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球形の季節 :: 恩田陸 사연 없는 집은 없다고 하는데, 인맥의 폭이 좁아서인지 운(?)이 없었던건지 실제로 부모 이혼이나 가정 폭력 같은 경험담을 직접 들은 일이 많지 않다. 아무래도 드러내어 고백하기 어려운 소재이니 있어도 없는 척 했을 여지가 더 높았겠지만, 그것을 헤아릴 줄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오로지 주변 또래 중에 나만이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아무리 불만을 늘여놓고 투덜거려도 모두들 사이 좋은 엄마와 근사한 아빠를 두고 있는 것 같았기에 법적 부모 앞에서 자살 시도를 벌인 적도 있는 나로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오는 박탈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어딘가로 도피했다. 아무도 없는 도서실이 되었건 공상 세계가 되었건 매일 매일 나만의 철옹성을 쌓아갔다. 그리고 박탈감에 맞서기 위해 그들을 업신 여겼다. 니들은 진정한 고통 따윈 몰라, 하고. 졸업한 이후 우연히 만난 동창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내 기억보다 훨씬 괴벽을 일삼았다고 했다. 위압적인 선생에게 얻어 맞을 정도로 대들었던 것이나 마대 걸레 자루로 학교 유리창을 박살 내었던 객기는 기억 나지만, 수업 도중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며 뛰쳐나갔던 일이나 급우들 앞에서 앞뒤가 안맞는 말을 했던 일은 그 친구의 입으로 다시 듣고 나서 자신이 경악할 정도였다. 기억이 안났던 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부끄러웠던 일이었어서가 아닐까. 늘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관계에 집착하고 살았지만 그런 종잡을 수 없고 변덕스러운 성격을 같은 10대의 아이들이 감당하기는 분명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도 내 10대 시절의 나를 안쓰러운 마음으로라도 견뎌낼 자신이 없다. 또 하나 괴벽이라면 괴벽이라 할 수 있을 행위는, 당시 학교에서 유행하던 괴담을 전부 실천(?) 하고 다닌 것이었다. 수학 여행에 가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 회중 전등을 턱에 받치고 거울을 들여다 본다든가, 학교마다 있었던 이승복 어린이 동상을 부러 타고 올라가 수시로 어루만지기도 하고, 남녀 얼굴이 혼합되어 있다는 유관순 초상화를 뇌리에 박힐 때까지 틈나는 대로 노려보기도 했다. 컴컴한 밤의 교실에 들어오고 싶었지만 학교문이 잠겨 번번히 실패에 돌아가 일부러 시험 기간에 교과서를 교실에 남겨둔 다음 숙직하던 관리인 아저씨를 졸라 겨우 소원 성취(?)를 한 적도 있었더랬다. 극기 훈련에서 최전방 귀신 역할도 자처했고, 밤늦게 아이들을 화장실을 데려다 주는 도우미가 되기도 했다. 종반에는 스스로 거짓 괴담을 만들어 그것이 유포 되는 것에 쾌감을 느끼기조차 했다. 되돌아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시절이지만, 당시엔 자신이 가진 고통에 비하면 그깟 잡스러운 공포에 져선 안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아이들, 스스무, 시즈카, 유미, 시오미 형제처럼 감당할 수 없는 일로 강을 [뛰어넘은], [그 세계] 로 가버린 아이들의 마음이 왠지 모르게 교감된다. 특히 괴담을 [유포] 하고 직접 [실천] 하는 이야기의 전개에, 과거에 저질렀던 바보같은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 받은 기분이 들어 그 뭉클함이 겸연쩍기조차 하다. 겪은 일에 비해선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겪은 일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그딴 일 정돈 쿨하게 받아칠 줄 알아야 된다고, 그 아이들도 당시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평범한] 아이들이 자신들을 이해 해주려면 이 세계로 건너와야 한다고, 그러니 그 공포에 맞서서 [뛰어 넘어야] 한다고, 언젠가는 누구나 건너야만 하는 과정에 불과하니 어서라도 빨리 와달라고, 와서 내 친구가 되달라고. 스스무처럼 멋지고 근사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를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 매우 좋은 환경과 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던 남편이 곧잘 이야기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겪지 못해서,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분하고 괴로울 때가 있다고. 좀더 전에는 내 처지가 부럽다며, 대단히 행복하지도 대단히 불행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처지가 더 불행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던 글쟁이를 지향하는 지인도 있었더랬다. 