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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8월의 길 위에 버리다, 이토 다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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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책에는 단편 두 작품과 작가의 인터뷰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저자는 '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로 대학 재학 중인 1995년 제32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오노 아즈사 기념상 예술상을 수상했고 이후 '안녕, 그저께'로 제49회 쇼가쿠칸 아동출판문화상, '하늘 높이, 깊슨 플라잉 V'로 제21회 쓰보타 조지 문학상, 이 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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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책에는 단편 두 작품과 작가의 인터뷰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저자는 '조수석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로 대학 재학 중인 1995년 제32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오노 아즈사 기념상 예술상을 수상했고 이후 '안녕, 그저께'로 제49회 쇼가쿠칸 아동출판문화상, '하늘 높이, 깊슨 플라잉 V'로 제21회 쓰보타 조지 문학상, 이 책에 수록된 '8월의 길 위에 버리다'로 제13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습니다.

 

순수문학은 아무래도 섬세한 감정 묘사의 힘이 필요한 장르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선입견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들은 어딘가 일그러지고 순탄치않은 소재를 풀어내지 않나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평범해서는 수상작이 되긴 어렵겠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읽는데 고생을 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지요.

 

어느 작품을 선택해서 읽을 때 작가의 취향이 나와 맞는지가 가장 많은 고려의 대상이 될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그다지 취향은 아닙니다. 그래도 이토 다카미의 작품을 읽게 되는 것은 묘한 매력을 느껴서인 것 같습니다.

 

'8월의 길 위에 버리다'에서는 트럭을 끌고 자판기의 캔을 채우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미즈키 씨'가 일을 그만두려해서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화자인 아쓰시와 대화하는 것이 기본 스토리입니다.

 

특이하게 여자인 미즈키 씨와 아쓰시는 이혼을 했다는 점이 같습니다. 서로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회상씬이 종종 삽입됩니다. 이토 다카미는 뒷 부분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서 좀 더 성숙한 30대 남자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밝힙니다.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몇 요소들이 데뷔작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작품의 깊이는 확실히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후 2009년에 집필한 '해협의 남쪽'에선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얘기하자면 이혼한 한 인물이 과거를 회상하는 정도의 이야기겠지만 탁월한 면은 '미즈키 씨'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면일 것 같습니다. 자신이나 전처와 동일시시키지 않고 배치시킨 캐릭터이지만 그러면서 아쓰시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면도 있습니다.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이 한가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한다던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굉장히 리얼함을 가지기도 합니다. 남성의 시각과 이러한 다양한 시점의 분산은 요시다 슈이치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토 다카미가 완전한 남성적 시각이라면 요시다 슈이치는 남성의 여성적인 시각을 부각시키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만 행복해지고, 나빠요."(p. 94)라고 외치는 아쓰시의 모습에서 그의 철없음을 알게됩니다. 결단력도 없었고 상대와 문제 해결도 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끌어안고 가지도 못하는 유약함은 홀로 당당히 남자들의 세계에서 돈을 벌고 또 당당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기 이해 도약하고자하는 미즈키 씨와는 전혀 다릅니다.
 
아쓰시의 회상은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말을 통해 그가 변화되거나 변화를 소망하는 드라마적인 요소로 이 소설을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이 소설이 수상작이 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돌멩이를 발로 차고 싶어하는 모습, 그마저도 발견하지 못하는 모습. 불평하는 모습 자체가 더 현실에서 있을 법한 것은 아닐까요. 제목처럼 아쓰시가 8월의 길 위에 무언가를 버리고 도약하기를 바라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조개 속에서 보는 풍경'은 화자 준이치가 마트에서 한 투서를 보고 겪은 일에 대한 아주 짧은 단편입니다. 동화적이기도 하고 판타지적인 것 같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진상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겐 조금 곤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요.
 
