인데, 많이 인용되는 책 치고는 생각보다 어렵더라는 것, '공산주의자'가 기대했던 것 보단(?) 꽤나 타협적이고 연대를 중시하더라는 것(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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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때 책을 보곤 다소 놀랐던 점 몇가지. '선언'이라는데 생각보다 길더라는 것,(물론 백산서당에서 출판된 공산당 선언은 영문까지 있어서 더 그렇다는 점도 있긴 하다만) 오늘날에도, 이 책 속의 몇몇 문구들이 종종 인용이 많이 되는 편인데, 많이 인용되는 책 치고는 생각보다 어렵더라는 것, '공산주의자'가 기대했던 것 보단(?) 꽤나 타협적이고 연대를 중시하더라는 것(사실, 내용만 보면 공산당선언이라기보단 공산'주의자'선언이 더 옳은 표기가 아닐까 싶기도. 실제 직역하면 그렇지 않나?), 마지막의 요구조건(물론 '잠정적'요구조건이긴 했다만)이 생각보다 덜 급진적이더라는 것.

레닌은 이 책을 일컬어 '이 작은 소책자가 전집 전체와 맞먹는다.'고 했다지. 하지만, 쉽고 짧은 반면 이것만 보고 맑스를 이해했다는 것은 맑스를 오해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라고 평하는 학자들도 있었고. 아마도, 이 양쪽의 말 그 어느 쪽에 대해서라도 강하게 부정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즉, 그 중간지점 정도에 이 책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이 책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읽혀질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j***8 2006.03.09.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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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반을 움직였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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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의 이 기념비적 저작은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성에 관해 명징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에 있어서도 유효한 면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공산당선언」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원적인 모순의 지점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여러 변형의 지점들을 탐색할지언정, 그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올바르지는 않다는 것은 이후의 여러 모색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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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엥겔스의 이 기념비적 저작은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성에 관해 명징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에 있어서도 유효한 면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공산당선언」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원적인 모순의 지점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여러 변형의 지점들을 탐색할지언정, 그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올바르지는 않다는 것은 이후의 여러 모색들, 특히 맑스주의의 전화를 위한 알튀세르나 발리바르의 작업들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전제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명제가 현재적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그것이 단순화된 계급적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자본’이라는 생산력의 변화는 생산관계를 부르조아지/프롤레타리아트로 양극화시키고 프롤레타리아트는 궁핍화한다는 것이다. 이때 계급의 양극화는 철저히 ‘생산수단의 有/無’로 판가름난다는 객관적 기준에 근거한 것임을 명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부르조아지/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동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홉스봄이 지적했던대로,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사회의 초기는 부르조아지의 시대, 부르조아지가 승리하는 시대였던 것인데 이때 유일무이한 가치는 ‘자유경쟁’이었다. 동시에 거기에 기초하여 사회적․정치적 구조, 경제적․정치적 지배가 따르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맑스의 적절한 비유대로 ‘자기가 주술로 불러낸 명부(冥府) 세계의 힘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 같은 사회로 귀결되는 것이다. 심지어 ‘생산력이 소유조건에 비해 너무 강력해져서 오히려 그것에 의해 질곡당한다’는 지적들은 끊임없는 팽창과 발전에의 맹신과 통제불가능성을 두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적확하게 짚어내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맑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을 피상적으로 해석하면 ‘기계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나, 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근본적으로 ‘인간중심적’이다. 즉 그들의 지적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을 실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것이고, 그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도저히 상품화할 수 없는 요소인 노동력마저도 상품화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들을 전술한 계급적대와 연결시켜 논의해보면 자본가의 끝없는 생산력 향상의 노력이 계급구조를 변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혁명이 일어난다고 도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부르조아계급의 존재와 지배를 위한 본질적 조건은 자본의 형성과 증대이며, 자본은 이러한 운동을 지속할수록 소수 승리하는 부르조아지 분파를 제외한 계급분파들을 ‘프롤레타리아트’에 속하게끔 만든다. 계급적대의 발전과 자본주의 산업의 발전은 궤를 같이 하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현대산업의 특수하고도 본질적인 산물이며,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라는 것이다. 