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시詩를 만나는 일은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내면과 만나는 일이다. 일년에 몇 권씩이라도 시집을 꼭 읽겠다 해놓고도 늘 다른 소설들에 밀리곤 했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시인의 신간 시집이 나오면 구입하고는 한다. 다만 그게 너무 가끔이어서 문제긴 하지만. 김도언 작가가 시인들을 만나 인터뷰한 글을 모은 이 책은 다시금 시를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예스24 채널예스에서 작가가 시인들을 인터뷰한 글들을 가끔씩 읽고는 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나오면 반가움에 읽었고, 잘 모르는 시인이 나오면 호기심에 찾아 읽었다. 연재글을 모은 김도언 작가의 산문을 읽으니 좋았다. 그동안 시를 읽지 않은 나에게 자극제가 되어준것도 좋았고, 시집으로 만나보지 않은 시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다.
김도언이 만난 시인들은 총 15명이다. 어느 한 시대에 활동한 시인들이 아닌 197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인들을 만났다. 그가 만난 시인들은 김정환, 황인숙, 이문재,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권혁웅, 김이듬, 문태준, 안현미, 김경주, 서효인, 황인찬이다.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 시를 쓰게 된 배경이라던가 시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시인들의 생각과 앞으로의 방향,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산문을 읽는 우리들은 시인이 가진 삶의 태도등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시에서 다 배웠다. 내가 웃는 거, 우는 거, 말하는 거, 화내는 거, 전부 다 시가 가르쳐준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든거예요. 그래서 시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겠구나 하고 다시 시를 썼던 것 같아요. (166~167페이지, 시인 허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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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도 일상을 살아가다가 시 때문에 울고 웃는다는 걸 깨닫구나. 우리가 책을 읽으며 나를 들여다보듯, 그들도 시가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한다는 것이다. 시가 없으면 안되겠다는.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시집을 내도 그들 마음속에서 늘 시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릇 시인이라고 하는 존재는 산을 만나면 산을 쓰고, 물을 만나면 물을 쓰고, 여자를 만나면 여자를 쓰고, 개를 만나면 개를 쓰는 거다. 시인이 난 꼭 이렇게 써야지, 하는 좌표가 어디 있어 거기에 시가 있으면 그걸 옮겨 적는 건데. (192페이지, 시인 류근 편)
한때 나도 문학소녀인 때가 있었는데. 시를 썼던 때가 있었는데. 시인들의 거의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년이었고, 문학 분야의 다른 어떤 것보다 시를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시가 내게로 왔다'라고 말한 파블로 네루다처럼, 시가 시인들에게로 온 이야기를 듣는 것은 감동이었다.
저한테 시를 쓰면서 가장 설레는 지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시를 쓰는 순간 어딘가를 건너가고 있는 느낌이 드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극을 쓰거나 스토리를 쓰는 작업을 할때는 뭔가를 채워간다는 느낌이 강한데, 시를 쓸 때는 내가 모르는 어딘가를 건너가는 느낌이 있어요. 그 운동성. 그래서 저는 독자가 시집을 읽을 때도 내가 건너가는 느낌 그대로 읽는 게 아니라 그 독자도 어딘가로 잠시나마, 그게 아무리 어려운 시집이라도, 잠시나마 다른 곳에 건너갔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304~306페이지, 시인 김경주 편)
김도언은 15명의 시인들을 만나며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다정하게 질문들을 건넸다. 그의 문장들을 읽으며 그의 산문의 매력에 다시한번 빠졌다. 나는 김도언의 시인들을 인터뷰한 산문집을 읽고는 구입해서 보아야 할 시집들의 목록을 적었다. 아, 다시 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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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여진 다양한 형식의 글들 가운데 내가 유독 평을 남기고 싶지 않은 장르가 바로 시다. 비평이란 게 의도치 않게 예리한 메스와 침탈적인 내시경을 들여다대는 작태를 연출하게 되는 만큼, 시라는 한 송이 꽃이 내 경솔한 비평에 꺽이거나 사그러들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 대신에 시인이 직접 이야기하는 시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기 시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남의 시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 물론 진짜 타고난 시인의 이야기라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보고 싶다. 내용과 소재가 어떠하든 말이다. 내가 유독 만나고픈 시인들은 우리 시단의 전설적인 분들이다. 모두 타임슬립을 해서라도 만나보고픈 분들인데, 김소월, 윤동주, 백석, 서정주 같은 시인들이다. 