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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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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시집을 구매하고 시를 읽으려 애쓰고 있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날이 갈수록 건조해지는 마음을 위해, 시를 읽고 있는 동안 잠시라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있노라면, 시에 취하게 되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하다. 특히나 비가 오는 날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라는 <수선화에게> 한 구절이 맴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그래서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진한 포옹을 하려 애쓰는게 아닌가 싶다. 정호승의 시집은 <슬픔이 기쁨에게> 이후로 참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10대의 끝, 20대 초반의 기억을 제외하면 어디 정호승의 시집뿐이겠는가. 포옹이라는 따뜻한 말과는 다르게 시집에 흐르는 기운은 쓸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고독이었다. 아니, 외로운 사람, 고독한 사람곁으로 다가서 그를 위로하려는 마음이다. 밤의 연못에 비친 아파트 창 너머로 한 소년이 방바닥에 앉아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나는 그 소년하고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나도 라면을 들고 천천히 밤의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 부레옥잠 들이 내 뒤를 따른다 꽃잎을 꼭 다물고 잠자던 수련도 뒤따라와 꽃을 피운다 (17 쪽, 밤의 연못 전문) 누구나 한 번쯤 그 소년, 소녀가 되었던 시절의 기억이 있으리라. 그럼에도 과거가 아닌 현재 만나게 되는 어린 소년을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화려한 도시속 소년은 친구로 인해 즐거운 파티를 연다. 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와 함께 활짝 핀 수련은 환하게 밤을 물들이니 이제 소년은 외롭지 않으리라. 집에 들어가도 나는 집이 없다 나는 집 없는 집에서 산다 냉장고가 내 아내고 세탁기가 내 딸이다 (64쪽, 집 없는 집의 일부) 문 없는 문을 연다 이제 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가야 한다 문 안에 있을 때는 늘 열려 있던 문이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쾅 닫히고 보이지 않 는다 그래도 문 없는 문의 문고리를 당긴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74쪽, 문 없는 문의 일부) 집으로 들어가는데 집이 없고, 문 없는 문을 열다니. 시인이 보기에 우리가 사는 집은 진짜가 아닌 집으로 느껴졌나 보다.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엄마가 있었던, 강아지 존이 반겨주던 집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구나.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도 없고, 존이라는 잡견도 없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도 없다. 집 없는 집에서 사는 우리네 모습이 한없이 쓸쓸하다. 정호승의 시는 유독 노랫말로 많이 쓰인 연유로 다른 시들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정호승의 시를 읽다 보니 저 멀리 작은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정호승을 좋아하던 친구, 문예창작을 공부하던 시절 정호승님이 오셔서 친필 사인을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던 친구. 그 후에 만났을 때 그 시집을 내게 건넸다. 자신의 이름으로 받은 정호승 시인의 사인이 담긴 책. 엉겹결에 받았지만, 친구가 자신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내주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시를 선물해서 행복하고, 시를 선물받고 행복해 하는 이가 점점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시가 풍요로운 세상이 되어 나같이 의도적으로 시를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가 우리 곁에 머무르면 좋겠다. ** 이 시집을 선물해주신 소중한 당신, 마음으로 당신을 포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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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포옹에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시를 품고 산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시를 읽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달리면서도 읽는다. 강의 사이에도 짬짬이 쪼개어 읽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쿠키를 아작거리면서도, 하릴없이 빈둥거리면서도 시를 읽는다. 기다리기 위해 시를 읽고, 보내기위해 시를 읽는다. 무엇을 그리워하기 위해서 시를 읽으며, 그립기 때문에 시를 읽고, 때론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읽기도 한다. 무엇을 품기 위해 시를 읽고, 가슴에 삭히기 위해서도 시를 읽는다. 