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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에 확실한 반론을 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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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내과의사이자 정신과 의사로 정신신체의학을 하는 학자의 책이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이 되는 기본적 덕목을 여러가지로 나누면서 최신 신경과학의 여러 실험 결과들을 중심으로 논증을 하고 있다. 특히 중독의학에서 비약적으로 밝혀진 도파민에 의한 보상기전, 동기부여 기전을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갖고자 하는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라는 인간의 관계욕구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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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내과의사이자 정신과 의사로 정신신체의학을 하는 학자의 책이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이 되는 기본적 덕목을 여러가지로 나누면서 최신 신경과학의 여러 실험 결과들을 중심으로 논증을 하고 있다.

특히 중독의학에서 비약적으로 밝혀진 도파민에 의한 보상기전, 동기부여 기전을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갖고자 하는 욕구,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라는 인간의 관계욕구에 대한 기질적 시스템일 것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그리고 타고난 면도 중요하지만 오직 유전자에 의해 정해진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경험하는 환경적 요인이 메틸기에 영향을 주거나 히스티온 기에 영향을 줘서 유전자 발현이나 억제를 조절할 수 있으므로 오직 '이기적 유전자'라는 관점을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즉 개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 일란성 쌍둥이라도 모든 면이 다를 수 있고, 그리고 다른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 오류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사이언스 픽션'이 어느덧 십년만에 '사이언스'가 되어버린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여러 문구를 비판하고, 또 최근 급격히 번지며 마치 매우 과학적인 것이라도 되는 듯이 얘기되는 '사회생물학적 관점'의 한계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나 또한 이런 부분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편이다. 물론 개미들의 군집의 움직임이 인간사회를 설명할 수 있고, 기러기의 귀소본능, 침팬지의 위계질서가 인간사의 여러부분을 설명하며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체의 진화론, 또 뒷부분에 살아남은 것이 진보한 것이라는 것이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라는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날아가는 기러기중 앞에 서 있는 놈이 지금 느끼는 마음, 중간에 무작정 따라가는 놈이 느끼는 허덕거림, 딴 짓하느라 정신없는 맨 뒤의 기러기의 마음만은 사회생물학적 관찰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그저 인간의 해석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무작정 비판하며 무의식의 존재를 부정하며 비과학적이라 말한다. 그러나, 개미의 행동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눈으로 판단한 해석론일 뿐이다. 정말 그런 의도로 한 행동인지는 개미만이 알 뿐 아닌가? 또 각각의 개체의 마음과 행동선택의 의도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군집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인간군집보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인간'의 개성과 그 사람의 인간됨속의 문제점, 그 사람이 경험하는 갈등과 괴로움이 아닐까? 그걸 이해하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진정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동물들의 이런 움직임과 비슷하니까 그런 거구나..'라는 걸 아는 것은 그런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합리화의 도구만 될 뿐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a 2007.1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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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능적으로 협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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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음에 드는 이론이다. 이제까지 우리 삶의 본능이 우리끼리의 경쟁이라고 생각해 온 내가 딱하게 생각될 지경이다. 다윈의 추종자들이 여전히 투쟁과 경쟁이라고 해도 나는 앞으로 협력이라고 믿으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협력이라는 말, 협력하려는 마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 협력이라니, 이제야 인간다움의 본질을 뚜렷하게 보는 느낌이 든다. 내가 나를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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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음에 드는 이론이다. 이제까지 우리 삶의 본능이 우리끼리의 경쟁이라고 생각해 온 내가 딱하게 생각될 지경이다. 다윈의 추종자들이 여전히 투쟁과 경쟁이라고 해도 나는 앞으로 협력이라고 믿으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협력이라는 말, 협력하려는 마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 협력이라니, 이제야 인간다움의 본질을 뚜렷하게 보는 느낌이 든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내가 남을 어떻게 보는가. 이것은 바로 내 삶의 문제이다. 나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므로, 나는 남을 모르는 체 하거나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와 어떤 관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싸워 이길 것인가, 협력할 것인가, 힘을 합쳐 도울 것인가. 이런 물음을 해결하려면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남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 그런데 읽어 보면 어렵지도 않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 다시 알려 주는 두 권의 인간 본성에 관한 책, 에드워드 O.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살펴보아야 하겠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7.09.27.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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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도킨스 넘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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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에 의해 인간상에 새로운 관심이 도입된 후 격렬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현대과학의 급진전과 함께 이 논쟁의 폭은 전통적인 신학적 관점에서부터 철학적 인간론, 진화론, 분자생물학과 DNA설까지 거의 모든 학문 영역을 망라한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된 이론은 진화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분자생물학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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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에 의해 인간상에 새로운 관심이 도입된 후 격렬한 논쟁이 이어져 왔다. 현대과학의 급진전과 함께 이 논쟁의 폭은 전통적인 신학적 관점에서부터 철학적 인간론, 진화론, 분자생물학과 DNA설까지 거의 모든 학문 영역을 망라한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과학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된 이론은 진화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분자생물학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윌슨과 도킨스의 사회생물학은 수많은 독자들과 지지자들을 얻고 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특권적 존재가 아니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신의 저서 <풀하우스>에서 인상적으로 역설하는 부분이다.) 단지 진화 단계에서 예외적으로 성공을 거둔  운수 좋은 개체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도킨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도킨스가 굴드의 이론을 승계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진화한 것은 이기적 유전자의 특질을 최대한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유전적 자질을 보존하고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 심지어 이타적 유전자로까지 변신한다. 요컨대 자신의 자발적 희생이 종 전체에 이득이 된다면 기꺼이 그런 명령을 내리도록 개체에 명령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 유전자를 전달하는 생명기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라면 이런 이론이 설득력 있게 보인다. 지구 생명의 절반을 차지하는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침팬지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인 생명의 의지와 동기를 지닌 존재는 없어 보인다. 그저 맹목적으로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1.특정 상황에서 인간도 여기에서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인간이 의지적 존재인가 하는 부분은 오랫동안 철학적 주제가 되어 왔지만 오늘날 과학에 그 판정관의 임무를 넘겨준 것 같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는 어떤가? 도킨스의 논의를 생명 일반으로 확대한다면 인간이라고 예외가 아닐 듯하다.