소설가 출신의 시인 김도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세속도시의 시인들』(위즈덤하우스, 2016)에서 살아 숨쉬는 시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육성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등을 대신 전해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저자가 만나보고 싶었던 시인들은 몇가지 기준이 있었다. 먼저 개성적인 스타일이 농후한 시인이다. 다음은 자유와 용서의 테마에 충실한 시인들이다. 마지막으로, 텍스트의 바깥에서조차 문제적 삶을 살고 있는 시인들다. 이런 기준에 부합되는 열 다섯 명의 시인들이 등장하는데, 김정환, 황인숙, 이문재,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권혁웅, 김이듬, 문태준, 안형미, 김경주, 서효인, 황인찬 등이다. 그리고 인터뷰 장소로 삼은 곳은 시인의 집, 연희문학촌 도서관, 도심 카페, 대학교 교정, 주점, 근무처 사무실, 강의실, 어항을 낀 바다 등 다양하다. 열다섯 명의 시인들은 시를 포함한 문학에 대한 다양한 태도와 이념성을 선보이고 무엇보다도 시의 다성적인 목소리가 가진 가치들에 방점을 찍는다. 예컨대 일번 타자로 등장하는 시인 김정환은 문학의 궁극적인 존재이유 가운데 하나를 '공적인 죽음'의 의미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시인다운 시인의 정체성을 서정성이 아니라 정치성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보기에 80년대 등단한 문인들이 스스로를 규정지었던 그런 인문주의적 지식인의 초상이 바로 이런 파르티잔으로서의 글쟁이가 아닐까 싶다. "시인 김정환은 공적인 죽음의 의미를 묻는 '인문주의적 파르티잔'이다. 인문과 예술과 문학의 모험을 감행하며 통합된 세계의 회복과 그 가능성을 인민에게 보급하는 유격대원이다. 인민은 파르티잔을 소비하지만, 이 파르티잔은 놀라운 회복 능력으로 언제나 인민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소속되어 있으며, 자신의 명령과 요구에만 복종한다."(40쪽) |
한 때는 詩에 빠져서 詩 습작을 짓는다고 되지도 않은 글을 끄적였던 때가 있었다. 90년대는 문학적 향취가 흘러서 詩도 제대로 대접받는 시대였다.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워낙 좋아해서 들고 다니며 읽었던 적도 있다. 마치 헌책방이 밀집된 곳에 들어가 보물을 찾듯 기웃거리던 낭만이 남아있었다. 사실 <세속 도시의 시인들>이라는 이름의 인터뷰집을 읽으면서도 문학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인문학은 떠오르는데 비해 詩는 예전만 못해서 배고픔이 향수된걸까? 15인의 시집 중 이름이라도 들어본 시인은 황인숙, 류근 정도에 불과한데도 솔직하게 인터뷰를 해준 김정환 시인부터 그들이 성취한 문학의 열매를 얻고 싶었다. 기자 출신의 소설가인 김도언 씨가 직접 이들을 만나 나눈 대화들은 흥미로웠다. 어쩌면 한국 詩문학의 황금기를 경험한 세대들이거나 그 열매를 따먹은 경험이 있는 시인들이 아닌가? 근데 詩만으로는 먹고 사는데 문제가 있는지 번역 일도 겸하고 교수로서 재직을 해야 그나마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 같다. 시인이라고 해서 별종이거나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그들은 문학적 도구로 詩를 짓고 표현을 해낼 뿐이다. 음율의 미학이라고 하는 詩가 가진 위치는 대단히 높았다. 아무나 막 짓는다고 詩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 짧은 행간에 함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詩가 가진 매력은 여러 번 꼽씹는데 있다. 김도언 인터뷰집인 <세속 도시의 시인들>은 제도권 속으로 편입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과 시인으로서 걸어갈 미래에 대해 묻는 작업이다. 시 한 편의 낭만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한 언제든 살아나 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믿는다. 시는 낭송을 하면 더 그 안에 깊은 의미가 전해져 온다. 그래서 좋은 詩는 세대를 지나 구전처럼 읊조리게 되는 것 같다. 오랜만에 탁 트이는 기분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편견도 없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보기 좋다. 우리도 그렇듯 각자 다른 시선과 생각이 존재하며 문학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한다. 세속 도시라는 말을 들으니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도시와 괴리감이 느껴지는 시인. 고결하고 투쟁적이어야 할 시인들. 이 책은 산문집으로서나 문학 대담집으로서도 훌륭한 책이다. 문학을 사랑하고 독서가로서 많은 책을 읽는 한 사람이지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해왔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으로 체화되지도 못했고 책에서 얻은 생각을 투영시키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난 시인들의 말 속에서 근본적으로 문학의 본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에 대해 근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렵게 생각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
