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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고학자들은 기후변동이 인간사회를 변화시켯다는 것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기후변동이 농경이나 문명 같은 중대한 발전의 주요한 원인이라 보는 환경결정론은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금기엿다.” 결정론은 언제나 극단성 때문에 오류로 증명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환경이, 기후변화가 무시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생존을 위한 농경의 역학이다. 1만2천여년전 농경이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춥고, 습하고,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가 교대되는 주기 속에 살아왔다.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농작물의 생산량과 다음해에 파종할 씨앗의 양이었다.” 인간도 먹어야 사는 동물이다. 인간 역시 먹이의 증감에 따라 인구가 결정된다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먹이의 증감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기후의 변동이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기후의 변동이 식량의 증감에 영향을 주는 정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 능력을 취약성의 정도라 본다. “나는 인간이 장단기적 기후변동에 점점 더 취약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후변동에 대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비용도 커졌다. 수만년 동안 인구는 거의 늘지 않았ㅆ고 모두 수렵과 야생식물의 채집으로 살았다. 생존하려면 기동력이 더 뛰어나고 기회를 잘 포착해야 했다. 하루를 살아가기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후의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이를테면 무리 전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든가 무리의 일부를 나누어 다른 지역으로 보낸다든가 원치 않는 음식도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취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농업이 시작된 것 자체가 기후변화와 취약성의 정도를 높이는 사이클 때문이었고 역사는 그 사이클이 계속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말한다. 농업이 처음 시작된 곳은 중동지역이다. 빙하기가 끝난 기원전 13000년 이후 서남아시아는 “온난한 환경으로 바뀌면서 도토리를 품은 참나무 숲이 크게 늘었다.” 식용식물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이제 임시 근거지에 살지 않고 제법 큰 규모의 영구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도토리와 피스타치오를 많이 수확했다. 그 두 견관는 무엇보다 저장이 용이했다. 도토리와 피스타치오는 한 장소에서 오랜기간 머물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다. 그러나 풍요에는 대가가 따랐다.” 도토리를 먹을 수 있게 가공하는데 “막대한 노동력을 지출해야 했다. 일곱시간을 투여한 뒤에야 가족이 며칠 먹을 음식재료를 만들 수 있었다. 도토리가 주식이 되면서 공동체의 생활이 달라졌다.” 긴 노동을 할 정주지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식량공급이 안정적이 되면서 인구가 급증했고 “소폭의 기후변동에도 매우 취약한 한계환경을 유발했다. 그들은 환경적 취약성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기원전 11000년경 마침내 심한 가뭄이 닥쳤다. 북미에서 빙하가 녹은 민물(아가시호)이 대량으로 래브라도 해로 방출되엇다. “아가시의 녹은 물은 명분 농도가 짙은 멕시코 만류의 위로 떠올라 일시적으로 뚜껑처럼 작용하면서 난류가 식어 가라앉는 것을 막았다.” 대서양 순환이 멈춘 것이다. “추위는 1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1천년의 기간을 ‘영거 드리아스기’라 부른다. 북쪽이 다시 빙하로 변하고 대서양 순환이 차단되자 멀리 서남아시아에 즉각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마지막 빙하기처럼 차가운 역선풍이 다시 불었다. 서남아시아는 1천년동안 길고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그리고 숲이 사라졌다.그러나 “사회적 유연성과 기동성의 고전적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오랜기간 평안하게 살았던 결과 촌락 인구는 300~4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인구 밀도는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절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러나 “영구정착지는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식량사정만 더 악화될 따름이엇다.” 많은 촌락이 버려졌다. 물론 처음부터 버려진 것은 아니다. 뭔가 방법을 찾으려 했고 “기원전 10000년경부터는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식물을 재배하여 수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터키 동부에서 외알밀의 재배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닭과 나비나물도 마찬가지엿다. 그밖에 에머밀, 완두콩, 렌즈콩, 아마 등도 아주 짧은 기간에 길들여졌다.” 그러나 그정도로는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엔 부족했다. 사람들은 흩어졋다. 흩어진 곳에서 “그,들은 야생 식물의 채집을 보충하기 위해 재배 실험을 계속했을 것이다. 몇 세대가 지나자 경작된 밭의 산출량이 늘기 시작했고 이 임시 전략은 곧 온전한 농경으로 변모했다. 영거 드리아스기가 끝나고 온난화가 재개되자 농경은 생활의 기둥이 되었다. 