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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술은 세월을 뛰어넘어 마시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좋은 글도 그러하다. 쉬이 변색되지 않는 내용을 담은 글은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앞에, 2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스탕달이 와 있다. 입담 좋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쉽게 변해버릴 것만 같은 '사랑'은 그 정수만 농축되어 마치 변치 않는 소금결정처럼 오롯이 빛난다. 2백 년 후의 후손(?)인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농축'의 힘일 터이다.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두 번쯤 잊지 못할 사랑을 한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풋사랑일 수도 있고 성인이 된 후의 열렬한 사랑일 수도 있지만 그 '여러 가지 사랑'들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갖고 있어야 할 구심점을 잃고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스탕달은 이 책에서 그러한 사랑을 모두 네 가지로 구분하고 각각에 대해 자신이 그 동안 생각하고 관찰해왔던 것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이란 무릇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에 닿아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비교할 바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가도 자칫 한 순간에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으면 좋았을 경박한, 한낱 가십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하는데 이 책은 저자의 담담한 펜 끝을 빌려, 그러한 말초적 자극보다는 독자 자신이 해왔던 지난 사랑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갖는 어떤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품성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200년 전의 프랑스 여인들도 내가 지난 달에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니. 그들도 나처럼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서 공상에 빠지기도 하고 난데없이 그 사람 주위의 사물들이 유리눈이 날리는 것마냥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니. 시간과 공간은 달라도, 그들과 내가 공유하는 감정의 흐름은 똑같았다. 사랑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한, 저자가 쌓아왔던 여러 경험에 의한 내공으로 연애고민을 하는 독자들에게는 따로 살짝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바야흐로 목하 짝사랑 중인 나에게는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더 사로잡을 수 있을지 좀 더 명확한 길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시선을 조절하라느니 하는 구체적인 조언이야 200년 전 파리에서 통할 법한 약간 낡은 이야기지만, 그가 말한 '결정 작용'을 조절하는 법이라든가 언제 밀고 언제 당겨야 할 지 (대화를 어떻게 받아주고 또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한 것은, 요즘도 충분히 통할 법 했다. 게다가 남자 입장에서 해주는 조언이라 특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알랭 드 보통이 번개처럼 우리 앞에 출현하기 전에, 이미 옛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스탕달이 있었다. 프랑스인 다운 섬세한 기질로 인류가 벌일 수 있는 사건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늘어놓는 그의 이 담론과 찬탄과 경외가, 꺼칠한 손익계산과 덧붙어 마치 샴쌍둥이같은 묘한 형상을 한 요즈음의 모랫바람같은 사랑에 익숙해진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운 여름이 막 지난 참이다.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높은 하늘 아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그 동안 혼자 바쁘게만 살아온 사람들도 옆에 따뜻하게 손잡을 사람 하나가 은근히 욕심날 법 하다. 외로운 사람들은 이제 옛 사람이 얘기해주는 사랑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보던 사랑의 자극적이고 숨막히는 일면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다. 한 존재에 대한 진정한 매혹이 가져다주는 열락과, 그로 인해 불안정해지는 자신의 삶이 상대방의 그것과 얽히면서 아름다운 인생의 한 장면을 엮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가능성의 시사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이만하면 로맨스에 대해 논한 여러 책 중에서도 당당히 고전으로 꼽힐 만한 책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 사랑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 또 나처럼 짝사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 언젠가 사랑을 할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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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이란 이름이 아니었더라면, 이외수 씨의 추천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계발서만큼이나 많이 쏟아지는 것이 연애론들이 아닌가 말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연애론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들을 반복하거나 비현실적인 관념적 수다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지하게 독서에 몰입할 수도, 현실에 응용해 볼 수도 없는 무가치성의 한계를 드러내고야 만다. 그에 비해 스탕달의 연애론은 깊이가 있되 관념에만 치우치지는 않는다. 이것이 쓰여진 때로부터 한 세기 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시대에 살고 있는, 다분히 까다로운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잘 보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잘 보이려고 꾸미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며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솔직함으로 다가서야 상대도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솔직하게 응대하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에 가식이 들어차면 여자는 마음을 닫아버린다. 더 이상 감동하지도,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는다. (...) 물론 여자들 중에는 '매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신조를 운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 역시 자연의 법칙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결정적인 한 걸음은 최대한 늦추어야 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자제심을 잃으면 안 된다. .