시를 통해 세상을 보는 각기 다른 시각 나와는 다른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언어로 다른 감성을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내게 있어 이렇게 특별한 사람은 바로 시인이다. 우리나라 시인의 숫자가 3만을 넘어선다고 해도 여전히 그 특별함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믿음에는 전재되는 것이 있다. 시인이 시인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확실하게 정립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아무나 시인으로 불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시인과의 만남은 시를 통하는 것이 맞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어를 통해 세상과 나눈 감정과 의지를 담은 시 속에 시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를 이해하는 정도는 시를 읽는 내 감정과 의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인이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정과 의지를 밝히는 기회를 만난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도언의 ‘세속 도시의 시인들’은 무척이나 반갑고 의미 있는 기회가 된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화이부동을 실천하는 태도 속에서 만들어진 시인의 스타일"이 있는 시인을 선별하여 김도언이 시인들을 만났다. “편애를 무릅쓰고 현 단계 우리 시단을 대표한다고 믿는 시인을 만나 삶의 진부함에 맞서는 열다섯의 다른 시선과 다른 태도를 담았다.”고 한다. 김도언의 특별한 선정기준에 의해 만난 시인으로는 1950년대생 시인(김정환, 황인숙, 이문재)부터 1960년대(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권혁웅, 김이듬), 1970년대(문태준, 안현미, 김경주), 1980년대생(서효인 황인찬) 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인 열다섯 명이다. 김도언은 이 시인들을 만나면서 궁금한 것을 돌직구로 물어보는 화법을 사용한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만나기도 하지만 시인에게 궁금한 점을 풀어가는 확실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런 대화를 통해 각 시인들에 대한 상징적 문장은 시인을 대표하는 인상으로 남는다.‘이문재 : 불가능한 것과 대치하기, 분노와 체념의 태도’, ‘김요일 : 보고 듣는자, 퇴폐에 거하다’, ‘류 근 : 도취, 통속과 초월의 시학’, ‘김이듬 : 건강한 백치의 관능과 용서’, ‘안현미 : 고아의 균형과 고독한 여제사장’등과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의 마음과 마지막 장을 닫을 때의 마음이 사뭇 다르다. 상상했던 것이 맞았거나 의의의 발견을 했거나와 같은 긍정적 마음보다는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시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은 갈증과 더불어 인텨뷰를 진행하고 이를 글로 남긴 김도언의 난해하고 현학적인 문장도 한 몫 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보고서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겨우 짐작만 할 뿐인 문장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세속 도시에서 일반인들과 별 다름 없는 일상을 살면서도 시인의 독특한 삼ㄹ을 살아가는 시인의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시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의 애쓴 수고로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
'시인'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어려운 현실 속에 고뇌에 찬 모습. '시'에 담긴 의미는 항상 사회에 대한 저항적인 의미. 이는 '시'를 수능을 위해 배운 것들이 전부였기에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라는 장르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그 매력에 매혹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이 책. 한국 시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15명의 시인 이야기 특히나 눈길을 사로잡은 문구 삶의 진부함에 맞서는 15개의 다른 시선, 다른 태도 15명의 시인들이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있기에 더 새롭게 느껴질 것 같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15명의 시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정환 / 황인숙 / 이문재 / 김요일 / 성윤석 / 이수명 / 허연 / 류근 / 권혁웅 / 김이듬 / 문태준 / 안현미 / 김경주 / 서효인 / 황인찬 이 중에 아는 시인이라곤 '서효인'이었습니다. 그를 알게 된 것도 독서프로그램을 통해서였기에 저의 문외한적인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책에 나온 시인들의 모습은 각자의 개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다양한 단편집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읽는내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스타일을 고이 간직하고자 노력했다는 '김도언' 작가. 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간 시인에게, 그 명백한 증좌를 가진 이들에게 끌렸다. 이를테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화이부동을 실천하는 태도 속에서 만들어진 시인의 스타일에 매혹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또한 나는 가급적 텍스트의 바깥에서조차 문제적 삶을 살고 있는 시인들을 만나고자 했다. 텍스트의 환영에 갇힌 문학주의자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부단한 모욕과 쟁투를 벌이면서 삶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시인을 우선적인 인터뷰 대상으로 고려했다. 그의 노력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달되어서 시인의 목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시인 '류근'씨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쓴 시가 대체적으로 엄살이 심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어. 