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마루네 저의 『터키어 수강일지』 를 읽고 문학 장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이가 환갑이 넘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평소 에세이 류나 문화적 관련 분야 책을 주로 대한다. 전혀 부담 없이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설 쪽은 조금 뜸한 편이다. 우리 인생을 다루기 때문에 오히려 내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인데도 성격 탓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의미 있는 책을 통해서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참으로 유익한 시간들이다. 모처럼 소설을 대하면서 참으로 소설이란 것이 좋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얼마든지 인간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함과 함께 뭔가 새로운 궁금함을 갖게 하면서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한다면 일단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내 자신에게 이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솔직히 젊은 작가의 소설은 평소에 자주 대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젊은 작가의 소설을 대함으로써 젊은 작가는 물론이고, 작품과 작품 속의 내용과 여러 표현 등에서 내 자신이 평소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껴 본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색다른 체험의 되었다. 소설 속으로 의미 있는 여행이어서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우선 시작부터가 유별나다. ‘존나 카와이 그룹’과 낚시가게 아저씨 엉덩이, 남중생들, 노숙자 아저씨들,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 터키어 강좌 등등 진정으로 십대들의 감정들이고 행동들이다. 좌충우돌이란 말이 실감난다고 할까 어쨌든 신예 젊은 작가가 전개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와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생소하고 신기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오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 품안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그래서 문화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느껴본다. 작가와 작품의 힘을 느껴보기도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지금까지 낯설기만 했던 분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기회로 하여서 앞으로는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접근하여서 가까이 할 수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작가의 힘과 영향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작가의 영향력은 더욱 더 크다. 그렇다고 한다면 작품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앞으로의 미래에서 확실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을 작품 속에서 키울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더욱 더 활동할 수 있도록 창작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 청소년의 마음을 확실하게 파악하면서 그 심리를 작품 속에 담아서 주인공들로 변화시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여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해나가게 된다면 최고의 주역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져보았다. |
|
제목을 보는 순간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주변에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영어, 일본어였고 그외에 독일어,
프랑스어 정도였던 것 같은데 터키어라니 생소하기도 하고 궁금증이 일었다.
전혀 관심조차 없었던 터키어였지만 이참에 새로운 언어 한가지쯤은 더 알아도 좋을
거란 생각을 하며 책을 들었었다.
습관처럼 먼저 작가의 이력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이제껏 그런 선입견을 가진 적은
없었는데...
사실 우리들이 진짜로 알고 싶고 궁금해하는 것은 작가들의 나이나 이력이 아니라
우리에게 들려줄 그들만의 작품 세계가 아니겠는가.
신세대다웠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이해를 못한 것도 아니다.
같은 공간에 나란히 앉아서도 우리는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 아는 말을 내뱉곤하니까.
분명히 대화를 나누면고 있는데도 서로 의사소통이 힘든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도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 혼자 밥을 먹지 않기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한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놀고 때로는 눈치게임을 하듯
서로를 놀리면서 자신을 꽁꽁 숨기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보다 듣고 싶은 말, 해야할 말을 하는 아이들. 아니 사람들.
이게 뭐야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일순간 빠져들곤 했다. 존카.
친구란, 소통이란 적어도 나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그럴수가 없었기에 그들은 앞다투어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있었으리라. 비밀이 지켜질거라 굳게 믿었기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않았고 덕분에
그는 사람들의 별별 비밀을 다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를 무시하고 대화를 걸어와도 모른척 했으면서도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간절히 찾고 있던 그들에게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그가 있었던 것이다.
터키 문화원을 진짜 터키산이 아닌 중국산 싸구려 도자기와 물건들로 채워놓았듯이
그 곳에 찾아든 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기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터키어를 수강하러 온 사람들, 직장에서 필요하니 적어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위안거리로 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 참모습은 저 깊은 곳에 감춰둔 이들 말이다.
그들은 더이상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지만 터키어 수업은 계속 될 것이다.
