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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출신인 나는 과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며 산다. 학창시절 배운 과학은 인간성이 쏙 빠져있는 딱딱한 이론과 법칙, 사실의 나열들로만 내게 다가와 비호감 과목이었다. 하지만 살다보니 과학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밝혀지는 뇌의 신비, 건강상식, 다양한 가공식품, 가전제품, 영화, 애니메이션, 인공지능 로봇 등 과학에 의존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다. 최근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는 생명에 해로운 화학성분(PHMG)이 든 제품을 판 비도덕적인 업체와 연구를 조작한 교수로 인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번처럼 생명에 해로운 화학물질의 오남용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삼 과학의 중립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기에 내가 만난 책이 스티븐 제이 굴드의 학문과 사상을 소개한 <과학과 휴머니즘>이다. 과학과 휴머니즘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얘기일까. 따뜻한 과학?
알고보니 과학의 대중적 인식과 이해를 위해 누구보다 힘쓴 과학자가 스티븐 제이 굴드다. 그는 대중잡지 <내쳐럴 히스토리>에 장기간 칼럼을 쓰기도 했다. 또한 인간의 평등과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했다. 고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을 전공한 굴드는 자연과학을 뛰어넘어 사회학과 예술, 인문학적 통찰과 지식의 확장에 공헌한 좌파 과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과학이 사회 속에 배태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과학자 역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다양한 힘과 한계, 편향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굴드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굴드의 관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환원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이다. 예를 들어, <사회 생물학>의 저자인 에드워드 O. 윌슨은 성별에 따른 노동의 분화가 생물학적 소인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적 불평등을 불변의 자연질서에 투영하는 것으로 성별 분업 뿐 아니라 일찍이 제국주의와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데도 사용돼 왔다. 생물학적 결정론이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권력자와 자본에 뒷받침되는 엘리트 지배층이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여 사회복지 비용의 지출을 감소하는 등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라고 굴드는 지적한다. 사회 생물학의 후신인 진화 심리학 역시 유전자 결정론에 집착하여 인간의 속성을 생물학으로 속박한다고 굴드는 비판한다.
굴드가 환원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하는 데는 그럴 만한 광범위한 역사적 연구 결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계에 대한 새로운 설명 규칙인 창발적 원리와 점증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내재한 우연성의 역할을 편협한 환원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생물체는 유전자와 환경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자신을 구성하고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능동적인 힘이기 때문에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고 보았다. 생물은 유전적 특성의 합을 넘어서며 종은 생물 개체의 집합 그 이상이라는 게 굴드의 주장이다. 다윈이 주창한 자연선택도 환경과 생물체가 서로를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과학과 휴머니즘>에서 밝히고 있듯이 굴드의 연구를 관통하는 주제는 역사는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재는 수많은 우연한 사건들의 산물이고,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세계 중 하나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점진적으로 진보한다고 믿는 사회 통념과 크게 다르다. 굴드에 의하면 자연과 인류의 역사는 우발성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는 가능성의 지평이다. 흔히 생각하듯 진화의 과정은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같은 일직선상이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멸종과 진화를 거듭하는 관목과 같다고 비유한다.