그럼 시한테 가서 엄살을 부리지, 내가 누구한테 가서 엄살을 부려야 해? 시에 가서 엄살 부리고, 화해도 하고, 용서도 하는거지. 시인은 시한테 할 말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누구도 비난할 이유가 없어. 내 시에 대해 '감성팔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시한테 가서 엄살을 부렸을 뿐이야. 그게 나한테는 절실하니까. 시한테 가서 울고, 시한테 가서 하소연을 하고. - page 197 그가 얘기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우리가 시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또한 '서효인'씨의 인터뷰에선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순간적인 재치나 당시의 기획에 기대는 거 말고 시 자체로 생명력이 있는 걸 쓰고 싶어요. 계속 방법을 모색 중이고요. 그 과정에서 고민이 많아요. - page 332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여 독자들에게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담백하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가 그리 날카롭게 다가오지 않았었고 오랜 여운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시인들은 저마다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그저 문장들로만 정리되어 있었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김도언'작가였기에, 인터뷰집이었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알게 된 작가들의 작품이 궁금하였습니다. 작품 속에 담겨있을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볼까 합니다. |
‘세속’이라는 단어가 시인과 만나니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탐욕스럽고, 주어지는 현실을 그대로 순응하려는 ‘세속’이 아니라, 삶의 적나라한 면까지 들여다보며 자신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속세’의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둘은 같은 의미지만 뒷말이 종교적 성격이 강해서 끊임없는 번뇌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행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인의 삶은 ‘사색’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오히려 노동과 생활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문학의 깊이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 그런지 주고받는 대화가 그윽하다. 그들만의 향기를 지녔다고 표현해야 할지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 특유의 담담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시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상함보다도 생활인으로서 풍기는 깊은 고뇌와 생각들이 삶의 무게를 진하게 담고 있다. 타락한 시대의 성공만큼 비루한 것이 없다는 시인들의 말이 ‘우리 시대’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회의 시스템을 욕하고, 기득권을 싫어하면서도 막상 나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던지려 하기보다는 그 사회가 강요하는 테두리 안에 자신을 맞춰가며 순응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자본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120쪽)
삶을 지나올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줄 아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알게 된다. 때로는 내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들은 외면할 때가 생각 외로 많다. 특히 사회 고발성 소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힘들어서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물론, 나 또한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을 다룬 영화는 꼭 챙겨보고자 하지만 그 후유증은 무서운 공포영화를 봤을
때보다 더 긴 여운과 생각들을 머리에 남긴다. 하지만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생각하는 개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코 피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들을
찾아다녀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사람들 또한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시인들이 내게는 모두 낯선 인물이었다. 시집을
잘 읽지도 못할뿐더러, 간혹 읽는다 해도 작가 위주가 아닌, 작품
위주의 책만 봐와서 그런지 익숙한 이름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다가왔다. 아마도 시어 속에 담긴
시인의 경험과 의미를 헤아려보지 않고, 내 경험이 부족하여 이해할 수 없는 지점까지 시인과 저자의 대화
속에서 문장으로 풀어버리니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이 다가왔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 인터뷰집이
