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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이 발행된지 24년만에 재출간 된 책이다. 그만큼 이 책의 절판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독서량이 급격히 많아진 요즘, 같은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컸다.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저자가 글을 무척이나 잘 쓴다는 거였다. 자유를 위해 가족과 명예는 물론 자신이 가진 가장 사소한 것들마저 놓아버린 채 정신의 스승들을 찾아다닌 자유로운 사람이 글까지 잘 써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렇게 잘 표현해놓다니 하는 놀라움이 컸다.
그다음엔 당연히 저자가 살아온 삶의 태도였다. 어지간한 용기가 없으면 시도해보지 못할 일을 늘 해내는 마음은 어디서 생겼을까. 어떻게 생각하면 지독하게도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살았다. 늦은 나이에 결정해버린 유학은 그렇다치더라도 남들이 다 안될 일이라고 말한 무용계에 입문한 것, 살을 찢는 고통으로 만든 몸, 돌연히 인도로 떠나고, 다시 돌아온 것, 결혼과 출산, 그리고 아이와 남편과 자신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 등, 일반인들이라면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어려운 일들을 저자는 자신이 자유롭게 살기 위한 쪽으로 선택하며 살았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위 예술가로 활발하게 살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각양각색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마음에서 수백가지 파도가 일어도 생각 안에서만 요동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저자처럼 마음 속에 일어난 일을 삶의 한 시기로 등장시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삶에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남다른 삶을 살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떠나 미국과 인도, 유럽 등 세상을 떠돈 저자가 16년전부터 살아가는 곳은 태어난 고향과 엇비슷한 환경이라고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내려놓고 싶어서 죽은 사람의 두개골을 온몸으로 비비며 그걸로 밥을 담아먹고, 물을 마시던 저자는 다시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들어와서 손자의 탄생을 생애 최고의 선물로 여기는 평범한 할머니로도 살고있다. 예전에 읽을 때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정신의 스승을 찾아 구도 활동을 한 특이한 무용가로 알고 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책을 읽은 지금, 삶의 여정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 크기와 깊이가 끝도 없으며, 독서를 통해서라도 다양한 삶의 겹을 볼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상적인 구절들-
비밀이란 자신을 근사하게 드러내 놓고 싶어 하는 에고의 장난이다. 모든 비밀 뒤에는 이 에고가 숨어 있다. 비밀이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다. 우리의 정체는 워낙 하찮은 것이어서, 설령 그것이 탄로 난다고 해도 아무도 우리를 해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추고자 하는 자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웃음으로, 울음으로, 표정으로, 그리고 말과 글로 모두 쏟아내야 한다. 가슴에 빈 공간만 남기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빈 가슴으로 서로를 꼭 껴안는 것이다. (61쪽)
자유로운 삶이란 꾸미지 않는, 가식 없는 삶이다. 본래의 모습을 솔직하게 모두 드러내는 삶, 본래의 모습을 솔직하게 모두 드러내는 삶, 그것이 자유로운 삶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식적인 사람은 없다. 가식은 교육받은 것이다. 내가 자란 환경은 나의 솔직한 천성을 억눌렀지만 그것을 점점 벗기고 나니 나는 본래의 솔직한 천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떤한 나의 모습도 이 세상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에고를 내세우려는 의식을 없애면 가식이란 게 있을 필요가 없다. (31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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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자유를 위한 변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이 책이 24년 만에 다시 출간되어서 반갑고 기쁩니다. 아마도 제가 이 책을 읽은 건 이십 대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토록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당시에 인도 구루 라즈니쉬의 책들이 출간되어 명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무용가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뒤로 한 채 인도로 가서 라즈니쉬의 제자로 2년을 살았습니다. 그런 확고한 결단력, 행동력에 반했던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말하면서 늘 주변을 의식하느라 한 번도 내 마음껏, 자유롭게 살지 못했던 사람인지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부럽고 동경했던 것 같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자유의 본질도 몰랐던 그 시절에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어떤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왜 '영향을 줬다'가 아니고 '영향을 줬던 것 같다'고 말하느냐 하면 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나름의 답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이사하면서 책장에 꽂여 있던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빛이 바랜 책. 그 때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안 들어서 그냥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새롭게 출간된 책을 보니 이번에는 꼭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 표지가 바뀌듯 그녀의 모습도 제법 세월이 느껴질 정도로 변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머리말 이외에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초판 내용 그대로를 재출간했기에 더 반갑습니다. 초판 머리말에 그녀는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끊임없이 나를 찾았고, 마침내 나를 만났다. 