. 남자들은 종종 사랑하는 여인의 존재를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사랑을 알았을 때 나는 이 미묘한 감정에 시달렸다.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뒤늦게야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겁함 때문이었다. 전쟁터의 군인들이 두려움을 잊기 위해 오히려 이를 악물고 포화 속으로 뛰어들 듯, 사랑을 외면하는 것 역시 사랑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욕망의 반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단지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며 떠벌렸던 어리석은 말들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절망에 빠졌다.
이처럼 그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심리, 철학적 통찰과 객관, 주관적 경험의 토대 위에서 짜여져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안타깝게도, 연약하고 의심이 많다. 이런 현상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일수록 더하다. 이런 작용은 무의식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유라면 그저 우리의 삶 속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기만과 배신, 실망과 상처가 그 섬세한 영혼에 여기저기 생채기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탕달은 연애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 말은 여자와 남자,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서 사랑은 청춘이었을 때보다 더 풍부하고 신선한 감정의 샘물을 솟아오르게 한다네. 젊었을 때는 막연하고 광적이면서도 항상 산만한 희망이 있었네. 헌신은 존재하지 않았지. 지속적이고 깊은 욕망도 없었어. 언제나 가볍기만 했던 영혼은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며 어제 사랑했던 것을 오늘은 무시했다네. 사랑의 결정 작용만큼 명상적이고 신비로우며 그 대상 안에서 영원히 하나가 되는 것은 없네. 젊었을 때는 유쾌한 것들만 마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었고, 그것도 단 한순간뿐이었네. 그런데 지금은 사랑하는 대상과 관계가 있는 모든 것, 아주 하찮은 것조차도 깊은 감동을 준다네. 그에 더해, 위에 소개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쓰는 자의 섬세한 감성이 고스란히 잘 담겨 있다. 이것은 읽는 감동과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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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광산에서 꺼낸 소금 결정들로 뒤덮인 나뭇가지에 빗대어, 스탕달은 사랑을 콩깍지라고 말한다. 흥분과 도취 상태라 한다. 환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환상을 강화시키고 지속시킬 수 있는 방편들을 일러준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환상을 현실도피적인 환상, 위험한 환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환상은 사랑의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대상과 세계에서 우리를 지탱시켜주는 강력한 힘이 되어준다. 이 환상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으로 그는 게임과 전쟁을 들고 있다. 사랑은 밀고 당기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밀고 당기기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스러움. 내가 나답고 너는 너다워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연애는 참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사랑은 느낌을 따라가면 돼. 이것저것 재어가면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이런 것을 자연스러움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모든 일에는 배움이 필요한 법이다. 배움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에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싸우고 상처 주고 저주하며 헤어지고 절망하는 과정들 속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다. 부모를 비롯한 타인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배울 수도 있다. 어떤 배움의 길을 택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나는 진정 아끼는 사람들에게 스탕달의 연애론을 권하고 싶다. 현재의 사랑이나 앞으로 다가올 사랑을 위해 사랑의 기술을 익히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대상을 보다 성숙하게 사랑하리라는 각오이자 실천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러움으로 통하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줄 것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사랑할 사람들이여, 무조건 읽어라! 강추(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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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떨림, 그리움, 두려움, 질투, 부끄러움.. 아.. 이런 감정은 무엇일까. 아마도 연애를 할 때 우리는 이런 감정들을 갖게 되리라.
스탕달의 연애론은 마치 사랑의 마취제 같은 책이다. 연애를 이미 경험하고 그 쓰라린 경험과 실패를 맛본 나로서는 이 책을 진작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은 그렇게 연애에 대한 감정이나 이야기들을 사실적인 예제들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혹자는 연애를 무슨 학습을 해야 하느냐고 말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왜 우리가 연애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또 연애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올 가을 나는 다시 사랑하리라. 그리고 연애하리라.