다소 순환논증의 오류로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설명의 부족함은, 실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간계급’의 존재를 증거로 들이대며, ‘중간계급’에 대한 맑스의 생각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해명하면서 동시에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발적으로 생성할 수 없는 계급이라는 것이다. 오직 부르조아지가 선행하고나서야 있을 수 있는 이들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임금노동을 토대로 생산력의 발달을 추구하는 자본의 운동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잉여가치를 만들어내고자하는 부르조아지 자본가가 존립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곧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 자체를 생산・종속・발전시키는 담지자인데, 이때 ‘중간계급’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철저히 생산수단의 有/無로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부를 소유하는 계급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인데, 계급 분파 간의 연대라는 관점과 자본의 운동이 취하는 속성이 바뀜에서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중간계급’은 부르디외의 정의에 따라서 다원적 자본에 잣대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인데, 결국 가장 심층에서 결정짓는 심급인 경제적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양극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계급 내 분파를 얘기하는 맑스의 언급에 따라 그러한 설명은 더욱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경제적 심급에 의해 계급관계가 최종결정된다는 맑스의 견해가, 현재적으로 전문경영인이나 펀드매니저와 같은 존재들로 인해 부정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역사적 자본주의의 분석을 이용하여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자본의 속성 자체의 변천을 언급하는데, 이는 그대로 자본의 이윤축적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이 계급관계에 있어서 여러가지 변형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보다 상세한 고찰을 필요로 할 것이다. 상세한 이론적 논의들에 관해서는, 차차 생각들을 정리하기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현실세계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기계적으로 이해했던 제 2 인터내셔널의 오류를 넘어서, 인간의 능동적 힘을 누구보다도 믿고 또 강조했던 맑스의 이상을, 이데올로기의 공백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지금에 와서 다시금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b********g 2003.03.16.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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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은 아직까지 진리로 남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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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이라는 무시무시한 책을 처음 접한건 대학2학년때였던걸로 기억한다. 책에 어떠한 표시도 되어있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건 그때 후문 작은 책방에서 구입했었지 아마.... 재학중엔 공산당선언에 대한 진리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선배들의 말을 많이 들었던 탓인지 대단한 경전처럼 떠받들여졌던 기억에서 이제는 그저그런 흘러간 이론서로밖에 여겨지지 않는게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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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이라는 무시무시한 책을 처음 접한건 대학2학년때였던걸로 기억한다. 책에 어떠한 표시도 되어있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건 그때 후문 작은 책방에서 구입했었지 아마.... 재학중엔 공산당선언에 대한 진리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선배들의 말을 많이 들었던 탓인지 대단한 경전처럼 떠받들여졌던 기억에서 이제는 그저그런 흘러간 이론서로밖에 여겨지지 않는게 사실이다. 다른 기대도 하지 않은채 책을 펼쳤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흠.......아직도 우리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들이 남아있구나. 이러저러한 이해와 비판을 메모하면서 읽는 중에, 아직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이론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관계와 계급투쟁, 국제사회주의연대 등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당연스레 나타나는 현상들을 정확히 꽤뚫고 있고 올바른 방향제시를 했다는 평가와 함께, 현대의 세계제국주의시대에 어떻게 이런 이론들을 적용시킬 수 있을지 의문도 드는것은 내 지식이 아직 부족한탓일까 아니면 마르크스, 엥겔스의 제한된 시각때문일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북한사회주의에 관한 것..... 북한은 사회주의혁명을 성공적으로 진행시켰다고 평가하고있으나 지금의 객관적 현실은 그렇지많은 아닌것 같다. 사유재산과 물질문명, 그리고 종교와 같은 사회사상과 현상들과 함께 인류가 살아온길은 어마어마하다. 그것은 이미 우리들 머리와 가슴깊은 곳에 본질처럼 자리잡고 있으며 그것을 바꾸는데는 그것이 자리잡는데 걸렸던 시간만큼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구? 사회주의국가가 지구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국가는 아니므로......!! 주변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물질문명의 이기들은 사회주의국가의 인민들을 현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것이다. 철저한 언론통제와 사상교육을 통한 인민정신개조, 그리고 주변부의 사회주의혁명완수가 함꼐 이루어져야만이 그 존재가치가 빛날것이라 생각한다. 이런이유로 러시아의 사회주의 역시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기때문에 좌절의 길을 걸었다고 본다. 그래서 통일전선이라든지 국제공산주의연대가 필요한게 아닐까? 공산당선언......관심대상이론이 아닐 수 없다. 현재를 고민하는 사람들로서는 한번쯤 읽어봄직한 내용이다.
