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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렐조카주가 빚어낸 핏빛 메데이아
"프렐조카주가 빚어낸 핏빛 메데이아" 내용보기
숱한 화가들과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명화와 오페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는 이 메데이아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안무가들에게는 어째 좀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무용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조지아(우리는 그동안 그루지아라고 불러왔는데 그들은 조지아라고 발음한다죠) 출신 안무가 게오르규 알렉시즈(Georgiy Aleksidze, 성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가 안무한 7
"프렐조카주가 빚어낸 핏빛 메데이아" 내용보기

숱한 화가들과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명화와 오페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는 이 메데이아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안무가들에게는 어째 좀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무용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조지아(우리는 그동안 그루지아라고 불러왔는데 그들은 조지아라고 발음한다죠) 출신 안무가 게오르규 알렉시즈(Georgiy Aleksidze, 성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가 안무한 79년도 영상이 하나 있고 그 외엔 프렐조카주가 안무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2004년 공연실황 정도가 전부입니다. 


79년도 영상은 연극으로 올려지던 그리스 비극의 형태를 고스란히 무용으로 가져온 듯한데, 잔혹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섬뜩합니다.


폭력을 시적으로 다루는 안무가이니만큼, 프렐조카주가 이 매력적인 소재를 그대로 두었을 리는 없는데, 파리오페라발레단이 내놓은 영상물은 화질이나 음질 면에서 꽤 고품질의 결과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리 아녜스 지요가 메데이아를 맡았고, 윌프레드 로몰리와 엘레오노라 아바냐토가 각각 이아손과 크레우사로 나옵니다. 



(사진은 에밀리 코제트와 얀 브리다르)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와는 달리 아이들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원작에선 메데이아에게 두 아들이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프렐조카주는 누나와 남동생의 남매로 성별을 바꾸었습니다.


제목을 <Le Songe de Medee>, 그러니까 '메데이아의 꿈'으로 붙여놓고 있는데, 작품은 무대 한쪽에 설치된 거대한 나무에 올라가 잠이 든 남매의 모습으로 시작하고, 이아손과 크레우사가 밀회를 나누는 동안에도 무대 한쪽에서 메데이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잠들어 있는 등 꿈과 생시의 경계를 애써 지웁니다. 


프렐조카주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원작이 있는 작품에서 전체 줄거리를 다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외도와 존속살인이라는 두 개의 모티브만 가져와 극을 단순하게 만드는데, 그래서 작품은 더욱 강렬하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크레온 왕이나 아이게우스, 유모 등의 주변인물들 없이, 아이들 두 명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세 남녀만이 등장하는 무대는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만으로도 터져나갈 듯합니다.


원작에서 야만의 나라에서 온 이방인인 메데이아는 크레온의 궁에 들어가지 못하고 움막에서 지내는데, 메데이아와 아이들의 생활은 콜키스에서 그렇게 살았을 법하게 원시적인 형태를 띱니다. 메데이아가 어디선가 가져온 우유를 양동이에 부어주면 아이들은 소나 염소처럼 양동이에 머리를 박고 우유를 마시고,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리는 것인지, 아니면 메데이아만이 알고 있는 주술을 시험하는 것인지 손바닥을 불어 날리는 세 모자의 춤은 자연에 가까운 평온하고 평화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고요.


오랜만에 가족들을 찾아오는 것이 분명한, 이아손이 낯설고 서먹한 눈길로 무대에 나타나는 순간 세 모자의 평화도 깨져버리고, 아이들은 메데이아와 함께 있을 때와는 다른, 경직되고 주눅 든 모습으로 아버지를 대합니다. 반가움과 격정이 드러나는 메데이아의 춤에 비해 이아손의 춤은 의례적인 몸짓으로 가득 차 있는데, 반면 새로운 연인 크레우사와 춤을 추는 이아손에게선 애정을 간구하는 듯이 수줍은 떨림이 엿보입니다. 


프렐조카주가 빚어낸 크레우사는 그릴파르처의 품위 있는 그리스 여인도 아니고 에우리피데스의 사랑의 기대에 들뜬 철부지 공주도 아닌, 마치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을 처음 만났을 때의 메데이아가 보였을 법한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이었어요. 이아손과의 2인무에서도 다소 수동적인 이아손에 비해 크레우사의 애정표현은 과감하고 적극적입니다. 





특히 짧은 작품의 후반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을 세 남녀의 파드트루아는 프렐조카주의 장기이기도 한 관능과 폭력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눈을 뗄 수 없는 장악력을 보여주더군요. 그리고 마침내 메데이아가 아이들을 살해하는 장면의 유혈이 낭자한 색감이나,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와 아이들을 굽어보며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자신의 죄악을 비명을 삼키며 견디는 지요의 연기는 모니터로 보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앞서 본 두 편의 연극에는 미안하지만, 연극을 보고 난 헛헛함을 씻어줄 수 있는 다른 작품이 있어 다행스러운 밤이군요. 영상물에는 메데이아 외에 <MC 14/22>이라는 작품이 나란히 수록되어 있는데, 최후의 만찬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작품에선 김용걸씨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i******e 2012.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