이윽고 기원전 9500년경 버려졌던 언덕에 새롭고 전혀 다른 거주지가 탄생했다.” 도토리와 피스타치오도 돌아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농부가 되었기 때문이다.농업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농업과 함께 취약성의 사이클이 다시 시작된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경작 가능한 밭, 습지, 사구가 많으나 대부분은 염분이 섞인 황량한 사막이다. 강우량은 거의 없다. 자연의 극단적인 힘들이 사방에서 압박해오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 모진 겨울바람, 사나운 폭풍, 게다가 강물이 범람해 삽시간에 촌락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이 지역이 그렇지는 않았다. ‘기원전 10000~기원전 4000년에 이 지역은 여름 기온이 높았고 강우량도 많았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강우량은 지금보다 25~30% 많았을 것이다. 강우량의 대부분은 여름 몬순에서 나왔는데 강우의 상당 부분이 증발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습기의 양은 일곱 배나 많았다. 소빙하기가 끝나고 갑자기 온난화가 재개되자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목축을 병행하는 농경사회들이 퍼져나갔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최초의 거주지가 등장한 것은 소빙하기가 끝난 기원전 5800년경이었다.”이 당시의 메소포타미아의 삶은 “1천여년 동안 작고 분산된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3800년경 기후가 갑자기 건조해졌다. 실은 1천년전부터 서남아시아와 지중해 동부지역에 있었던 추세였다. 지구표면의 일사량이 줄어들었다. 동시에 서남아시아 몬순의 여름 강우량이 줄었고 경로도 동쪽으로 이동했다. 비는 양도 줄었을 뿐 아니라 시기도 늦게 내리기 시작해 빨리 그쳤다. 여름의 범람은 수학이 끝난 뒤에 발생했고 규모도 훨씬 작아졌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강우량에 상당히 의존해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관개시설에 의존해야 했다. 잉여식량은 없어졋고 오히려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농업이 시작되기 전이나 농업이 막 시작된 무렵이라면 방법이 있었다. 이동하는 것이다. 실제 메소포타미아인들도 그렇게 대응했다. 농업을 버리고 유목민이 되거나 고지대로 옮겨가 농업을 계속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눌러앉아 수렵채집을 농업과 병행했다. 그러나 농업덕분에 늘어난 인구가 너무 많았다. 성공이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해법은 사회조직을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1년 내내 관개가 필요했다. 수로를 통해 귀중한 물을 주변의 사막으로 돌릴 수 있는 위치의 더 큰 도시나 마을로 전략적이고도 현명한 이주를 감행했다. 우르처럼 성장하는 도시는 인간생활의 요충지가 되었다. 관개시설은 엄중하게 감독했다. 새로운 유형의 관리가 신전의 창고에 배치되어 농작물 생산량과 곡식 비축량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때까지 물공급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관심사였으나 도시의 힘이 강력해짐에 따라 사정도 달라졌다. 수확기가 되면 신체건강한 모든 사람이 밭에 나가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농작물을 수확했다. 많은 관리들이 수확된 농작물을 세금으로 거두어 (가뭄에 대비해) 정부 식량창고에 비축했다. 사람들은 점차 국가를 위해 일하고 그 대가로 곡식을 받아 생활하게 되었다.” 기후사정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그러나 사회조직을 바꾼 대응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기원전 3100년경 남부 도시들은 세계최초의 문명권을 이루었다. 수메르 문명은 경쟁이 심한 도시국가들로 구성되었는데 각도시들은 고도 조직된 후배지를 거느리고 이웃한 도시들과 영토를 놓고 각축을 벌였다. 각 도시들은 관개수로를 단단히 방비했다. 물에 대한 권리와 관개된 토지가 평화와 전쟁을 가름하는 세상이었다. 도시가 생존의 수단이 되자 전역에서 도시화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기원전 2800년 무렵에는 수메르인의 80%이상이 도시에 살았다.” 도시화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었고 그것은 성공했다. 그러나 한가지를 해결했지만 동시에 취약성의 수준을 더 높였다. “기원전 2200년경 북쪽 멀리에서 대규모 화산분출이 일어났다. 지중해 동부의 방대한 지역에 그뒤 278년동안 지속될 가뭄이 시작된 시기였다. 아나톨리아 고지에는 비와 눈이 내리지 않아 강은 더 이상 범람하지 않았다. 가뭄은 비옥했던 하부르 북부 평원을 사막으로 바꿔놓았다.” 도시화는 이런 수준의 변화에는 견디지 못했다. “농업경제는 비틀거리다 이내 붕괴했다. 기원전 2000년경 도시에 사는 수메르인의 수는 50%를 밑돌았다.” “생존에 중요한 것은 규모다. 석기 시대의 소규모 무리는 새 사냥터를 찾아 이동하여 그곳에 최대한 머무는 방식으로 가뭄에 대처할 수 있었다. 또 농경촌락은 이웃 촌락에서 비상식량을 얻거나 교역 관계를 통해 알려진 물사정이 나은 지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르 같은 대도시는 혹독한 가뭄의 파급효과로 인해 꼼짝없이 대규모 탈주와 기근을 겪을 수 밖에 없었으며 적응이나 회복이 쉽지 않었던 탓에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소규모 재앙은 거뜬히 방어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으나 대규모 재앙에 대해서는 오히려 취약성이 더 커졌다.” 취약성의 사이클은 판돈이 더 올라가 로마시대에 재현된다. 로마는 야만족과의 투쟁과 함께 성장했다. 첫번째 적은 켈트족이었고 켈트족을 제압하면서 로마는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는 켈트족과 로마의 대결을 기후대의 대항으로 해석한다. 켈트족의 농경은 대륙성 기후대에 적합했다. 대륙성 기후대가 남하할 때 켈트족도 같이 남하했고 로마는 이탈리아로 남하란 그들과 만났다. 