 
 
 

 

 

책 정보

 

Hachiatsu no Rojo ni Suteru by Takami Ito (2006)

8월의 길 위에 버리다

지은이 이토 다카미

펴낸곳 대한교과서(주)

1판 1쇄 인쇄 2007년 8월 10일

1판 1쇄 발행 2007년 8월 25일

옮긴이 한성례

 

 

 



YES마니아 : 로얄 e*******d 2012.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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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없이 사는 이들의 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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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月の路上に捨てる:: 伊藤たかみ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받아 들이기 힘든 남자가 있다. 40대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환갑이 지난 부모 밑에 얹혀 살며 결혼은 물론 하지 않았다. 본인이야 [안했다] 고 말하고 싶겠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들 눈에는 [못했다] 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일이야 자기 사업이라고 하고 있지만 온갖 잡스러운 일을 되는대로 끌어 모아서 그때 그때 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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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月の路上に捨てる:: 伊藤たかみ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받아 들이기 힘든 남자가 있다. 40대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환갑이 지난 부모 밑에 얹혀 살며 결혼은 물론 하지 않았다. 본인이야 [안했다] 고 말하고 싶겠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들 눈에는 [못했다] 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일이야 자기 사업이라고 하고 있지만 온갖 잡스러운 일을 되는대로 끌어 모아서 그때 그때 연명하는 변변치 못한 수준인데다 정확한 액수까진 알 수 없어도 적지 않은 빚도 지고 있는 눈치다. 신장은 평균치에 못미칠 뿐더러 한참 마르기까지 해서 불쌍한 감정이 들 만큼 왜소하고, 그마저도 잘못된 습관으로 늘 어깨가 구부러져 있다. 안면 외모라고 그렇게까지 호감을 주는 타입도 못된다. 성격이라도 근사하면 외모 같은 건 어떻게든 상쇄되기 마련이건만, 문제는 이 성격이 여타의 조건보다 더 안좋다는 데 있다.

범죄형의 성격까진 아니지만 아주 사소로운 데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가령 쩝쩝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다든지, 편식이 지나치게 심하다든지, 일가 친척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도 TV를 틀어놓고 히히덕 거린다든지, 그렇게 보는 프로그램도 요란한 게임 중계 라든지, 다같이 영화 한편을 봐도 자신이 먼저 본 경우에 미리 앞에 일어날 사건을 다 얘기해 버리면서 몰입에 방해를 놓는 등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디테일한 배려가 없다. 가족들 모두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까지 마쳤는데 TV 보느라 느지막히 개수대에 그릇을 던져놓고 갈 때, 나물 비빔밥에서 고사리가 싫다고 늙은 노모에게 빼달라고 투정 부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가족들보단 똑똑하다며 우쭐거리는 모습을 볼 때, 당황스런 감정이지만 모처럼 [살의] 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더 착잡한 것은, 이 정도는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습관이나 성향이야 온전히 본인의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상호 관계를 맺는 와중에 그가 타인에게 끼치는 민폐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의 행동만 눈꼴시우면 안보면 그만인 것을, 그의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곤란함을 느끼게 되면 어느 순간엔 [인간 쓰레기] 라고 분류해도 되겠다는 독기와 증오의 감정에 사로 잡히게 되버리는 것이다. 이 감정이 꽤나 번거롭고 괴롭다.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으니 일을 저지르는 상대보다 내 쪽이 더 고뇌에 시달리게 되어 그 분함이 다시 증오가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와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면 좋으련만, 공교롭게도 가족 연중 행사에 싫든 좋든 만나게 되는 존재라 내 마음대로 그럴 수도 없다. 게다가 다른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도 없다는 점이 더 속을 타게 한다. 모두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찰 이후에 일어날 분열과 반목을 두려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이해 해보는 쪽으로 마음을 선회했다. 솔직히 안쓰러운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왜, 어쩌다 그 지경이 되었을까. 우선적인 책임은 그가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그의 부모에게 있겠지만, 그의 동생들은 번듯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무조건 부모탓만이라 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원인은 그 본인에게 있겠지만 이런 민폐인이 사회 곳곳에 의외로 많은 수로 존재한다는 현실을 볼 때 온전히 그의 탓만이라 매도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야말로 사회의, 시대의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자기 몫으로 주어진 삶에 대한 책임 회피에 정당함을 부여해주려함은 아니지만, 이 시대에 있어 [성인 남자] 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헤아려주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30대의 아쓰시도 참 무기력 하고 무책임한, 한심스런 남자다. 꿈이 있지만 치열한 노력도 별반 하지 않다 포기해버리고, 여자한테 얹혀 살다 내키지도 않는 결혼을 했지만 그녀가 제대로 된 가정을 원하자 그 부담감과 번거로움을 못이겨 외도를 하고, 결국 이혼을 해버린 뒤 프리터(아르바이트생)로서 생활을 연명해나간다. 그럼에도 그다지 격렬하게 절망하지도 않는다. 아내가 자신한테 지쳐 가는 것에서도 미안한 마음도 별로 없고 오히려 자신한테 이것저것 요구만 하는 것 같아 화도 나고 이해도 가지 않는다. 아쓰시에겐 의욕도 노력도 이미 오래전에 길바닥에 버린 것들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동료 미즈키씨의 일에 대한 열정이나 관계에 대한 의욕은 미풍 같은 자극이었다. 남들과 같은 것을 할 수는 없어도 자기 나름대로의 노력과 가치를 이해 받고 싶었을 따름이라고, 그의 사소한 몸짓이 절박하게 말한다.

