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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 즉 꿈이라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세기〉41:1~8. 예전의 역사책들을 보자면 꿈이나 신탁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그 꿈이나 신탁의 해석이 불분명하거나 잘못 해석하여 멸망의 마지막 순간에야 그 꿈과 신탁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이집트와 그 근방의 여러 민족들을 구하고 결국 자신을 버린 형제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얻는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수많은 신화와 역사책에 등장하는 꿈과 신탁은 어느 순간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환상과 무의식은 종교적으로는 이단의 냄새를 풍기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장애물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런 무의식의 세계를 현실의 수면 위로 올린 인물이 바로 프로이트였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그동안 무시되어진 무의식의 세계를 공론화시킨 것까지는 훌륭했을지 모르나 그 자신이 빅토리아 시대의 성적, 사회적 억압을 상징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무의식의 세계는 현실적으로 억압된 쓰레기의 세계였다. 억압된 성욕과 다른 욕망들이 무의식의 세계 속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의 세계는 퇴행의 세계였고 극복되어질 세계였다. 결국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이란 무의식의 퇴행적 욕망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불과했던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였고 한 때 열렬한 추종자였지만 결국 그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 이유는 융은 그 무의식의 세계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비하하는 동안 융은 무의식의 세계도 의식의 세계와 같이 긍정과 부정의 욕망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억압하고 있을 때 융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진정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을 했다. 융이 생각한 무의식의 세계는 단순히 현실의 억압된 상황을 숨기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드러내는 세계가 아닌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형(原型)으로서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즉 개인의 무의식의 세계는 각 개인의 경험이나 유년기나 청년기의 억압된 상황을 포함하여 인류의 보편적인 콤플렉스인 탄생과 죽음, 성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제 심리적 치료는 심리학 교과서를 통하여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임상 경험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개인의 심리적 문제는 모두 개별적이다. 어떤 사람의 심리 치료는 일주일에도 가능하지만 다른 경우는 10년이 걸려도 불가능하다. 같은 꿈을 꾼 내향적인 청년과 외향적인 노인의 꿈의 해석은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 우리네 어머니들은 정화수를 떠 놓고 무언가를 빌었는데 그러한 기복신앙이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그리스 로마 신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신적, 정서적 감응은 현 시대에 급격히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라졌는데 인류가 합리성을 획득하면서 신성과 감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대의 종교는 중세나 이전 시대의 종교처럼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 이제 무의식의 세계는 갈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융은 이런 갈 곳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마음에 거의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리고 『무의식의 분석』은 그 해결책과 원리를 설명한 가장 대중적이고도 쉬운 고전인데 이는 내향적이고도 사색적인 융이 죽기 바로 직전에야 완성한 책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결정은 다행스럽게도 신경증을 앓고 있는 많은 현대인들에게는 다행스런 일이기도 했다. 무의식을 단지 개인적으로만 해석한 것도 아니고 원형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닌 통합적인 해석을 통해 신경증의 본질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분석은 8살짜리 소녀의 꿈의 해석인데 그 소녀는 그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앞 둔 상태에서 거의 모든 세계의 죽음에 대한 꿈의 원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소녀의 아버지는 깜짝 놀라 융을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 소녀는 꿈에서 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삶과 죽음의 모티프를 간직한 상징을 꿈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는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서나 발견되는 이야기였는데 불쌍하게도 이 소녀는 1년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 융은 이 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능 같은 무의식을 분석한다. 결국 그런 무의식이 영화나 미술작품 등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는데 이런 무의식의 세계는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항상 우리 주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심리학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임상과 사진설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책은 무의식에 대한 대중적인 해설서이기 때문에 심리학적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이 번역본에 나와 있는 사진과 도판은 꽤 알아보기 힘들다. 