확실히 견디기 힘든 것을 겪고 나면 "다른" 것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노리와 히토시는 그 경험을 내심 부러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미노리와 히토시 같은 친구들이 이곳으로 넘어와주길 간절히 바랬지만, "엄마" 가 되고 나니 그 마음에 변덕이 일어나더라. 내 아이는 모쪼록 그곳으로 넘어가지 않길 바라게 되는거다. 그래서 [어른] 인 신겐이 히토시를 말리고, 후쿠다 아줌마가 유미를 데리러 오며, 야츠의 엄마들이 몰래 돌을 씻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언젠가는 넘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넘어갈 필요는 없어, 그 장소에 그대로 있다 해도 굳이 상처 따위 받지 않는다 해도 자신을 [전진시킬]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라는 마음으로. (p316) 이 작품은 온다 리쿠가 94년에 발표한 그의 두번째 작품으로, 데뷔작인 [여섯번째 사요코] 가 그가 앞으로 지향할 글의 성향과 지향점을 표시한 에피타이저적 작품 이었다면 [구형의 계절] 은 이후 쏟아질 다작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작품 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학교 괴담 이라는 소재에서 [여섯번째 사요코] 와 비슷하게 출발 하지만 사회 데뷔를 앞둔, 불안하고 상처 받은 아이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전작보다 훨씬 촘촘한 성장 소설의 틀을 갖추며 이것은 차후 [네버랜드] 에서 완료형이 된다. 또한 도호쿠 지방의 폐쇄적인 시골 마을의 배경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도코노 시리즈] 의 배경과 캐릭터의 원형 역할을 하며, 학원물과 기묘한 판타지의 변주는 [삼월 시리즈] 의 전초를 마련한다. [모두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다] 는 개념은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과 [유지니아] 의 근본적인 원안 이기도 하다. 내용 속에 묘사되는 강에 대한 불안함은 [굽이치는 강가에서] 를 통해 좀더 확대되고, 산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비밀은 [흑과 다의 환상] 의 글귀를 통해 자세히 풀이된다. (※ 국내에 소개된 작품 위주로만 나열 했지만, 미간된 작품들 역시 이 테두리 안에서 대부분 시작된다) 무엇보다도 제목 [구형의 계절] 부터가 그가 내내 천착하는 [振り返す반복되다] [めぐり逢う다시 만나다] 즉, 노스탤지어의 결정적 메타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다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국내에 소개 되어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그만큼 소비 되어지고 있다는 것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어째서 온다가 읽히는가. 단순히 흡입력 강한 이야기를 잘하는 작가라고만 하기엔 여타의 작가들과 대단한 편차를 보일 정도는 아니다. 대체로 잘 읽히는 작가들은 어떠한 공통점이 있나. 개인적인 의견으론, 그가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별다르게 하는 것] 에 가장 큰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잘 읽히는 작가란 공감하기 쉬운 글을 쓰는 작가이며, 공감하기 쉽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일상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리라. 그 일상을 일상스럽지 않게, 특별하게 묘사함으로 읽는 사람의 단조롭고 권태로운 일상을 의미있게 해주는 글이기에 소위 [일상 판타지] 로서 환호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현실을 바로 직시해야 된다는 매몰찬 글들에 기가 질릴수록, 적당히 다독 이면서도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응원 해주는 그의 글이 나로서는 매번 반갑다. 작품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조만간 이 주기가 뜸해지겠구나 하는 초조함이 들 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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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지는 그렇다치고 번역이 엉망진창이라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 번역자의 자질이 매우 의심스럽다. 온다 리쿠의 열혈팬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지 못하고 있다. 