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자꾸자꾸 잊어버리는 일...엄마도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꿈같은 로맨스를 꿈꾸던 소녀였던 시절이...파티에 잘 차려입고 나가 으스대고 싶어하던 청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p201...그리고 그제야 나는 엄마도 내 나이 때 화장을 하고 시내에 나가 춤을 추고 싶어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제 막 대학에 진학하게 된 '제스'는 그저 상처받기 쉬운 '여자애'에 불과하다.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게 된 제스를 위해 열린 축하파티에서 우연히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되는데... p23...그제야 엄마는 나를 쳐다봤다. 엄마의 눈빛은 내가 이 모든 비밀 이야기와 모든 사랑 이야기, 그리고 이 모든 무시무시한 이야기들까지 함께 나눈 뒤에야 집을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빅뱅과 소녀시대를 동경하듯이, 서태지에 열광했고...남진, 나훈아에 눈물 흘리는것은 세대간을 넘어 언제나 늘 '젊음'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다. 그 시절이 아니면 결코 다시 누릴 수 없는 자유스러운 감정들... 어쩌면 우리 할머니 세대는 요즘의 우리 아이들 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 오신것 같은데도 우린 자꾸 현재의 우리만이 꿈과 사랑을 가진것처럼 잘난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165...이따금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남 얘기와 남 걱정으로 보낸다는 게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짐작으론, 그들 삶에는 계속해서 되씹을 만큼 굉장한 사건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면, 한 가족의 역사를 속속들이 들여다 본 것처럼...아니, 나 역시 그들과 함께 가족의 한 사람이 된것처럼...가족을 잃은 아픔과 젊은 시절에 있음직한 사랑과 아픔들...그리고 추억들을 되새겨 보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극적이고 황홀한 순간을 선물해 주지만 옳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사랑을 선택할 수 도 있을 것이고...조금 뒤처지는 외모와 머리를 가졌지만 그저 순수하게 사랑이라는 감정만을 믿고 평생을 평범하게 살거라는것을 알면서도 편안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것이 옳고, 그른 선택이 될 수는 없다. 때론 실수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계속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p222...그의 모습은 점점 멀어졌고, 기차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어서 가자. 그것은 바로 내 어린 시절, 떠나가는 기차가 내게 늘 들려주던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리고 절대로, 결코, 두 번 다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못할 터였다. 뱀이 드디어 허물을 벗은 것이다.
오늘의 제스가 언젠간 엄마가, 먼 훗날엔 할머니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것이 바로 시간인것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것인지를...그리고 사랑이 단지 살과 살을 부비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었던 이야기이다. |
그들의 성장통,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속의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산다. 그것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아픔이기도 하고, 또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은밀한 비밀은 타인의 비밀과 만나게 될 때 위로되어 지고 세상과 소통되어 진다. 비밀의 조건이란 그렇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비밀은 왠지 덜 은밀하고, 덜 중요하게 느껴진다. 비밀 공유의 조건은 쌍방향간의 교환에서 시작되고, 그로 인한 응집성과 친밀감 생성은 비밀 공유의 묘미이다. 벌리도허티의 장편소설 「할머니의 연애시대」는 제스의 유학전날 온 가족이 모여 벌어진 고백 파티의 이야기이다. 저마다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놓음으로써, 제스네 가족의 응집력은 한층 강화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설령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가슴에 묻어둔 그늘진 이야기를 진실하게 털어 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스네 가족은 참으로 용감하고 현명한 사람들이며, 진실로 행복을 가꿀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가 다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부모님 몰래 축복받지 못한 결혼을 해야 했지만, 함께 꾸려나갈 삶의 약속이 있어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의 결혼을 표면적으로는 축복해주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두 사람 앞날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떠나는 오토바이 소리를 오랜 시간 말없이 듣고 있던 부모님의 모습에서, 자식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된 고백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쳐 제스의 사랑이야기로 끝이 난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공유되어지는 감정이라는 듯이 말이다. 제스는 스스로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부터 사랑의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자의식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결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더럽히지 않는다. 제스를 매의 먹이감으로 만드는 대신에, 지독하게 고통스럽고 그리운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남겨둠으로 제스를 한층 성숙시킨다. 