이제 그 숙제가 끝났고, 나는 오직 자유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정말 끊임없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나름의 희생이 뒤따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유는 오로지 혼자만의 것인데, 이 세상은 혼자 있도록 놔두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가족 관계, 부부 관계, 그밖의 인간 관계를 보면 사랑과 애정이라는 구속이 존재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구속이 아닌 소속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질수록 마찰이 생기고 갈등이 벌어집니다. 엄연히 별개의 인간이며 각자의 삶이 존재하는데도 서로를 구속하며 내 소유인양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자유롭지는 못한 게 아닐까요. 서로가 좀더 행복해지려면 더욱 사랑하려면 서로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홍신자라는 사람이 자유를 위한 변명을 할 때, 저는 구속을 위한 변명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과감한 도전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정작 제 자신은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건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일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2016년이 제게는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의미있는 해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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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자 저의 『자유를 위한 변명』 을 읽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지 말고 홀로 춤추듯 살라.’ 너무 자유스러운 멋진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린다. 도저히 내 자신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런 모습이기 위해서는 그 동안의 과정이 너무 개성적인 그리고 자유스러운 모습이 어필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자적인 인생만이 가능하다. 70만 독자가 감동한 세계적인 예술가 홍신자의 이야기이다. 1993년 처음 출간 7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일본과 중국에 번역되는 등 사랑을 받다가 소문 없이 절판된 책이 23년 만에 개정 출간되었다. 당연히 큰 관심과 함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저자만의 독특한 인생이 너무나 특별하기 때문이다. 27세의 늦은 나이로 뉴욕 무용계에 입문하여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다가 33세에 인도로 떠나 너무나 유명한 영적인 스승으로 불리우는 오쇼 라즈니쉬의 첫 한국인 제자로 들어가 구도의 춤을 추구하여 20세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아방가르드 무용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과정 속에서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만 하는 것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야만 하는 한 인간의 인생 역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판에 실린 파격적인 내용들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사실관계들을 바로 잡고 현대적인 표현으로 문장들을 손질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생활하고 있는 새로운 감각과 디자인으로 독자들과 새롭게 만남을 생각하면서 새롭게 표현하고 있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임을 실질적으로 보여준 저자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바로 이 점이 제일 중요하다. 이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확실하고 믿을만한 것은 역시 본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만의 가장 확실한 자유의지를 갖고 결정할 수 있는 계기와 실천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찾고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해 가장 용기 있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롤 모델을 얻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면 아마 인생 최고의 시간이 되리라는 확신도 해본다. 아마 운명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뭔가 확실하리라 믿는다. 내 자신 평생을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강조해온 것이 바로 자신의 갈 길을 스스로 찾도록 강조해왔다. 적당히 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 노력하도록, 그리고 기회를 만들도록, 기회가 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도록, 기회는 우연히 올 때 잡도록, 이 책을 통해 기회다 생각한 사람은 정말 집중 노력하여 꼭 성취 기쁨 누렸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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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 독자가 감동한 세계적인 예술가 홍신자의 베스트셀러’,『자유를 위한 변명』, 23년 만의 개정판 출간이다. 책을 펴고 처음 만나는 글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가 항구에 정박 중일 때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 하지만 배는 그러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p. 5
물론 다른 책에서도 만났던 글귀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 이 글을 전하니 더욱 크게 와 닿는다.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 이 책은 이 한마디를 쭉 잡아 늘인 것이다. -p. 9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이 책에 대해 굳이 첨언을 하자면 ‘솔직하게’를 붙이고 싶다. 이 솔직함에 어느 독자가 감동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그것은 내가 적어도 이만큼은 자유롭고 지금까지 자유를 절실히 추구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은 환상을 깨뜨리기 위한 에고와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의 순간들에 있었던 이야기를 달리 들어 줄 사람이 없는 지금, 나는 종이 위에다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 -p. 14
저자는 춤, 고독, 가족과 결혼, 임신과 출산, 성과 사랑, 스승과 종교 등 다양한 소재로 대화를 한다. 저자의 경험과 솔직한 생각으로 표현되는데, 이야기의 끝은 대부분 자유다.