환원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과정이 점진적인 진보가 아니라 우발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관점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세계관과 유사하다. 굴드를 비롯한 좌파 과학자들은 인간과 자연계의 상호작용인 변증법에 주목하고 있다. 굴드는 지금처럼 전문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과학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과학이 인문학과 예술과 더불어 서로를 존중하는 통섭으로 나아갈 때 서로를 더욱 성장시킨다고 본 통찰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그가 한 노력과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과학 연구의 상당 부분이 사회적으로 특권적인 배경을 갖는 사람이나 기업, 그밖의 엘리트 집단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에 조작과 부정, 편향의 가능성이 늘 열려있다고 경고한 굴드의 주장은 최근 우리나라에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통해 잘 드러난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5년에 황우석 연구논문 조작 사건을 경험했다. 그리고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를 통해 다시 한 번 과학과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와 역할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얻었고 분노하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 본 것처럼 자본과 지배권력, 그에 기생하는 엘리트의 이해가 맞물려 있는 한 과학의 중립성은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 굴드가 과학의 대중화에 힘을 쏟은 이유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이 주는 유익함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관건은 대중의 관심과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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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드시 과학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과학은 사회적으로 배태된 활동이다. 과학은 예감, 전망, 그리고 직관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의 흐름이 따른 과학의 변화는 대부분 절대 진리에 보다 더 근접한 기록이 아니라, 과학에 아주 강한 영향을 미친 문화적 맥락의 변화를 기록할 따름이다. 사실은 순수하지 않으며, 오염되지 않은 정보의 단편들일 뿐이다. 문화는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보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이론은 사실로부터 나오는 불변의 귀납이 아니다. 사실에 부과된 상상력 풍부한 전망이 때때로 가장 창의적인 이론이 된다. 상상의 근원 역시 매우 문화적이다. (서문 中)
자연과학과 역사의 본질 스티븐 제이 굴드는 기본적으로 역사의 본질, 특히 역사 변화의 속도와 양식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굴드는 진화에 대해 시공간의 불변의 법칙과 역사의 우연성이 갖는 중요성 모두를 인정하고 양자를 통합하는 관점을 지녔다. 경력 초기에 그는 고생물학에서 보편적인 이론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그는 자연 속에서 보편적인 패턴을 찾으려 했지만, 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할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확고하게 주장했다. (본문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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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가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평생 진지하게 몰입했던 주제 중 하나가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본문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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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결정론이 되풀이해서 부상하는 까닭은 사회 정치적인 것으로, 그리 멀리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 우선 사회복지 지출을 피하려는 캠페인을 비롯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려는 정치적인 에피소드, 축복받지 못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거나 권력을 위협하는 시기에 엘리트 지배층 사이에 고조된 불안감과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 어떤 집단은 상층을 차지하고 어떤 집단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존 질서가 그렇게 서열화된 사람들의 선천적이고 불변한 지적 능력의 정확한 반영이라는 주장만큼 철저하게 사회 변화에 반대하는 주장이 있을까? (본문 p.166)
사람은 적응주의 원칙에 기반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행동에 관여한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행동이 자발적인 산아(産兒) 제한이다. 전 세계의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식력을 억제한다. 그중 상당수는 더 많은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본문 p.166)
지난주 월요일에 주문해서 당일 택배를 받고 금요일이 되어서야 읽었다. 비오는 날은 역시 과학 관련 도서가 제격이다. 내 정서에는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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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2002년 5월에 타계했다. 그는 생전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장기간 연재한 칼럼과 스물네 권의 저서를 남겼다.
"우리 두 사람은 굴드의 연구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둘 모두 그 과정에서 굴드의 학문적 열정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관심에 매료되었다." - 9쪽
이들은 굴드의 세계관과 지식철학에 관해 진지하게 평가하면서 자연학 진화론과 관련된 몇 가지 주요 쟁점을 검토한다.