꿈꿔왔던, 하고 싶은 일을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는 것만도 억울한데 사회와 관계는 자신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종용한다.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엘 가고, 돈을 열심히 벌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남부럽지 않은 결혼을 해서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으란다. 꿈만 좆고 가난하면 마음대로 사랑도 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책임져주기 위해 싫은 일이든 좋은 일이든 필사적으로 해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 의욕은 점차 메말라가고 자포자기로 인해 제멋대로가 된다. 사회에도, 관계에도 더이상 책임을 지고 싶지가 않은데 외로워지는 건 자기 자신이고, 그 고독을 누군가 이해해주면 좋겠는데 그러자니 다시 관계에 책임을 져야한다. 어느샌가 그런 것들이 당연히 사람이 할 [도리] 가 되어버렸다. [도리] 를 다하지 못하면, 살아갈 가치조차 없게 될까?

누구나 한번쯤은 겪고 고민하는 피로다. 그래서 그 심정만큼은 고스란히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고독해도 좋으니 계속 그렇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단절한 상태로 살겠다 한다면 말릴 재간이 없다. 하지만 도무지 홀로 살 수 없을 것 같다면 유기적인 관계에 싫든 좋든 비용을 치뤄야만 할 것이다. 세상을 이용만 하고 돌아오는 피드백을 버거워 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최소한 그에 대한 평가 정도는 담담히 받아 들여야만 한다. 본인의 삶이니 좀더 의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훈계를 할 수도, 지시할 수도 없다. 그의 존재로 불편하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느끼는 몫이니 내 나름의 선에서 컨트롤 하면 그만이다. 그를 헤아릴 수도 있고 물리적인 도움이 일부 줄 수 있겠지만, 그가 어떻게 살아나갈지는 그가 선택할 일이다. 다만 내쪽에선 그가 한심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지레 판단해서 경멸하게 되는 마음만은 경계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는데, 읽는 도중에 작년 아쿠타카와 수상작인 이토야마 아키코의 [바다에서 기다리다] 가 계속 떠올랐다. 나중에 이 작품이 올해 아쿠타카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니니 이런 스타일이 일본 순문학이 추구하는 방향이구나 싶었다. 이토 다카미의 작품은 국내에 세 작품이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모두 스타일이 달라서 같은 작가의 글이라는 것에 어리둥절 해지기조차 한다. 함께 수록된 작가 인터뷰를 읽으니 이 작품은 수상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 하는데, 그것은 일본 문학에도 전형성이 있다는 말과도 같게 들려서 작금 국내 문학계의 일본 문학 붐에 비추어 볼 때 아이러닉함을 불러 일으킨다. 전형성을 탈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외래 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데, 실은 그조차도 갈데 없는 전형성을 추구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q****e 2007.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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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길 위에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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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책을 못 읽은 한풀이라도 하듯이 만사 귀찮은데도 책 구경은 하고 싶다. 그렇다고 딱히 서점에 나갈 정도로 부지런을 떨수는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을 읽기도 하고 집에 있는 책 제목을 훑어보았다. 가을맛 나는 공기 때문인지 처녀 마음이 호도도- 호도도- 하기에 커피 한 잔 데워놓고 독서 전용 포즈를 한 채 책 읽기 돌입.    벌써 8월이라니, 했던게 며칠 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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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책을 못 읽은 한풀이라도 하듯이 만사 귀찮은데도 책 구경은 하고 싶다. 그렇다고 딱히 서점에 나갈 정도로 부지런을 떨수는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을 읽기도 하고 집에 있는 책 제목을 훑어보았다. 가을맛 나는 공기 때문인지 처녀 마음이 호도도- 호도도- 하기에 커피 한 잔 데워놓고 독서 전용 포즈를 한 채 책 읽기 돌입.

