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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고는 그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한 명 한 명 알고 싶은 마음에 첫번째로 ’박남준시인’ 을 꼽았다. 그의 시집 <그 아저씨의 간이 휴게실 아래> 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시집속에서 놓친 그의 삶의 행간을 들여다보고 싶어 ’산방일기’ 를 읽게 되었다. 모악산 기슭의 음습하고 칙칙한 곳에서 살던 시인을 좀더 나은 곳으로 그의 지인들이 힘을 합쳐 마련한 집이 지리산 악양의 햇볕 잘 들고 하루에도 두번씩이나 빨래가 쪼장쪼장 잘 마루는 곳에 ’심원재’ 라는 곳을 마련하면서 그곳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게 된 시인의일기를 풀어 놓은 것이다. 일기를 책으로 내는 남자, 정말 멋지지 않는가.하지만 시로는 밥을 먹을 수 없어 산문을 낸다고 하면 그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만큼 우리문학에서 시가 차지하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라 슬프기만 하다. 그래도 이 책속에는 시와 함께 수필이 들어 있어 그의 시집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의 詩맛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다. 이미 난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로 그의 시의 맛을 느껴 보았기에 또 한번 반복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시가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는가 하는 행간을 읽는 듯하여 느낌이 새로웠다. 그의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은 그야말로 돈과 세상과는 너무도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정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슴 저 밑바닥의 순수함을 볼 수 있어 너무 따듯하게 읽었다. 방문 위에 새가 집을 짓고 알을 낳아 품고 있어 새의 눈치를 보며 사는 삶이란 어디 감히 도시에서 생각할 수 있기나 한가. 그렇다고 또 새가 화장실 문앞에 새집을 짓고 알을 낳아 놓았다고 하면 뒷일을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자연과 벗하며 혼자서 사는 삶이 아닌 함께 어우러져 누리며 사는 삶이 진정한 삶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욕심을 버려야만 진정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도 넘쳐난다. 나물과 집앞 작은 텃밭에서 거든 푸성귀로 차린 밥상이지만 임금님의 수라상 부럽지 않은 건강식이고 모두가 부러워할 웰빙식이다. 혼자 먹어도 자연과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며 먹는 그의 정갈한 밥상이 너무도 부럽기만 하다. ’혼자서 사나 홀로 살지 않는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거기 어찌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내 안의 생명과 평화, 분주한 도심에서나 외딴 산속에서 더불어 살려는 내 안으로부터의 첫 걸음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이며 완성이다.’ 자연과 공생을 하며 서로 존종해 주는 삶으로 혼자 살고 있으나 홀로 살지 않는 정말 멋진 남자 그,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지요. 김장김치들 맛있게 담그셨나요. 뒤뜰에 김치독 깨끗이 씻어 묻었습니다. 텅 비어 있습니다. 맛있는 김장김치 나눠 먹읍시다. 빈 김장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 자동응답기의 그때그때 녹음해둔 재밌는 맨트로 유명한 시인이며 그 녹음말로 인해 김장독을 꽉 채우고도 김치가 익어가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여유을 가진 남자,혼자 산다고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그의 벗처럼 그의 삶을 살찌우는 것들로 넘쳐나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지리산 자락에 매화가 피었다고 멀리서 매화향을 따라 찾아와 줄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친구들과 함께 매화차 한 잔으로도 배부를 수 있음이 정말 부럽다. 이익을 따지기 보다는 자연을 환경을 생각하고 배부름으로 넘쳐나기 보다는 나누고 더불어 살려는 그의 여유로움은 노래이며 시이며 수필이고 한폭의 동양화와 같은 여백의 미를 가진 삶이다. 정말 그가 동매마을에서 보내는 '꽃편지' 를 받아 읽는 것 같은 여유로움에서 나 또한 마음의 비울 수 있어 좋았다. 자연을 벗하며 사는 그의 삶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드는,좀더 내려 놓고 살아야 함을 느끼게 해주는 산방일기다.산다는 것은 별개 아니다. 좀더 욕심을 내려 놓고 자신을 낮추다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평화롭고 행복을 더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통장에 '0' 을 하나 늘리는 것보다 내 마음의 욕심을 '0' 에 가깝게 비우는 연습을 해본다면 어떨까.그렇게 한다면 멀리 있다고 느끼는 행복이란 희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 되는 것이다.' 루쉰의 말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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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산방 일기》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순례의 길에서 잠시 들렸던 거제도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들었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 파도가 마을을 덮치고 갔는데 물에 잠긴 지역이, 파도에 휩쓸려 뼈대만 남은 집들이 모두 바다를 매립한 곳이었다고 했다.
