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을 상징하듯 푸른 색 책표지부터 미려한 양장으로 제본한 것을 보면 그 속에 든 내용도 또한 깊은 영성을 심어주는 귀한 내용이 가득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읽은 뒤의 느낌은 그다지 개운치가 않다. 시쳇말로 이런 정도의 내용을 가지고 인간의 고통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리도 두꺼운 표지의 책 한 권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하다고나 할까. 요는 그거다. 차라리 c .s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나 성경의 욥기를 읽는 것이 이런 책 10권을 읽는 것보다 100번 낫다는 생각이 든다는 사실(적어도 내게는).하긴 나름 데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친한 친구 아들의 자살사건의 체험을 공유하며 느낀 고통의 과정을 기술해 놓고는 있다. 그런데 그것뿐이다. 가령 다음 글을 보자. 인생의 격변이 닥칠 때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음성이다.(p53) 기독교인 치고 이런 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또 다음 글은 어떤가? "....로키산맥의 장대한 아름다움은 그것을 낳기 위해 격은 엄청난 격변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대답은 무조건 예스(yes)이다."(p34) 이 글귀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내용의 핵심이요, 주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누구는 그런 말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차라리 다음 한자 숙어를 외워버리면 어떨까? '고진감래(苦盡甘來)' 이 한마디 사자성어가 그런 표현보다 우수하다는 말이 아니다. 아직 우리의 정서는 로키산맥의 장대한 아름다움에 도취하며 깨닫는 한가하고 이국적 인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책 말미에 옮긴이는 "화산재로 뒤덮인 폐허 속에서 연둣빛 싹을 틔우는 풀들과 같은 소망을 발견하기 바란다."고 하셨지만 그런 과분한 미사여구는 나로 하여금 이런 서평 글을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뿐이다. 총체적인 느낌상 켄가이어의 이 책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제자도(영적 멘토링)를 키워 가야하는 다수의 크리스천에게 깊은 영성을 심어주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개 독자에 불과한 나로서는 나의 느낌이 저자의 한계가 아니기만을 바랄 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