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을 보는 눈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출범을 했다. 한겨레신문이 스포츠면에서 프로야구를 톱으로 썼을 때, 경제면에서 주가를 실었을 때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그런 정도는 인정할 수 있었다. 어차피 신문도 상업성을 부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싼 프로라고 나오는 고리채 광고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겨레신문 광고국장에게 진짜 싼 프로인지 확인을 했느냐고 항의를 한 다음부터는 한겨레신문을 보지 않았다. 지금도 싼 프로 선전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마음이 있음에도 한겨레신문이 진보적임은 인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만으로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우리라. 한겨레신문에 대한 이런 마음과는 관계없이 손석춘 논설위원의 책은 마음에 와 닿는다. 오래 전에 읽은 신문읽기의 혁명이라는 책도 내용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은 인터넷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구입하게 되었다. 부자신문 가난한 독자라는 제목은 로버트 기요사키의 책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의도적인 관계가 있다고 한다. 사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어 보면 돈 버는 요령만 나오는데 그래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너무 답이 없다는 것이 실망스럽게 한다. 저자는 조선의 민중들을 이렇게 오도해놓고(전사는 남자의 당연사 등) 버젓이 민족지를 자처한다는 것은 참으로 뻔뻔한 일이다. 친일 언론 행태에서 무엇보다 압권은 조선일보 1940년 1월 1일자 신문이다. 이날 조선일보는 제호를 내리고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놓는 친일 편집을 했다(24쪽)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국어 교과서는 어떻게 기록이 되었나. 아마도 민족언론이라고 기록이 되었겠지. 이 책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행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얼마 전에 그동안 보던 동아일보를 끊었다. 남은 기간이 있어서 벌금까지 내고 말이다. 이유는 김성수 관련도 작용했지만 특히 이문열이 동아일보에 연재를 한다고 해서이다. 얼마 전에 동아일보에 이문열 부인이 하는 일이 1면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이제 동아일보를 그만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조선과 동아를 보지 않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이들 신문들은 해방 후에도 미군정의 후원아래 민족 정기를 제대로 세우려는 것을 반대했고, 박정희 정권을 지지했으며,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그 지지도가 더욱 심했다. 학살당하는 광주시민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오히려 미국에 '누를 끼쳐 착잡하다'는 심경을 아무 부끄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44쪽 조선일보 사설과 관련). 언론인은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야(296쪽)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인들이 무책임해서는 안된다. 역사적인 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도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신의 구미대로 쓰는 언론도 있다. 더욱 심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기사를 사실확인도 하지 않고 마구 써댄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독자의 알권리를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인권이 어떤 경우에는 독자의 알권리보다 중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 독자의 알권리에 해당하지 않아도 제멋대로 쓰는 언론이 너무나 많다. 언론을 제대로 안 다음에 언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어떻게 신문들이 부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내가 알기로 조선일보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 지난 1987년에 매출 1위의 신문으로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조선일보가 이제 너무 나라를 시끄럽게 한다. 안보상업주의는 특히 문제가 많다. 이러한 부자신문에 대해서 가난한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번 의문을 던져 보아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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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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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읽기 혁명』, 『신문읽기의 혁명』, 『언론개혁의 무기』 등 다수의 저작.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 한겨레신문 논설 위원으로 있으면서 사회 전반에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허위의식과 냉전논리에 예리한 칼날을 가하는 저자의 관심은 단연 ‘언론 개혁’이다. 부드러운 얼굴과 감성적이기까지 한 언변을 지니고 있는 저자에게 어떻게 그런 날카로운 비판이 내장되어 있을까 의아스러울 만큼 저자의 필력은 예사롭지 않다. 얼마 전엔 소설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소설-『아름다운 집』이란 제목의 책- 또한 냉전 논리 혁파에 복무하고 있음은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일이어서 굳이 외도라고 볼 수 없지만 기자와 비평가로서의 일반 인식에서 다소 벗어난 듯한 그의 글쓰기 방식이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만은 사실이다. 