다윈과 도킨스의 주장을 논박하는 필자의 관점은 사실 매우 취약해 보인다. 인간의 본성은 협력 메카니즘에 따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윈의 진화론의 토대가 ‘변이’와 ‘도태’, ‘생존경쟁’이라는 세 가지의 메카니즘에 기반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런 전제를 설득력 있게 비판할 수 있다면 다윈주의적 인간상의 새로운 모습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필자는 책의 모두에서 자신이 옹호하려는 것은 ‘영혼 창조설’이나 ‘지적 설계론’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인간의 조상이 대략 400만 년 전부터 다른 유인원 종들을 제압해 오면서 현생인류의 단계로 갈라져 성공적으로 진화해 온 비결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생명체를 움직이는 동기 부여 체계가 도파민과 오피오이드, 옥시토신이라는 신경물질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행복전달물질’이 왜 생겨나는가에 있는데, 그것이 사회적 결속과 성공적인 인간 관계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컨대 인간은 본성적으로 바람직한 사회적 존재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그런 유전인자가 내재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느냐는 문제다. 여러 연구와 관찰 결과는 그런 인자는 사용과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사례로 인간관계가 실패했을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받는 불안과 공포, 생물학적 스트레스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애정과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존재라면 공격적인 태도는 어떤 구실을 할까” 필자는 인간적 관계의 실패에서 오는 고통이 공격성(폭력성)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뇌는 사회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구별하지 못한다.”(70) 이런 관점에 서면 인간의 공격성은 사회적 성격을 더 많이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 이론은 순환논증에 빠질 위험이 있으나 경청할 만한 가치를 지닌 주장이다. 적어도 인간은 오로지 공격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 공격성의 원인을 성찰함으로써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우어는 다윈주의 모델이 개체보다 종을 우선하는 데서도 문제를 보이고 있으며, 사회생물학으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엄밀한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기적 유전자론은 증명되지 않고 증명할 수 없는 명제로 ‘사이언스 픽션에서 사이언스로 변질’된 사례라는 것이다. 무엇이 사이언스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여지가 많으므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 없지만 적어도 인간이 DNA유전자를 전달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본다. 적어도 투쟁 메커니즘을 따르는 유전자 결정론보다는 협력 메커니즘을 따르는 필자의 주장이 더 따뜻한 이론이라 하겠다.


이 점과 관련하여 놓쳐서는 안 되는 논의가 필자의 ‘유전자와 환경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강조이다. 인간은 소통과 협력을 좋아하는 유전자의 본성을 끊임없이 발전(혹은 적응)시켜 왔다는 것이다.(진화론에서 발전이라는 개념은 매우 위험하다. 마치 모든 개체가 고등동물을 향해 목적론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발전’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적응이라는 개념이 더 나을 듯싶은데 적응이 1세대 자질로 끝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적절치 않아 보인다. ) “유전자는 조직체가 환경에서 얻은 경험들을 일종의 생화학적 서류 형태로 저장한다.”(136) 그러나 이 말은 후생적 자질이 유전하는 것인지 아닌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다.(어떤 것은 유전되고 어떤 것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다. 필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살아가는 동안 유전자 ‘포장’에 기록된 후성학적 흔적들은 자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142) “그와 같은 후성학적 변화는 생식기관의 세포에서 일어나며 몇 세대에 걸쳐 유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143) 이런 논의의 전반을 이해하는 것은 내 역량 밖의 문제다. 유전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혹은 우리는, 적어도 과학적 지식은 개별 사실들이 완벽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의 메시지는 비교적 명료하다. 인간은 다른 개체에 대해 인정, 존중. 배려, 애정, 사랑, 사회적 공감을 주고받는 매우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왔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은 생물학적으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한편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도외시한 채 사회적 관계 혹은 철학적ㆍ종교적 관점에서만 규명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삶은 사회적 협력이라는 생물학적 자질에 근거해 유지되어 왔으며 오늘날 우리는 이런 긍정적인 신호를 통해 새로운 인간상을 구축할 수 있다. 


1.바우어의 논의는 단지 학문적 관점에서만 제기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문명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 등-과 연관되어 깊이 성찰해 볼만한 것이다.

2.물론 그 점에서 이 책의 중심 논의는 샤르댕이나 러브록의 이론과 같은 취약점을 지닐 수 있다.

3.한때 우리 지성계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견해를 덧붙여 읽어 볼 만하다. 인간이 희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는 그들이 침팬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자연적 본성을 뛰어넘어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자신을 이끌어 왔다는 것, 근본적인 가치들, 즉 ‘정직함, 자기 통제, 용기, 생명 존중, 연민, 관용과 같은 것’을 배려해 왔다는 것.


h*******3 2007.10.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