이렇게 작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람의 마음은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때로는 참고 멈추는 법을 알아야하고, 그렇게 마음을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귀하고 소중한 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뤄야한다는 듯이. 그리고 그 사이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오빠 대니 이야기,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열렬하게 사랑한 루씨, 그리고 그 엇갈림 속에서 탄생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과 결혼, 백마탄 왕자님을 꿈꿨지만 성실한 사랑을 선택한 친할머니의 이야기, 비둘기 길들이기를 통해 마음을 열고 사랑의 소통을 나누는 아버지와 오빠 이야기, 여린 거인 길버트 할아버지의 사연이 있다. 이런 사연들은 그들을 성장시키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놓이게 한다. 여기에 나오는 사연들은 시대와 문화는 조금 다르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런 경험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아픔, 젊은 날의 어리석은 선택, 철없던 시절의 가벼운 행동, 가족의 가슴 아프고 찡한 사연 등은, 모습과 양상은 조금 다를지라도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성장통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다. 지금 막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이려고 연습중인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청춘이 란 이름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어 질것 같은 지금의 시기는 머뭇거림과 주저함 그리고 때론 실패까지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고 말이다. 청춘이기 때문에 실패마저도 미소 지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용기 낼 수 있으니 힘내라고 말이다. 힘들고 괴로워도, 지금의 아픔이 너무 크게 느껴지겠지만,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더라고. 언젠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웃을 날이 반듯이 찾아온다고,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살다보니 다 살아지고 이겨내 지더라고, 그러니 힘내라고 말이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건낸다. 조금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써, 성장통을 겪으며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젠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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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누군가가 시간을 보낼 일이 있으니 책을 빌려 달라며 이런 말을 했다. "간단한 책이 좋아요. 등장인물이 다섯 명이 넘으면 오늘은 싫어요."
그에게 이 책을 빌려주지 않기를 정말 잘 했다. 이 책은 특별한 주인공은 없지만, 일단 등장인물은 여러 명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중에 누구는 주인공이고 누구는 부수적 인물도 아니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그야말로 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 책의 서두는 제스라는 이름의 소녀가 "나"라고 지칭하면서 시작된다. 내일 집을 떠나 새로은 생활을 시작할 예정인 제스는 가벼운 파티를 위하여 외할아버지를 모시러 온다. 제스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앨버트 할아버지와 도로시 할머니, 외할아버지인 잭과 오빠 존, 그리고 제스의 가장 친한 친구 케이티다. 사연 많은 그들은 제스의 독립을 맞아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한다. 카톨릭 교도였던 아름다운 여인 브라이디와 개신교도인 잭의 어려운 결혼 과정, 가난한 집의 딸이었으나 신데렐라의 무도회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도로시와 어쩌면 동네 바보였을 지도 모르는 앨버트 할아버지와의 스토리만으로도 한 권의 소설이 나오고도 남음직했다. 멋진 외모를 가졌으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길버트의 방황 가득한 청춘의 슬픈 이야기와 못난이였지만 현명한 여자였던 루씨 크래그웰의 만남은 길버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군대에 가는 기차에서 만난 제니퍼의 언니 조씨는 길버트의 삶을 이끌어주었고 그들 사이에는 대니와 존, 제스라는 아이들이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아팠던 대니와의 슬프고도 힘겨운 삶과 이별은 조씨와 길버트 뿐 아니라 온 가족을 하나로 묶어놓았고, 아프고 힘들었던 만큼 제스와 존은 성장했다. 어찌보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제스와 케이티의 우정 이야기는 이 소설이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늘 즐겁고 발랄해 보이는 소녀들, 거리의 쓰레기만 보아도 웃음이 난다는 그들에게 아픔과 고통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함께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다 안다. 자기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가족들의 삶의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제스는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 충만함을 느꼈을 것이다. 제쓰의 불안을 치유할 의지처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제 어른의 길을 떠나는 딸에게 부모와 조부모의 삶의 이야기가 늘 돌아볼 어떤 든든함이 되어줄 것이니 말이다. 어른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소설책 한 권은 너끈히 나올 것이라는 말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너무도 평범하기만 하게 살지만, 그게 바로 또 가장 특별한 소설같은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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