이제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는 터키로 떠난단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대로.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않았지만 저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내 모습을 살짝 엿보고 있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던 사람이 오프라인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알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148
|
|
흥미로운 소설을 만났다. 열다섯 소녀의 사춘기 성장통이 아프지만 요즘 신세대답게 생뚱맞으면서도 내가 자랄 때와는 참 다르구나 싶은 호기심을 발동시킨 작가 우마루내의 '터키어 수강일지'...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보통 외국어하면 영어, 중국어 또는 일본어나 스페인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터키어'라니... 형제의 나라라고 알고 있으며 참 예쁜 문화유산을 간직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을 불러오는 나라 '터키'지만 정작 터키어를 배우고 싶다는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인데 무슨 이유로 터키어를 수강할 생각을 했던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하는 책이다. 시대가 확실히 많이 변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줄임말 표현, 외래어 같은 단어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기에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지만 확실히 내가 구식이란 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새삼 느끼게 된다. 스토리는 존나 카와이한 인터넷 그룹인 친목모임 그룹 중 하나를 알려주며 시작한다. '카와이' 일본어로 귀엽다, 사랑스럽다, 작다란 뜻을 갖고 있는 단어다. 존나 카와이라면 많이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말일 것이다. 이 모임에 가입되어 있는 주인공인 나는 그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한 자신이 가진 남다른 취향을 우연한 기회에 털어놓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는 분명 모임 회원들이 뒷담화를 할 정도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알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픈 나란 인물의 모습은 딱 그 나이대의 소녀가 가질 수 있는 심적 갈등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잠시 했다. 터키인도 아닌 터키 군번과의 아쉬운 첫사랑과의 이야기는 첫사랑에 대한 설렘을 가졌다기 보다는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죽지 못하고 그냥 어떻게든 버티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 이야기에는 열다섯 소녀가 가지고 있는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하고 안쓰러움을 느끼게 한다. 헌데 또래 남학생과의 입맞춤에 좋은 기억이 아닌 여드름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터키 문화원을 찾고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만나고 그와 터키어 강의를 들으며 터키어의 표현방식을 들려주는 스토리는 솔직히 재미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터키어를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어 좋았던 부분이다. 솔직히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평소에 영어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고 스페인을 여행한 적이 있어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을 가져 어학원까지 알아본 적이 있는데 책을 읽으며 터키어가 표현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터키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생각보다 재밌다는 느낌도 주어 관심이 가기에 기회가 되면 터키어 문화원을 나도 한 번 찾아가고 싶어진다. 가슴속 깊은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족이지만 가족이라 소홀하기 쉽고 몸과 마음에 엄청난 고통을 주는 경우가 있고 그로 인한 상처는 더 깊고 아물기 힘들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고 입장에서 나도 모르게 부모, 어른이란 입장에서 자식을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아이는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을지... 나는 아들이 가진 본심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외롭지는 않은지... 나의 생각만큼 아들의 생각이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든 책이다.
![]()
![]() |
|
저자와 책 제목 모두 흥미를 끄는 소설을 만났다. 작가 우마루내의 『터키어 수강일지』란 소설이다. 우마루내란 이름이 왠지 외국작가 같다(처음 이 이름을 보며, 몽골작가인가 싶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한국작가다. 이 책은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이다. 그러니, 이제 막 작가의 길을 걷는, 또는 걷고자 하는 신참 작가의 소설임을 감안하고 책을 읽는다면 좋겠다. 다소 산만하며 다소 미숙하여 느껴질지라도, 장차 대문호가 될 작가의 첫 작품을 만났다는 신선함과 설렘, 그 즐거움을 누리자.
주인공 ‘나’는 15세 소녀다. 다소 독특한 코드를 갖고 있는 소녀다. 왜 독특하냐고? 그 나이에 꽂힌 남자가 다름 아닌 낚시가게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낚시가게 아저씨의 펑퍼짐한 엉덩이에 빠졌다. 살짝 삐져나와 비치는 낡은 팬티에 설레는 소녀의 마음이라니. 이런 다소 독특한 소녀가 겪게 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설은 이야기한다.
주인공에게 또 하나 중요한 건 인터넷 카페 <존나 카와이한 그룹>이다. 카페 이름이 쪼까 거시기하다. ‘카와이’는 일본어로 귀엽다 사랑스럽다 작다 등의 의미란다. ‘존나’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존나’가 맞다.
여기서 잠깐! ‘존나’가 어떤 의미일까? 부정적 의미일까? 긍정적 의미일까? 아님, 아무런 의미 없는 추임새에 불과할까? 모두 맞다. 물론, 누군가는 청소년들이 입에 달고 있는 이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졸라’, 부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존나’가 된다고 말하기도 하더라만. 사실, 이 안에는 모든 뉘앙스가 다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 <존나 카와이한 그룹>에서 사용하는 ‘존나 카와이하다’, 줄여서 ‘존카’ 또는 JK는 이런 다양한 의미를 모두 아우른다. 카페 회원들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 소속감을 느낀다. 어쩌면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청소년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같은 곳에 속하길 원하는 욕망. 그리고 그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아무런 의미 없는 말, 특정 언어를 함께 공유하고 뱉음으로 함께 한 곳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을 누리려는 몸부림. 이에 반하는 또 다른 욕구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려는 갈망. 청소년 시기에 갖게 되는 이 두 감정 사이 갈등과 고민을 소설은 보여준다.
