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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내 나이 또래의 '어린 여자'가 '예쁜 외모'에 무려 '아쿠타가와상'을 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일본 소설이 있었다. 그 책을 별 생각 없이 읽었고 '아쿠타가와는 이 책을 읽고, 발로 심사위원의 등짝을 차주고 싶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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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일 때 어른의 사랑을 하면, 그 뒤로는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 ... 주인공의 남동생이 그런 의미의 대사를 했을 때 나는 입안에서 주스에 든 얼음을 부스러뜨리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때묻지 않은 마음이란 뭘까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도 그 말이 묘하게 가슴 깊이 남았다.』
작가의 말마따나 책을 읽는 중 이 구절이 ‘묘하게 가슴 깊이 남았다’라고 해야겠다. 책을 읽기 며칠 전에 한 여자 아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이 들기는 하였으나)가 연애 감정에 대하여 물었던 순간이 이 구절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올랐던 탓이다. 게다가 나는 연애에 대하여 묻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너무 어린 시절에 너무 나이 많은 사람과 연애한 히스토리를 지닌 여자들은 보통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보다 일반적인 연애를 못하고는 해, 라고...
소설은 스무 살의 대학생인 노다가 한 해 전 겪은 학원 선생 사이토 씨와의 관계를 곱씹으며, 새로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엮어가는 이야기이다. 원조교제에 가까웠던 선생님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완전히 해체되어버린 상태에서의 임신과 낙태, 이어지는 부모들과의 전쟁 이후 대학생이 되어 맞은 첫 번째 여름방학, 노다는 집을 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가요의 방에서 방학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다.
“그의 방에 누워 뒹굴던 내 발을 밟은 사이토 씨, 그 발뒤꿈치가 딱딱했던 것... 그런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욕망이 얇은 심장막을 찢고 깊은 강이 넘치듯 넘쳐 나온다... 눈꺼풀에 미끄러지는 땀을 훔치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실눈을 뜨니 사막에서 대상(隊商)을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상한 확신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 사이토 씨를 만나면 나는 분명 죽고 말 거야.”
그렇게 가요의 방에서 생활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등학교 동창인 기쿠와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노다는 조금씩 자신과 선생님 사이의 관계를 되짚는다. 기쿠의 오빠이며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요키오는 특히 이런 노다를 지근거리에서 다독이고, 이런 유키오를 통해 노다는 스스로를 치유할 힘을 얻는 것만 같다.
“모르겠어요. 길에서 전에 같이 듣던 곡을 들으면 몸이 부서질 것 같고, 생각이 날 때마다 몇 번이고 내달리려 하고, 그렇게 감정이 솟아 오르지만 그렇다고 다시 되돌릴 생각은 없어요. 다시 그 사람을 만나면 아마 죽고 말 거예요.”
사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감정 혹은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시켜 바라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것이(사랑이든 연애이든)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은(사랑의 감정이든 연애의 감정이든) 내가 살아가는 동안 한 번 혹은 두 번 아니면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들은 짧지만 굵게 고통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은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객관화를 통하여 치유되기 마련이다.
“같은 방에서 자고, 서로 안고, 목욕을 같이 한 적도 있지만 그 사람하고 그건 안 했으니까... 내 나이가 마음에 걸린다는 말을 했어요. 게다가 지금 자더라도 서로 혼란스러워질 뿐이라고요... 아마 연애 감정은 아니었을 거예요... 애 없는 부부가 고양이를 기르거나 애인이 없는 여자애가 커다란 인형을 안고 자는 것처럼. 그 사람한테 난 틀림없이 그런 느낌이었을 거예요. 연애 감정이라고 부를 만한 게 아니었어.”
열일곱에 데뷔하여 주요 문학상의 후보에 이름을 올리거나 수상을 한 작가는 자신의 나이가 이십대 초반이고(작년에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굉장히 절실하고 섬세하게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다지 많은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 않고 있지만, 그래서 읽는 동안 어려움이 없다. 뭐 이런식...
“돌아오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이름이 긴 커피를 마시며 받은 명함을 보았다. 글씨를 잘 쓸 거라는 내 선입견을 산산조각 내며 볼품없는 숫자들이 오른쪽으로 나란히 끌려올라가 있었다. 다만 마구 흘려 썼다기보다는 깔끔하게 쓰려 했는데 잘 안 된 듯해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글씨였다.”
그리하여 다시 첫문장...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가슴에 남지만 ‘도대체 때묻지 않은 마음이란 뭘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사랑... 사실 시간이 지나도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는 않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물음표를 양산하는 바로 그것, 연애 혹은 사랑은 바로 그 물음표의 양산을 통하여 확인되고 해소되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연애 감정에 대하여 물었던 그녀, 여자 아이를 향하여 이렇게 대답해주어야 했던 것 아닐까... 너의 사랑 혹은 연애는 물음표를 통해 객관화될 수 있을거야, 그리고 그 객관화를 통하여 해소될 수 있을 것이고,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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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모토 리오의 이 책은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라고 한다. 과거의 잘못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 소녀가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읽기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사실 내 성향은 아니다. 그래도 지나치게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담백한 문체가 책을 읽는 편암함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