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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서사 대신 점묘법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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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서 진정으로 창조적은 학문은 자서전적이라고 생각한다. 43쪽   시카고대 엘리아데 석좌교수인 웬디 도니거가 한 말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랑 다르다고? 학문은 객관적이어야 하지 않냐고? 언제적 얘기하고 계시나이까. 포스토모더니즘이 학문을 회치기 전에도 막스 베버나 칼 만하임과 같은 학자가 고민한 문제다. 막스 베버는 가치 연관이라는 모호한 말로 학문의 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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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서 진정으로 창조적은 학문은 자서전적이라고 생각한다. 43

 

시카고대 엘리아데 석좌교수인 웬디 도니거가 한 말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랑 다르다고? 학문은 객관적이어야 하지 않냐고? 언제적 얘기하고 계시나이까. 포스토모더니즘이 학문을 회치기 전에도 막스 베버나 칼 만하임과 같은 학자가 고민한 문제다. 막스 베버는 가치 연관이라는 모호한 말로 학문의 객관성을 지키고자 했고, 칼 만하임은 자유부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지껄였다. 그들이 성공했냐고. 칸트가 흄을 극복하지 못했듯, 이들도 마찬가지다. 파울 파이어아벤트를 기억하라. 그가 내세운 아나키즘적 과학철학은 객관성이란 미신에 불과하다고 못박는다.

 

그.래.서.

 

학문은 자서전적이어야 한다. 예전에 한때 인문학이 인문과학을 표방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간혹 서점에 가면 '인문과학'이란 코너를 볼 수 있다. 인문과학이 인문학으로 다시 리턴한 이유? 과학조차 아나키즘이 지배하는 판에, 인문학이 객관성 확보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객관은 구조를 은폐한다. 이 때문에 대세는 정체성으로 귀결되엇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성장 공간을 활용하여 오리엔탈리즘으로 대박 쳤고.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 가야트리 스피박은 유색인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서발턴 연구에 혁혁한 공헌을 했다. 이들은 외친다. 난 이러이러한 배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당신이 객관적이라 자랑하는 학문이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밝혀 주겠다고.

 

1. 학자들이여, 비판하지 말고 이해하라

 

웬디 도니거에게 기대한 것도 이러한 삐딱함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그다지 공격적이진 않다. 오히려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는 학계 분위기를 질타한다. 그녀가 말하길, 계몽주의 이후 지식인은 비판해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생겼다. 종교 비판, 형이상학 비판, 정치 비판, 경제 비판. 그 중에서 종교 비판은 서구 근대가 가져온 대표적인 지식 상품이다. 자, 이 시점에서 그녀의 정체성에 주목하자. 웬디 도니거는 종교학자다. 종교학자는 대개 종교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종교를 미개한 것으로 치부하는 모더니티를 경멸한다. 며루치 엘리아데의 『성과 속』.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이 두 권을 읽어 보라고, 멍청이 계몽주의자들아.

 

 

2. 타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종교학자로서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이해다. 웬디 도니거는 '신화'가 타자를 이해하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주제는 책 제목 그대로다. 다른 사람의 신화를 이해하자. 말이 쉽지, 내가 너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번을 건졌잖소 아닌가. 어떻게 이해할래?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우리 열심히 해 보자고. 끝.

 

엥? 400쪽이 넘는 책인데 메시지가 이렇게 허무할 수 있냐고. 사실이다. 내 독해력에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 묶음으로 이론의 측면에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인도 종교 전문가인 그녀는 이 책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낸다. 힌두 신화 뿐만 아니라 불교 신화까지. 여러 신화는 한 가지 주제로 수렴한다. 바로 '이해'.

 

3. 신화가 뭔데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에선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 신화라는 개념을 조금 분석하고 넘어가겠다. 공교육 과정에서 신화, 전설, 민담이라고 나눠서 배우는데 종교학에서는 신화가 지칭하는 의미가 훨씬 넓다. 신화는 플라톤 때 이미 부정적인 의미를 지녔는데, 신화는 곧 구라. 이 도식은 계몽주의 이후 더 심해졌다. 그러다 신화라는 개념을 혁신적으로 사용한 학자가 있으니 바로 롤랑 바르뜨. 종교학자는 아니나, 바르뜨는 신화를 이데올로기와 비슷하게 사용하며 현대의 광고, 레스링, 여가 등 모든 현상을 신화로 파악했다.

 

바르뜨와 마찬가지로 도니거 역시 신화의 외연을 매우 넓게 잡는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 소설이나 헐리우드 영화까지 모두 신화로 엮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신화를 이해하자는 의미는 그리스로마신화, 마하바라타, 단군신화 등의 텍스트를 읽자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통째로 이해하자는 뜻이다. 용어만 달랐지 니니안 스마트와 웬디 도니거가 지향하는 바가 동일한 느낌이다. 니니안 스마트 역시 종교 대신 세계관(worldview)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종교학자의 과제가 타자의 이해라고 강조했다.

 

도니거가 사용하는 신화의 의미를 알았다면 성경을 하나의 신화로 파악하는 그녀의 시선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근본주의 기독교인은 예수의 일대기를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화 중 하나로 대하는 시선에 당혹스럽겠지만, 종교학에서는 기본 상식이다.

 

4. 그녀가 주장하는 점묘법

 

여타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종교학 역시 위기 담론에 홍역을 치렀다. 리오타르가 '거대서사의 종말'을 얘기하며 헤겔과 마르크스를 죽였듯, 브루스 링컨을 위시하여 여러 종교학자가 엘리아데 죽이기에 나섰다. 성스러움이란 어디 있냐고. 성스러움이란 관념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성스러움은 엘리아데 이전에도 종교학에서 중요한 개념이었다. 루돌프 옷토가 성스러움의 의미를 거의 소설에 가까울 만큼 짜잘하게 묘사했고, 에밀 뒤르켐은 종교를 성스러움을 공유하는 공유하는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아데가 성스러움과 동일시되는 이유는? 성과 속의 구분을 종교 현상학에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푸코와 데리다가 유행하며 퍼진 해체는 종교학까지 이어진다. 성스러움을 강조한 엘리아데를 학자들은 이데아를 주장한 플라톤, 물자체를 말한 칸트 만큼이나 허황됐다고 까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이후에 더이상 거대 이론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웬디 도니거는 '점묘법'을 말한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다. 모든 종교를 꿰뚫은 방법론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개개인의 학자가 열심히 개별 종교 전통을 연구해 가면, 미술에서 점묘법처럼 하나의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이러한 그녀의 학문적 입장을 이해한다면 이 책은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텐데.

 

쓸데 없는 문장 하나 더 보태자면, 이 책 번역한 류경희 선생님에게 나는 '인도 종교'를 들었다. 호호.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0.12.18. 신고 공감 4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