세상 곳곳이 시 아닌 곳이 없으며, 마음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나는 시 앞에서는 ‘읽는다.’는 표현이 거북하여, ‘시와 마음을 나눈다.’라곤 하는데, 오늘은 ‘시를 품는다.’라고 해야겠다. 삶의 너무 많은 구멍들을 메우기 위해, 시를 가슴에 품고, 시가 되는 세상과 포옹한다. 정호승시인의 9번째 시집이 나왔다. 그의 시집 사이사이에 수많은 시인과 시들이 내 마음을 지나갔지만, 정호승은 이름만으로도 내 마음을 훔치는 시인이라면 조금 오버일까? 작년 겨울은 그가 가려 뽑은 시들로 흐뭇했던, <이 시를 가슴에 품는다.> 덕분에 따스했다. 쓸쓸함이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은 정호승의 시들 덕분에 위로받을 듯 하다. 시에게 살포시 안긴다. 흙 묻은 감자를 씻을 때는 하나하나씩 따로 씻지 않고 한꺼번에 다 같이 씻는다 물을 가득 채운 통 속에 감자를 전부 다 넣고 팔로 힘껏 저으면 감자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면서 흙이 씻겨나간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도 흙 묻은 감자가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과 같다 나는 오늘도 물을 가득 채운 통 속에 내 죄의 감자를 한꺼번에 다 집어넣고 씻는다 내 사랑에 묻어 있는 죄의 흙을 제대로 씻기 위해서는 죄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게 해야 한다 흙 묻은 감자처럼 서로의 죄에 묻은 흙을 깨끗하게 씻어주기 위해서는 - 감자를 씻으며 (p.46)- 감자하나도 허투루 씻겨 버리지 않는 시인의 나이쯤 되면, 저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까? 짐작할 수는 있으나, 온전히 느끼기에 나는 아직 어린가보다. “제대로 씻기 위해서는 죄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게 해야 한다.” 시인으로써가 아닌,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온 인생선배가 해주는 말이다. 인생의 맛은 고사하고, 인생의 간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이의 내가, 이 시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는가? 다만, 열심히 몸 부딪히며 살아갈 수 밖에.
등대는 인간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설악을 등지고 방파제에 앉아 허겁지겁 활어회를 먹는 인간들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외롭고 쓸쓸한 갈매기들에게 소주 한잔 건네지 않고 저 혼자 술 취해 비틀거리는 인간들이 마냥 미웠던 것은 아니다 바다의 상처가 섬이 된 줄 모르고 해가 지도록 바닷가에 앉아 모래를 헤아리다가 결국 모래가 되어버린 인간들이 결코 안타까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평생 감동 없는 밥을 먹는 인간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을 뿐이다 속초항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어등을 끄고 코를 골며 자는 저 지친 오징어잡이 배들을 설악으로 끌고 가 잠들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오징어와 명태와 고등어와 또 넙치들이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정히 불을 밝히다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고요히 늙어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진정으로 살아보지도 않은 채 죽어간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등대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인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 무인등대 (p.52~53) - 등대는 한줄기 가냘픈 빛으로 넓은 밤바다를 품는다. 인간세상과 떨어져 존재하는 등대는 인간이 싫어서 외로움과 고독을 자청한 것이 아니다. 깜빡…깜빡… 등대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빛으로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인간사에 뒤엉켜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깨달음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파도가 들려주고 갈매기가 물어온 것들에 대해, 하늘이 넌지시 알려준 것들, 인간사의 그 어리석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일으켜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할지라도 - 넘어짐에 대하여 中 (p.61)- 아직 뜸이 들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시인이 이야기 한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아직 20대의 설익은 밥에게, 찰진 밥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넘어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기다림이 있고, 이뤄낼 목표가 있는 지금의 시간은 분명 행복이며 축복이라고. 이상하게도 대중성을 확보한 작가들 보다는 조금 가려진채 빛나는 작가들에게 더 정이 간다. 나에게만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은밀함 때문일까? 그렇다고 유명세를 타는 작가들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뭐랄까, 좋아함과 애틋함의 차이랄까? 남들도 다 좋아하고 인정하는 작가들보다는 좀더 사랑에 목마른 작가들에게 애틋함이 더 느껴지는 것 같다. 