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꽃의 미라쥬 본편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면, 불꽃의 미라쥬 해후편 새하얀 잔향 시리즈는 4백년 전 일본의 전국(戰國) 시대를 배경으로, 두 주인공 가게토라와 나오에의 첫 만남과 우에스기 야차중의 결성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에치고의 호랑이 "우에스기 겐신"이 갑작스레 병사한 후, 그의 양자 우에스기 가게토라(上杉景虎)는 후계자 자리를 다투는 내란---"오타테의 난"을 일으켰다 패배하여 죽게 된다. 의붓 동생 가게카쓰(景勝)에 대한 원한을 품고 죽은 가게토라는 원령 대장이 되어 "에치고를 멸망시키겠다!"고 미쳐 날뛰고 있었으나, 천상의 군신(軍神)이 된 겐신(謙信) 공에게 소환당해, 원령으로서 저지른 무고한 살상에 대한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에치고의 원령을 전부 조복(調伏)시키라는 명을 받는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형 직전의 죄수의 몸에 환생한 가게토라. 그런 그의 후견인이 된 것은, 생존시의 숙적이자 가게카쓰의 친위대장이었던 나오에 노부쓰나(直江信綱)였다……. 불꽃의 미라쥬 해후편의 묘미는 무엇일까? 우선 "처음"이라는 점에서 오는 상쾌함이 그 첫 번째 묘미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등장 인물들이 애증에 짓눌려 서로를 상처 입히고 있지도 않고, 다 죽어가는 불치의 몸으로 신파를 찍고 있지도 않으니 보는 독자의 심장에 별 부담이 없다. 두 번째 묘미는 사백년 후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갭(gap)이다, 본편에서는 섹시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하루이에가 이때는 떡대 근육맨이었다거나... 본편에서는 서로 죽고 못 사는 두 사람이 이때는 으르렁거리며 다투는 원수지간이었다거나... 요즘에는 터부시되고 있는 동성애가 그 당시에는 미풍양속으로 숭앙받았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해후편의 세 번째 묘미는, 본편에서 미처 자세히 소개되지 못했던 여러가지 설정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복과 환생, 결연의 원리, 주술의 습득 방법 등은 이제 막 환생한 몸으로 버벅거리고 주인공들을 통해 하나씩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해후편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오에와 가게토라의 관계가 변모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불공대천의 원수지간이었던 두 사람이 환생을 거듭해 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편견을 지워 나가고,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마침내 서로 사랑하게 되는.... 해후편 제 1권 "야차탄생"이 나오에와 가게토라 사이의 극한 대립---정치적인 입지에 있어서나, 사고 방식에 있어서나---을 확인하는 내용이라면, 제 2권 "요도난무"는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것---살아 있으되 죽은 자, 즉 환생자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나오에는 가게토라의 가시 돋친 말에 자극을 받아 조금씩 자신을 재발견한다. ---"네가 하는 말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 체면과 형식만 차리고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어" ...가게토라의 이런 혹평에 울컥하면서도, 그 말이 정곡을 찌르고 있음을 깨닫고 당혹하는 나오에. 주관 없이 남들이 옳다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던 과거의 자신은 목각 인형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서히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다. 한편 가게토라도, 나오에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모하기 시작한다. 소년기의 불행한 경험에서 비롯된 타인에 대한 불신, 혼자서 모든 걸 해치우려 하는 독불장군식 태도, 등뒤를 맡겨도 될 만큼 믿음직스러운 지인을 갖지 못했던 부덕함 등... 나오에와의 대화를 통해 가게토라도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고 반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살아 있으되 살아서는 안되는 자"로 자신들을 정의내리고, 서로가 환생자로서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을 때, 나오에에게 붙잡혀 굳어 있던 가게토라의 팔뚝에는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는 즉 앵무새처럼 입바른 소리만 하던 목각인형 나오에가 처음으로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한 순간이자, 타인을 불신하고 접촉기피증이던 가게토라가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두 사람은, 제 3권 "게도마루님"에 이르게 되면, 그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나오에가 "오타테의 난에서 당신을 죽인 것은 실수였다"라고 잘못을 시인하게 되고, 그 완고하기 짝이 없는 가게토라도 "이 상처는 충성의 증거..." 라고 나오에를 가신으로 인정하게 된다. 두 사람이 "극한 대립"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가식과 체면을 다 집어던진 채 있는 그대로 으르렁거리며 서로에게 부딪히다 보니, 서로가 갖고 있는 진심이 보다 확실하게 보였던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