시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느슨하면서도 허술한 시선, 그리고 강고한 편견이 수정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의 의도가 나한테는 딱 들어맞은 셈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느슨한 시간으로 여유를 갖고 일상을 포착하는 예민한 시선을 가진 이들이 시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보니 시인은 다른 사람들보다 촘촘한 시간으로 삶을 채우며 경험 많고, 노련한 생활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포착해내는 사람들로 다가온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하나같이 다른 시인을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그려나가고 있는 좌표에 충실할 뿐 다른 이들의 동선을 염탐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와 비교되는 것도 마뜩잖아했다. 그것은 부단히 자기부정과 자기갱신을 감행해본 자들이 가닿는 자유로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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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청이라며 시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결국 사는게 바쁘다는 이유로 시에서 멀어졌다. 그렇지만 가슴 한켠에 여전히 습작시인으로 보내던 문청시절이 남아있고, 언제고 다시 돌아갈 여지를 남겨 놓고 있기에 이 책에 대한 설렘이 생겼다. 시나 책으로만 만났던 시인들과의 인터뷰는 궁금증이 가득한 내게 그분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다시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기에 와닿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시에서 떨어져 지내던 내게 파장을 일으켜 주기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과거 시인과의 인터뷰 책을 냈었던 이문재 시인과의 인터뷰 부분은 기억에 남는다. 나도 이문재 시인의 시집을 통해 학창시절 공부를 했기에 인터뷰 내용은 많은 변화를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 저자가 최대한 시인의 육성에 가깝게 옮긴 글을 읽으며 무뎌진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 다섯 시인의 인터뷰는 저자의 글로 완성이 된다. 인터뷰 중간중간에 흐르는 저자의 글이 있기에 각 시인과의 인터뷰가 보다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는 것을 체감한다. 만약 내가 계속 시를 썼다면 나는 어떤 시로 지금을 표현하려 했을까? 세속에서 자신만의 시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인들을 만나보며 그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 『세속 도시의 시인들』. 띠지에서 본 신형철 평론가의 글이 무슨 의미인지도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과거 문청시절 시인과의 만남 속에 그들의 시 창작 노하우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그들과의 자리를 찾아다녔다. 이 책은 그런 내 과거에 대한 기억이 동반된 독서였다. 그렇게 책 속에서 저자와 시인들 옆에 조용히 들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직도 시 쓰기에 대한 미련이 있다. 언제고 다시 돌아가고, 다시 쓸 것이기에 이 책을 읽은 것이다. 물론, 일단 써야 한다. 흥미로운 인터뷰 내용과 저자의 좋은 글을 만난 책의 리뷰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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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은 책이긴 하다. 흔히 작가하면 소설가를 떠올리겠지만, 이 책은 시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밝힐 것이 있다. 내가 평소 시를 좋아하고, 시에 대한 순수한 관심 때문에 읽은 책은 아니라는 것. 특정 몇몇 시인의 이름이 실려 있어 호기심에 볼 생각을 했다. 그들은 김정환과 류근, 김경주 시인 때문이다.
김정환 시인은 오래 전, 한국문학학교란 일종의 창작 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거기 교장으로 계셔 안면을 튼 적이 있다. 그땐 그분이 그렇게 유명한 시인인 줄은 몰랐다. 시인이라면 그저 김소월이나 박목월 정도 밖에 알지 못하던 내가 그분을 알리 만무했다. 난 그저 창작을 가르쳐 주는 전문 학원도 있다는 게 놀라웠을 뿐이고, 소설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 분에 대해선 더 더욱 알지 못했다. 비교적 작은 키에 다부진 체구를 지닌 시인은 사람과 어울리는데 스스럼이 없었고,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데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계셨다.
일단 학원에 들어서면 늘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당시에도 음악에 관한 책을 저술 중에 계셨던 것으로 안다. 한 번 정도 그분의 특강을 들었던 것 같고(그것도 담당 선생님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땜빵으로), 거기서 그분의 지난한 삶의 이야기를 띄엄띄엄 들을 수 있었다. 호기심에 다녔던 곳을 수강료를 한 번 더 내고 더 다녀보려고 했는데, 결국 성실히 다니지도 못했다. 그러자 시인은 나에게 전화해 왜 안 나오느냐며 이제라도 열심히 다니라고 격려 겸 선도 부장의 직임을 자처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대답만하고 끝까지 그곳을 다니지 않았다. (역시 나는 ‘학교’란 말이 붙으면 못 견디는 체질인가 보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그런 인연이 있어 이 분에 대한 근황이 궁금했다.