모든 관념은 끊으면 끊어지는 쇠사슬이다. 그것을 끊어 버리고 나오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관념의 쇠사슬을 하나씩 끊어 벗어던지고, 사랑을 공부하며 자유를 깨닫는다. 그 순간순간의 닦음을 더욱더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만 알면 생활은 곧바로 스승이 된다. 생활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p. 270
입어야 하기 때문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욕망들이 확대 재생산된다. 궁극적으로 옷도 입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 최저한으로 간단히 소박하게 입거나 먹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내면적인 충만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외부에서 많은 것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것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길들인다면 필요한 것이 점점 없어질 것이다. 필요한 것이 점점 없어지면 욕망도 하나하나 없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 걸음 한 걸음 자유에 다가가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 319
나는 변명을 싫어한다. 그래서 자유를 위한 변명도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나 역시 자유를 위한 변명을 하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많이 갔다. 사실 이번 황금연휴에 오늘도 일했고, 내일도 일해야 해서 내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마음가짐에서 자유를 쟁취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이나 바람, 흔들리는 수풀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저자가 24년 전에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 이 순간에 딱 맞는 책이다. 문장도 매끄러워 술술 읽힌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춤추듯 순간을 살았던 저자의 삶에 존경을 표한다. 나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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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시절에 ‘홍신자’란 이름이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해골을 들고 무용을 한다고 이슈였지 아마. 난 그때 뭐 그런 사람이 있나 좀 오싹했었다. 그래도 워낙 유명해 이 사람의 유명세는 제법 오래 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그녀도 세월 속에 잊힌 사람이 되었다. 한때는 한국의 이사도라 던컨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가끔 문득 궁금하긴 했다. 과연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렇게 궁금하던 차에 마침 그녀의 자전에세이가 복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가 그렇게 유명하던 시절 에세이를 낸 것도 난 사실 알지 못했다. 그걸 이번에 복간 되서야 알다니. 하긴 그땐 내가 너무 어리지 않았는가. 아무튼 이 책을 손에 넣고 반가웠다. 마침 그녀에 대해 궁금하던 차에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읽고 있으려니 역시 오래 전에 읽은 이사도라 던컨의 전기가 생각이 났다. 그 책도 보면 굉장히 정열적이고, 자유로운 던컨의 면면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그것과 오버랩이 되면서 무용가들의 영혼은 다 이럴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전공은 영문학이라고 한다. 미국 유학을 갈 때도 무용을 공부하겠다고 떠난 것도 아니었단다. 오히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무용을 접하고 그것에 매료되어 전향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스물일곱.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난 이런 식의 반전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인생 역전’, ‘대박 인생’ 뭐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만이 대박 인생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만 보는 건 인생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가? 그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해 내는 그녀의 집념이 부럽다. 무용을 하려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는 데 스물일곱이면 이미 몸은 굳어질 대로 굳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기꺼이 몸을 만들었다. 그러기까지 그녀의 몸은 또 얼마나 찢기고 허물어져야 했는지. 주위에서도 포기하라고 하는데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자신의 길을 발견했으니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성공한 무용가가 됐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건 그녀가 무용가로서 성공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녀는 성공에 도취도지 않고 돌연 어느 순간 무용을 놓아버린다. 어떻게 시작한 무용이고, 어떻게 얻는 성공인데 그것을 과감히 놓아버리는 걸까? 그녀는 말한다. “(...)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춤이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인생의 한 시기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마침 춤이 그 해답이 되어 준 것뿐이다. 이제 춤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을 찾아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서자 나는 자유롭게 그것을 버릴 수 있었다(61p)” 그래서 그녀를 구도의 무용가라고 했는가 보다.