내용은 궁금해 죽겠는데, 정말 속상하다. 랜덤 하우스, 반성하시길. 그리고 재발행해주길 바란다. 완전한 실수다. 이 책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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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부터 여름, 가히 온다 리쿠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온 시기였다. 나의 그녀 온다 리쿠가 너무나 과다하게 공개된 탓에, 어느 정도는 왠지 모를 질투(?)심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이건 마치 내가 가장 먼저 조니 뎁을 좋아했는데, 캐리비안의 해적을 본 뒤늦은 관객들이 그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면서 마치 내것을 빼앗겨 버린 그런 느낌하고도 비슷하다). 어쨌든 어떡하겠는가. 이젠 조니 뎁이든 온다 리쿠든 내겐 '필수'가 되어버린 것을. 늦은 8월, 올해 마지막일지 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온다 리쿠 두 작품이 또 나왔다. 기존 온다 리쿠 작품과는 약간은 다른 표지다. 또다른 새로운 느낌이 나올 듯 싶어 별 망설임 없이 구입한다. 불안한 동화, 구형의 계절 무엇부터 먼저 읽을지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요사이 기분이 상당히 불안하고 우울한 탓에 왠지 발랄한 느낌의(물론 온다 리쿠가 그렇게 쓰지 않을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구형의 계절을 먼저 손에 들었다. 별사탕, UFO, 고등학교, 실종.... 어이쿠, 이럴 줄 알았다. 온다 리쿠, 역시 내 뒤통수를 여러번 후려치고, 예상과는 비슷하게 가는 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영미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지만 온다 리쿠의 책이 나오면 언제든 서슴지 않고 구입하는 건 바로 그녀의 이런 점 때문이다. 온다 리쿠의 재능은 청춘물을 쓸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 어느 확실성도 없는 불안한 미래, 그러나 그 어떤 일도 가능한 확실한 청춘. 청춘이 불안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어떤 상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판타지를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청춘까지다. 온다 리쿠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점을 잘 이용한다. 온다 리쿠, 그녀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끊임없이 뻗어가는 내면의 상상력, 불안한 판타지, 온다 리쿠 그녀를 정말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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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球形의 계절.제목을 그대로 풀면 구형球形, 말 그대로 둥그런 모양의 계절이라는 뜻인데, 제목이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공처럼 둥글게 돌아가는 순환하는 계절... 불안과 억제된 욕망을 해소할 통로로 기묘한 소문을 이용하는 마을의 학생들, 그들에겐 한차례 소문이 현실화되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결국은 다시 고요하지만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학창 시절, 입시와 진로에 대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했던 나로서는 그 시절의 가슴답답함이 되살아오는 듯했다.
구형의 계절엔 일본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이세계(異世界)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을 것 같은 기분, 나고 자랐지만 변화라고는 없는 고향 마을에 대한 애증이 마을과 학교를 감돌고... 기사라기 산에 있는 나무에 소원을 녹음한 테이프를 묻어두는 학생들, 이세계를 체험한 마을 사람들…다소 모호하고 난해하지만 구형의 계절만큼 사랑니 같은 청춘의 성장통을 잘 보여준 작품이 또 있을까?
온다 리쿠가 두 번째로 썼다는 이 작품은...온다 리쿠 월드의 원형을 만든 정말 비범한 초기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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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는 내용을 판단할 수 없었다. 구형의 계절? 동그라미의 계절인가? 표지를 보고는 학원물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귀여운 표지.
