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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Full Name 은 [Passport from Gobi to Siberia] 이다. 제목에서 단박에 알 수 있는 것처럼 몽고 고비사막에서 시베리아에 이르는 횡단열차를 타고 한 여행의 기록이다. 여행자의 이름은 시인 김경주. 시인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의 프로필은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문학,사진,음악,연극이라는 장르가 그의 프로필 곳곳을 장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인연으로 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년)을 읽어 보았다. 시집을 일독하고 나니 이 기행문을 읽기 어렵게 했던, 축약되어 건너뛰는 문장들이 시인 특유의 화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서사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꾼과는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는 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인데, 시와는 친하지 않은 나로서도 이 부분에서 공감대를 찾았다.
책 전체에 여행지의 사진이 빼곡히 장식되어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해당 지역 특유의 정서를 사유하고, 소통하고, 흔적을 남기기보다는 자신의 세계를 오롯이 가져가서 자기만의 생각에 침잠하는 것이 이 여행기의 특색이 아닐까 싶다. 여행기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다면, 떠나서 직접 보고 겪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소재를 기반으로 한 여행기가 하나이고, 또다른 하나는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싶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여행기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고 본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숨겨진 상처와 대면하고, 삶의 목적을 사유하는 것이 굳이 고비 사막과 시베리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일까? 게다가 신체의 이동 유무와는 상관없이 길위의 인생을 살고 있는 유목민의 운명이라면 굳이 발을 옮겨 여행을 가지 않아도 그는 항상 여행중이고, 부유하는 인생일텐데. 한곳에 머물러 정원을 가꾸는 운명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이 세상은 온통 낯설고 새로운 여행지가 된다.
하지만, 산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지라도 길위에 있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글들이 있음을 필자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인도 이것을 알기에 기차를 탔을 것이다. 하물며 침묵과 외로움이 일상인 사막과 겨울 벌판을 가로지르는 여정이라면, 순도 높은 여행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의 가장 오래되고, 속 깊은 곳의 이야기와 마주할 수 있으며, 자신의 종말을 예감하고 유서를 쓰게 될텐니까.
언젠가 나도 이 책과 같은 여행기를 하나 남겨두고 싶다. 스펙트럼이 넓은 글과 내가 지나친 풍경과 간간히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로 장식된 여행기, 국경을 지나며 찍히는 스탬프와도 같이, 시간의 추억이 무언가의 흔적으로 남은 나만의 패스포트를 가지고 싶다. 나의 노년을 위하여, 혹시나 짧게 인생을 마감하더라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흔적으로 이런 패스포트를 만들어 보고 싶다.
이러한 글을 위해서 꼭 사막으로, 인도로, 유럽으로 떠날 필요는 없을 테지만, 인생이 허락한다면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신에게 부여받은 손상되지 않은 나의 원본과 살면서 받은 상처를 드러내 놓고 순수한 모습으로의 회귀를 시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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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여행기라면 덮어두고 싫어했던 이유는, 지극히도 개인적인 사유와 전유轉游라는 형태로 새롭게 정의되어 경험하게 되는 시간과 공간이 타인에게 전이된다는 것에 극도로 회의적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여행기라고 나온 것들을 들춰보다보면 문장하나 제대로 다듬질 하지 못하면서 과연 이 글에 記란 말을 붙여주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란 생각을 하곤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_ 또 한편으론, 그것이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때는, 삶에 있어 어떠한 식으로든 의미를 획득하고, 자신의 삶 안에서 수차례 해석되고 해석되어 어떠한 식으로든 그 자체로 깊이를 만들어가고 그 깊이 안에서 여행이 아닌 또 다른 이름으로 끊임없이 명명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요즘은 여행이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많은 경험 중의 하나를 획득하는 과정으로, 혹은 과자 속 스티커라도 모으듯이 어디도 가봤어라는 선언으로, 아니면 누구나 하나씩은 있어야 할 것 같은 명품백 같은 소비재로 사용되고 소비되고 있는 게 아닌가, 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런 조류의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충동질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여행기란 이름으로 나온 책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_ 작년 이맘때쯤, 티벳에 대한 동경으로 맘 못잡고 있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께선 티벳 여행기를 한권 선물해 주셨습니다. 