서랍 속에 감춰놓고 몰래 몰래 아껴보는 연애편지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정호승 시인에게는 주제 넘는 애틋한 정을 보낸다. 정호승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인이다. 그만의 독특한 언어세계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그의 시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만의 시인이라 착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대중성을 확보한 시인에게 이토록 애틋함이 실리는 것은, 아마도 그의 쉽고 편한 서정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어떤 평도 주관적 해석도 붙이지 않으란다. ‘한쪽 시력을 잃고, 나팔꽃 씨를 환약으로 착각하여 드시고는,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신다는 아버지’(나팔꽃 :p.11)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마음에 닿는 시인의 얼굴이다. 그의 미소가 내 마음에 나팔꽃으로 활짝 피어난다. 따스한 포옹에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조용히 시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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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 사기가 그 서너 배 값을 하는 경영서 한 권 사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시집 한 권 읽기가 두터운 인문서 읽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600쪽이 넘는 책도 3~4일이면 족하지만 얇은 시집 한 권 읽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립니다. 시 한 편 한 편이 정거장입니다. 시 읽기는 마치 가다 서고 가다 서야만 하는 정거장 많은 시골길 같습니다. 다른 책에 비해 시집은 거의 사지도 읽지도 않는 편인데 오늘 보니 정호승의 시집은 그래도 몇 권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샀던 것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인데 그게 벌써 10년 전입니다. ![]()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 中에서 문득 10년 전의 제 모습을 그려 봅니다. 그 때 저는 어느 회사에서 나의 몸을 불사르고 있었습니다. 2년 여를 휴일 없이 일을 했고 거개가 별을 보고 퇴근하던 때였습니다.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무작정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우연히 회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눈은 작고 간만 유난히 컸던 저는 자본금 7억 원을 1년 만에 날려버렸고, 그제서야 돌아오는 어음을 막고 회사를 살려보려 총판을 돌며 돈을 구걸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장이라는 직업은 나에게 과분했습니다. 너무나 일찍 주어진 기회를 그렇게 너무 일찍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과욕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그 이후로도 줄곧 좋은 사람을 만나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넘어지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져도 좋다고 생각하면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제비꽃이 핀 강둑을 걸어간다 (...)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일으켜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세운다 할지라도 - <넘어짐에 대하여> 中에서
기러기 한 마리 툭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은 하늘에 빈틈이 있기 때문이다. - <빈틈> 전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 <부러짐에 대하여> 中에서
내가 마시지 않으면 안되는 잔이 있으면 내가 마셔라 (...)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 -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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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시를 읽으면 겨울 냄새가 난다. 겨울 향기보다 겨울 냄새라고 말하고 싶다. 추운 날을 담고 있는 겨울 시에서 겨울 냄새를 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으나 봄밤에도 여름날을 읽어도 겨울 냄새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춥다.
지난 가을에 산 책이다. 펼쳤다가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가 하면서 한 계절을 건넜다. 그때, 그 가을에 못 느꼈던 추위가 막상 겨울이 되니 절실해진다.
이 시집에는 강도 하늘도 들판도, 사람의 마음까지도 종종 얼어 있다. 그런데 그게 꽁꽁 언 얼음이 아니다. 살얼음이다. 살풋 얼어서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추위. 그래서 더 추운 게 아닌지. 약하고 여린 것들의 목소리가 아슬아슬하게 추위에 떨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책에서 특별히 내 마음을 잡은 시는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이다.