h*******4 2006.1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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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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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회는 민주주의 제도가 발전해 있다. 민주주의의 뜻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고 다시 생각해본다. 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모든 정치적 상부구조와 마찬가지로 해당사회의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주의 생산은 기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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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회는 민주주의 제도가 발전해 있다. 민주주의의 뜻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고 다시 생각해본다. 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모든 정치적 상부구조와 마찬가지로 해당사회의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주의 생산은 기업의 자유, 거래의 자유를 요구하고 봉건 영주의 전제에 반대하여 민주주의를 외치고 이를 쟁취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인류의 자유평등을 형식화하여, 사회적경제적인 조건으로부터 분리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에 대한 민주주의이며, 그것은 그 계급지배를 쉽게 하기 위한 형태일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독재를 공공연히 행사하기 위한 정치형태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헌법을 만들고, 의회를 설치하고 또한 보통선거제도를 정해 정치적 자유를 내세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노동자, 민중)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미래를 내다보고 공산당선언에서 다소 원색적인, 도전적인 어휘로 자본주의 문제점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적 및 정치적인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노골적이며 파렴치하고 야수 같은 착취와 바꾸어놓은 것이다라 말한다. 현실에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 노력의 대부분은 자본가에게 귀속되어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서 공산당 선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고 본다. 공산당 선언에서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로 본다. 이는 변증법적 사고로 정과 반의 양립할 수 없는 것에 의해 세계는 변화 발전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영혼불멸의 것이 아니다. 지금의 사상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공산당 선언에서 전개해 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글을 1847년 공산주의자동맹 제2차 대회에서 공표되었다는 점이다. 100년 전에 그가 생각했던 자본주의의 병폐가 나타나고 있어 그의 말에 신뢰성을 부여한다.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되는 계급투쟁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 나타난다.

거대한 자본이 생겨나고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 놓으며 현대의 부는 소수의 자본가에게 몰려들고 있다. 자본이 소수에게 모여들면 노동자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는 늘어나는 것은 노동자의 숫자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모여 만든 집단이 늘어가고 그들이 가진 힘도 증가하고 그 힘을 자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급투쟁은 계속되어 막바지에 이르면 사회 내부의 해체과정이 일어나 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혁명의 시기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다. 공산당 선언에서 이러한 논리를 구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어 읽어가는 도중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에는 아직 그의 생각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내가 초등하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받으면서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회주의는 바로 북한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나의 오해가 풀려 갈 때 에는 그가 말하는 변혁의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변혁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어 자세히 찾아보고 싶게 되었다.

변혁에 성공한 세상은 한 개인에 의한 다른 개인의 착취가 폐지된 사회, 국민의 내부에 있어서 모든 계급의 대립이 없어진 세계를 말한다. 즉 계급과 계급대립을 동반한 낡은 부르주아사회에 대신해서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협동사회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성공한 혁명세상의 결과는 좋아 보인다. 하지만 또 다시 의문점 하나가 생겨났다. 그의 사상을 받아들인 러시아, 중국, 북한의 사회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지만 나의 짧은 지식에 한탄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의도는 알거 같았다. 당시 경제 사회적 상황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역사발전의 필연성을 설명하고자 한 것 같다. 또한 그 발전의 방향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방과 사유재산의 폐지된 세상을 말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서 쟁취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공산주의가 실패했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해결에 조언을 해 줄 것이다. 더구나 천박한 자본가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 할 것이다. 언제까지 착취하는 사람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혁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마르크스의 주장이 많은 사상가에게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아직도 공산주의유령은 세상을 떠돌고 있으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는 단결할지도 모른다.

w******1 2011.06.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