그러나 “기원전 300년경 대륙성 기후대와 지중해성 기후대 사이의 추이대가 이동하기 시작해 지금의 부르고뉴까지 북상했다. 그 결과 켈트 지역의 남쪽에 온난건조한 여름과 습한 겨울의 지중해성 기후가 자리를 잡았다. 많은 도시 인구를 위해 밀과 기장 같은 몇가지 작물을 광범위하게 재배하는 로마식 농경은 건조한 남유럽 환경에 매우 적합했다. 추이대가 북상함에 다라 고마의 힘이 급격히 증대했다. ‘로마의 평화’는 북상하는 추이대를 따라가며 꾸준히 켈트족의 땅을 잠식햇다. 기원전 2세기 중반 켈트족의 땅은 로마의 속주가 되엇다. 온난한 기후 조건은 로마 제국의 전성기 내내 지속되었다. 로마의 장점은 3가지, 즉 잘 조직된 군대. 도로와 해로 같은 기반시설, 군대와 도시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효율적인 농업생산력이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모든 속주들은 로마인들을 부양했다. 결국 모든 것은 사회의 주식이 된 곡물을 대량생산하는 능력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와 튼튼한 경제에 어울리지 않게 기후에는 놀랄만큼 취약했다. 문명의 조직도가 낮았더라면 오히려 제국은 기후의 압박을 거뜬히 이겨냈을 것이다. 일반적인 추위와 가뭄주기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규모 엘니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럽의 기후대가 크게 변동하고 그에 따라 기온과 강우량이 달라지자 로마의 지배는 큰 타격을 받았다. 500년에 서유럽의 날씨는 더 추워지고 습해졌으며 갈리아는 곡식의 대량생산이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대륙성 기후대와 지중해성 기후대의 경계는 또다시 북아프리카로 내려갔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잠재적 격변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시대로 성큼 들어섰다. 더구나 그 위험성은 지구를 온난하게 하고 극단적 기후변동의 가능성을 증대하는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에 더욱 커졌다. 만약 그린란드의 빙상이 녹으면서 그 많은 물이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 영거 드리아스기처럼 멕시코 만류가 갑자기 끊긴다면 어떻게 될까? 유럽은 수십년쯤 지나면 북극권 기후가 되지 않을까? 기후는 문명의 형성을 돕지만 자비로운 방식으로 돕지는 않는다. 충적세의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변덕은 인간 사회를 압박하여 적응하거나 사멸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10000년경 영거 드리아스기에 서남아시아에서 농경으로 전환한 경우처럼 성공적인 적응도 있었지만 가뭄으로 멸망한 티와나쿠처럼 실패한 사례도 있었다. 예전의 많은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드물게 일어나는 대규모의 재앙에 취약하며 단기적 가뭄과 이례적인 호우 같은 작고 평범한 압박에 대처하는 능력만 나아졌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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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타나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구의 기온이 얼마나 더워질 것인지, 이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는 어떤지, 그리고 이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등이 주요 이슈다. 과연 인류문명의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지 두려워 하는 이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기후변화는 인간활동과 아무런 관련 없는 자연적 주기일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러한 지구온난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지구온난화는 현재 우리 시대만의 문제일까?" "과거에도 이러한 기후의 변화가 있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등의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기후변화와 인류 문명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이다. 저자는 고고학적 연구방법을 통해서 자연환경, 특히 기후의 변화에 따른 인류문명 성쇠의 상관관계를 고찰하였다. 저자는 인문학자에 속하는 데다, 환경결정론의 시대는 이미 갔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이 조금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환경이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고 기계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환경이 문명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하지만, 반면 그와 반대로 문명이 환경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비판한다. 결국 환경과 문명의 상호작용을 함께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많은 고고학자들은 기후 변동이 인간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것을 그다지 믿지 않는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후 변동이 농경이나 문명 같은 중대한 발전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보는 환경결정론은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금기시하는 발상이었다. 기후가 문명 전체를 송두리째 혁신하거나 전복할 만큼 직접적이고 인과적으로 역사를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처럼 과거의 기후 변동쯤은 무시할 수 있다고 치부하는 것도 역시 옳지 않다. (p.13~14) 원서의 제목은 'The Long Summer'이다. 