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부터 읽으려고 벼르고 벼르던 채만식의 '탁류'를 드디어 읽게 되었다. 지루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무척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탁류에 빠져들었다. '초봉'이란 인물이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긴 이야기는 금강과 바다를 이어주는 항구, 군산의 시내에서부터 시작된다.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정영배)는 미두장에서 일종의 노름(내기)을 돈 없이 하다가 자기보다 훨씬 젊은 이에게 흠씬 얻어맞을 뻔했다. '탁류'의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의 근원은 바로 이 노름인 것 같다. 미두장, 하바꾼, 총을 놓다, 등 그당시 시대상을 묘사해주는 낯선 단어들이 난무하는 노름장. 초봉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내기를 하다가 서민층으로 굴러 떨어지고, 딸을 밑천 획득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고, 초봉을 원하던 고태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은행 예금액을 빼돌린다. '탁류'를 읽음으로써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제 치하의 우리 나라 상황의 한 단면을 알게 된 것은 좋았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암울하고 옳지 못하며 역겹기까지 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날마다 굶는 사람들, 노름에 빠져 있는 사람들, 본성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 이것이 진정 60여년전의 우리 나라 현실이란 말인가? 식민지의 상황에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탁하게만 보이는 우리의 과거였다. 초봉은 이러한 현실의 희생자요, 그 당시 우리 나라 모습을 대변해주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 주사와 유씨 부인의 딸이요, 4남매 중 맏이인 초봉은 아름답고 한없이 순수하고 여린 여성이다. 동기를 사랑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성실한 초봉이. 그녀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바로 우유부단함과, 자기 주장을 뚜렷이 펴지 못한 점, 그리고 지나친 희생 정신이었다. 그런 점 때문에 초봉은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가! 속으로 은근히 하숙생 남승재에게 마음을 두었던 초봉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고자 고태수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헛된 거짓말로 위장했던 고태수는 일찍 죽어버리고 초봉은 고태수의 친구 노릇을 한 장형보에게 겁탈을 당한다. 순식간에 자신의 생애에 있어 커다란 일을 당한 초봉은 예전 제중당 약국 주인이자 아버지의 친구인 박제호에게 도움을 받아 일을 하기 위해 서울행 열차를 탄다. 항상 남만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초봉. 나는 드디어 그가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보여서 무척 기뻤다. 그런데 우연히도 초봉은 서울행 기차에서 박제호를 만나게 된다. 초봉은 박제호를 숙부처럼 생각하고 도움을 얻으려고 하지만 박제호는 다른 흑심을 품고 있었다. 제호는 귀찮기만 한 자기의 본처 윤희와 이혼하고 초봉을 새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했다. 그러나 초봉은 눈치없이 제호가 하자는대로 하다가 나중에 의도를 알아차리지만 결국은 제호의 뜻대로 몸을 맡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초봉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보같이, "싫어요"라고 한마디만 해도 될텐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다가 들어간다. 이렇게 망설이는 것을 수백 번도 더 반복한다. 이러한 초봉의 모습은 바로 일제 치하 즈음의 우리 나라-조선의 모습일 것 같았다. 우리 고유의 아름답고 깨끗한 문화를 지키고 있던 조선, 그리고 우리 나라에 침을 흘리던 수많은 강대국들. 그런 강대국들 사이에서 제대로 우리의 뜻을 주장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자세로 있으며 비위를 맞춰 주다가 결국엔 통째로 먹히고 만 우리 나라. 초봉과 그당시 그러했을 우리 나라의 모습에 화가 나고 분통 터지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이 가기도 한다. 그렇게 약한 자신의 모습에 초봉과 우리 나라는 속으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초봉은 사랑하지도 않는 박제호와 살면서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를 낳아 '송희'라고 이름지어 끔찍이 보살핀다. 그러면서 박제호는 초봉을 점점 싫어하게 되고 집에 장형보가 찾아와서 초봉과 살겠다고 하니 물건 넘기듯이 초봉을 두고 사라진다. 정말 너무하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사람을 물건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 시점-초봉이 물건 취급 당하고, 남자들의 노리갯감이 된 것이 확연해진 이 시점, 그동안 쌓여온 울분과 한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살기에 가득찬 눈으로, 억울함을 참지 못해 깨문 입에서 피를 흘리며 고함을 쳐대는 초봉. 그러나 그 고함은 곧 복받쳐 흐르는 눈물과 여린 넋두리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초봉은 예전과 달라졌다. 남에게 끌려가며 사는 삶에 싫증을 내고 형보와의 삶에서 음모를 꾸민다. 자신의 죽음 또는 형보의 죽음, 아니 형보와 자신의 죽음을 꾀한다. 초봉의 동생 계봉과 남승재가 초봉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 집으로 오는 도중에 초봉은 결국 일을 벌이고 만다. 형보를 죽였다. 어쩌다 급소를 여러 번 치이게 되어 죽고 만 형보. 그러나 초봉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형보가 이렇게 쉽게 죽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며 멧돌로 죽은 몸을 으깨 부수려 했다. 처참한 모습으로 방바닥에 뻗어 있을 형보의 모습을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과연 초봉에게 어떤 용기가 솟아나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을까? 아니 이것은 용기로 행해진 일이 아니다. 초봉에게 쌓이고 쌓였던 울분, 한, 억울함, 아픔이 공교롭게도 살인이란 형태로 표출된 것일 게다. 나는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때, 평생 당하고만 살던 초봉이 이렇게 복수할 수 있어서 가슴이 후련했다. 그러나 그 복수를 살인의 형태로 하게 된 초봉이 불쌍해졌다. 그토록 선하고 순수한 초봉이 이렇게 살의에 굶주린 짐승같이 변한 것에 가슴 아팠다. '탁류'는 뒷 이야기에 대한 나의 기대를 남겨둔 채 끝나고 말았다. 탁류처럼 혼탁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갖은 고생을 다 겪고 자신을 희생한 대가로 크나큰 피해를 입고서 한평생을 산 초봉. 그 다음부터라도 초봉이가 웃으며 살 수 있는 밝은 현실이 그녀에게 펼쳐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