또래아이들과 어울리면서도 다소 색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주인공. 주인공은 어느 날 카페에서 자신의 고민을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에게 털어놓고 만다. 아뿔싸!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는 <존나 카와이한 그룹>에서 부정적 의미로 존카한 사람이다. 오지랖 넓게 낄 자리 안 낄 자리 가리지 않고 끼어드는 사람. 왠지, 질척거린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 카페 내에서 암묵 중에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으니 이로 인해 또 다른 주인공의 고민이 시작된다.
결국 터키어 수강을 위해 간 ‘터키 문화원’에서 한스 요하힘 마르세유를 만나게 되고. 온라인상의 인물을 오프라인상에서 만나게 된 주인공. 과연 그 앞에 펼쳐질 시간들은 좋은 의미에서 존나 카와이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우리 안에는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음을 말하는 걸까? 다소 요상한 단어인 존나 카와이, 다소 익숙지 않은 언어 터키어를 등장시킴으로 소통의 다중성을 말하는 걸까? 남과 다른 생각, 열망에 대한 접근일까?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 단지, 내일도 우리의 삶이 존나 카와이 하길 바랄뿐. 좋은 의미에서 말이다.
그럼, 소설은 어떤가? 물론 존카하다. 무슨 의미냐고? 그건 독자마다 각자 다를 것이다. 단지, 작가는 이제 막 첫발을 떼어놓은 것뿐임을 기억하자. 앞으로 찍히게 될 작가의 발걸음이 위대한 발걸음이 되길, 건필을 기원해 본다. |
|
이 책 <터키어 수강일지>를 읽기 전에 우연히 작가의 소개란을 보았다. 그런데 사진과 함께 작가 소개는 단 두 줄이었다. 태생년도와 현재의 위치를 두 줄로 표현해 두었는데 첫장부터 젊은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대학생이고 젊은 나이여서인지 첫장을 읽으면서 감각적이고 튀는 젊음이 느껴졌다. '존나 카와이(Jonna Kawaii)'라는 인터넷 그룹의 소개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언뜻보기에도 익숙한 이 인터넷 그룹의 이름은 욕을 욕이 아닌것처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욕과 일본어가 합해진 친목모임은 이렇게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모인 모임이기에 멤버들은 일본 도쿄, 캐나다 토론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아마 인터넷이 발달했기 때문에 이런 세계적(?)인 모임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모임 존나 카와이는 특이한 점이 또 있다. 이 모임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지인의 소개로 가입한다는 것이다. 절대 공개적으로 회원을 받지 않고 지인의 소개로만 가입한다. 그 중에 열다섯 살인 '나'는 어느날부터 낚시가게 아저씨의 엉덩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보통 또래 이성에게 관심을 한창 가질 나이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낚시가게 아저씨의 엉덩이만 눈에 들어온다. 그런 비밀을 가지고 있다가 존나 카와이의 멤버인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라는 닉네임을 가진 멤버에게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룹내에서 가장 의문점이 많고 비밀스러운 멤버였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고 자신만의 표현을 찾기로 한다. 그래서 찾은 곳이 터키문화원인데....