긴 여름이란 뜻이니, 최근 2세기의 지구온난화를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적 범위는 이보다 더 길다. 최후 빙기의 최성기인 2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만년 전의 '긴 겨울'의 끝을 지나고, 지구의 기후는 점차 더워지는 '긴 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바로 2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후빙기(Holocene)를 의미한다. 약 1만 8천년 전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하였고, 6천년 전부터 현재의 기온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이 전체적인 기후변화 패턴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 여름'은 인류 문명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후빙기로 접어들면서 기후가 따뜻해지는 동시에 소위 '인류문명의 전성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류가 진화한 약 5만년 전 이후부터, 빙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는 과정에 적응한 인류는 거주의 공간적 분포를 확장해 나갔다.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로 거주 범위를 넓혀 나간 인류는 결국 최후빙기에 나타난 '베링기어(Beringia, 유라시아 및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베링 해협이 최후 빙기의 저해수면 시기에 육지로 드러난 것)를 통해서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도달하였고, 결국 전 대륙에 걸쳐 거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후빙기가 오면서 인류 문명은 이전에 맞이하지 못한 번영을 시작하게 된다. 책 제목을 '긴 여름'으로 지은 이유는, 제4기의 시간범위로 볼 때는 지금 기후가 인류가 살아가기에 최적의 시기라는 뜻이고 지구온난화는 그 연장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읽힌다. 여기까지만 보면 앞서 말한 것과는 달리, 환경이 문명발달을 모두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후빙기의 단순화된 기온상승 패턴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번의 짧은 기후적 사변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기후적 사변이 여러 번 나타나는 과정에서 '인류 집단의 규모'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인류집단의 적응 양식에 따라 기후변화의 대처 정도가 달랐다는 말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할 때의 소규모 집단은 기후변화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기후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건조해져 먹을 것이 없어져 버리면, 그 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착생활을 하고 농경을 시작한 뒤 얘기는 달라진다. 정착생활은 인류집단이 생활하는 터전과 밀착이 되어 있다. 그리고 생산력 증대로 인류집단의 규모가 커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기후가 갑자기 변해도 그 생활터전을 쉽게 버리기 힘들게 되고, 결국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인해 문명이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인류집단이 정착을 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이 커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수천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의 특징은 유연성과 소규모였다. 그래서 인간은 어디서나 가뭄과 홍수나 기온의 변화에 쉽게 적응했다. (...) 인간의 취약성은 먹을 것이 풍부한 지역에 일부 집단이 영구적인 촌락을 이루어 정착할 때부터 증대했다. (...) 복잡성이 증가하고 기후 충격에 대처하는 능력을 잃은 탓에 사회는 단기적인 기후 변동에 점점 취약해졌다.(p.98~99) 저자는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파도치는 바다 위의 배'에 비유를 한다. 변화하는 기후의 파도 위에서 정착 문명이라는 작은 배가 적응하면서 항해한다. 배의 규모가 작을 때 파도에 잘 적응하자, 점차 배의 규모가 커진다. 큰 규모의 배는 작은 파도에 강하지만, 점차 파도의 규모가 커져 거대한 파도가 오면 결국 전복된다. (이 부분에서 정말 탁월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후빙기의 여러 문명집단의 정착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서, 기후변화와 문명발달의 상관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영거 드리아스기'에 나타난 해양순환 차단으로, 서남아시아에 가뭄이 나타나고 여러 정착촌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에욱시네 호수로의 해수 유입, 즉 '대홍수'로 인해 수많은 정착촌이 공간적 범위를 내륙으로 확장한다. 번영했던 수메르 문명은 기후의 악화로 인해 쇠퇴하고 또한 적응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의 건조지대 확장은 신성한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키는 데 공헌했다. 로마제국의 번영과 쇠퇴는 각각 기후 최적기와 한랭기에 대응된다. 그리고 마야 문명과 미국 서부 인디언 문명의 쇠퇴 역시 대가뭄, 즉 기후변화와 상관도가 높다. 특히 수렵채집 문명은 기후변화에 대해 비교적 유연하면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정착 및 거대 도시문명을 형성한 경우에는 기후변화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 즉 기후에 대한 취약성의 정도가 문명의 성쇠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지난 2세기의 지구온난화에 대해 언급한다. 