스탕달 고마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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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관련 서적은 정말 서점에 많디 많다. 그런 서적들과 비교하면 정말 이 스탕달의 연애론은 연애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수 있었고 좋은 생각을 들을수 있었다. 예고없이 찾아온다는 사랑에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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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연애나 지금의 연애나 달라진 건 무얼까? 스탕달의 연애론을 읽는 내내 오래전에 출간 된 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재의 사랑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베스트셀러 책과 드라마, 영화 등 변하지 않고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주제.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일까…. 당시의 연애감정이나 지금이나 원론적인것에선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놀라울 뿐이다. 스탕달은 첫사랑을 번개에 맞은 듯 이라고 표현한다. 감정이 헤픈 사람일수록 더 쉽게 찾아온다고 한다.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있는 남자들을 ‘시적인 남자’라고 하고 가벼운 연애를 즐기려는 남자를 ‘산문적인 남자’라고 하며 연애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산문적인 남자는 평상시 부족했던 온기를 얻어 상승 작용을 경험하는 반면, 시적인 남자는 불행히도 극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고 한다. 시적인 남자는 감정을 억제하는데 정신을 쏟느라 남아 있는 유리한 고지를 사수하기 위한 냉정마저 잃어버리기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겪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 여자건 남자건 똑같구나 싶었다. 너무 진지하고 몰입해도 사랑이라는 번개에 맞으면 정신을 못차리나 보다. 열정에 사로잡힌 순진한 남자는 답답한 마음만 부여안고 상처를 입고 입히고 이별의 쓰디쓴 고통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동정심만 바라고 세상살이에 뻔한 산문적인 남자는 성공확률을 계산하는 데 빨라 패배의 고통을 피해가는 방법을 너무 잘 알아 시적인 남자를 비웃고 깍아 내리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존심도 지켜낸다. 열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는 수줍음 많은 사람, 냉랭한 사람, 거짓말쟁이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얼마나 어이없는 고통인가. 불완전한 감정표현, 횡성수설… 등 표현은 이상했지만 나름 공감되었다. 사랑 그 자체만 바라보고 몰입하는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다시 공감한다. 가엾고 불행한 인간! 얼마나 많은 달콤한 생각과 얼마나 간절한 욕구가 그의 생을 마감하게 했는가… 라는 단테의 말처럼 사랑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감수성이 풍부할수록 자연스럽기가 힘들다고 한다. 사랑은 어찌보면 서로의 존재성에 대한 확인작업인 것 같다. 동등한 두 사람이 정열적인 사랑을 주고받은 직후에 사랑이 계속 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다툼이 필수적으로 싸움을 거는 사람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사랑은 잔인하다……..하지만… 여인들이 주는 보물의 가치는 그것을 맛본 사람만이 안다. 사들이면 사들일수록 보물의 가치는 높아진다. 사랑이란 언제나 수고한 만큼의 보답만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니베르네, [음유시인기욤드라 투르]제3권 이 책은 구성이 참 재미있다. 포켓용 작은 '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과 본서인 '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 두가지가 제작되었다. 작은 책은 언제든 사랑의 기로에 봉착했을 때 꺼내보고 참고하라는 건가? 참 재미있다. 깨알같은 글씨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 18살의 십대로 돌아간 듯한 풋풋함도 느껴진다. 그땐 포켓용은 뭐든 좋아할 때니까.... 연애의 교과서 같은 '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 사랑이 진정 뭔지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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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
사랑이라는 단어처럼 광범위하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말도 없을 듯하다. 그러나 남녀사이의 연애에 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 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을 통해서 알수 있다. 사랑이 어떻게 생겨나서 진행되어가는지, 남과 여가 바라보고 느끼는 사랑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너무나 세밀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 남자들은 오직 사랑하는 여자의 행동에만 끌려다니며 애를 태운다. 여자의 마음을 엿보는 데 행동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들의 이런 확신은 행동보다는 행동의 동기를 더 중요시하는 여자들의 특성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먄 사랑을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자의 다정한 행동 몇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행동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여자의 특성과 심리를 잘 간파하고 있는지 읽는 내내 놀라웠다. 특히나 "행동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원한다는 표현에 정말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러나 스탕달 본인은 이 글들을 쓰면서 쓸데없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닌지 걱정을 했다니, 1822년전에 씌어진 글들을 읽으면서 지금을 사는 이로서 감탄에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거저 주어지는 사랑에 대해서는 잔인하고 가혹한 것이 인간들의 본성이다" 라는 말도 가슴에 와닿는 것은 왜 일지...