두어달 책장 한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메신저 아이디가 "Free Tibet"으로 바뀌고 4월로 계획했던 티벳 여행이 무산되고 나서야 그 책을 펼쳐봤습니다. 딱히, 여행기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깨줄만한 책은 아니었고 오히려 책 아무나 내는 구나, 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지만, 이상스럽게 좀 너그러워져도 되겠구나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뭐랄까, 이게 책이란 전통적인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지, 내 블로그랑 뭐가 다르겠으며,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면 괜히 삐딱한 눈으로 바라볼 일도 아니다 싶었습니다. 오히려, 블로그로 치자면 그 여행기 쪽이 훨씬 '유익한' 블로그인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_ 언제나 그렇듯, 참 서두가 깁니다만. _ 개인적으론 씨네21 코너 중에 제일 민망한 코너라고 생각하는 코너에, 이 김경주란 시인에 관한 글이 실렸습니다. 평소처럼 읽어볼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글쟁이네, 란 생각에 기사를 대충 훑어보다 참 특이하다 싶은 이력에 책을 사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문한 "시인 김경주"의 세권의 책 중 한 권입니다. _ 여행산문집이라 다소 안심을 했습니다. 몇장 넘겨본 책의 구성도 여느 여행기처럼 그저 여정을 따라가기 바쁜 그런 글이 아닌 것 같아, 제일 먼저 펼쳐 본 듯 합니다. 헌데, 페이지를 넘기면서 든 생각은, 이건 아닌데, 란 생각이었습니다. _ 참 질척했습니다. 행간은 너무 깊었고, 그 행간 위로 의식과 문장은 넘쳐 흘렀습니다. 기교는 아니었지만 과잉이었고, 이러한 문장들이 시집이 아닌 여행기라는 그릇에 담길만한 것인가,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날, 문학도 친구의 잡기장을 우연히 보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조금 민망했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당신의 의식의 아래까지 쫓아가 이해를 해야하나 싶기도 했고, 수음 같은 글들이 섞인 부분에선 이 인간이 문학도가 맞나 싶었습니다. 글이란 것이 태생적으로 사유화된 것들을 다시 꺼내어 놓는 것이지만, 특히나 시란 것은 그런 것들을 극대화하며 언어를 다시금 마름질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여행기라고 하기엔 너무 자기연민에 빠져있었고, 시라고 하기엔 너무 방기되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_ 아직 김경주의 시는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시집도 이 책과 함께 주문했으니 조만간 읽어보겠지요. 미루어 짐작컨데 시집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만, 씨네21 기사에서 읽었던 말처럼 앞으로 연작으로 패스포트 시리즈를 계속 내고 싶다면, 다음 패스포트에선 그 곳이 고비 사막이든 시베리아 횡단 열차든, 어딜 가든 간에, 혼자서만 유령처럼 떠돌고 돌아오지 말고 독자도 동행시켜 데려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_ 그나저나, 씨네21의 그 코너, 괜히 민망했던 게 아닌데, 낚인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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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글쓴이의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시를 읽어 내려가던 때에 외형적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글에서 그의 뜨거운 외침을 느꼈다. 삶을 평온히 내려놓기에는 아직 충만한 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정을. 그리고 어느 카페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이 책에 실린 사진 중 일부를 먼저 본 적이 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허물어지듯 피어오르는 한 소녀의 사진은 분명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지만, 그 풍경은 오히려 내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사막에 피어 있는 어떤 희망 같은 것. 이처럼 외피의 차가움 속에 뜨거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쩌면 이 두 작가의 정체성 같은 게 아닐까.