저자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환경파괴에 의해 발생하는지, 아니면 자연적인 기후변동의 주기인지에 대한 논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은 부차적인 논쟁일 뿐이라고 한다. 대신, 현대의 인류문명은 유례없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기후변화에 취약할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대 인류문명을 '초대형 유조선'이라고 칭한다(화석연료의 사용과 묘하게 매치되는 별명이다). 초대형 유조선(현대 인류문명)은 앞서 언급한 대로 큰 파도(지구온난화)에 취약하여 침몰할 지도 모른다. 과거의 여러 문명이 붕괴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았을 때, 극도로 번영한 것처럼 보이는 현대 인류문명도 기후변화 시대를 어떻게 이겨낼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문명의 역사 연구를 통해, 당면한 기후변화에 대해 철저한 연구와 대처가 필요하겠다는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물론 한편으로는 "어짜피 거대한 인류문명을 다시 수렵채집 시대로 돌릴 수도 없으니, 그냥 이대로 즐기며 살아도 되지 않나?"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기후변화에 맞선 현대 인류문명 체제를 지속가능하도록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싶다. 가볍게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고고학, 지리학, 역사학 등의 관련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라면 책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과거의 환경 및 문명과의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당면한 지구온난화 문제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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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고고학, 역사학의 가장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저자의 솜씨가 놀랍다. - 뉴 사이언티스트 - 머나먼 과거가 지금 우리의 고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 흥미진진한 이 책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네이처 - 지난 2만 년 간의 기후 대변동의 역사를 펼쳐놓은 놀라운 책. - 이콜로지스트 - 감탄에 이은 감탄. 세계 유수의 과학 전문잡지들이 극찬하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기후와 문명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쓴 브라이언 페이건의 책이다. 브라이언 페이건의 책은 뭐랄까?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그러면서 대중성에 조금 더 치우친) 고고 · 역사책이어서 늘 읽는데 부담도 없고, 재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책은 조금 더 전문성을 강조한 책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기후’라고 하는 테마는 우리 주변에서 책으로 상당히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교보문고 싸이트에서 기후를 검색하니 1,500여 건이 검색된다), 그 중에는 기후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개설서도 물론 있지만 기후 변화와 온난화, 인간사회와 기후와의 관계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 주로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자연지리와의 상관성이 중요함은 재삼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며, 그 중에서 특히 기후와의 상관성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라이언 페이건의 이번 책은 기후와 문명, 더 나아가 기후와 인간사회의 역사가 어떤 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충고성 멘트를 계속 남기고 있다(특히 360~364p에 있는 내용들은 상당히 충고성이 강한 내용들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기나긴 온난화가 인류 문명 발달의 좋은 배경이 되고 있지만, 곧 기후가 변화하면 인류 문명은 이에 잘 대처하지 못 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인류 문명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자그마한 나룻배가 아니라 거대한 유조선이기 때문에 거친 풍랑에 휩쓸리면 오히려 더 쉽게 난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이 비유 참 괜찮은 것 같다). 그래서 지난 인류 역사에서도 거대한 유조선처럼 몸집을 불린 문명들은 모두 그 한계점을 넘지 못 하고 멸망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또한 조금 더 나아가 현재 인류 문명 역시 지난 문명들처럼 될 것인지, 아닌지 혹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는 뭐 그런 바람까지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재밌는 것 하나는 지구 온난화, 혹은 지금의 이상 기후가 인류 문명이 뱉어내는 나쁜 것들(환경오염과 관련된)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식의 내용이었다(물론 상관은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 말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환경오염과 관련된 가벼운 토론이 있었다. 