어렸을 때 이런 소문들이 나돌았다. 홍콩할매부터 4차원에 들어갔다 나온 애들의 이야기. 이 소설을 읽고 그런 어렸을 적을 추억할 수 있었다. 온다 리쿠의 지금 작품 세계가 처음엔 이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가 4개가 나오는게 인상적이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고등학교 4개가 있었다. 공부는 잘하지만 교복치마는 길고 예쁘지 않은 여학교, 예쁘지만 일명 머리가 빈 여학생들이 많은 여학교. 진학률도 높지만 그저그런 남학생들의 학교. 스포츠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남학교.
이 소설에는 특별히 주인공이 없는 듯하다. 여러 학생들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이 없어보이는 이 소설은 쭉 읽히며 나에게 학창시절을 기억나게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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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작《여섯번째 사요코》에 이어 온다 리쿠의 두번째 작품《구형의 계절》을 읽었다. 전작처럼 학교괴담이 등장하는 온다 리쿠식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청춘의 불안과 성장을 잘 그리는 작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국내에서 고3 수험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드물다는 점에서 온다 리쿠가 국내 청소년 문학의 결핍을 많이 채워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파스텔톤 서정성이 아련한 학창시절의 추억과 더불어 생동한다. 이번 작품도 만화로 풀어내도 멋질 것 같다.
'꿈을 탐구하는 지리학자'답게 온다 리쿠는 야츠(谷津)라는 평범한 시골마을을 무대로 삼아 산불처럼 번져나가는 괴담의 정체성을 잘 풀어내고 있다. 책에서 야츠는 보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강줄을 경계로 차안의 공간과 피안의 공간이 나누어지는 신비를 간직한 마을로 등장한다. 여기서 괴담은 불안하고 상처입은 청춘들이 말이 가진 신통력, 즉 언령의 힘을 빌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풀어내는 집단의식의 발현으로 드러난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말에도 힘이 있다는 '언령'이라는 민속신앙이 있다. 그래서 언어의 매혹적인 면과 환상적인 면을 그린 괴담이 이야기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인물은 모두 4명이다. 이들은 지역연의 멤버들인데 지역연은 남고인 제 1고와 나가시 , 여고인 제 2고와 후지가오카 고등학교 이 4개 고등학생들이 야츠 지역을 탐사하는 목적으로 만든 통합 서클이다. 사카이 미노리는 꼼꼼하지 못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우호형 인물이다. 미노리의 소꿉친구 아사누마 히로노리는 주관이 명확한 주도형 인물이다. 세키타니 히토시는 산책을 좋아하는 사교성이 뛰어난 인물이다. 이치노세 유미는 육감이 뛰어나고 신기가 있는 분석형 인물이다. 조연급의 사사하라 미사코는 한가지 질문에 백가지 대답을 늘어놓는 말많은 표현형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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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츠라는 자그만한 시골 동네에 자리잡은 기사라기산 위에는 남고인 제 1고와 나가시 , 여고인 제 2고와 후지가오카 고등학교가 있다. 4개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서로 적대시하고 시기하면서도 좁은 지역이다보니 서클 활동이나 학교 행사 등을 같이 치루기도 한다. 지역연은 이 4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야츠 지역을 탐사, 연구하는 목적으로 만든 통합 서클.. 평화롭고 지루할 정도로 조용했던 야츠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괴담이 퍼지기 시작하자 지역연 학생들은 4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려 소문의 진원지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단순히 소문으로만 치부했던 괴담이 현실화되고 그 다음 괴담이 퍼지면서 야츠의 학생들 사이에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 보면 꼭 이런 애들 한두명씩은 있었다 싶을 정도로 이 시기의 학생들 특징을 귀신같이 잡아내 책 속으로 옮겨 놓은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언뜻 보면 청소년기의 방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반영한 성장 소설 같기도 하고, 사건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미스터리 같기도 하며,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현실과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 장르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성장 소설의 분위기가 더 강한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면, 특히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나랑 가장 비슷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 나는 미노리와 가장 많이 닮았다. 실제로 닮고 싶은 것은 이성적인 히로노리나 냉정하고 차분한 히사코지만 나의 한계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법..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되는 작품은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온다 리쿠의 책을 읽으면서부터 좋아지게 되었다. 오히려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 주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에 더해 다른 보너스를 받은 듯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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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씨의 초기작중에 하나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다른 작품들은 '나 재미있는 얘기가 생겼어. 한 번 들어볼래?'라는 느낌인데 반해 '내가 이런것을 고민해봤는데 이걸 소설로 한 번 표현해 보면 이렇게 쓸 것 같아'라는 느낌이다.
