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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 - 이동현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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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이 작품의 대성공에 힘 입어 1958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고, 그로부터 2년 뒤 사망합니다. 그 뒤에 숨은 곡절이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당국의 압력 때문이겠는데, 정작 이 작품에서 체제를 향한 불편한 시선이 그리 많이 드러나진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인의 영혼(작가 자신이든 그의 페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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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이 작품의 대성공에 힘 입어 1958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됩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고, 그로부터 2년 뒤 사망합니다. 그 뒤에 숨은 곡절이야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당국의 압력 때문이겠는데, 정작 이 작품에서 체제를 향한 불편한 시선이 그리 많이 드러나진 않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인의 영혼(작가 자신이든 그의 페르소나 지바고이든)이 그런 압제적 분위기에서 편할 리가 없었겠죠.


지바고는 의사 그로미코에게 입양되어 그의 딸 토냐와 함께 성장하고, 그 역시 의사가 된 후 토냐와 결혼합니다. 그로미코라고 하니까 예전 소련의 외무장관이 생각 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실존 인물과는 철자가 살짝 다릅니다. 여튼, 그리고 모두 다 알듯, 지바고는 (예비) 장인에게 환자로 실려 온 라라의 모친을 알게 되고, 드디어 그 딸과 불륜의 사랑을 싹틔웁니다. 어렸을 때 피아노 연습곡으로도 유명한 "라라의 테마(모리스 자르 작곡)"가 바로 이 캐릭터에게서 유래한 거죠. 


러브라인만 추리면 단순하지만, 이 소설은 그 길이에 걸맞게 매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파샤라는 청년은 라라와 잘 아는 사이였는데 "피의 일요일" 사건 때 그는 혁명 군중에 가담하다 제정 러시아의 경찰에 진압되며 얼굴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그는 전혀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유리 지바고와 조우하는데 이때는 이미 공산당 거물이 되어 적백 내전을 승리로 끌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예전에 제 고교 수학 선생님이 이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데이비드 린 연출의 고전 영국 영화를 회상하며, "주인공이 눈 덮인 산을 가리켜 '댓츠 우랄'이라 말하는 장면이 멋있었다"고 했는데, 사실 이 대사는 그리 낭만적인 순간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낭만은 고사하고 짐승 같은 처우를 받으며 수용소로 끌려가던 중 기찻간에서 밖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죠. 또, 아무리 러시아 소설이 원작이라지만 영국 영화이고 당연히 그 대사가 영어이므로 "우랄"이 아니라 "유랄"로 발음되어야 합니다(실제로 그렇습니다). 나는 낭만을 아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려는 의도로, 그냥 편의대로 각색한 이야깃거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정말로 인상적이었으면 그 간단한 대사가 발음이 잘못 기억될 리가 없죠. 


전 예를 들어 극장 가서 들은 원어민의 "킴 베이싱어" 발음 때문에 이후 절대 그 여배우의 이름을 "배신저"로 발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킴 베이싱어와 <닥터 지바고>는 직접 관계가 없으니 오해 없으시길. 영화에서는 당대 최고 여배우 중 하나였던 줄리 크리스티가 이 역을 맡았습니다. 


음, 아무튼 저는 이 위대한 작품의 메시지와 진한 향취,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주인공 지바고가 대단히 이기적이고 심지어 배신자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냐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심지어 가뜩이나 불행하던 라라가 더 불행해진 건 지바고 선생의 무책임한 애정 행각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이 소설의 영화 버전은 지바고 중장(주인공 닥터 지바고의 이복형)이 그녀의 조카, 즉 유리 지바고와 라라 사이에 태어난 딸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결말도 (사정을 다 알 것 같지만 쓸데없는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조카를 (그 약혼자와 함께) 떠나보내는 장군의 회환으로 채우며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그 조카(아마도) 타냐의 그 비인간적인 모습, 마치 세뇌당한 앵무새처럼 정해진 말만 영혼 없이 내뱉는 태도, 이것이 바로 개인의 자유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체제에서 생산한 괴물, 괴물의 모습입니다. 이런 인간도 자기 딴에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식의 가치관을 가졌다고 여기겠으나, 그게 어디 손톱만큼이나마 자신의 생각일 구석이 있겠습니까?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물론 시인이자 의사인 유리 지바고의 곡절 많은 삶 그 묘사를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훼손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자유를 예찬하는 게 작가의 의도이며, 그 의도가 훌륭히 관철되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배신자 운운한 건 농담이지만, 실제로 그런 구석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죠. 

v*****7 2020.08.2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