.......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분노하지 말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침밥을 준비하라 어떤 이의 운명 앞에서는 신도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있다 내가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잔이 있으면 내가 마셔라 꽃의 향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듯 바람이 나와 함께 잠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일에 감사하는 일일 뿐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무엇을 이루려고 뛰어가지 마라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86-87쪽)
작가가 이 시를 들려준 그 개가 부럽다. 이렇게 엿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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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간만에 읽는 시집이다. 나름대로 책을 많이,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시집을 읽어본 것이 벌써 까마득한 옛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무심히 보내온 시간 속에서도 끝없이 시집은 발매되어왔고, 간만에 나의 손에도 한 권이 잡혔다. 창비시선의 279번째인 정호승 시인의 포옹. 벌써 279번째라니 야속하지도 않나보다. 내 기억 속의 정호승 시인은 굉장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감성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괴로운(?) 소재들을 참 잘도 쓰던 그런 시인이다. 그의 시집인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같은 경우에도 나도 모르게 시집을 놓아버렸달까. 그게 '똥'이나 '피'같은 소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시 속에 담겨진 지독한 외로움과 깊은 고뇌에 질려버렸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의 아홉번째 시집인 '포옹'을 잡고서도 그런 부분에 꽤 고민을 했었다. 책을 놓아버린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하지만 하나하나의 시를 읽어가면서 조금 놀랐다. 그 의 굉장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런 감성은 그대로인 채, 과거의 어떤 충격적인, 그래서 너무 처절한 그런 느낌은 많이 절제되어 있었다. 과한 감성을 안으로 갈무리하고,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의 기저에 담겨져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간만의 시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분명 외로움과 고통이 수반된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그런 우울한 심상 속에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반대로 좀 더 따뜻한 아름다움을 그려낸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바람. 책 전반을 통해 실컷 우울한 아름다움을 만끽한 후 느낄만한 그런 바람. 좀 더 따뜻한 '정호승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집을 한 권 읽고 싶어진다는 그런 바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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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를 읽는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채 무언가에 쫓기듯 살다 보니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글이라 하는 것을 통해 많은 이들을 부자가 되길 꿈꾸고, 실제로도 경제적인 부유함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수록한 책들이 각광받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겉모습의 번지르르함에 어울리는 마음의 여유까지 선사해주는 책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재, 시를 읽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역설적이다.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이라 하는 게 필요하니까. 천천히 읽을수록 시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우리를 받아들여줄 테니까. 충분한 시간을 시를 읽는 데 할애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시인이 시를 적으며 젖어 들었을 감상에는 바짝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시로부터 내가 따스함을 느끼는 까닭은 시집의 제목이 ‘포옹’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인 역시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렇듯 그 역시 세상의 삭막함에 대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보다 뛰어나야만 하는 약육강식의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좌절을 하는지… 더구나 민감한 감수성을 지녔을 시인으로서는 아픔이 더할 것이다. 그의 시 속 세상에는 균열이 있다. 그 갈라진 틈으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현실은 차가움 그 자체이다. 날지 못해 오로지 푸드득 소리만 내는 새, 이미 식어버린 기러기 한 마리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돌멩이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우리가 느끼는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끌어안음으로써 저자는 차가움의 이면에 놓인 따스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똥을 누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행위마저도 힘겨워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그 나이, 굽은 못 마냥 굳어버린 몸, 나날이 늙어 보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우린 두려움을 느낀다. 소중한 이를 잃을 것이라는, 우리 역시 그렇게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하지만 정작 늙음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당신들은,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며 웃으신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님을 시인은 말하고 있었다. 토마토를 만지면서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매일 입어온 옷이 사실은 수의였다고 말함으로써 저자는 차가운 영역에 있던 죽음을 조금 더 밝은 곳으로 끌고 온다. 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사는 이들이 이 땅엔 얼마나 많은지… 아직은 이십 대, 인생을 논하기에 내 삶은 아직 덜 여물었다.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라는 시를 읽으며 나는 삼십 대, 사십 대 혹은 그 이상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차가움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그래서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은 그 맛을 알 법한 나이가 되어 더더욱 따스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난 시인이 노래한 세상의 따스함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