'나'의 나이가 열다섯인 것은 어쩌면 이 이야기를 더욱 재밌고 흥미롭게 하는 것 같다. 세상 일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을 10대 시절, 자신의 고민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될 때 '나'와 주변의 이야기가 유머스럽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에겐 심각함보다 유머가 있는 소년의 행동이 귀엽게 보인다. 소년 '나'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만의 표현이 아닌 누군가와의 소통이다. 자신만의 표현을 하려면 누군가와 소통을 통해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소년만 찾아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소통의 부재라고 불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 아닐까. |
|
저자의 이름과 책 표지를 보면 착각하게 된다. 일본작가에 의해쓰여진 일본 소설..그러나 이 소설은 일본 소설이 아닌 한국소설이다. 작가의 20년 이야기 속에서 그동안 살아왔던 경험들을 녹여낸 첫 작품.조금은 서툴지만 작가의 인생과 생각..그리고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
작가의 이름으로 외국인이겠거니 생각해던 차이지만 표지 안장을 보고는 놀라웠다. 열다섯 살이면 중학교 2학년 정도인 소녀는 그야말로 가히 상상을 못할 정도로의 이런 은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부류를 기성세대는 무엇이라 판단하고 평가하게 소설의 내용이라기보다 주인공 소녀의 갈팡질팡한 마음의 변화를 캐치해 내는것이 내마음 나도 모르게~라는 노래처럼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는듯 말을 하고 |
|
터키어 수강일지 우마루내 저 작가의 이력을 보고 조금 놀랬다. [93년생]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게 이책을 만나고 나서의 나의 첫인상이다. [터키어 수강일지] 라는 제목에서 누구나 이런생각을 해볼 것이다. '터키 여행기인가?' , '어학용 도서인가?' 정답은 모두 틀렸다. 표지에도 나와있다시피 이 책은 장편 소설이다. 이미 이부분에서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충분하다고 본다. 대체 이책은 왜 이런 제목을 택한 것일까? 이것만으로도 이미 이 책을 들게될 이유가 되지 않을까? 터키하면 '형제의 나라' 라던지 재치있게 손님을 능욕하며 건네주는 '터키 아이스크림'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터키어 수강일지]라는 책을 받아들고 정말 이 책은 무얼 내게 알려주려는 것일까가 가장 의문이었다. 신인 작가라는 점도 흥미요소였다. 사실 제목과 내용은 일맥상통하긴하다. 실지로도 터키어를 수강하기 때문이다. 존나 카와이 라는 가입조건이 까다로운 인터넷 그룹의 멤버가 되는 주인공과 이 그룹에서 비인기인인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책을 통해 내가 얻은 느낌은 의외로 가네시로 가즈키의 [GO] 였다. 솔직히 말하면 둘은 전혀 다른 소설이다. 하지만 [터키어 수강일지]와 [GO]는 완독을 했을때 내가 느낀 감정이 똑같았다.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때문인건지 무언가 자전적인 느낌이 들었던 이유인건지는 모르겠으나 묘하게도 이 둘은 전혀 다르면서 느낌이 비슷했다. 오히려 이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만큼 기분 좋게 읽은 것이며,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신인 작가라는 것도 흥미요소라고 말했지만, 사실 걱정도 많이 했었다. 큰 재미를 못느낀다면 서평을 작성하는데에도 정말 진땀이 나기에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제발! 제발!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읽었는데 신인 작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술술 잘 읽히고 재미까지 담아냈다.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나버렸고 내 책장 잘보이는 위치에는 [터키어 수강일지]가 놓여져 있다. 무언가 뿌듯해지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고 이제 2번타자는 내 짝지가 될 예정이다. 몇일 전, 택배박스를 모아놓는 곳에서 포장을 뜯지 않은 택배를 발견했다. 그리고 아! 하면서 놀랬다. 너무나 뒤늦게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그냥 떨어졌구나 싶었는데, 온 가족이 택배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건지 이제서야 발견하여 너무나 뒤늦게 책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일단 먼저 제 불찰로 너무나 늦게 리뷰가 작성되어 '나무 옆 의자' 관계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글을 마무리하려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터키어 수강일지』는 신예작가인 우마루내의 데뷔작으로 누구에게도, 심지어 존카의 멤버들에게 조차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얻게 된 열다섯 살 소녀인 '나'의 자신만의 표현법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나는 존나 카와이(Jonna Kawaii)한 인터넷 그룹의 멤버로 이 그룹은 가입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일종의 친목모임이다. 은어 같은 발음이 때론 욕 같기도 한데 일명 '정말 귀여운 모임'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처럼 느껴진다.
줄여서 존카, 영어로는 JK라고도 하는 이 그룹의 본거지는 부산으로 그외에도 도쿄나 토론토, 쿨알라룸푸르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거점을 두고 있는데 글로벌한 조직이니만큼 시차가 있어 그룹은 대체적으로 24시간 깨어있다.
다만, 본거지가 한국이니 공용어는 당연히 한국어인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그룹인 셈이다. 나는 친구들의 추천으로 존카에 가입한 경우로 내가 이곳에 가입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또래의 문화에 끼지 못하면 어울리지 못하고 그러면 장차 자연스레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생활하고 이는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등의 실로 심각한 일로 번질수도 있어서 결국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수월해 존카에 들어왔다.
마치 비밀 사교클럽처럼 지인 추천제로 가입해 자신의 소개글도 남겨야 하는데 그곳에서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라는 닉네임의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인물로 평가하는 존재다.