메세지는 사실 초반에 나온다. 주인공인(사실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여러명의 중심인물중에 한명이지만,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서 산란하다) 미노리가 시골마을인 야츠에 살면서 외국 영화를 봤을때 나오는 생경한 모습의 외국인들과 낯선 장면인 외국의 모습들이 마치 야츠를 벗어난 곳에 있는 지구의 어떤 지점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꾸며진 공간이고 우리에게 거짓된 화면을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한다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태어남과 동시에 전세계에 생중계 되던 짐캐리 주연의 영화와 비슷한 공상인데(제목이 기억이 안난다 ;ㅅ;) 누구나 한번쯤은 특히 매일 아침 학교가는게 힘들고 지겨운 학생들이라면 더욱 할법한 공상이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큰 축은 어느날 갑자기 소문이 돌기 시작한 '한 여학생이 정해진 날짜에 외계인에게 납치된다' '한 남학생이 정해진 날짜에 운석에 충돌한다' '마을 사람 모두를 어떤 날짜에 데려간다' 라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정확히 모월 모일이라고 되어있지만 딱히 그 날짜가 중요한것은 아니라서 '정해진','어떤'날짜라고 표시)
폐쇄적인 야츠라는 시골마을에서는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고 놀랍게도 첫번째,두번째 소문들은 실행되어 간다. 소문이란 원래 암묵적인 비밀이라는 폐쇄성을 지녓음에도 다수에게 순식간에 전파되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인간 본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습성이 아닐까? 주인공들은 소문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결국 소문이란게 그렇듯이 진원지는 결국 찾지 못한다.
학생들의 연예담인것 같다가도 성장소설의 느낌을 주는것 같다가도 야츠라는 마을에는 육감이 뛰어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특이한 세계관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독자인 우리는 읽다 보면 이런 황당한 설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읽힌다. 빠져드는 매력의 글솜씨란 이런게 아닌가! 마을에서 행방불명 된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육감이 뛰어난 사람들은 이 공간을 자유로이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실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험심과 비슷한 자극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곳에 파묻히다 보면 가족과 친구들과 현실 생활을 잊어버리거나 되돌아 가지 못 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온다 리쿠 씨는 소설에서 위와 같은 공간을 '꿈꾸고 있는 야츠'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저자 본인의 자전적인 경험도 있지도 않을까 싶은데 최종적으로 책에 들어있는 메세지는
'위험한 일탈하지 말지어다'
라고 생각된다. 꿈꾸는 공간에 다가서는게 두근두근 거리고 지겨운 일상과 다른 신나는 느낌을 줄수는 있겠으나 위험한 공간이다. 시계와 창문과 청각을 마비시키는 음악이 나오는 백화점에서 이성을 잃고 소비의 환상에 빠져들때, 런너스 하이를 넘어서서 뇌에서 분출하는 몰핀에 취해서 관절이 너덜너덜해지도록 뛸때, 언젠가 잭팟을 터뜨릴수 있다는 적은 확률에 지갑을 맡길때 와 같은 꿈꾸는 공간에 다가서는것을 염려하는 리쿠씨의 메세지라고 해석하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엔딩에 꿈꾸는 공간에서 현실로 돌아오게끔 해주는 소원을 비는 돌을 가까이 두고 혹시 딸이 가버릴까 염려하며 돌을 씻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의 안전을 염려하는 모성 그 자체가 아닐지.