그러기 전에 그녀는 죽음의 문제와 자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매번 죽었다고 생각한 자아가 순간순간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그는 구도를 위해 인도를 갔고, 인도 최고의 구루(영적 지도자)의 제자가 되어 여러 가지 수행을 한다. 거기엔 해골에 물을 담아 먹는 기행(?)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해골을 들고 무용을 하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죽음과 자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가르쳤던 구루가 하산을 명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춤을 계속 추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게 참 나에게 강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몰아붙였던 갈까? 물론 그녀의 구도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고, 권할만한 방법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대부분은 어렵게 자신의 인생의 길을 발견했다고 해도 또 다시 자아에 매이는 자신을 본다. 인생의 길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지만 그 길에서 최고가 되려고 다시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지는 않는가? 뭔가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치는가? 그걸 또 인생을 위한 거라고 합리화시키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명예와 권력을 쥐게 되지만 그것에 매이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 많은 책들과 매스컴이 그러라고 부추긴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무용이 아니었다. 자유였다. 다시 말하면, 그녀가 무용의 길을 발견하고 몸부림쳤던 건 예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난 그런 그녀가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에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거기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너머의 세계를 추구했고, 지금도 추구해 갈 것이다.
그녀는 늘 초월적 자아의 실현에 목이 말랐다.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뭔가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을 곧추세우고 나만의 삶을 잘겠다는 자유. 그 무엇에도 메이지 않을 자유.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유.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예술을 추구한다면서 여전히 속박당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예술은 예술 자체에서 추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에서 표현되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이 유명한 사람이 너무 안 알려져서 언제 고인이 되었나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녀는 너무도 잘 살고 있었다. 이렇게 책을 복간하리만큼 당당하게.
책이 참 대담하다 싶다. 하지만 몸소 부딪혀 깨어지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대범함이 멋지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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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다가 재출간된 무용가 홍신자의 에세이. 꽤나 오래전에 읽었던지라 대략적인 내용만 생각나는데, 다시 읽어보아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지금은 재출간 되어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각으로 읽어보아도, 현재에도 그와 같은 삶을 산다고 해도 쉽지 않은 대단한 말 그대로 혁명에 가까운 삶이 아닐까 한다.
2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해서,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었고, 70년대에 미국에서 유학하고, 구도적 삶을 위해서 인도에 가서도 돌아보고, 가난한 삶을 살지만 열정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 아닐까. 자연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나중에는 내가 누군지 잊어버리기 위해서 자연속에서 안정과 평온을 얻으며 살기도 하고,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시간도, 당시의 한국사회에서는 독특하다 못해 무척이나 특이한 사람이 아니였을까? 여성에 대한 차별이 현재보다도 더 심했던 당시에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자유를 꿈꾸고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지만 현실에서 막히거나, 용기가 부족하거나 해서 포기하거나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데, 그녀의 삶은 무수히 많은 장애물과 편견들, 사회적 억압들을 맞서가면서 자신의 위해서. 특히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살아온 삶이 아닐까 싶다. 7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예술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여전히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자유를 위한 변명'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노력이나 혁명이라는 말이 더욱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꿈 (무용)에 대해서만 열정적이고 자유로웠던게 아니라 성이나 종교에 대해서도 자유로왔던 사람이였다. 지금은 이해가 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파격적이게 들리는 그녀의 책이 아니였을까 싶다. 어렴풋이 기억나기로도 이 에세이가 꽤나 인기 많았던 베스트셀러였던걸로 알고있다. 그만큼 혁신적이며 말로 못하던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서 많은 이들이,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면서 읽었던게 아닐까 한다. 다시금 읽으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멋진 그녀를 응원하며. 책의 앞에 있는 문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였다. 마음에 새기며.
"배가 항국에 정박 중일 때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 하지만 배는 그러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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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한 변명]을 읽어보면서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과 느낌들을 가질 수 있는지 더욱 풍성해짐에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네요!!!
이 책[자유를 위한 변명]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맞추지 말고 홀로 춤추듯 살라'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사는 이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안쓸래야 안쓸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타인의 시선'이 나의 생활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감정 소비를 많이 하면서 작은 일에도 무너져가는 모습이 되는 예도 비일비재 하기에 이 책의 메시지처럼 '타인의 시선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홀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발전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음을 알지요!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모아모아서 접근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강렬하지만 매력적으로 와닿는 작가의 이야기들에도 빠져들어서 쉽사리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것도 이 책이 안고 있는 멋진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 책 [자유를 위한 변명]에서는 작가 홍신자 님의 예술적인 면모들을 어디에서든 만나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홍신자 님은 뉴욕 무용계에 입문하여 활동한 분으로 홀연히 인도로 가서 그녀의 영적인 스승님이라고 할 수 있는 '오쇼 라즈니쉬'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쇼 라즈니쉬'의 한국 제자로 불리우며 그녀의 예술은 '구도의 무용'으로 승화하게 되지요.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예술가로도 호평받으며 '아방가르드' 한 무용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니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을 자유를 갈구하며 찾아가는 것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의 멋진 면모! 그것에 반하여 그대로 이 책에 집중합니다.