여하튼 이렇게 내부에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두 사람이 함께 책을 펴냈다. 여전히 한 사람은 글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사진을 찍고. 이 책은 '우리가 나그네의 생을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문서'라는 글쓴이의 'passport'의 정의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고비와 사막에 대한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래서 여름 고비와 겨울 시베리아에서 지친 몸을 놀릴 수 있는 안락한 숙박시설에 대한 정보 대신, 두 사람이 유목하고 유형하는 사색을 따라 우리 역시 그들의 생각과 시선 속을 정처없이 떠돌게 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 속 차가움과 뜨거움을 오가며. 이렇게 오늘도 나는 이들의 여권 속에서 '지상으로 착륙하고 싶지 않은 비행기이고 싶'다. '동행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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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책을 만난다. 책장 넘기기 싫은 책. 글을 보아도 마음이 머물고, 사진을 보아도 마음이 머물고. 글은 옮겨 적고 싶고, 사진은 옮겨 담고 싶은 책. 내가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갖고 싶다는 욕심을 만들어내는 책.
틈틈이 보았다. 한번에 좌악 읽고 덮을 책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굳이 쪽수를 세어가며 읽어야 할 책도 아니었다. 마음이 내킨다면 아무 곳이나 펴서 그곳부터 읽어도 상관없을 듯 싶었다. 이 책에서의 여행 공간은 순서의 의미가 없다. 어느 곳이든 일단 들어가서 머물러 있으면 좋을 듯 싶은 비연속적인 공간들이었다, 고 나는 생각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었으며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잤다'와 같은 여행기는 아니다. 만약 시를 어려워한다거나 우리 시대에 시가 왜 필요한 것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고 참 이상한 여행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장차 여행 갈 사람들을 위해 길안내를 해 주는 여정을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가, 내가 놓쳤나, 작가는 그 또한 친절하게 다 말해 주었는데 시 구절같은 글귀에 매달리는 바람에 내 눈에만 그 여정이 보이지 않았나?
나도 이렇게 해 보고 싶다. 더 늙기 전에 이렇게 해 보고 싶다. 이렇게 돌아다니고,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써 보았으면.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책은 덮었으나 마음은 덮지 못하겠다. 나는 이 책을 앞으로도 시도때도 없이 펼쳐 보았다가 덮었다가 할 것을 알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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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판되자 마자 주문을 했었다.
동기는 10년이 넘은 지기의 사진이 실렸다는, 어쩌면 기념하고 싶은 소장하고자 하는 의지같은 거였다.
그토록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던, 그에 쏟아부은 열정이 참으로 보기 좋았고, 그 열정이 몇년간 차곡차곡 쌓임으로 일부나마 세상에 보여진 책이었으니까.... 또 개인적으로 난 친구의 사진을 무척 좋아한다.
괜히 나마저도 설레임을 느끼면서 책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던 생각이 난다.
저자에 대해서는 단순히 '시인'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르게 아는 점이 없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여행하는 순간의 세계속으로 조금씩 빠져들었다.
물론 이 책은 썩 낭만적이라거나 여행의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전하는 류가 아니다.
문장도 언뜻 단순하지만 복잡하다. 언뜻 상상력(?)이 요구되는 책이라 하겠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란, 저자의 4차원적(!) 감수성을 함께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느낌과 인생과 모든 유형, 무형의 실체를 글로써 통틀어 인식하고 같은 주체로 언급한다.
(실제로 그의 모든 문장의 형태가 그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 뒷면에 이은미씨가 그를 외.계.인.이라 칭했는데 정말 외계인적인 사고라고 밖에는....^^)
그리해서 사랑, 기차, 여행, 인생, 사진, 음식... 책속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들이 저자의 생각속에서 한데 묶이기도 하고 서로 전환되기도 하고 비유되기도 한다.
시인이라는 그의 타이틀에 맞게 산문집 전체가 '산문을 빌린 시'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여지껏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개인적인 책이지만,,,, 한번쯤이라도 여행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라도 세상과 사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서 신선한 '파격'을 느꼈고 나 또한 언젠가 그런 여행을 해보리라 다짐하게 됐었다.
아주 막연하게. 또 실천에 옮기지 못할지라도.
이토록 자신의 머릿속의 생각을 고스란히 글로 담아낼 수 있는 그 능력이 놀랍고 또 감탄스러웠다.