이 책의 원본의 상태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좀 더 또렷한 사진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도판은 유명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유명한 도판들은 다른 것을 참조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만 등장하는 도판과 사진들은 잘 알아보기 힘들어서 아쉬웠다. 게다가 이 책의 번역자는 캉팽(캠핀으로 썼음)같은 인물의 이름에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만 했다. 아니마(Anima)나 아니무스(Animus) 같은 심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은 이미 어느 정도 통일되었기 때문에 심리학적 용어에 대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더 좋았을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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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한 개인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영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자신의 기억과 직관에 의해 언제든지 의식하여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자 할 때 전화번호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쉽게 꺼내어 쓸 수 있는 것과 같은 정신 활동이고, 나머지 하나는 스스로 의도하거나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행해지는 정신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는 무의식의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혹 혼동 하는 것 중 하나는 있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분석심리학의 구분점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간단하게 말하면 심리학은 우리 정신세계의 부분 중 의식적인 영역을 연구하는 분야를 말하는 것이고,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은 의식 영역 이외의 부분인 무의식의 영역을 따로 떼어내어 연구하여 심리학의 또 다른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와 칼융은 반증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함과 동시에 무의식이라는 것이 우리의 정신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무의식의 발견을 통해 성숙한 자아를 형성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게 되지만, 이런 무의식을 어떤 방법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그 과정과 관점의 차이를 두고 서로 대립하게 되면서 칼융에 의한 분석심리학이 또다시 새로이 등장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하는 내용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융과 프로이트와의 차이를 조금은 알아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모든 것, 즉 이미지, 소리, 촉감 같은 것의 총체이며 이것은 꿈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억압과 본능의 부정적인 상징으로, 이것이 의식의 사이를 뚫고 나타나게 되는 인간의 여러 가지 정신 병리의 원인이라고 간주하는데 비해 칼융은 이러한 프로이트의 주장과 달리 무의식은 우리가 경험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또한 단지 억압의 측면으로 무의식을 설명한다는 것도 무리가 따르며 그리고 특히 이를 병리학적으로만 국한하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대해 크게 반박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칼융이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정신분석학의 내용에서 좀 더 확대한 우리가 흔히 꾸게 되는 꿈의 내용을 통해 인간 내면의 세계를 과연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함은 물론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데 많은 보탬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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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인 사유의 과정만을 인정하는 데카르트식의 사유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프로이드에 의한 무의식, 꿈 등 을 통해 숨겨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변화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숨겨진 의미도 찾아 낼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발전시킨 역동심리학 이론 및 이 이론을 근거로 하는 치료기법을 일컬어 ‘정신분석학’이라고 한다. 정신분석학은 우리 자신도 시인하기를 거부하는 무의식적인 관심사, 즉 우리가 억압하고 있는 의식적 관심사를 밝혀내려는 심리학적인 연구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고자 한다. 이런 정신분석학의 궁극적 방법의 목적은 무의식 상태를 의식 상태로 전환시키는 의식화 작업에 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의 영향은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고 그 중 융(Carl G. Jung ) 역시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융은 프로이드와의 극복되지 않는 견해차이로 인하여 그와 결별을 고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떠나 자신만의 학문적 입장을 세우게 된다. 융은 이러한 자신의 심리학적 연구를 가리켜 ‘분석심리학’이라 한다.
융의「무의식의 접근」을 중심으로 리뷰를 작성한다.
그는 종교가 교리나 신조에 앞서 본질적으로 경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지시켜 주었고 진정한 종교경험의 의미와 역할 및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성숙을 향한 삶의 길은 외적인 것, 집단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 비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참된 것을 추구하는 길, 즉 자기를 실현하는 것임을 인식시켜 주었다.