이 가을 쓸쓸한 가슴을 부여안고 있는 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지난 사랑을 돌아보고, 새로이 다가올 지도 모를 사랑을 위해 이 '스탕달의 연애론'을 통해 기초를 다져 두고 실전에 임할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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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그 가벼움에 놀랐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내용의 가벼움이 아니라 무게의 가벼움을 말하는 것이다. 갱지와 비슷한 질의 종이는 깃털처럼 가벼웠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 손에 닿는 적당하게 까끌까끌한 느낌은 중독성이 강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종종 꺼내어 읽었다. 읽는 동안 느낀 점은 200여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내용이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티비와 라디오를 통해 만났던 가수 신해쳘씨의 별명은 마왕이다. 언제나 독설적인 말들을 내뱉으며 진실에 대해 직선적인 시각으로 비판하기로 유명한 그... 나는 이 책에서 또 한 명의 마왕을 만났다. 어느 시대건 이러한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200여년이라는 오랜 시간 전에도 있었고 그 글을 지금 내가 읽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흥분상태를 유발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스탕달과 함께한 시간은 즐거웠다.
40개가 조금 넘는 글들은 때로는 짧게 때로는 조금 길게 사랑에 대한 그리고 여자와 남자에 대한 글들을 우리에게 속삭여준다. 4가지 유형의 사랑을 살펴보자면 정열적인 사랑, 취미적인 사랑, 육체적인 사랑, 과시적인 사랑 등으로 나뉘는데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것 없이 그냥 다들 각각의 사랑 방식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 해서 무작정 비판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공격적이고 질석적인 하지만 부드럽기도 하고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하는 스탕달의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는 로맨티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와 사랑에 관한 책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조금은 더 유쾌하고 특별한 글을 찾는 다면 [스탕달의 연애론]을 추천해주고 싶다. 마치 친한 오빠에게 연애상담 받는 기분으로 다 읽어 간 책...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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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많이 아는 사람이 이기는 건가 싶다. 이런 것들을 진작에 알았다면. 상대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을...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추천의 글을 쓴 이외수씨는 스탕달의 연애박사로 치켜세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지존이 되라고 말한다.
연애비법 책이라며 서점에 나와있는 책들을 뒤적여 본 나같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단연 최고로 꼽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에는 뜬구름 잡는 가벼움이 없다. 변함없는 사랑의 감정을 통찰하는 진심이 있다.
정말 200년 전의 책이라니. 세련된 문체로 다시 태어난 연애론은 시간의 벽을 넘어 너무나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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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쓰는 스탕달의 연애론 - 스탕달 원저
북카페에서 이 책을 집어든 까닭은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호기심의 출처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작가와 주제의 조합. 나의 얇팍한 지식 속에서 스탕달은 단지 '적과 흑'이라는 고전 소설의 작가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연애'라니.. 책을 읽고 난 뒤에서야 안 것이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스스로 '연애'라는 단어를 가벼운 성질의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편견이 큰 몫을 한 것 같다.
인간이 어딘가에 빠져 감정에 휘둘린다면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나는 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의 문제일 때는 시야가 좁아져 보이지 않던 것도, 제 3자의 시각으로 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각지대까지 보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대부분 새로운 것이 아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일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크다. 자신만이 이런 문제를 겪고 힘들어 한다고 생각하지만, 책 속의 활자에서 자신과 같은 이야기를 찾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안 우리는 안도감을 느끼며 안정을 찾게 된다. 그 안도감은 이런 문제가 자신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알랭 드 보통의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가 생각났다. 물론 두 책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알랭 드 보통의 것은 좀 더 소설적이며 감성적이지만, 스탕달의 것은 보다 이지적이며 논리적인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2백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작품들간에 작가와 독자간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비슷한 모양이다.
나쁘게 말하면 발전이 없는 것인가? 물론 농담이다. 인간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라기 보다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추상적인 탓이 크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상적인 사랑은 이렇다.(사실 나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가 상당히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다.)
사랑의 크기는 물리적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닐테지만, 나는 내 쪽의 크기가 더 크다고 느끼는 순간 고통받는 타입인 것 같다.(이 자리에서 이유까지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감정을 감추기 보다는 그것을 제약없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또한 나의 성향.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이상향은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크기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그래서 내가 고통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오늘따라 왜 이리 손발이 오글거리는 이야기만 했는지. 그것도 이렇게 길게... 아무튼 이 책 덕분에 조금은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었고,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 격정적인 감정의 불도 한 차례 소나기를 맞은 듯 지금은 어느 정도 한 풀 꺽여 조금은 어른의 시각 돌아온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한 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가지고 그냥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것. '기대'는 내 스스로에게만 가지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