이 책[자유를 위한 변명]의 목차에서도 예술적인 아이디어와 그 혼이 절절하게 묻어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더욱 음미하는 기분으로 책의 내용들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힘겹게 하루를 고뇌하는 많은 분들에게 진정한 '자신에 대한 고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까지 선사해주고 좋은 해답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이 책 [자유를 위한 변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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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이라는 미개척지인 한국에, 현대무용을 뿌리내리고 하고, 자신을 찾아나가는 명상을 소개해준 홍신자씨의 [자유를 위한 변명]이 새롭게 개정판을 내었다.
미국행에서 찾은 춤 부모에게도 미국에 간다고 3일전에 통보했던 저자는 미국에서 갖은 아르바이트로 고생을 하면서 호텔경영이라는 분야를 공부해 나간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본 알윈 니콜라이의 공연을 보고 춤에 빠져들었다. 무용을 시작하기엔 늦은 27살의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 어렸을적에 웃거나 울기를 잘했던,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표현을 잘 했던 저자는 자신속에 숨겨져 있던 진정한 자아를 춤을 본순간 깨달았을지 모른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무용스쿨을 피나는 노력끝에 수료한다.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근육을 찢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바꾸는 노력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유를 찾아 떠난 미국행에서 춤을 만난 저자, 그 춤은 단지 춤이 아니라, 저자의 자아를 만나는 통로임에 틀림이 없다.
인도행에서 찾은 나 미국과 한국에서 뛰어난 평가를 받으며 10여년을 살아갔던 저자는 불연듯 인도로 떠난다. 10여년의 현대미술의 인재로서 살아온 삶에서 저자는 삶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고, 명상의 고장인 인도로 떠나게 된 것이다. 가족이란 원천적인 구속은 저자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인도행에서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구속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오히려 저자의 자유는 조금씩 늘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도에서 찾은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죽음 속에서 저자가 깨달은 것은 삶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현실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나를 찾고 삶에 대해 명상을 해도 결국 깨달은 것은 나에게 주어진 인생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살야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자유를 위해 자신의 생의 마지막까지 경험하면서, 육체에 속박되어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인도여행이이었을 것이다.
구속에서 자유로 인도에서 망가진 몸을 미국에서 되살리면서, 진정한 자신의 몸을 만난 저자는, 다시 재기하고 한국에서 교수생활도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가 때가 되면 자살하겠다라는 저자는 남편이라는 사랑을 만나면서 생각에 변화를 겪는다. 화가인 남편과 뉴욕에 살면서 딸을 낳고 산다. 그러나 그 결혼 생활속에서 사랑의 구속을 맛본다. 그러면서 자유에 대한 열망이 더욱 더 커져갔을 것 같다. 가족이라는 구속을 만들었지만 가족이기때문에 서로의 자유를 허락한 궁극적인 이유도, 그만큼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 저자의 생각이지 않았을까.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미국행으로 인도행으로 떠난던 저자는 삶의 과정을 모두 겪고 나서야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닐까. 자유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고 난 생각한다. 저자의 삶도 어쩌면 춤으로, 남편과 딸, 그리고 경제적인 요소를 구축하고 나서야 비로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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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인 '타인의 시선에 맞추지 말고 홀로 춤추듯 살라'는 문장 속에는 저자인 '홍신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저자는 '동양 전통에 뿌리를 둔 서양 아방가르드 무용의 꽃'으로 선정된 세계적인 무용가이자 '구도의 춤꾼'이다. 1940년생인 그녀는 숙명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는데, 그건 단순히 미국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 (p. 69) 그런 그녀는 미국 뉴욕에서 만 28세라는 나이로 무용에 입문을 한다. 우리들이 흔히 무용가라고 하면 유년시절부터 무용을 배우고 익히게 마련인데, 무용을 배우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그 길로 접어든다. 그것도 당시로는 머나먼 이국땅인 미국에서... 뉴욕에서의 무용 수업 중에 그녀는 죽은 언니의 한을 풀어 보겠다는 생각에서 탄생시킨 춤이 <제례>인데 그 춤으로 그녀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는 먼 구도의 길을 택해 인도로 떠나 '오쇼 라즈니쉬'의 산야신(제자)가 된다. 3년간의 수도 그리고 명상의 시간들은 그녀의 인생 중에 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가장 의미있고 긴 삶으로 기억되고 있다. 3년 후에 저자는 다시 무용계로 돌아온다. "너는 타고난 무용가다. 