인간의 환경오염이 지금의 이상기후, 기상이변 등과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뭐 한쪽은 인간의 환경오염이 지금의 기상이변을 야기했다, 다른 한쪽은 그것과 상관없이 지금까지의 기후 변동주기에 맞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뭐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을 간략하게 적자면,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이 분명히 지금의 지구를 병들게 하는데 일조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의 엄청난 자정능력을 살펴봤을 때(얼마 전 히스토리채널에서 방영한 ‘인류 멸망, 그 후’라는 방송을 봤는데 지금의 인류가 멸망하고 1만년만 지나면 인류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질 정도란다), 오히려 지금의 지구온난화라든가, 라니뇨 · 엘니뇨 등의 기상이변은 늘 그래왔듯이 지구의 기후 변동주기와 맞춰 벌어지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프레드 싱거 · 데니스 에이버리가 쓴『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일본 뉴턴프레스의『지구 온난화』, 로이 W. 스펜서의『기후 커넥션』등을 보면 더 자세한 지식들을 알 수 있는데 뭐 지금 이 책과는 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다(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사족이 너무 길었는데, 사족 몇 개만 더 달고 이 책에 대해 몇 마디 더 적도록 하겠다. ^^ 최근 한국학계(고고학계나 역사학계 모두)에서도 기후나 천체와 관련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고고학계야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변동을 문화전파(특히 농경문화), 유적의 입지 등과 설명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역사학계에서도 암각화에 새겨진 문양 등을 외계충격설이라는 이론과 맞물려 해석하는 일이 얼마 전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로 넘어오는 선사시대에 생업경제가 바뀌고, 주민이 바뀌고, 그에 따라 주거지의 형태나 입지, 사회구조 등이 바뀌는 이유를 지형 및 기후의 변화와 찾으려는 연구자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는 ‘古環境 복원’에 적지 않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실제 발굴을 통해서 그러한 연구 성과들이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지금 모두 개간되어 논으로 사용되는 땅도 그 아래로 5~6m 이상 파 내려가면 구석기시대 이래로 자연스레 형성된 고지형에 맞춰 형성된 취락유적이 존재할 수 있으며(현재 행복도시 대평리에서 그러한 대규모 취락유적들이 속속들이 확인되고 있다. 지금의 땅 밑으로 최대 7m 이상 파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구릉 혹은 강이었는데 지금은 지형이 변화되어 있을 것 같지 않은 유구들이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 이 모두 지리학적인 개념과 이론을 고고학에 도입한 것인데, 그 결과는 충분히 만족할 만 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필자 역시 최근 기후 혹은 고지형에 대해 이전보다 관심이 많이 늘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래서 필자의 서평을 읽은 분들 중 몇몇은 이 책을 읽고 필자처럼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하는 강제 아닌 강제적인 바람도 든다. 그럼 이제 정말 본론으로 넘어가서 지루한 사족을 마무리 짓도록 하자. 책 첫머리를 보면 ‘옮긴이의 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힘’ 정말? 기후가 정말 그렇단 말인가? 옮긴이는 그렇게 쇼킹한 얘기를 하나 한다. 지금은 바다인 ‘흑해’는 당시에 ‘에욱시네’라는 이름의 호수였단다. 이 에욱시네는 원래 빙하가 물러난 자리에 생겨난 호수인데 전 지구적 온난화에 따라 빙하가 멀리 북쪽으로 물러가면서, 호수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점점 줄어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호수 바깥족의 물, 지중해의 수위는 온난화에 따라 점차 높아지게 되었고 결국 지중해의 수위보다 에욱시네 호수의 수위가 150m나 낮아졌을 때 마침내 둑이 터졌다. B.C 5,600년경에 지중해의 물은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저지대로 흘러넘쳐 흑해로 들어갔고, 양자의 수위가 같아질 때까지는 무려 2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 2년간의 인류의 기억이 곧 고대 세계 각지에 퍼진 대홍수 이야기의 모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잉?! 이런 쇼킹한 일이?!’ 뭐 여기에서 그럼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도 그 당시 우연히(!) 발생한 이러한 기상이변이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구의 무시무시한 힘이 인간의 기억인자 속에 엄청난 공포를 안겨줬고, 그것이 종교적으로,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이제 브라이언 페이건이 어떤 말을 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책 첫머리에서 ‘기후에 관한 소중한 기억’이라는 문구로 운을 떼고 있다. 그리고 ‘취약성의 문턱’이라는 내용을 짧게 서술하고 본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취약성의 문턱’이라...앞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는 비유를 언급했는데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저자는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한 급속한 도시화와 문명의 탄생(한때 메소포타미아의 너무 빠른 문명화와 도시화를 두고 외계인의 소행이라고까지 떠들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고)은 기후 덕분이었다. B.C 6,000년경 홍수가 빈번하고 강우량이 많았던 시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수많은 촌락이 생겨났고, 그것들은 곧 수천 명 규모의 주민이 사는 도시로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다. B.C 3,600년경 기후가 변화하면서 변화 양상은 더 가속화되었으며, B.C 3,1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각 도시국가들은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리고 B.C 2,200년경 북쪽지역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이후 300여 년간 기나긴 가뭄이 시작되었다. 