 

 벌써 8월이라니, 했던게 며칠 전인데, 요즘은 아직도 8월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샤향노루 처럼 머스크를 뿜어내며 '나 가을이오-'하는데도 달력은 8월을 며칠이나 남겨두었다. 축축한 한여름에 남들 다 가는 바닷가 구경도 못 해본게 서운해서인지 8월은 31일 23시 59분까지 꼭꼭 채워서 푹푹 쪄야 할것만 같다.

 

 더위에 정신을 잃었을때는 몰랐는데 선선해지니까, 몇 해씩이나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더 비참하고, 그런 모습이 더 또렷하게 보여서 8월이라는게 더 믿기지 않는 것일테지. 나는 언제까지고 지나간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올 것을 두려워하며 현실을 도피하면서 살 것인가, 하고 뻔하고 뻔뻔한 한숨을 쉬어본다.

 

 책장을 훑어보니 눈에 띄는건 '8월'이라는 글자였다. 8월의 길 위에 버리다. 나에게도 남은 며칠 동안 무언가를 버리고 가볍게 새출발을 할 9월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어른에 어른이 될 수록 가을이 더 시린걸까.

 

 이 책을 선물 받고 곧바로 읽기 시작했을때는 도저히 문장을 읽을수가 없어서 읽기를 그만 뒀었다. 그 때 꼽아 놓은 <비커밍제인> 영화 팸플릿이 아직 그대로다. 앞 부분이 기억나지 않아 첫장부터 다시 읽기로 했다. 출간 되고 얼마 안되어서 선물을 받았었는데 그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출판일을 보니 2007년 8월이다. 2008년 8월, 지금도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욕심냈을 때와 그 마음을 알고 선물 보내준 이에게 고마워했던 것, 어쩐지 읽히지 않는 책을 어떻게든 읽어보려 했던 그 때의 공기가 다 기억이 나는데 그게 벌써 1년 전이다. 온난화 때문에 기후가 변한다지만 한 해씩은 별 차이가 없는건지, 내가 기억하는 2007년의 그 날과 지금의 쓸쓸함이 많이 닮아있다.

 

 똑같은 책을 비슷한 이유로 골라 들고, 비슷한 계절에 읽는 것인데도 읽는 도중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지난번의 독서는 인도어로 된 하루키 책을 읽는 것보다 어려웠다. 다행히도 그 때 읽은 것 중에 '자판기 캔을 교체하는 일'과 '주인공이 이혼했던 일' 그리고 '이혼한 것에 대해 두 사람이 이야기 했던 것' 은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굉장히 힘들게 일본여행을 다녀온적이 있다. 푹푹찌는 날씨였는데 섬나라의 여름은 최악이라는걸 몸소 체험했다. 나라도 팬티 바람으로 간신히 그곳만 가린 채 돌아다니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모노도 얇긴 하지만 축제 때 입는 옷 중에 남자들이 입는 기저귀 처럼 생긴 것 ^-^)

제주도 여행 때도 폭염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했었지만..

어쨋거나 일본의 7-8월을 경험한 것, 자판기의 천국도 충분히 보았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꼭 우리 동네 이야기 처럼 읽혔다. 글을 읽을 때 상상하고 느끼면서 읽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거니까, 소설가나 독자 모두 이왕이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게 좋겠구나 뭐 그런 잡생각도 해보고-

 