"그의 주장은 자연이 사회적 평등을 방해하지 않으며, 우리 인간은 자유롭게 우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굴드가 사회생물학과 그 밖의 사회적 현상을 비판한 것은 평등을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다른 종류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정신과 사회의 위대한 유연성을 인정하는 생물학적 "잠재론"의 주장이다." -247쪽
이렇듯 그는 현상과 기존 지배질서 유지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그런 열정의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성의 회복에 있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괄목할 만한 연구를 사려 깊고 통찰력 있게 서술한 이 책의 출간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 놈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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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자연학자로서의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연구와 삶을 다룬 책 <과학과 휴머니즘>. 2002년 작고한 고생물학자, 진화 이론가, 과학 사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과학자이면서 철학자, 사회학자, 인문학자 면모를 보여준 그의 평생 연구를 짚어보는 책 <과학과 휴머니즘>은 사회학자가 쓴 진화생물학자의 평전입니다. 굴드의 생물학 연구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등을 포함한 인류 역사와 과학과의 관계를 조명한 부분까지도 소개하고 있어 온전하게 굴드의 생애를 다룬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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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과학 저술가 스티븐 제이 굴드. 대중과학 글쓰기에 앞장선 그는 엄청난 편수의 과학 에세이를 썼는데, 한국어판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골라 펴내도 분량이 만만찮군요. 절판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책은 소장하고 싶어 원서로라도 갖고 있을 정도로 굴드의 글이 마음에 들었어요.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처럼 역사와 문화, 과학을 넘나드는 분들을 평소 좋아해서 자연스레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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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주의적 정신을 바탕으로 하버드 교수 신분으로도 반전 시위 맨 앞에 나섰을 만큼 좌파 정치학에도 전념했고, 과학의 오용과 남용을 극도로 경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과학의 발견, 논쟁을 대중이 알기 쉽게 상세하게 서술한 에세이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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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이자 진화 이론가로서의 굴드는 단속평형이론을 주장했는데요. 20세기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의 이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대 종합설의 토대를 마련한 에른스트 마이어,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 환원주의적 통섭을 주장한 에드워드 O. 윌슨의 이론의 한계를 꼬집었죠. 이분들의 저서도 굴드의 책과 함께 책장에 함께 꽂혀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론의 우위를 비교하려 들지 않고 그들의 관점 자체에 관심 있거든요. 다양한 현상에 대한 해석과 성격 규정이 자연학의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어 그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그중에서 굴드의 비판적 수용, 통찰력을 보이는 사고방식이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었고요. 굴드가 주장한 단속평형설은 지질학적 기록 사실에 충실한 해석으로, 대부분의 시간동안 생물 종들이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굴드가 바라본 세계는 일반 법칙과 함께 창발성과 우연성이 가득한 역동적인 장소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연과학계에서는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는 점진론을 선호하는데, 굴드는 이를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극적인 역사 변화가 이따금씩 짧은 혁명적 순간에 일어난다는 관념을 반대하는 엘리트 집단의 이데올로기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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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이냐 우연적이냐를 살피는 이유는 인류의 역사와 자연사에 진보가 존재하는가의 문제인데요. 4월에 방한했던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도 이 부분을 제기했었습니다. 굴드는 제한된 진보는 있다해도 그 어떤 방향성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보편적 기조는 있되 사건 자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요. 굴드는 그런 점진주의가 문화적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편향이 자연에서 관찰한 것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데 지금까지는 그걸 이해하려 들지 않았어요. 굴드는 우리에게 편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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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향에 관한 굴드의 분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사로잡혀 있었던 IQ 수치 사례입니다. IQ 수치는 곧 일반 지능의 지표이고 지능은 대물림된다는 것을 반격해 초토화해버렸는데요. 이처럼 IQ 사건이나 인종별 두개골 크기로 우열을 가린 사건 등 과학이 이념에 의해 왜곡되고, 과학이 사회적 무기로 악용된 사례를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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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 있는 진보만 있다면 절대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사례도 소개하며 이는 모두 인간 중심적 편향에 의한 것이라는 걸 굴드는 강조했습니다. 굴드가 비판한 현대 종합설의 핵심인 '진화는 방향성을 지니며 진보적'이라는 관념은 멸종하면 적자생존에서 도태된 열등한 존재라는 것인데요.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 종이 우리밖에 없기에 알게 모르게 우리는 가장 진보된 사람 종이라는 편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1,000배나 긴 시간을 지배한 삼엽충은 과연 그 시대 무엇보다 열등했기에 멸종했던 것일까 묻습니다. 인류가 진화의 필연적 결과라는 사고방식은 인간의 오만함이라는 것을 굴드는 경고합니다. 현재의 세계는 가능한 많은 세계 중 하나일 뿐. 현재가 미리 예정된 질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인간은 반드시 존재의 의미를 찾기에 자꾸 인간 중심 사고를 하게 됩니다. 