비는 내리지 않고 강은 범람하지 않았다. 비옥한 평원은 사막으로 바뀌었으며, 도시 경제는 붕괴되고 유목민의 침입이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를 무너뜨렸다. 도시국가 우르는 붕괴되었고, 도시에 살던 사람은 도시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작은 촌락단위로 살던가, 고지대로 피하던가, 굶어죽던가...). 저자는 얘기한다. 생존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라고 말이다. 우르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혹독한 가뭄의 파급 효과로 인해 꼼짝없이 대규모 탈주와 기근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며, 적응이나 회복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했다고 말이다. 소규모 재앙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커졌지만 그만큼 대규모 재앙에 대해서는 더 취약해졌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취약성의 문턱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르가 작은 무역선이라면 오늘날의 산업문명은 대형 유조선이라고 말이다. 점증하는 자연재해에 대해 문명 역시 취약성이 점증하고 있다고 말이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이런 경고(?)는 그간 많이 있어왔으며 그에 대한 상상도 어느 정도 이뤄졌던 것 같다. ‘2012’라는 재난영화가 얼마 전 개봉해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때 인류 문명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정치체가 멸망하고 수십억의 인구가 사라지는 대신 5개(7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의 방주(우주선같이 생긴)만 남겨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방법을 택했다. 즉, 우르의 붕괴와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방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 밖에 ‘더 로드’, ‘일라이’와 같은 인류 멸망 이후의 상황을 그린 영화를 보면 거대한 정치체(국가)가 사라진 다음, 인류 문명은 소규모 촌락을 중심으로 아옹다옹 권력을 탐하며 유지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양태만 달랐을 뿐, 과거에도 문명이 붕괴될 때마다 이런 현상은 계속 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게 무서운 말 같다는 생각은 안 들게 되었다. 암튼 책을 읽으면서, 혹은 책을 읽기 전이나 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잡생각이라면 잡생각일 수 있겠지만 암튼 그만큼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빙하기의 오케스트라 / B.C 18,000~B.C 13,500년 신대륙 / B.C 15,000~B.C 11,000년 대온난화 시기의 유럽 / B.C 15,000~B.C 11,000년 천년의 가뭄 / B.c 11,000~B.C 10,000년 대홍수 / B.C 10,000~B.C 4,000년 가뭄과 도시 / B.C 6,200~B.C 1,900년 사막의 선물 / B.C 6,000~B.C 3,100년 엘니뇨, 대기와 대양의 춤 / B.C 2,200~B.C 1,200년 켈트족과 로마인 / B.C 1,200~B.C 900 대가뭄 / A.D 1~1,200년 웅장한 잔해 / A.D 1~1,200년 부록 : 1,200년~현대 : 불안한 지구의 여름 빙하기와 간빙기가 거듭되면서, 온난화와 홍수, 가뭄과 온난화가 되풀이되는 지구의 역사를 저자는 약 300여 쪽에 달하는 분량 안에 잘 정리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단 몇 줄에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세부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B.C 16,000년 마지막 빙하기가 지구를 찾아오고, 이후 B.C 11,000년 영거 드리아스기(많이 들어봤을 것이다)가 찾아오기까지 지구는 급속하게 온난화된다. 유럽에 숲이 확산되고, 시베리아 북동부까지 구석기인이 확산된다. 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인류가 거주하게 되고, 프랑스 니오에서 동굴벽화가 확인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이후 영거 드리아스기를 넘어서면 다시 온난화가 재개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농경이 시작되고, B.C 9,000년에는 예리코를 건설하고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다. B.C 6,000년경에 소빙하기(한랭건조)가 잠깐 찾아오지만 이내 지구는 온난 다습화되고,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싹트게 된다(예전에 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문명이 그렇게 빨리 발생했을까? 에 대해 고민하다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를 보고 어느 정도 해소가 됐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층 이해가 쉬워졌다). 여기까지는 뭐 기존에도 이미 알려진 내용이고, 더 새로울 것이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일단,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넘어가고 히타이트와 제국 이집트에 대한 설명, 미케네와 그리스에 대한 설명은 참신했다. 