그러던 나는 15년 인생에서 가장 큰 재앙을 만나게 되는데 등교하던 중 낚시가게 앞에서 반쯤 졸린 눈으로 먼지를 쓸고 있는 주인 아저씨를 보게 되는데 그때 0.5센티미터 정도의 엉덩이 구멍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아저씨이 엉덩이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되면서 나는 함께 어울리는 존카 멤버이자 친구들에게조차 말할 수도 없고 이해받지도 못할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분히 불온해 보이는 설정인데 묘하게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한데 결국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그 주인공처럼 너무나 답답했던 나머지 나는 존카의 멤버이자 자신이 평소 좋지 않게 생각했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에게 털어놓게 되고 이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도 그와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기에 곧 말한 행동을 후회하게 되지만 오히려 그는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개인 메시지를 보내오게 되는데...
진정한 이해와 친목을 도모하는 그룹이라기 보다는 존재와 가입유무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평가되는 듯한 곳에서 나는 모두가 등한시했던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로 터키어 수강을 하러 간 곳에서 만나게 되고 온라인 상의 인물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점차 존카로 표현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표현을 발견해가는 상당히 독특하지만 그래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
![]() 말하고 싶은 것의 말할 수 없음에 대하여 책의 제목만 보면 터키어를 수강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책 같지만 책의 첫장을 넘겨보면서 그 누구에게도 시원하게 말 하지 못할 고민을 안고 사는 우리 주변의 흔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일상에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 현상들은 제각각 이름을 달고 있으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문제도 중2병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 사회의 한 현상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하고 있다. 각각의 현상에 이름을 다는 것은 인식하기 좋으나 그 이름이 많다는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이 많고 그에 따라 인식하고 있어야 할 이름이 많다는 얘기인데, 여러가지로 씁쓸해 지는 대목이다. 각설하고, <터키어 수강일지>는 중2의 여학생이 자신의 내면에서 겪는 여러가지 갈등과 외부의 마찰을 중학생다운 심리묘사와, 어느 편에서는 성숙하다고 볼 수 있으며 어느 편에서는 미숙하다고도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흔한 사춘기 소녀의 일기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은 낚시가게 아저씨 엉덩이에서 시작됐다! 보통의 여중생들이라면 남자 아이돌이나 또래의 남중생 또는 잘생긴 영화배우 등 훤칠한 외모 또는 또래들 사이의 인지도가 높은 이성을 좋아하게 마련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성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독특하다. 제법 긴 등교하교길을 오가며 중간에 있는 낚시가게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중년 아저씨의 삐져나온 허름한 팬티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으니 분명 또래의 취향과는 완전히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이것 뿐 아니라 이태원에서 케밥을 파는 동성의 터키인에게 빠져 매일같이 그 곳에 들려 케밥을 사먹을 정도니 주인공 소녀의 독특한 취향은 비단 중년의 아저씨에게서만 찾아볼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은 이러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이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기 자신보다 현재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인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싶은 갈망이 있지만 그렇게 행동했을 때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내쳐질 것을 두려워 하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한 내적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존나 카와이한 그룹 그녀가 속한 그룹은 그녀의 친구들만이 아니다. 그녀의 친구들은 익명성이 보장되고 그들만의 소통이 생생하게 이루어지는 그룹 ‘존나 카와이한 그룹’의 일원이며 주인공 소녀 또한 내키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말 못할 고민을 우연한 기회에 왕따아닌 왕따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에게 과감하게 털어놓게 되고 그 결과 그가 그녀의 비밀을 폭로하면 어찌할까 하는 또 다른 고민을 안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는 다르게 그는 그녀가 힘들어 하는 표현의 문제를 잘 짚어주는 조언자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가벼운 것 같지만 결코 가볍지 읂은 그의 존재가 그녀가 간직한 그녀의 은밀한 비밀을 단순히 은폐된 것이 아닌 한정적으로 공유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왜 하필 터키어인가? 총3부로 구성된 소설은 중반부 부터 이태원 케밥녀와의 인연으로 주인공이 터키문화원에서 터키어를 수강하게 되는 이야기로 급격히 전환된다. 전반부에서 일반적인 환경 즉, 친구들과 학교생활 그리고 일상적인 일들을 이끌어 왔다면 중후반부 부터는 색다른 환경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고 많은 외국어 중 왜 터키어인지는 작가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지만 주인공이 스스로의 감정과 정서를 이야힉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표현을 찾는 과정에 우연히 만난 것이 터키어일 뿐일 것이다. “그런 적 있지 않아? 분명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못 알아듣고 있다는 느낌이 든 적?”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가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그가 책 속에서 설명했듯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도 제각각 자신만의 표현 방법이 있다. 우리는 애둘러 표준화된 방식을 사용하여 서로 잘 소통하고 있다고 믿지만 과연 우리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