굴드는 생명의 역사란 향상이 아니라 다양화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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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자연학 수립을 시도한 굴드는 예술과 과학, 사회학과 과학 등 통섭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는데요. 굴드의 통섭은 대등한 통섭이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과학과 휴머니즘>은 굴드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사회학자가 쓴 평전인 만큼 굴드의 인생 후반에 활발한 활동을 한 다양한 분야와의 통섭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인문학적 자연학자로서 굴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논쟁으로 가득한 생물학 세계에 다양한 이론의 개념적 오류를 지적하며 끝없는 경고를 한 굴드의 생명관. 과학이 이념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경고하며, 진화과정은 인간 중심적 편향의 사다리가 아닌 관목 형태라는 것을 알리며 불평등 사회, 예술 등 인류에 대한 고찰을 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삶을 <과학과 휴머니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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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학문과 개인적 이력 양면에서 인상적인 삶을 살다 간 고생물학자이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란 점은 분명하다. '과학과 휴머니즘'을 쓴 사회학자 리처드 요크와 브렛 클라크 역시 굴드가 자신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환경사회학자인 두 저자는 사회와 자연 세계 모두 역사의 산물이기에 포괄적인 분석을 하려면 역사적 방법이 필요한 바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굴드의 접근 방식이 사회과학자들에게도 유용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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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가 한가지 분야를 연구해서 얻게 되는 것들은 어디까지일까? 책 속에서 만났던 굴드라는 학자는 한가지 분야에서 만족하지 않고 여러가지 분야를 접목하여 복잡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찾아낸 멋진 과학자면서 사회학자였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그에 대해 살짝 맛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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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과학과 휴머니즘'은 굴드라는 학자의 연구업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업적은 자연과 과학이 기본이 된다. 그리고 과학과 더불어 하나의 기둥을 이루는 인문학에 대한 것도 다룬다. 아직은 두 학문에 기본적인 것 외에 깊이 있는 것들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나로선 책을 읽으면서 이것을 어떻게 풀어 나의 것으로 만들지란 의문이 들었다. 다만 그가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에서 이 연구를 시작했구나란 생각은 들었다.
과학이 인간의 삶에 많은 것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인간이 살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마음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내려 노력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은 들었다.
굴드는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위대한 전통이며, 각기 독립적인 영역을 갖지만, 경계를 접하고 서로를 보완해준다고 주장한다.(p211)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간을 떠나서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한번 더 알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미비하게 개인의 안위나 개인의 생각들을 반영하는 연구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 전체에 대한 애착으로 연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두루뭉실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인간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원한다. 그것을 위해 그는 끊임없이 연구했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많다. 그 중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과학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결코 과학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러니 과학과 더불어 우리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책 속의 그가 연구했던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엔 예술적 감각을 위한 일련의 활동들을 해보는 것을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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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휴머니즘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의 저자인 로널드 넘버스는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의 과학 사학자들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 사람은 토머스 쿤과 스티븐 제이 굴드이다.”
그 두 사람, 20세기의 과학 사학자들 중 가장 영향력이 컸다는 두 사람 중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로 나에게 기억되는 사람인데, 스티븐 제이 굴드는?
굴드는 진화론 논쟁에서 그 이름을 들은 것 같은데,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러니 굴드의 이름은 관련되는 분야와 함께 들은 적은 있지만, 잘 모르는 인물.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이 책은
이 책, 『과학과 휴머니즘』 의 부제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학문과 생애>이니,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어떤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는지와 그것을 이루는 바탕이 된 생애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리처드 요크와 브렛 클라크인데, 두 저자는 굴드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두사람은 굴드의 연구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접근했고, 그 과정에서 굴드의 학문적 열정을 깊이 이해했고,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관심에 매료되고, 결국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과학과 휴머니즘』의 ‘과학’과 ‘휴머니즘’도 그런 맥락에서 굴드의 학문적 관심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 선정으로 이해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어떤 사람
스티븐 제이 굴드는 어떻게 평가되는 사람인지 여러 경로로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평가가 보인다.