류근 시인이야 김광석의 노래 작사가로 유명하고, 지금도 TV에서 열렬하게 나오고 있으니 궁금한 거야 당연하고, 김경주 시인은 작년,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로 그의 존재감을 인식한 나는, 그가 펼치고 있다던 시극에 관한 이야기를 더 알아 볼 수 있을까 해서 관심이 갔다.
그렇다고 이 관심 있어 하는 시인부터 읽었던 것은 아니다. 부러 실린 순서대로 깔끔하게 읽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이제 나는 시 앞에서는 더 이상 문외한인 것을 자랑하듯 떠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긴 그게 무슨 벼슬이라고. 오히려, 나는 시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으며, 소설가만큼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애써 관심 밖의 영역으로 미뤄뒀던 것을 후회해야 했다. 언젠가 함민복 시인이 시 한 편에 원고료가 얼마인지를 얘기한 시를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시인이 이렇게도 별 볼 일 없는데 시는 왜 쓰는가 그랬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시인들이 알면 꽤나 섭섭하다 못해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누구의 말처럼 자본주의 상흔을 치료할 수 있는 건 문학이고, 작가란 말에 동의했던 내가 정작 돈 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시를 애써 외면하다니.
그런데 시를 외면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김요일이란 시인은, 시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 중에 가장 쓸모없는 것이며. 맹장 같은 거라고 했다. 시인도 이럴진대 속된 나는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이 책을 엮었던 저자 김도언은 이런 말을 한다. 시인은 실패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건 시인에게 요구되는 핵심적인 요건일 거라고. 모든 시인이 시를 써서 성공만을 지향한다면, 시는 빛나는 목소리를 잃고 하수구에 쳐 박힐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타락한 시대의 성공만큼 비루한 것이 없기 때문에.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시는, 가장 실패한 방식으로 타락한 시대를 증거하면서 자기 회복과 갱신의 가능성을 실험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과연 저자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우린 왜 모든지 성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도 성공을 위한 성공을. 그 성공을 위한 성공이 훗날에도 성공으로 남을 수 있을지, 현재의 실패가 언제까지나 실패로만 남아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실패를 위한 성공이 훗날 어떠한 길을 도모하며 발전해 갈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므로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시인에 대한 이중의 잣대가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시인은 낭만적일 것이라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 이런 시인을 사랑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특히 시인의 나이가 젊으면 젊을수록 그들을 보는 눈은 가혹할 정도다. 권혁웅 시인은 인터뷰에서, 문학을 기술로 생각해서 문창과가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문창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 하는 소리다. 글을 써서 성공하겠다는 세속적 욕망이 있다면 여기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문창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글을 안 쓰면 죽을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곳은 단순히 직업 훈련소나 소개소가 아니며, 그는 그런 그들에게 삶과 사회, 역사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 대학의 문창과 교수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격려 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왜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만 보려하고 규정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시인들의 세계도 인간 세계여서 독야청청하고, 신선의 세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세계도 권력이 존재하기도 하고, 나태와 태만이 존재하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청탁을 받을 때만 쓴다고 하는데, 시인이 그렇게 항상 목적이 있을 때만 시를 써서 되겠냐고 류근 시인은 질책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안 쓰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며 그렇게 청탁이 있을 때만 시를 쓰려 한다면, 그들이 실패에 성공하지 않고 성공에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아웃사이더로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하고 눈이 번쩍하기도 했다(그가 누군지는 직접 읽어보고 확인해 보시라). 그런 건강한 아웃사이더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앞서, 김요일 시인은 그렇게 시는 가장 쓸모없고, 맹장 같음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이 시를 쓰는 건 병이라고 했다. 아주 고약한 병. 아, 왜 그리도 자학에 가까운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도 어느 부분에선 맞는 얘기다. 미치지 않고 서야 미칠 수 있겠냐고 하는 것처럼, 시인은 시로서 이 세상을 말해야 한다. 또한 권혁웅 시인의 말처럼, 삶과 사회, 역사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김이듬 시인도 그렇게 말했다. 시인은 똑같이 보통 사람의 삶을 사는 건강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그렇다고 누굴 밟아 세속적인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시인은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다.