 30살의 남자는 연애결혼 후 4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한다. 그는 별다른 직장도 없이 여름 한 철에만 아르바이트로 자판기에 음료를 채워넣는 일을 하는데 여자직원과 한 팀이 되어서 차로 이동한다. 정직원이 아닌 그에게는 사생활 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수 있어서 여차저차 나온 말이 이혼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이혼을 했고, 이혼을 한다는 것이 마침 맞아떨어져서 차로 이동하는 중에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한다. 둘 중에 주로 남자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영화 관련 일을 하고자 했지만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는 30살의 남자, 원하는 꿈을 이루었지만 일이 잘 안되자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어진 여자. 둘은 자주 다투게 되고, 이혼까지 가게 된다. 나는 결혼은 아직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더라도 그렇고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결혼이라는게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끼리 만나서 함께 살 부대끼며 사는 것인데 왜 안 힘들겠나 싶다. 나중에는 정 때문에 살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산다는데 왜 난 벌써부터 그 얘기를 고개 끄덕이며 듣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해가 가더라. 하물며 연애도 좋은 감정만 있는게 아닌데 결혼 생활중의 미묘한 성격 차이는 성인saint이 아니고는 감내하며 살기 힘든것일지도. 살면서 느는게 지혜라는데 살아보지 않고는 쌓이지 않는 것 또한 지혜니까 머리가 파뿌리가 되기 전에는 온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이혼 직전에 손을 깨물고, 깨무는 여자를 보면서 '개'라고 느끼고, 폭력을 휘두르고, 무관심하게 까지 되는 것을 보면서 위기를 넘어 절정에 도달하면 후회할 일을 하고 마는게 인간인가 싶기도 했다. 이런 행동(말)을 하면 분명 네가 상처 받고 나는 후회하겠지, 하면서도 끝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굵게 말하면 그런 내용이지만 커다란 사건이 등장하는 소설이 아니라,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그런 것을 동료에게 간단히 설명하고, 잊고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주인공이 타고 다니는 차,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스팔트 위에 자리 잡은 자판기들, 흐르는 땀, 싸우는 소리, 마음을 찌르는 고요함, 고독함 그런것들이 너무 선명하게 스며들어서 여운이 길다.

 

 뒤에 나오는 <조개 속에서 보는 풍경> 이라는 단편은 조금 다른 이야기. 이것 또한 또래의 남자(유부남)가 주인공인데 그의 하루 중 유일한 낙은 퇴근 길에 마트 앞에 전시된 '고객 의견과 마트 관계자 답변'을 읽는 것이다. 거기에는 잔돈을 두 손으로 거슬러주지 않는다는 것 부터 몇가지 불만 사항과 답변이 적혀있는데 그 중 '후우타로 스낵'이 없으니 빨리 갖다놔달라, 생산처라도 알고싶다,는 여자(로 추정)의 글이다. 마트 쪽에는 그런 과자는 들여놓은 적도 없다는 답변이고... 그는 의문의 여인과 스낵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고, 아내에게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 하고 같은 것을 상상하고 추리 해본다는데 행복을 느낀다.(난 행복을 느낀걸로 이해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부푸는 커튼 속에 머리를 들여 놓으면 마치 조개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일본 작가 답게 별것 아닌 소재로 별것을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때로 이런 책을 읽고 난 후 '그래서 건진게 뭐냐'는 질문을 던져보면 뭔가 낚인 기분이 들곤 하는데 그런 기분치고 썩 나쁘지 않다. (제대로 낚인거다)

 

 

 우리는 20대 중반을 지났다. 꿈은 오쿠보의 하수구에 버렸다. 신주쿠의 길 위에서 땀과 함께 흘려버렸다. -42쪽

8월이 다 가기 전에 나도 뭔가 버릴게 있다면 길 위에 던져버리자고 읽은 책이다. 이런 문장이 튀어나와주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내가 던져버릴 것은, 던져버리기 주저하는 것은 20대의 꿈이자 '환상속의 그대'인가.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앞의 단편과 뒤의 단편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태도의 차이 때문이다.

 

 그리운 비디오 대여점에 가자 치에코는 아쓰시가 관서지방 출신인 것을 너무 내세워서 귀찮았다고 말했다. 센스가 좋은 체했지만 실은 음악 취미가 최악이었다고 아쓰시가 반박한다. 옛날에 살았던 시모이구사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는 방문판매를 밀어낸 것을 아주 기뻐하던 아쓰시가 무척 볼품사나웠다고 치에코가 말했다. 치에코는 카레라이스를 만드는 방법조차 몰랐다고 아쓰시가 반박했다. 슈퍼마켓에 가면 비닐봉지에 상품을 넣을 때 손가락에 침을 뱉어 봉투의 입을 여는 것이 더러웠다고 말하는 치에코. 유효기한이 많이 남은 것을 고르려고 우유를 안쪽부터 잡는 행동이 싫었다고 말하는 아쓰시. 그렇게 계속해나가다 둘은 웃어버렸다. 어디를 가도 좋은 추억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두 사람은 왜 애인이 되었고 결혼까지 했는지 모르게 되었다. 모르면서도 왠지 이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 즐겁게 느껴졌다. -79쪽