‘다윈 이후 최고의 생물학자’, ‘과학 글쓰기의 계관시인’
‘과학계의 전설’ ‘20세기의 혁명적 진화 이론을 이끈 진보적 지식인’
로널드 넘버스가 말한 바, '과학 사학자'
이 책에서 스티브 제이 굴드는 과학을 뛰어넘어 사회학과 예술, 인문학적 통찰과 지식의 확장에 공헌한 좌파 과학자로 규정되고 있다. ‘좌파’라 함은 그의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모든 형태의 식민주의와 억압에 반대하는’ 정치적 행동주의에 기초하여 붙여진 것이다.
굴드는 진화 이론에 공헌했으며, 우리가 자연계의 수많은 세부사항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고, 폭넓고 풍부한 세계관과 철학을 발전시켜 가장 위대한 20 세기 후반 사상가 중 한명(13쪽)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러한 굴드의 세계를 이 책을 통하여 잘 읽을 수 있었다.
굴드가 그래서 서두에 인용한 것처럼, ‘20세기의 과학 사학자들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서 첫 부분에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물질론자들이 모두 알고 있듯, 우리 모두는 별 대단한 의미없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자연은 우리의 욕망과 열망, 꿈과 희망에 무관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삶을 영위하고 세상과 그 속에서의 자기 위치를 이해하려고 분투한다.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위대한 두 전통이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있다. >(8쪽)
그리고 덧붙이기를,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위대한 지식인 중 한사람으로, 과학과 인문학 양쪽 모두를 깊이 이해했고, 인간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 이 두 가지를 모두 이용하려고 애썼다.”(9쪽) 고 한다.
그러한 설명이 스티븐 제이 굴드를 이해하는데,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과학과 인문학을 모두 이용하려고 노력했’던 그. 그를 알기 위하여 애쓰는 나.
이 책을 읽고 스티븐 제이 굴드를 이해하려고 애썼던 이유도 바로 ‘과학과 인문학’을 모두 이해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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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가 세상을 떠난 건 2002년의 일이다. (다른 리뷰에서도 썼던 것처럼) 그 소식을 미국 학회장에서 들었다. 개회식에서 사회자가 그 얘기를 했고,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렸었다. 그 학회는 미생물학자들의 미팅이었지만, 굴드는 그 커뮤니티에서도 그의 죽음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존재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도 진화론를 굴드와 리처드 도킨스에게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공과도 관련이 있었으니 모든 것을 그들의 대중과학서에서 배웠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전공에서의 도식 같고 정형화된 설명보다 그들의 대중적이고 명확한 설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해도 부끄러울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 이후로 에드워드
O. 윌슨도 읽었고, 데넷도 읽었고, 조지 윌리엄스도 읽었고, 그 밖의 많은 진화 관련 서적을 읽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고 구분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최초는 굴드와 도킨스라는 것은 변할 수가 없다(그래서 최초는 중요하다).
기다렸다. 더 기다린 것은 아직 번역 출판되지 않은, 남아 있는 자연학 에세이지만(여전히 무척 기다리고 있다) 그에 대한 평전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던 바로 그 평전이 바로 『과학과 휴머니즘』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 『과학과 휴머니즘』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부제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학문과 생애’라고 했지만, 굴드의 생애는 다루고 있지 않으며, 학문에 대해서도 생물학 분야에 대해서는 상당히 빈약한 편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굴드의 평전인 셈이다(옮긴이 김동광 씨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듯 굴드의 평전이 여러 권 나와 있다고 하니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기다릴 이유가 있다). 사회학자인 저자들의 한계일 수도 있고, 그들의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굴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과학과 휴머니즘』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는 진화학자, 더 좁게 말해서 진화이론가로서의 굴드를, 후반부에서는 인문학적 자연학자로서의 굴드를 다루고 있다. 굴드는 일반 독자들에겐 <Naturalist>에 매달 연재했던 에세이로 더 유명하지만(물론 그냥 단순한 에세이는 아니다), 진화학에서는 진화론에서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단속평형론(Punctuated Equilibrium)’을 주창한 진화이론가로서 더 유명하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을 부정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1930년대
이래 진화학의 주류가 된 현대종합론(Modern
Synthesis)의
미시적 진화론에 맞서 진화학의 범위를 넓인 이론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1부는 그런 진화학자로서의 굴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그가 ‘진화=진보’의 도식을 격렬하게 비판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도식에 대한 비판은 진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그는 분명한 진보주의자이며 평등주의자였다), 자연이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비판하게 되었고, 동시에 현재의 자연이 여러 가능한 모습 중에서 우연하게 진화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인간 역시 역사성과 우연성을 통해 존재하게 된 것이라는 얘기다. 더불어 그는 유전자를 중심으로 파악하는 에드워드 윌슨과 리더드 도킨스 류의 사회생물학을 거부한다. 바로 초-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환원주의로는 자연과 진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부분은 그의 인문학적 통찰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는 인문학과 과학의 분리나 혹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같은 어느 한쪽으로의 통합을 모두 거부한다. 과학과 인문학(혹은 예술)이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굴드인 셈인데,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는 스스로를 ‘인문학적 자연주의자’라 불렀던 것이다.