히타이트가 그렇게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음에도 순식간에 붕괴되어 멸망해버릴 수밖에 없던 이유와 파라오의 권위가 점점 위축되고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일대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등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주로 정치적인)의 나열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다른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어 그런 부분들이 읽는 내내 필자를 흥분하게 했다. 이러한 집필 방식은 뒤로 갈수록 필자를 더욱 빠져들게 했는데, 평소 쉽게 접하지 못 했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이야기에서 빛을 발했다. 푸에블로 인디언에 대해서는 소략하게 밖에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마야 · 잉카와 같은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白眉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저자는 과감히 말한다. 마야인들의 근거지는 혹독한 환경으로서 마야 농부들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고. 그 지역은 숲을 개간하면 땅바닥이 드러나 빗물을 받을 수는 있었으나 열대의 강렬한 햇빛을 같이 받았으며, 그렇게 드러난 지표면은 금새 거북등처럼 갈라져 경작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순간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봤던 갈라지고 푸석푸석해서 마른 먼지만 나풀거리던 메마른 경작지가 떠올랐다(어떤 미친 어린 소녀가 예언을 하는 장면). 하지만 마야 농부들은 그러한 기후와 지리를 극복하고 이후 1500년 동안이나 번영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고왕국시대의 이집트, 인더스 강 유역의 하라파보다도 더 오래 말이다. 이러한 마야의 번영을 기후에 대한 설명 없이 일반적인 문명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혹은 군사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마야 문명이 갑자기 몰락한 것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단연코 아니라고 하고 있다. 마야 문명은 결국 취약성의 문턱을 넘어서 그만 붕괴되고 말았다.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가뭄이나 기아를 극복할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아주 먼 과거의 거대 제국의 종말을 이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그런 심정을 다시금 느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느낌은 예전에『총, 균, 쇠』를 읽으면서 한번 느꼈다. 사정이 있어 그에 대한 서평은 아직 못 올렸지만 이 부분은 그만 스킵!).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고고학 이외에도 다양한 인접 학문(천문학, 기후학, 지리학, 역사학, 금석학, 인류학을 비롯한 각종 자연과학적 분석방법)의 인용이다. 브라이언 페이건이 이 모든 연구를 혼자 일궈내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일관된 주제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작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하게 해석을 하면서도 늘 최종 종착점은 하나다. 즉, 지난 수천 년의 인류사는 지구라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간간히(정말 간간히) 제시되는 각종 지도들도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뭐 그러한 시각자료가 별로 없다는 점이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지만, 반대로 딱히 어려운 표나 그래프 따위를 잔뜩 실을 요량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필자의 관심사가 이쪽으로 쏠려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요즘 들어 읽은 책 중에서(그것도 전공서적 혹은 전공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볼만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잘 안 하는 추천도 곁들이면서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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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의 약력이 마음에 든다.
중세시대에도 로마시대에도 기후가 변함에 따라 왕국의 세력이 바뀌어가고 있는걸 알았다. 역사와 기후와는 뗄레야뗼 수 없는 관계라는 것과 또한 지금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기후가 변하고 있다고하지만 저자는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보건대 지난 100년간의 온난화는 이미 지구의 주기적 온난화로 인한 것이지 결코 화석연료의 사용과는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리산을 종주하는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알지못했던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면서도 기후가 가물었고 왕국이 쇠퇴해갔다 다시 기온이 올라가고 왕국이 흥했으며 추이대가 올라갔다는둥 크게 보면 이런 맥락에서만 이 책의 흐름을 잡을 수가 있다.기후학과 과학적 기록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간의 좁은 기억 속에 전하는 기후 변동은 신들이 하는 일로 간주되었던 것이라고 저자는 요약하고 있 다. 서술은 좀 지루한 감도 있지만 방대한 연구성과를 우리의 눈높이로 다시 재구성해 알려주는 노력이 대단 했던 책이라 간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