그만큼 저자는 형식에 메이지 않는다. 어떤 장르를 취하든 처음 관심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저자에게서 올곧은 외길 인생을 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부자신문 가난한 독자』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가난한 독자는 비단 돈 없는 독자를 뜻하지 않는다. 부자신문이 부와 권력과 명예를 모두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은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에서 두루 가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난한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모순된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가 가난하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제기하는 문제이다.’ 가난을 물질의 부족에서 찾지 않고 모순된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의 부족에서 발견해 내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부자신문에 대항하는 주체로서의 바람직한 독자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 모순된 현실을 바꾸는 주체로서의 독자의 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을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고 강요하는 것들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화해와 협력의 시대에서조차 냉전 논리를 유포하고 그것을 생래적인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일을 50여 년 동안 계속해 온 저들의 저의를 아는 일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6. 15 남북공동선언을 왜곡하고 통일 논의에 딴지를 거는 작태를 보고 있자면 그들이 과연 통일을 원하기나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평화 공존의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오직 권력 유지와 강화에 혈안이 되어 공기로서의 신문지면을 자사 이익 홍보를 위해 사용하고 기자들에게 줄서기를 강제하는 등 언론을 사유화한 부자신문들의 행태를 저자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집요하리만큼 국수주의와 친미사대주의를 애국으로 포장하고 그것 이외의 어떤 논의도 용공으로 몰아 세우는 일을 공공연히 벌이는 그들의 위선과 허위의 ‘어제’와 ‘오늘’을 「1부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 2부 부자신문과 언론의 자유」, 「3부 부자신문의 독선과 횡포」, 「4부 가난한 독자를 위하여」 등 4개의 장으로 나누어 그 각각의 장에서 밝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기자 출신 평론가의 철저한 사실 확인과 언론 문제 전문가로서의 냉철한 분석에 있다. 저자는 일제 시대엔 징병을 황국신민의 영웅적인 서사로 치켜세우면서 이 땅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미군정에선 친일파를 옹호하는 한편으로 군정의 매파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이승만 독재와 군사정권의 시절엔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충실히 하면서 절대 권력에 자신의 존부를 의탁하고 그 권력의 부침에 따라 얼굴을 바꾸던 그들이 이제 와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언론독립을 주장하는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되묻고 있다. 세무조사 정국에서 드러난 행태에서 저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론 자유가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확연히 드러난 - 언론사와 사주의 명백한 탈세에도 불구하고 세무 조사를 언론 탄압이라 주장하는 후안무치와 언론 자유를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태도 - 마당에 그들이 누리는 7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은 조속 회수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70%의 시장 점유율이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건전한 여론 형성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당연히 긍정되어야 할 일이다.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데서 오는 반대급부는 마땅히 누려야 한다. 하지만 그 점유율이 과거 정권의 적극적인 비호 아래 현상 뒤에 감춰진 본질의 자의적 해석과 호도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언론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책임 있는 언론의 바람직한 자세다. 저자 또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해방정국의 회오리가 몰아치면서 사회전반에 친일 잔재를 청산하자는 목소리가 드높은 상태에서 언제 반민족 행위자로 처단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그들이, 친일파를 대거 중용하여 정치 행정을 유지하던 미군정의 홍보 매체의 필요성에 적극 가담하면서 생존을 확보한 후 군사정권의 태생적 한계인 정통성의 문제를 가려주는 방패막이를 자청하고 보장받은 것이 신문시장의 독과점이었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D 신문이 자랑삼아 얘기하고 일반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던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도 처음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신문은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였으며 오히려 D 신문은 그 기사를 낸 기자(이길용)를 황국신민의 자격이 없다고 쫓아 낸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얼마 전 또 다른 부자신문은 독립운동을 했다던 창간사주의 행적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 있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가 바르게 알고 있다고 믿었던, 또는 그렇게 배워왔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공하고 있는 이 책은 언론 본래의 의무를 내버리고 국민과 독자 위에 군림하는 부자신문을 청산할 주체가 독자임을 끝없이 상기시킨다. 