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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여러예언가들이 큰족적을남겼고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 영향을끼친예언가와 예언서를이책에선소개하고있다 한국역사의 큰틀에서 이런유기적관계속의 모든걸포괄한 내용을담은책을찾기란쉽지않다 지은이가 사학자이며 그런사유로 역사의 세밀한조사와 재해석을통하여 분석한결과물에 대하여 그노고와 수고로움에 찬사를보낸다 이책에실린에언가와예언서들은 그다지낯설지않을수있다 하지만 우리가알고있던 예언가들의 잘못된상식과 빼어난 예언가들의 잘몰랐던부분과그들의본모습을 꼼꼼히다루었다는점에서 흥미롭고 상식을 뒤엎는의외의결과에 놀라지않을수없다 이책은 우리가 평소에알고있던 명예언가들의 실상을 차례로확인할수있는재미가 솔찬히있고 예언서에서 그시대의 사회의관계속에서 숨겨졌던 여러맥락을 찾고알아간다는점에서 새롭고 유쾌한 지적인 모험을 즐기고싶은사람들에게 권하고싶은책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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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예언가가 쓰는 것일까? 아니면 당시의 현실 상황이 그것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전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 생각은 후자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이책을 통해 고려시대 왕과 집권층이 예언서를 이용해 고려의 건국과 각종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집권층이 예언서를 거부하는 듯 했지만 야심가들은 예언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던 모습들도 찾을 수 있다. 예언을 통해 고려를 유지하고자 했던 사람들이나 예언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던 사람이나 모두 예언을 이용했음은 다를바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잘 들어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예언서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인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는 저자의 책 마무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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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역사에서 벗어난 진중하지 않은 약간의 가벼움과 재미로써 풀어낸 새로운 시각이다 단단하고 굳건한 역사읽기의 시각을 벗어나 가볍게 마치 미셀러니 읽듯 혹은 독서로써 휴식을 원하는 분께 권하고 싶다 더욱더 다양하고 참신한 발상의 소재로써 우리의 역사를 다루고 더욱 진취적인 시각의 역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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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역대 예언가들의 면모와 그들과 관련된 예언서를 중심으로 예언의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느냐를 실증(實證)한 전문학자의 연구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현전하는 모든 예언서와 그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실여부를 추적하고 이런 예언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 그 의미는 무엇인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도선대사(道詵大師)는 역사적인 얘깃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한 긍정적인 면과 함께 실로 한반도 풍수도참의 시조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통일을 이룩하도록 힘써 도왔고 <도선비결(道詵秘訣)>의 저자로도 알려졌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모든 예언의 출발점인 도선의 예언서가 모두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도선(827~898)은 우선 왕건 집안이 살던 송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얘기.(17~21쪽) 그는 선종(禪宗) 일파인 지리산 동리산문(桐裏山門)의 혜철(慧澈) 스님의 제자로, 전남 광양의 옥룡사에서 오랫동안 주석했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옥룡사에서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찌해서 송악까지 갔겠느냐는 것, 더군다나 후백제의 견훤과 아무런 마찰이 없었다는 것에 착안, 견훤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더군다나 후백제 건국 후 7년만인 898년에 입적하는데 이는 궁예의 태봉이 건국되기 3년전 이란 사실.
즉, 도선의 제자 경보(慶甫, 868~948)가 후백제의 견훤을 신앙적으로 지도하다가 왕건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역사기록(?)을 확인한 후 <고려사>의 도선관련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도선에 앞선 유명 지관들이 후삼국시대에 많이 활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선을 최초의 예언가라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얘기.
