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나라 전통 서정시의 한 정점
"우리나라 전통 서정시의 한 정점" 내용보기
대숲 바람소리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둑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우리나라 전통 서정시의 한 정점" 내용보기

대숲 바람소리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둑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그을음 내, 몽당 빗자루도 개 터럭도 보리 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댓이파리의 맑은 숨소리.

 

 

송수권 시인의 등단작 「산문에 기대어」는 대표작으로 말해도 될 만큼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죽은 남동생에 대한 제의로 쓴 작품. 그러나 시에서는 우리나라 서정시 전통에 많이 쓰는  ‘누이’를 부르며 시작한다. 이러한 시 전통은 월명사의 향가 「제망매가」에 잇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혼가나 초혼가인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노래하고 있지만 무거운 슬픔의 정조만 드러내지 않는다. 외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가벼운 반짝임을 노래하고 있다. 죽음에서 재생이나 환생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송수권의 시는 우리나라 서정시의 전통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여성적 한이 아닌 남성적 힘을 표출한다. 그리하여 시인이 대숲에서 보는 것도 ‘맑디맑은 사랑’,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 징소리 꽹과리 소리’처럼 다채롭거니와 현실의 웅혼한 기상이 담겨 있다.

 

등단작부터 2007년 작품 중에 중요한 작품만 뽑은 책이라서 그런지 어디를 펼쳐 봐도 시인이 도달한 득의의 영역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사랑합니다 소쩍새가 소쩍소쩍 울면 흉년이 온다든가 / 솔짝솔짝 울면 솥 작다든가 하는 그 흉년과 풍년 사이 / 온도계의 눈금 같은 말까지를, 다 우리들의 타고난 운명을 극복하는 / 말로다 사랑합니다’(「우리나라의 숲과 새들」)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고, ‘보아라. 저 방랑의 검객 / 한 굽이 감돌면서 모래밭을 만들고 / 또 한 굽이 감돌면서 모래밭을 만드는 건 /힘’(「강」)에서는 여성으로 흔히 표현되는 강을 남성의 기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 한 울음 토해 내면 /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 또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가 울음 우는 것을 / 알았다’(「지리산 뻐꾹새」)에서는 민중의 힘과 연결시켜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정서가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있으니 임진강 오리가 우는 소리 ‘와글와글 재갈재갈 / 와글와글 재갈재갈’은 시인에게 ‘함경도 낯익은 아버지 사투리 같고 / 평안도 낮익은 에미나이 / 감자밭 감자 캐는 소리’(「임진강 오리 떼」)로 들리니 ‘우리는 오리 떼만도 못한 / 네 아비 내 어미 원통하게 / 살다 죽은 땅’을 안타깝게 노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철원평야에서는 맑은 겨울 날씨에도 이따금 천둥소리가 일어난다 / 검은 멧돼지 떼가 언제부턴가 철책선을 짓부수며 남북으로 이동하는 소리’(「철원평야」)라며 통일의 염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시인은 전통에 맞닿아 있는 시인들이 흔히 범하는 현실 유리의 오류에서 자유롭다. 그리하여 시인은 우리 전통시가 도달한 한 정점이자 바람직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서정주보다는 백석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 보라, 꽃을 노래하는 시편에서도 시인은 다른 전통 시인과 사뭇 다르니, 소재도 주제도 그렇다.

 

 

나팔꽃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하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YES마니아 : 골드 g*******g 2009.09.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