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쉐퍼 목사가 지적한 복음주의가 초래한 지적 재난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복음주의 지성과 관련된 일련의 책들 중에서 이 책만큼 유익하면서 가슴을 아프게하는 책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책의 1부에서 복음주의 지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왜 그와 같은 스캔들이 일어나는지를 소개한다. 2부에서는 복음주의 지성의 형성과정과 그 이후 계몽주의의 영향을 통한 왜곡, 점차적으로 근본주의를 통한 소위 지성의 재난이 현실화 된 과정을 소개한다. 3분에서는 이와 같은 스캔들이 과학과 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마지막 4부와 부록에서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복음주의의 히망을 소개한다. 이 책은 복음주의를 둘러싼 역사적 상황과 사상적 문제점을 잘 지적해주는 매우 뛰어난 책이다. 많은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부디 이 책을 진지하게 읽어주길 강권한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향해 전쟁을 시도한 이번 주를 보내면서 본인은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1의 국가 미국에서 근본주의가 얼마나 비참한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근본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전쟁을 바라보는 이원론적인 시각은 그 나라의 국익과 함께 결정되며,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번주 치욕적인 상황을 기억하며, 이 땅 한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야 말로 전쟁의 주범이 아닌가 반성해본다. 부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한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 가운데에 구체적으로 활동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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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포드 대학 위클리프 홀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에 의하면, 오늘날 복음주의가 기독교 세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활발하고 역동적인 성장의 이면에서 우리는 많은 폐해를 발견한다. 마치 한국이 40여년간의 짧은 기간 안에 급속한 성장의 신화를 이루어냈지만, 그 급속함으로 인해 방치된 내부가 지난 십여년간 끔찍할 정도의 부패 상태를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다. 본서의 저자 마크 놀은 그래서 이 부패와 상처를 드러내는 자신의 노력의 결과물을 "상처입은 연인이 보내는 편지"로 묘사했다. '스캔들'은 추문, 치욕, 수치, 불명예, 악평, 중상, 험담, 무시 등의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는 오늘날 복음주의가 다른 많은 영역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성'과 '사고,' '학문'의 영역에서 (우리 자신들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외부로부터 심각한 무시와 비난, 치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외부의 스캔들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우리의 현실이며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역사적 기원을 가진 복음주의가 그 본질상 반지성적이지 않으며, 과거 역사 속에서도 결코 사고에 무능한 사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의 충족성과 충분성을 믿는 복음주의가 성경 내의 구원의 도리를 붙잡는 데는 열심을 냈지만, 그 충족한 말씀이 인간과 자연, 세상과 사회, 예술에도 여전히 충족하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은 모순이었다. 또한 실제 역사 속에서 현대 복음주의의 뿌리가 된 초기 개신교 사상(종교개혁 사상 - 루터교, 개혁파, 영국 국교회)들은 엄격한 지성적 삶을 발전시켰거나 시종일관 기독교적인 지성적 노력과 그 노력에 따른 원리를 발전시켰다. 심지어 기독교가 미국으로 전래된 이후에도 17세기 청교도들과 18세기 대각성운동의 지도자들(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등), 19세기의 학자들(찰스 핫지, 워필드, 모세 스튜어트 등)은 자신들의 복음주의 신조가 지성적 활동을 강화해 준다고 믿고 실천했다.
그러나 현대 미국 복음주의는 이 위대한 유산을 계승하는 데 실패했다. 본서는 이런 실패와 스캔들이 형성된 역사적 과정과 의미를 분석하고, 현재와 미래의 희망을 고민하고 전망한다.
Christianity Today가 선정한 1995년 올해의 도서상을 수상한 놀의 본서는 어찌보면 폭탄과 같은 책이다. 복음주의 교회와 신학교의 유래없는 부흥과 성장에 자화자찬하며 자유주의와의 전투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것으로 자부하던 이들에게 놀은 폭탄을 던졌고, 그들은 자신들의 폭탄맞아 갈기갈기 찢어진 치부를 드러내야만 했다. 사실 잘 달리고 있는 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샴페인을 터뜨리며 즐기는 연회장에서 연회의 중단을 선언하는 것은 맥빠지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 상황의 실제를 알려주는 일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놀의 책은 제동을 건다. 그러나 그의 제동은 냉소와 모멸을 담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전통이자 유산인 미국 복음주의에 대한 강한 애정과 염려를 담고 외친다.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살피고, 그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이었는지 판단하고, 다시 재정비하여 최선의 길을 가자고 격려한다.
신앙과 지성의 분리는 오늘날 거의 기정 원리로 정당화된다. 19세기판 미국 기독교와 감정 중심의 특유의 민족성, 이원론적 전통종교들의 가치 체계 등에 복합적인 영향을 받아온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상황에서 이런 분리는 더 철저하게 고착되어 있다. 미국에서 근래 십여년 간 논의되어 온 이 주제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주제이다. 한국의 복음주의는 주류이기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성을 띈 주제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논의된 바가 한국교계에서도 심각하게 논의되기를 희망해 본다.
본서는 이해하기에 쉬운 책이 아니다. 미국과 신학의 역사를 아는 지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더구나 지성을 주제로 하는 책인만큼 그 난이도는 한층 더 상승한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자리, 그리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바로 알고, 마땅히 서야 할 자리를 찾아 서는 데 놀의 책이 주는 도움과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인상깊은구절] 근본주의가 기독교 교회의 생존에 남긴 커다란 공헌이 있다. 초자연적인 것을 옹호함에 있어서는 근본주의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암환자에 비유된다. 치명적인 질병에 직면한 그들은 어떠한 치유법이라고 시행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 근본주의의 처방이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의 생명력과 관련해서는 최종적으로 그 치료 때문에 더 많은 합병증과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