“그(융)의 목적은 언제나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을 돕고, 그 결과 자각과 사려 깊은 자기개발에 의해 그들이 충실하고 풍성하며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한느 데 있었다. 그는 이전에 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도 충실하고 풍성하며 행복했던 그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 일찍이 시도한 바 없는 많은 대중에게 자신의 사상을 전하는 일에 남은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같은 달에 그 학문과 인생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 책은 그가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 서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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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나의 과제 칼 융의 『무의식의 분석』을 읽고 우리는 하룻밤 동안 혹은 밤에 잠을 자면서 3천 번의 꿈을 꾼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꿈을 선명하게 기억하거나 의식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꿈은 생활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로또 복권 1등을 한 사람들의 평균 꿈은 조상님 꿈이었다거나 태몽 등을 보면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꿈에 관한 연구에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개념을 발견한다. 그의 무의식은 의식의 억압된 부분이며 본질은 리비도에 있으며 파괴성과 성욕에 동기를 부여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융은 인간 내면과 외면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있으며 무의식은 단순한 의식의 반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식은 창조적 조정 능력을 지니면서 생명력 넘치는 자아로 표현했다. 우리가 살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화하며 자신의 콤플렉스를 의식화해서 무의식과 의식의 평형을 유지하면서 조화롭게 유지 결합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나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꿈이 가지는 상징은 이미지 분석을 통해 개인의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형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법, 최면법 등을 통한 연구의 부족한 부분을 융은 뒤집어 생각하고 진정한 무의식의 개념을 확립하려고 노력했다. 융은 자기 손으로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둥글고 천장이 높은 집을 지었다. 그 건물은 탑이라고 불렸으며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본 어느 부락의 작은 집을 모방해서 지었다. 그 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체적인 만다라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 탑의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차가워도, 차갑지 않아도 신은 그곳에 있다” 개성화를 통한 자기실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결국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자신의 숙제로 남는 것이다. 의식을 하고 실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바라볼 줄 알고 진정한 자아의 깨달음을 통해 개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의식의 편견이나 잘못이나 공상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소망에 영향을 받으면 받을수록 전부터 존재했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틈이 보다 넓어져 신경증적 분리에 이르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자연스러운 생활이 되어 본능이나 자연이나 진실로부터 멀어진다. 이에 우리는 의식을 넘어 무의식이 지니고 있는 상징을 마주하고 보듬어 줌으로써 미래의 다가올 장래의 분열에 저항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제 각기 다른 사람 중의 나를 찾는 일은 현실을 의식하고 과거를 발판 삼아 자신에게 숨겨진 상징과 이미지를 조화롭게 그리고 자연스런 정신의 통합을 통해 이뤄낼 수 있다. 프로이트와는 사뭇 다른 융의 분석 심리학은 그의 과제로 보면 딱딱한 연구 결과일지 모르지만 『무의식의 분석』을 통해 본 무의식의 세계는 다양한 예로 쉽게 설명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예를 통해 좀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으며 다양한 그림을 통해 그의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꿈의 세계를 넘어 그 꿈이 가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곱고 고운 색실이 흩어졌다가 다시 바늘에 꿰어 ‘나’라는 개인이 된다. 당신의 의식과 무의식은 하얀 천에 어떤 그림으로 수를 놓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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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융의 연구는 첫째로 그 독창성이 주목을 끈다. 영매나 기복신앙에서 소비되던 오컬트적인 요소들은 무의식의 연구를 통해 훨씬 세련된 이론으로 무장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흔히 사람들이 징크스나 머피의 법칙 운운하는 일에 냉소적이고, 때때로 거부감도 표현하는 축이지만, 유독 꿈 이야기에는 주목하게 된다.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꿈에 대한 흥미로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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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한바대로 행동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설령 그것이 올곧은 자신의 의지였다고 해도 그 이면엔 무의식에서 암시된 그 어떤 초월적인 힘이나 운명이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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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책은 아니었다. 칼 융이 그의 말년에 대중을 염두에 두고 쉽게 풀어 쓴 책이라고는 하지만,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 없이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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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분석은 심리학자 칼 융의 꿈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프로이트는 꿈에 관해 ’자유연상’법으로 다가갔지만 융은 꿈을 자유연상법으로 다가가는 것보다는 꿈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에 접근하여 분석하여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고 있다.칼 융의 말을 빌리자면 꿈은 하나의 사실로서 취급되어야 하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꿈은 무의식의 일종의 고유한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그런 무의식에 다가가 분석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아홉가지의 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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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사물을 보고 듣고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한다. '의식'이란 정의를 굳이 말한다면 바로 이런 부분일 것이다. 