이 가을에 내 머릿속에 적정한 자극을 주고 싶다면,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일상과 일반적인것과 '다름'이라는 이색적인 것을 공감하고 싶다면....
p.s. : 이책에서 내가 느낀 또 다른 재미는 책갈피가 필요없다는 거였다. 글과 사진이 적정하게 배치되어 인상적인 사진들을 함께 각인하며 고비와 시베리아에 대해서 떠올려 봄과 동시에 그 사진 자체가 내가 읽은 책 어느부분의 책갈피가 되주었다. 사진이든 글이든 내게 정말 예쁜 책이어서 간직하고픈 느낌을 줬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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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을때 우리는 꼭 패스포트가 필요하다. 여행기라 생각하고 책을 들었지만 시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가끔은 느린 여행기도 필요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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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날카로워진 바람이 내 허리를 파고 든다. 때론 두툼한 옷깃으로도 막을 수 없는 바람이 있음을 실감하며 난 고개를 숙여 버린다. 하지만 추위에 굴복 당한 듯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내 어린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바람. 시베리아 대륙을 얼릴 정도의 강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싶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고비 사막도 그렇고 시베리아도, 얼핏 생각했을 땐 아무것도 없을 듯하다. 한 곳은 사막이다. 앞으로 나아가도 끊임없이 같은 모래 벌판만이 반복되는 그 곳으로부터 무얼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 역시 비슷하다. 고비 사막에 비하면 좀 나을지도 모르나 사시사철 회오리치는 바람을 생각하면, 그 곳은 인간이 살만한 곳이 못 된다. 둘 다 여행을 계획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다. 일상의 나태함을 바로잡기 위하여? 여행이 특별한 한 때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잔인(?)한 떠남이었다. 다른 좋은 장소도 많았을 터인데 하필이면 왜 그 삭막한 공간을 그는 택했단 말인가? 그렇지만 배낭여행자란 말이 좋아 무작정 길을 떠돌던 시절의 철없는 행동이려니 외면하기엔 뭔가 아쉽다. 여행을 통해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가장 섬세한 타인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디테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p48) 알고 보면 나는 타인의 동정 아닌 내 자신의 너그러움을 바라며 살아왔다. 여행이 앞뒤 꽉 막힌 지금의 나를 변화시켜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떠나야만 한다. 갑자기 나 역시 그처럼 떠나고파졌다. 안타깝게도 내겐 용기가 부족할 뿐… 숱한 여행기를 읽으며 타인의 체험을 내 것마냥 받아들여 왔다.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장소를 내 기억의 일부로 만들면서 나는 내 자신을 기만해 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뭔가 독특하다. 사진도 글도, 여느 여행기에서 보아온 것과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이내 나는 그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낯섦조차도 제 것으로 완벽해 풀어내는 이 생명체의 정체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패스포트의 사전적 의미까지 들먹이며 여행의 깊이를 한껏 고조시킨 작가는 급기야 제 여행의 모토라며 두 가지 단어를 ‘띡’ 내게 던져 주었다. 유목 그리고 유형 마지 시간이 멎은 듯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몽골족들의 삶 그리고 지난 세기를 주름잡은(?) 이념에 희생된 이들의 서글픈 사랑까지… 실내라곤 하지만 바깥 공기와는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한 차가움을 자랑하는 게르, 사막 한복판에 놓인 이유 모를 욕조 그리고 손님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 카페 바그다드. 고비에서는 부조화의 조화라고 일컬어도 좋을 법한 모습이 연신 펼쳐졌다. 모든 여행이 비슷한 듯하면서 다르다고 그랬다던데, 사막에서의 삶도 단조로운 듯하면서 모조리 똑같진 않아서 사람들이 그 맛에 견디나 보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기차가 떠났고 잠시의 낭만이 있었다. 