결코 무용을 중단해선 안 된다. 계속하라. 너에겐 춤이 곧 구도의 길이 될 것이다. 너는 그 길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가야한다." (p. 85) " 춤의 신비, 춤의 순수, 춤의 자유, 그것이 너의 길이다. " (p. 90) 그녀에게 춤은 종교와 같은 것이기에 구도심을 안고 춤의 세계로 돌아온다. 구도의 길에서 '라즈시쉬' 그리고 '니사가다타 마하라지'는 그녀의 스승이었다. ![]() <자유를 위한 변명>은 1993년에 초판이 나왔다. 벌써 20년이 훌쩍 흘러갔지만 그동안 이 책은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절판이 되었기에 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개정 출판이 되었다. 책의 앞부분 몇 페이지만을 읽어도 '왜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원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적인 무용가, 명상 수행자 그리고 작가라고 불리워지는 것에 걸맞게 책 속의 글들이 깊이가 있고 문장력이 탁월하다. 저전적 성격의 책이지만 자신의 삶에서 저자가 느꼈던 많은 생각들이 다분히 철학적이다. 죽음에 대한 명상... 죽음이 두려운가?, 육신이 죽는 것을 왜 두려워 하는가?, 에고란 무엇인가? ![]() 인도에서 배운 명상이 언제나 그녀의 생활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상으로 인하여 새로운 육신으로,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 '홍신자'의 깊이있는 명상과 삶의 이야기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삶을 살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여행, 공부, 무용, 사랑, 구도.... 자유를 만끽하는 그녀의 삶을 엿 볼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데, 아마도 이 책이 첫 출간된 1990년대에는 충격적이었을 수도 있는 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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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지만 사람마다 그의 성장 배경을 비롯하여 장성해서까지 늘 보이지 않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참된 자유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또한 그 중요성과 필요성 자체까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지우지 하다가 자신의 모든 삶을 마친다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일이라 생각된다. 물론 참된 자유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1970, 80년대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무용가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자유로운 삶에 깊은 도전을 준다고 하겠다. 저자는 27세라는 이미 적지 않는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28세의 나이로 뒤늦게 무용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33세 인도로 떠나 영적 스승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가 되고 그의 삶의 여정가운데 끊임없이 갈구했던 자유에 대한 깊은 갈망 등이 아름다운 춤으로 승화되어 20세기 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무용수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책은 그의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하였던 자유를 위한 갈망의 삶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시대적 상황으로 자유한 것 같으면서도 자유하지 못한 이유와 원인들을 들여다 보도록 돕고 있다. 외형적인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내면에 진정한 삶을 위해서 어떤 치열한 삶의 여정이 있는지를 한 개인의 삶의 여정이 얼마나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이 책은 이러한 메시지를 담아 23년전 출판되었다. 그러나 몇몇 문장을 손질하고 사실관계 등을 바로 잡아 새롭게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책의 구성은 현재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과거나 삶을 추억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주는 듯 들려준다. 지금 살고 있는 하와이 섬의 볼케이노. 하룻밤 길을 잃을 정도로 정글과 같은 곳이지만 왜 자신이 무서워했는지 얼마나 많은 위선 속에 있었는지 그리고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인식을 통해 얼마나 자유함을 느꼈는지를 시작으로 그의 삶 전체를 조명해준다. 어떻게 춤꾼이 되었는지, 언제나 혼자로서 고독을 어떻게 마주했는지, 죽음과 몸에 대한 깊은 사색의 과정을 거치고, 가족, 결혼, 임신, 출산, 성과 먹거리까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부분에 대한 저자의 깊은 통찰을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스승인 자연 속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너무나 타인과 이 세상이라는 틀 속에 갇혀서 하루 하루를 불행하다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뭔가 새로운 삶의 변화를 주기에 충분한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 바로 가까이에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데 있어서 자유를 위한 변명이 아닌 웅변과 같은 메시지를 만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