정확하게 자기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들. 의심많은 인간들은 '의식'을 통해 믿고 판단하고 대처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의식 되지 않는 어떤 유의 사상도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그 것들은 의식의 영역아래 머무른다고 하겠다. 우리가 이 '무의식'을 인지 하는 것은 직관에 의한 경우나 깊은 사색의 과정에서 '그 것'이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인정하지 않거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의식'에 의한 것보다 '무의식'에 의해 더 많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통해 유전적으로 전이되었던 수많은 기억들과 습성들, 그리고 살면서 자신을 지나쳤던 사람들과 사건에 의해 우리는 '무의식'의 창고속에 차곡차곡 무엇인가를 쌓아 놓고 있었다. 의식할 수 있는 것들은 미리 준비를 하거나 예측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속에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살고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는가. 그 무엇인가가 때로는 내 몸과 정신을 나도 모르게 지배하고 있었다거나 나의 성공과 실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면 과연 그 존재가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꿈의 일반적인 기능은 미묘한 방법으로 마음 전체의 평형성을 이루게 하는 재료를 산출함으로써 심리적인 평형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꿈은 때때로 어떤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 장면을 보여주거나 닥쳐올 위험에 대해 경고를 보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사건이나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를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개꿈'이라고 해석되는 이런 꿈들조차 자신의 내면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내 자신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무의식'에 대한 자각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해석함에 있어서 일반적인 규칙을 설정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꿈은 프로이트가 말하듯이 '인정할 수 없는 소망'으로부터 수면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아니고 프로이트가 꿈의 '변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모든 충동이 무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취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꿈이란 의식에 가깝기 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영역이다.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그리고 신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무의식과 의식은 하나로 결합되어야 하고 따라서 서로 평행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그것들이 서로 떨어지거나 분리되기에 이르면 심리적인 장애가 따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꿈의 상징은 인간 마음의 본능적인 부분으로부터 합리적인 부분으로 보내지는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자이다. -78p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엄청난 문명과 문화를 꽃피우고 번영을 거듭해오는 과정에서 오히려 '의식'의 세계보다는 '무의식'의 세계가 더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믿게된다. 뭔가 더 많은 발전을 향해 인간들에게 유전되어왔던 '무의식'의 자산들이 아무래도 긍정쪽에 가까운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므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심코 했던 한마디의 말이나 사소한 행동조차 '무의식'의 표현일 수 있으니 눈여겨 볼 일이다. 그동안 본능에만 충실했던 사람들이라면 합리적인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무의식'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C. G. 융의 무의식의 해석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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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이라 참 알 수 없는 정신세계죠. 더구나 융이라니... 사실 많은 철학자들이 있고, 정신분석학자들이 있지만 역시 어려운 것 같아요. 인류가 바다 속과 우주를 탐험하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미스터리한 존재인 정신. 우리가 의식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영역인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마치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가는 것 같을 거에요. 융은 우리들이 많은 쓰는 말인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네요. 또한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프로이트와 대립을 했다고 하는데, 그 발단이 된 것이 바로 리비도라고 하는 개념인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자신의 무의식과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의 자료를 통해서 인간을 분석하고, 심리를 분석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 사실 무의식은 우리들이 꿈을 통해서 많이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꿈을 해석하는 것이 어쩌면 정신분석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이고 우리들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이 더 많다고 할 수 있겠죠. 자주 비유되는 것이 바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는 건데요. 보이는 빙산의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 밑에는 엄청난 크기의 빙산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우리들은 이제 작은 빙산을 보고도 그 밑에 무엇이 있을지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꿈을 분석해서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사실 이런 무의식에 대한 분석은 바로 정신에 대한 인식을, 사람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 아니겠어요? 인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신비로움.. 인간을 이해하고 통찰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는 수많은 영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우리들이 알 수 없는 무의식을 어떻게 인식할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융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구요. 무의식의 접근과 함께 고대의 신화와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은 무척이나 난해하지만 그것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은 바로 우리들 또한 무의식의 세계를 가지고 있기에 느끼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아요. 꿈은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수도 있고, 현실과 반대라고도 하지만 그 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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