덧)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명의 학생들을 책 서두에 묘사해두긴 했으나 그 외에 문어발 식으로 계속 튀어나오는 무게감 있는 등장인물들로 인해서 인물 파악하는 것도 힘든데다 일본식 이름은 외우기도 쉽지 않아서 꽤나 자주 앞페이지를 넘겨보게 되었다.. ;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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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작은 마을, 그곳에 갑자기 괴 소문이 퍼진다. 4개의 고등학교 연합동아리에서 그 소문의 출처를 밝히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등학생 시절에 한번쯤 이상한 주술을 모여서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분신사바같은 것도 있었고, 반지점도 있었고, 남학생들은 여학생의 방석 훔치기도 했었다. 대학에 갈 수 있다더라, 남자친구가 생긴다더라, 뭐 이런 그 당시 가장 흔하게 하던 고민들이 그런 이상한 것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좀 더 독특하게 이곳에서는 오랜 세월 사라진 사람들이 있고 마치 차원이 다른 세계로 뛰어 넘어가는 것 같은 환타지를 부여하고 있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 고민,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간직한 것들을 지방색으로 꾸미고 고등학생들 사이에 있을 법한 설렘으로 포장을 했다는 것만 다를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다.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지금과 같은 답답하게 사육당하는 것 같은 학교생활의 끔찍함, 같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데서 오는 지겨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데서 오는 망설임 등등 이 나이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은 그렇게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고 독자인 우리도 어떤 결말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름이라 그렇다고 작가는 자꾸만 말을 하고 있다. 작가에게 여름은 독특한 소재임에 분명하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신기루를 보듯 작가의 여름은 그런 형태가 아닌가 싶다. 또한 여름은 젊음이다. 하지만 작가가 등장시키는 주인공들은 아직 봄인데 여름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너무 이른, 잘 알지 못하는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서둘러 진지하게 하게 만들고 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와 가을을 맞이한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아, 내 고등학교 시절도 이랬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건 너무 깊게 들어가는 거 아냐? 하는 반발심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균형의 문제다. 구형의 계절에 균형을 이야기하니 좀 그런데 구형에도 균형은 있어야 하는 거니까. 나는 항상 가장 진지한 시절은 중, 고등학교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진지함은 그 당시에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그 또래의 진지함이지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경험한 사람의 진지함은 아니다. 다 살아 보지도 못한 인생을, 인간사를 그 나이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끼어들고 있다. 뛰어넘고, 진화하고, 인간이란 왜 태어났을까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의 반복은 돌림노래를 듣는 느낌을, 회전목마를 타고 아까 본 풍경을 또 보게 만드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동화되었다가 다시 튕겨져 나가는 것이다. 이 작품이 좀 더 다듬어지고 작품 속 미노리의 순수한 행복은 <굽이치는 강가에서>에서의 마리코의 모습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순수함과 어른스러움, 영리함과 신비스러움이라는 구형(球形)을 만들어 끊임없이 그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온다 리쿠의 패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조화가 때론 어울릴 때도 있고 때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역시 아름다운 구형을 만들어내기가, 그것을 아름답게 보기가 만만찮은 일이 아닌가 여겨진다. 언젠가 모두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라고 말하는 것, 그저 산다는 것만을 행하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면 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온다 리쿠의 아이들의 자란 모습이 그의 다른 작품 <흑과 다의 환상>과 오버랩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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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이 읽고 있는 일본 작가인 온다 리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녀의 작품에 손이 가게 된 것을 보면 이제는 그녀의 책에 익숙해져 가나보다... 일본 도호쿠의 작은 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미스테리하면서도 밝혀지지 않는 사건들, 정신없이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의 사연들... 불안할 수 밖에 없는 10대의 심리를 미묘한 미스테리 속에 감추어 놓으며 잔잔한 결말까지 인도하는 그녀의 말재주는 정말 흥미로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