손 흔드는 눈물 흘리는 연인들의 모습이 기억 뒤편으로 사라지면서 시베리아는 비로소 제대로 된 제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냈다. 특출한 예술을 구가하는 이도 처벌될 수 있던 공간. 그 곳과 얽힌 아픔을 말하자면 하루의 시간은 참으로 짧게 느껴질 것이다. 겨우 안정을 찾았다 싶었던 한인들이 뿔뿔이 흩어졌던 것도 시베리아 대륙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니… 아무도 방문치 않을 것만 같아 시베리아를 여행지로 삼았다는 이는 그 곳의 쓰라린 기억을 알고는 있을까 그는 잠시(!)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여행지에서도 그러했지만 제 삶의 터전에 되돌아와서도 한 차례 크게 앓았다.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땐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낯선 글자들과, 여행과 함께 외면했던 일상의 무게가 제 어깨를 누르고 있었단다. 그래도 유목이건 유형이건, 여행을 떠난 사람에게 영원이란 없다. 잠시의 불시착마냥 기다리면 끝나는 것이 여행이며, 그의 패스포트에 찍힌 몇 개의 도장만이 그가 그 곳에 있었음을 증명해 줄 따름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삶으로부터 삶을 감추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간명하며 대담하게 움직이고 있는 유랑을 발견하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침대에서 누운 채 잠에서 깨고 몸을 일으키거나 움직이지도 못한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나는 어딘가로 지금 여기를, 떠나보내야 한다.”(p23-24) 아직도 그의 피 속에 이와 같은 기운이 남아 있다면… 조만간 그는 또 떠나겠지 싶다. 그의 발이 어느 대륙을 향하고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 그의 선택이 왜 나는 기다려지는지 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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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람이 차다. 그 바람이 전보다 더 차갑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오르르르 떨었을 때 책을 다 읽었다. 흐린 하늘 아래 바다는 하늘보다 딱 4% 더 흐리고 우울해 보인다. 그 바다를 뒤로 하며 돌아선 곳에는 그 바닷빛을 닮은 호수가 있다. 하나의 길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호수가 공존하는 화진포, 그 사잇길이 에테르일까? 어디서부터 바다고 어디서부터 강일지 모르는 그러나 분명 존재할 미세하고도 미세한 존재인 담이 그곳에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에테르를 닮은 길을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내면이 담긴, 책이 아니고 그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김경주 시인을 잘 모르기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김경주 시인의 산문집을 들고할수만 있다면 발자국 흔적이 남길 바라며 아스팔트 길을 걸어 돌아왔다.
내가 책을 읽었던 곳은 거기(바다)였는데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곳은 여기(집)이다. '여행이란 여기가 있어서 저기로 가는 것이다.' (패스포트, p.396) 라는 시인의 말에 장난 아닌 장난을 치며 책을 이야기 하고 있는 손길이 낯설다. 어쩌면 바다와 우리집까지의 30분 거리보다 더 멀리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경주 시인을 따라 고비와 시베리아 그리고 그곳에 있는 바이칼 호수까지 따라다녔기 때문일까? 내가 간 곳은 장소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였기 때문일까?
이 글을 쓰기 전에 펜으로 책의 구절을 공책에 적다가 팔이 아파 쉬기를 반복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책을 읽을 때는 할수만 책의 전부를 내 손으로 나만의 기록장에 옮겨 적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 놓고서는 몇 문장 쓰지 않아 팔이 아프다며 금방 손을 놓고 만다. 그러고는 작가를 탓한다. 시인이 쓰는 글은 왜 이리 멋지냐고, 마음에 남기고 싶은 부분을 골라 낼 수 없을만큼의 대다수의 문장이 마음을 울리는 것은 시인이 글을 써서 라고 무심코 투덜거리다가 화들짝 놀란다. 사람 마음을 들어놓고 무슨 소리냐고, 누가 나에게 그 글을 적으라고 했다고, 마음에 글을 담을 수 없는 것이 어찌 시인의 잘못이냐고 스스로를 혼낸다.