쓸모없다 여긴 모래사장과 갯벌을 매립하여 하나 둘 집들이 들어소고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아마도 바다가 자신의 몸을 함부로 빼앗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 것이 아니겠냐는 마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생명에 대해,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생명평화탁발순례의 길,
많은 이들을 만났다. 자식들 다 도시로 떠나버려 버림받은 채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아 병으로 누워 있는 꼬부랑 할머니를 만났으며, 죽어라 일만 했으나 빚더미에 올라앉아 일하는 낙이 없다는 늙은 농부를 만났으며,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을 팔아 주식투자를 했으나 모두 날려 버리고 아내마저 집을 나갔다는 젊은이를 만났으며, 외국 유학까지 했으나 산중 고향마을에 내려와 어린 날 꿈꾸었던 목장의 아저씨가 되기 위해 소 두 마리를 키우며 농사일을 배우고 있다는 앳된 청년을 만나기도 했다. 목사를 만났으며 신부를 만났으며 원불교 교무를 만나고 수녀를 만나고 스님들을 만나 함께 길을 걷기도 했다. 눈보라를 만났으며 비바람을 만났으며 님도 몰라본다는 봄볕에 까맣게 얼굴이 그을리기도 했다.
우리의 전통 한옥 중에서 궁궐 같은 집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방으로 들고나는 문의 높이가 낮다. 지붕이 낮으니 문 또한 높이를 그에 맞게 해야 했을 것이며 추운 겨울철 보온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이 낮은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었을까. 물론 이런저런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해 본 것 중에 한 가지, 그것은 겸손과 공경의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손님들에게 있어서는 겸손의 도리를, 주인에게는 공경의 몸가짐을 삶에 배게 하려는 건축의 철학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금강산이며 묘향산, 가야산 등지의 외지고 깊은 곳을 오르며 이곳이야말로 아무도 오르지 않은 곳이라 여겼던 곳마다 어김없이 김홍연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며 화를 발끈 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뒷날 위험천만한 고비에 이르러 낙망을 하다가 깍아지를 듯한 절벽에 새겨진 그의 이름자를 보고 아 그도 여기에 왔다 갔구나 하고 힘을 내어 무사히 험한 길을 헤쳐 나갔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래도 이런 쓰레기들은 아니다.
바로 전날에도 밭에 나가 호미를 잡고 일을 하다 일가붙이 가족들도 없이 고요하게 숨을 거둔 어느 할머니가 있었다. 한낮이 되어도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어 본 마을 이장이 그이의 죽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그이의 집 툇마루에는 검정 고무줄에 묶여 저금통장과 막도장이라고도 하는 싸구려 나무도장이 매달려 있었다. 저금통장에는 돈 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 돈 백만 원을 찾아 마을 사람들이 관을 마련하고 그이의 밭 한쪽에 무덤을 썼다. 초상을 치르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저금통장에는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으니 후일에 누가 있어 찾아와 무덤 위에 소주 한 잔 부어 주겠는가. 찾아올 이 없는 무덤을 쓴다면 얼마나 쓸쓸한 일이랴. 그러니 화장을 해야겠지. 관을 마련하고 화장터를 사용해야하고 또 어찌어찌 알고 찾아온 이들 술 한잔 받아 줘야 하고 한 이백만 원 정도면 되겠지.
건강을 위해서 자연농법이나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밭은 가꾸어 본 적은 없다.
밭을 일구는데 삽을 써서 흙을 갈아엎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삽으로 흙을 뒤엎을 때마다 삽날에 잘린 지렁이가 붉은 피를 흘리며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삽을 쓸 수가 없었다. 호미로 씨앗을 심을 자리를 살짝 파고 파종을 하고는 했다.
배추와 무를 심은 텃밭에 나가 벌레를 잡는다. 배추 잎이나 무잎을 갉아먹는 벌레는 초록색과 갈색과 검은색 벌레가 있는데 식성들이 어찌나 왕성한지 며칠 돌보지 않으면 하얀 줄기만 남겨 놓고 다 먹어치워 버린다.
번데기가 되어 겨울을 나고 봄이면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어 눈을 즐겁게 할 녀석들이지만 어쩌겠는가. 동치미도 담고 김장을 하려면 잡아 주어야지. 돋보기를 쓰고 핀셋을 들고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벌레들을 잡아 채소들 곁에 묻으며 니 몸을 먹고 자란 것이니 니 거름으로 쓰거라. 극락왕생 극락왕생을 중얼거린다.
참 모질기도 하지. 농약을 치지 않는다는 것뿐이디 결국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벌레들과 나눠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저기 안동에 사시는 권정생 선생님께서는 그 비좁고 남루한 집에 사시면서 마당에 풀도 뽑지 않고 집 안에 들어오 쥐도 쫓아내지 않고 같이 사신다는 데 내 꼴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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