그들의 권력 유지 50년 노하우를 하루아침에 깨뜨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드러나지 않도록 교묘하게 감춘 모순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 또한 요원한 일은 아니다. 거짓이 진실인 양 행세할 수 없는 그 때 언론 자유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고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민족에 복무하는 언론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 믿음이 우리를 강고한 현실 인식과 행동으로 나아가게 할 것임에 틀림없다. |
| 나는 언론에 아주 관심이 많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언론에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난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하더라도 별로 하고싶은 일도 없는 그저그런 놈이었다. 다만 신문읽는 것을 좋아하고 시사문제에 좀 관심이 있었다 뿐이다. 수능이 끝나고 서점에 나가 보았는데 눈에 번쩍 띄이는 책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부자신문 가난한 독자" 정말 충격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그때까지 가지고 있는 언론에 대한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기자는 멋있는 직업이고 신문은 사실만을 말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를 이겨낸 민족신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한장 한장 읽고 그런 믿음은 산산히 깨어졌다. 신문은 절대로 사실만을 말할 수 없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절대 민족신문이 아니며 기자는 절대 폼만 잡는 그런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나에게 우리 나라의 언론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게 하기 충분했지만 언론에 대한 나의 관심에 불을 붙였다. 책 속에 나와있는 편집권문제 라든지 신문사의 소유구조 등 등 을 알아가면서 이길이 내가 갈 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후로 난 지금까지 언론인의 길을 지향하게 되었고 여러 언론 관련 책들을 읽게 되었다. 또 이 책을 쓴 손석춘기자의 애독자가 되었다. 내가 만약 나중에 정말 언론인이 될 수 있다면 이 책은 나의 인생을 바꾼 책이 될 것이다. 이책이 완벽한 책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여러면애서 비판의 여지가 있는 책일수도 있다 . 하지만 난 이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대학에 첫 발을 내딘 신입생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이 우리 나라 권력을 제4부인 언론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
| 저자 '손석춘'은 아마도 너무도 하고픈 말이 많아, 그리고 잘못된 우리들의 '쇠뇌 가치관'을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이 책의 시작(1부)은 우리 민족 모두가 식민지배의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던 일제시대에 '천황폐하 만만세'를 열창하던 친일파 언론사주들의 과거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패국이 된 일본이 떠난 자리에, 우리 민족의 분단을 박수치며 환영하던 미국과 그의 '친미파' 일당들을 등에 업고 다시 살아난 재벌언론사주의 모습을 고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최근까지도 자신들의 주장을 극히 타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저지르는 못된 '옛 버릇'을 보여준다.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남은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세우고, 자신이 주장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수행하는 거룩한 임무라고 떠들어대는 재벌언론사주들... 그들은 우리에게 당연히 신문에서 하는 말이니 옳은 것이라 믿게 만들고 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과연 누가 그토록 매질을 해 대는,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하는 '집단이기주의'를 주장하고 있는지 너무도 당연하지 않는가? 그들의 이러한 행태는 저자 자신의 칼럼들을 발췌하여 구성한 '3부 부자신문의 독선과 횡포'에서 더욱 잘 보여준다. 민족의 미래며 언론자유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밥통을 쥐고 흔드는 언론사주의 '든든한' 대변인 역할을 자청하고 나서는 언론사내 일부('일부'라는 말로 위안 받고 싶다) 편집인, 기자, 주필 등의 뜬 구름같은 글발들을 통해 진정한 '언론자유'을 위한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4부 가난한 독자를 위하여'에서 아마도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냉전논리"로 자신을 보호하고, "국가보안법 철폐"주장은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행위로, 그리고 "좌우대립"의 엄격한 선을 그어 놓고 내 쪽에 서지 않으면 모조리 "반민족" 행위로 치부하는 오늘날의 "언론권력"...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오며 경험한 그 어떤 권력 형태보다 깊고 치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이 순간, "과거가 진실도 모른 채 묻혀진다면 그 과거는 언젠가 다시 현실로 우리를 엄습하기 마련이다(p.254)"라는 저자의 말과 "가난한 독자는 비단 돈 없는 독자를 뜻하지 않는다.....(중략) 가난한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모순된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가 가난하다는 사실이다(p.11)" 문구가 너무도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