뭐가 됐든 인간의 하는 일은 쉬운 것은 없다. 시인의 시 쓰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인들 역시 누가 뭐라고 하던 시를 열심히 써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다. 새삼 드는 생각은 내가 시인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거였는데, 또 생각해 보면 시인들이 뭐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들에게 어디 쉽게 드러나는 사람이던가 싶기도 하다. 이런 인터뷰집이나 만들 때야 비로소 시인들의 삶과 고뇌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뿐.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도 뭔가 공통적인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다. 문학이나 시의 위상에 관한 이야기는 비슷한 공통분모가 있었다. 더불어 인터뷰이들을 통해 단편적이나마 우리나라 시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 안 읽는 시대에 끊임없이 시를 쓰고, 그 시를 또 끊임없이 출판하는 출판사들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 좀 읽어야겠다.
조금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전체적으로 난 이 책이 나쁘진 않았는데, 저자의 생각을 최대한 절제하거나 온전히 인터뷰 내용만 실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저자의 생각이나 해석이 인터뷰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좀 방해가 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고 저자의 문체가 쉬웠던 것도 아니다. 가끔 어려운 용어도 나오던데 그걸 우리말로 순화하거나, 뜻풀이를 해줘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불친절하다는 느낌이었다.(그런데 저자의 사진을 보니 꽤 미남이다. 이런 저자를 두고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야하는 나는 어디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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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 시를 읽으며 자연스레 궁금해졌던 시인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인터뷰집이 나와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대체로 시인들은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아끼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인터뷰집으로 보통의 사람으로 우리 곁에 사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평범하다 해도 시인들이란 언어를 가지고 노는 비범한 예술가들이다. 그들의 삶이 그저 만만할 리는 없다는 것을 이 인터뷰집은 보여준다. 김정환 시인부터 황인찬 시인까지, 우리 시사의 커다락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인들의 구성이 좋았다. 특히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김경주 시인, 서효인 시인, 황인찬 시인은 앞으로도 쭉 응원하고 싶어지는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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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도시의 시인들/김도언/로고폴리스/삶과 철학을 독특한 향으로 피워내는 시인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지만 시인들은 오늘도 자신만의 시어로 자신의 삶의 철학을 향기롭게 꽃피우겠지요. 느긋하지 않은 현실이기에 전율이 이는 소설이나 가슴 설레는 에세이는 그런대로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삶의 향기를 고도로 농축한 시는 음미와 되새김질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늘 뒤로 밀리는 편이었는데요. 시 같은 삶을 사는 15인의 시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시가 주는 삶의 여유와 품격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뒤로 밀쳐두었던 시집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15명 시인들의 인터뷰집에는 이름이 낯선 시인도 있고 익숙한 시인도 있었는데요. 김정환, 황인숙, 이문재. 김요일, 성윤석, 이수명, 허연, 류근, 권혁웅, 김이듬, 문태준, 안형미, 김경주, 서효인, 황인찬 등 1950년대에 태어난 시인도 있고 1980년대에 태어난 시인도 있기에 다양한 시대의 시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인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시를 쓰고, 언제부터 시를 좋아해서 시인이 되었고, 어떻게해서 시인과 현재 직업과 연결된 삶을 살게 되었는지 등 다양한 시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과 문학 이야기가 진솔하면서도 깊고 내밀하기에 문학잡지의 인터뷰 같았습니다.
먼저 눈길을 끈 이는 '따뜻한 비관주의와 사랑의 수행자'라는 제목의 문태준 시인의 인터뷰였습니다. 문태준 시인은 경북 김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나 노동으로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다는데요. 농촌에서의 삶의 성찰, 노동을 통한 경건함을 노래한다는 문태준의 이야기에서 시와 시인의 만남은 운명같구나 싶었어요. 그가 국문학과를 선택하고 시에 빠져들고 불교방송국에서 일하면서도 꾸준히 물, 바람, 구름, 자두, 새, 꽃팔찌, 풀밭 등 농촌에서의 삶과 불교적 성찰을 담은시를 쓰고 있다니 말입니다. 농촌의 공동체적 감수성, 농민시 경향의 시, 불교적 깨달음에 대한 시로 자신만의 시세계를 넓혀가고 있다는 시인의 시를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과 그로인해 숙성된 고뇌가 독특한 향으로 피워내는 15인의 시인들을 보며 숙연해지기도 했는데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이의 매력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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