도선이 입적한 후 200년이 지나면 <도선송악명당기道詵松嶽明堂記>가 발견된다. 내용은 이런 것인데... -서강(예성강)가에 군자가 말을 몰고 있는 모양을 한 명당이 있다. 태조가 통일한 병신년(936)으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에 이곳에 건물(이궁)을 창건하라. 그러면 왕업이 연장될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도선의 후예임을 자처한 어느 술관이 바친 이 비결서는 고려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임금과 신하들은 이 비결을 믿고 부랴부랴 임시 궁궐을 지었다.(24~25쪽)
그로부터 고려의 중요한 예언서는 도선을 빙자하여 술관과 승려들에 의해 <도선기>, <도선답산가>, <삼각산 명당기>, <도선밀기>, <도선한도참기> 등을 발굴, 임금에게 바친다. 한마디로 고려는 풍수도참의 천국이었다. 조선시대도 이와 유사한데 무학대사를 풍수지리의 대가로 받들고 그 이름을 빌려 <도참기>, <무학비결> 등의 예언서가 180년 후 조선의 민중들 품에 나돌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는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이다. 토정은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렴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왔다. 이 책은 점괘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긴 토정이 그들을 점술의 늪에서 구출해내기 위해 창안한 새로운 점술서라는 얘기.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귀와 경고하는 글귀가 반반인 <토정비결>은 일종의 처세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얘기. 이로부터 토정을 빙자한 <토정가장결>이 조선 후기에 나돈다.
<정감록>의 핵심인 십승지설(十勝地說; 최고의 피란지)의 원류인 격암 남사고는 지금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다. <남사고 비결>, <남사고산수십승보길지지>의 저자로 알려진 격암은 현대에 <격암유록 格菴遺錄>을 남겼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위서(僞書)들이다. 구한말에 저잣거리에 나돈 <격암유록>은 <정감록>을 상당히 베껴 쓴 책인데 이 책으로 말미암아 수 많은 민중들이 일희일비 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격암유록>은 신종교 운동의 선교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등의 탄생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248쪽) 후대로 오면 <격암유록>은 더욱 맹위를 떨치는데 증산교나 대순진리회, 기독교 계통의 일부 단체들이 이 책을 인용해 세력 확대에 힘쓰고 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170쪽)
이 책에 나오진 않지만, 얼마전 <격암유록>이 1960년대 박장로의 신앙촌에서 만들어졌다는 새로운 고발물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매우 흥미진진한 얘기였다. <격암유록>이 발간된 시점이 구한말이든 1960년대든 관계없이 그것이 새로운 후천개벽의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이며 이 책을 통해 수많은 민중들이 후대에 대한 절실한 희망을 보았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내용이다.
한국 풍수의 특징은 국가 또는 왕조의 흥망을 풍수지리에 있다고 믿고 수도의 풍수를 유독 따진다는데 있다. 서울대 최창조 교수가 파주 교하를 통일한국의 수도예정지로 지목한 사실(이 책에서는 광해군 4년에 술관 이의신이 상소를 올려 한양을 버리고 천하제일 길지인 경기도 교하로 수도를 옮기자는 주장이 나온다.)이나 행정수도인 세종시를 인위적으로 계룡산 인근 도시에 건설하려는 계획(참여정부), 육해공 삼군 본부를 계룡산 인근의 계룡시로 모두 모은 것 등은 어느 것 하나 풍수를 도외시하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 후기에 탄생된 <정감록>은 이후 한국 근,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예언서로 주목받고 있다. 정씨성을 가진 진인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건설한다는 예언은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따리를 이고 들고 십승지를 찾아나서는 웃지못할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모든 예언서는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럴듯하게 가감되거나 윤색되어 세인들에게 유포된다. 민중들은 예언서에서 미래의 희망을 엿보기도 하고 현재의 필연을 추측해 보기도 한다.
무명의 대중이 두려움 속에서 그 시기의 역사를 바라본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과거의 일을 기록한 역사가 마치 미래에 전개될 사건을 예측한 예언처럼 꾸며졌다. 현재를 중심으로 역사(과거)와 예언(미래)은 이런 식으로 자리바꿈을 할 때가 적지 않다. 시간의 질서는 고무줄이나 다름없다. 이 전도된 시간의 흐름을 넘어설 때 우리는 예언서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중략...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잘 들어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예언서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 그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만을 한데 주워 담은 역사 말이다. 예언은 사실 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뜻밖에도 거기에는 집단의 역사적 기억이 집적되어 있다. <경주이선생가장결>에는 보통 사람들이 바라본 정치와 경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권력과 돈의 향방을 다진다. 일상의 관심은 잘 먹고(돈), 잘 사는(권력) 일에서 벗어날 때가 드물다.
-241~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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