서점에서 책은 여행기에 분류되어 있었다. 고비와 시베리아 두 곳을 여행하면 적은 글이거니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떠한 장소로의 여행이 아니었다. 김경주 시인의 마음 속으로, 사람의 고독하고 깊은 심연 속으로의 여행이었다. 어느새 책은 나의 마음을 창문으로 만들었고 그 창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 창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도 있으며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들여다 볼 수만 있을 뿐 다가갈 수는 없다. 딱 그만큼의 두께로 인해 나는 나를 안아주지는 못하지만, 시인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없지만 알 수 있었다. 힘들었음을, 아팠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어 나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많은 거리에서 나는 외로워 움직였고, 외로워서 움직이지 않았고 많은 거리에서 시간은 자신의 허기를 내 몸으로 채웠고 시간은 여러 개의 나로 헐었다. 그러나 그 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별과 나 사이에 그 긴 거리가 놓여 있지 않았다면, 나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을 것이다.
별을 바라본다. 그 많은 별에 대해서 바라본다. 별 속에 수많은 눈이 아직 머물러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사람은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의 시들이 깜깜한 어둠이어서, 그 어둠조차 식별하기에는 내가 가진 고독의 깊이보다 작가의 깊이가 너무 깊어 되려 위로가 되었다. 타인의 불행에 내 불행을 위로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사악함일까? 그런 나의 사악함은 <패스포트>에서도 나타났다. 내가 투정처럼 외롭다고 골백번 외치던 소리는 작가의 글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진다. 정말 외롭지 않기에 입밖으로 말할 수 있었음을 깊은 고독은 말조차 못하고 글로, 시詩로 태어남을 알게 된다.
<멀미는 길 위에서만 겪는 시간의 어지러움이었고 그 길을 향해 내가 던졌던 물음들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할 때마다 여행은 멀미를 동반했다. 멀미는 생이 출현하는 방식이었고 생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고비와 시베리아, 그곳에서 시인은 삶을 보고 자신을 보고 풍경을 보고 바이칼 호수의 얼음을 보고 더 더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멀미를 하고 또 하며 여행에 적응하기 위해, 삶을 견뎌내기 위해 엽서를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내면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은 버리기 위해서 떠날 수도 있지만 버리지 못하고 돌아올 수도 있음을 알게 된 <패스포트>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시인의 말대로 나그네의 권리를 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나그네는 외롭지만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여기를 다 보지 못해 다른 곳에 가지 못함이 아니라 여기가 존재하기에 저기에도 갈 수 있다는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나그네의 권리를 사용해야 한다. 삶이란 여정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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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여. 너의 고독속으로 걸어가라. 사납고 거센 바람이 부는 곳으로!- 니체
제목만으로 가슴을 달구는 책이 있다. [passport].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김경주 시인이다. 나는 내용을 들춰 보기도 전에 그날 밤 이 책을 독파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거라고 예감했다. 김경주는 좋은 시인이다. 마음의 병증을 독으로 일깨우고 육체의 굳은 살을 약으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준다. 그의 시는 언어의 서정성 보다는 삶의 편린 그 무엇이 묻어 있는 독 있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소리에 예민한 시인 김경주, 그가 이번에는 사막이 부르는 노래를 듣기 위해 FROM GOBI TO SIBERIA로 배낭을 꾸렸다.
사막의 삶은 힘겹다. 들어가면 돌아나오지 못하는 땅이 고비 사막인 것 같다. 넓고 험한 탓에 동에서 서로 가든, 서에서 동으로 가든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거대한 사막이 비록 고향은 아닐지라도, 이토록 많은 사색과 감탄이 깔린 고비사막을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더 걷고, 더 보고, 더 느낄 수록 인생은 아름다울 것 같다. 전소연 사진 작가의 사진들은 내용을 압도할 만큼 아름답고 멋지다. 책을 펼치며 나는 사진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장식 하기 위해 이 사진을 그렸을까 곰곰히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사진을 보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이야기가 아니라 사진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이야기의 일부로서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위한 사진이었다.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낯선 길 위에서 느낌 삶의 에테르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영혼들. 고비와 시베리아를 번역하는 김경주의 음성 언어는 좋은 울림을 오래 울리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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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나도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시적인 은유가 가득한 작가의 표현력은 몽골의 사막에서 시베리아의 겨울을
' 여행을 통해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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