 

 둘 다 플라이 정식을 주문했는데 아쓰시는 옛날에 그랬듯이 싫어하는 크림 크로켓을 그녀의 접시에 말없이 옮겨 놓았다. 곧이어 치에코도 그녀가 싫어하는 가리비조개 플라이를 아쓰시의 접시에 옮겨놓았다. 그녀는 간장으로 먹고 아쓰시는 소스로 먹었다. -80쪽

 

 이혼 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소한 것들을 열거하는 두 사람. 그러면서도 함께 했던 시간 동안 만들어진 두 사람만의 습관이 몸에 베어 있는 것은 어쩔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옳게 맞아떨어지는 심장을 얻어 이식받은 사람의 몸에 들어간 그것 조차 옛날의 주인과 지금의 주인이 다르듯 한 몸 안에 연결되어 있되 본래 한 몸이지 않은 것처럼. 

 

 바로 식품매장으로 향한다. 그날 아유코는 청대완두가 없다며 청대완두를 찾아 채소 코너를 왔다 갔다 했다. 점원을 불러 세워서 찾아도 보았지만 품절이었다. 그녀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아유코가 만들어준 저녁식사는 얌념장을 얹은 두부와 돼지고기 샤브샤브였다. 이 메뉴에 청대완두가 왜 그렇게 필요했는지 준이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또한 그런 점이 아유코다웠다. 아유코에게는 아유코의 세계가 있다. -108쪽

 

 아내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서 자신의 퇴근 시간을 조절하고, 함께 장을 보고, 유일한 낙은 마트 앞에 붙은 고객의견을 읽는 것인 이 남자는 자칫 '청대완두 사건'으로까지 번질수도 있었을 아내의 행동에 대해서도 '아유코의 세계, 그녀답다'고 말한다.

 

 굉장히 일상적인 것인데도 나는 미혼이라 그런지 꽤 진지하게 읽어버렸다 ㅋ

'읽는 동안 즐거운 몇시간이었어-'로 마무리.

 

y*******0 2008.08.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의 자화상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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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있고, 이혼을 했으며 좀 더 수입을 많이 벌기 위해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여자 미즈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또 다른 꿈을 꾸고 있고 그러다 이혼을 하게 된 남자 아쓰시, 아쓰시와 미즈키는 한 팀으로 일을 하면서, 자신들의 일상을 이야기 한다...누군가에게든 말을 하고 싶지만 쉽게 오픈 할 수 없는 서로의 상처를 아쓰시가 이혼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까지를 ...이미
"우리의 자화상 같은 느낌...." 내용보기

아이가 있고, 이혼을 했으며 좀 더 수입을 많이 벌기 위해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여자 미즈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또 다른 꿈을 꾸고 있고 그러다 이혼을 하게 된 남자 아쓰시,
아쓰시와 미즈키는 한 팀으로 일을 하면서, 자신들의 일상을 이야기 한다...

누군가에게든 말을 하고 싶지만 쉽게 오픈 할 수 없는 서로의 상처를 아쓰시가 이혼을 결정하게 되는 과정까지를 ...
이미 이혼의 아픔을 지닌 인생선배이자 직장선배인 미즈키에게 아쓰시가 털어 놓는 그런 이야기 구조였다.

글은 담백했고 우리 일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었다.
서로가 마음에 없는 말로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마음의 전달이 되지 않고 그래서 마음에 없는 말이 나가게 되고...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쉽게 되지 않는 그런 시간의 연속들이 결국엔 대화의 단절이 오게 되고..그 순 간 이미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그래서 이혼을 하게 되는 그 선에 아쓰시가 있었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30,40대의 모습은 하루하루가 힘들고 경제적인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아쓰시를 통해 미즈키를 통해 작가는 그런 30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이란 보여진 주제 보다..그런 과정이 만들어 지는 이유들의 요인들, 누군가 터 놓고 말을 할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의 어려움

가슴에 콕 와 닿는 감동을 주는 대사들이 있었던 건 아니였지만
30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

w*******i 2007.09.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