앞에서 이 평전이 아직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의 학문적 기초와 그가 평생 추구했고, 연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자연을 편견 없이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와 질서를 파악하고자 했고, 인문학을 겸비한 과학자로 살아간 굴드가 드러난다. 그리고 자연의 진보를 거부했지만, 사회에서의 진보주의자로 살아간 굴드를 이야기한다(예정되어 있지 않은 자연과 역사이기에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그의 삶과 인간미, 생물학적 업적 등에 대해서 아마도 이제 더 나올 평전을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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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부족함일 수 있지만... 문흥이망!!! 이 책을 읽기 전에 문과 출신인지 이과 출신인지 본인의 고교시절을 잘 떠올려보고 결정하기 바란다. 문과계열의 과목을 잘 해서가 아니라 이과계열의 과목을 피하기 위해서 문과를 선택한 나는 이 책을 앞에두고 무한한 좌절과 길잃음을 체험해야 했다. 자신의 혼이 어딘가로 빠져나가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며 하얀 것은 종이는데 까만 것은 무엇인고? 하는 맹한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통섭적 사고에 가까워진 문과생이 될 수 있으니 한 단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더 틔울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역시 문흥이망......
이제와서는 이 책을 읽어보려고 한 시도가 나 자신에 대한 시험이라고 해보고 싶지만, 사실은 오만에 가까웠던 무지로부터 시작했다. 관심이 없던 분야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관점에 대해서도 매우 생소했고, 이미 널리 알려진 이론들에 대해 그런 의문들이 제기될수도 있다는 것 역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진화는 '생물이 생명의 기원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현상'이라고 여과없이 믿고 있었다. 진화라는 것 자체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 발전하는 것이고 진화와 도태를 통해 고등한 영장류인 인간의 등장은 필연적인 것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일부 부분에서 굴드의 관점은 달랐던 것 같다. 진화를 두고 점진적인 발전 과정이라 단언할 수 없는,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그 사이에는 개량되었고 아니고의 상하의 개념이 생길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 이해할 수 없던 내용들이 이런 맥락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감이 온다고나 할까 싶다. 정말 얕은 읽기가 계속되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어느 때는 낭독하며 읽었다. 보통은 소리내어 책을 읽지 않는데, 너무나 많이 길을 잃어서 소리를 내서 읽으면 조금 더 집중이 되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지 않는데 도움을 주어 좋았다. 과학과 휴머니즘을 읽고 집중에 도움이 되는 독서법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려울 것을 예상하고 읽었지만 과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과알못이라 더 어렵고 힘겨운 노력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읽어낼 정도의 수준으로 쓰여져 있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은 아, 이렇구나 싶게 읽히다가도 단어 하나가 생소하면 그 부분에서 막히곤 했는데, 예를들면 '메타 수렴' 같은 단어들. 사람은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라는 좋은 교훈을 남기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최소 3년 안에 이 책을 다시 읽거나 비슷한 분야의 책 읽기를 도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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