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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대담함에 대하여 경외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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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암벽이나 빙벽에 사람들이 대롱 대롱 매달려 있 거나  꽤나 높은 산을 등정했다는 보도를 볼때가 있다, 단순히 취미라기보다는  위험스러워보이기도하고  소풍말구는 특별히 산을 올라본적도 없었던 내겐 좀 미칫진같아 보이기도하는 장면들이다.. 게다가 추운걸 굶는것보다 더 싫어하는 내가 그 얼어터진얼굴로 높은산 등정에 대한 감격을 인터뷰하는 장면은  한여름에라도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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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암벽이나 빙벽에 사람들이 대롱 대롱 매달려 있 거나  꽤나 높은 산을 등정했다는 보도를 볼때가 있다, 단순히 취미라기보다는  위험스러워보이기도하고  소풍말구는 특별히 산을 올라본적도 없었던 내겐 좀 미칫진같아 보이기도하는 장면들이다..

게다가 추운걸 굶는것보다 더 싫어하는 내가 그 얼어터진얼굴로 높은산 등정에 대한 감격을 인터뷰하는 장면은  한여름에라도 이불을 찾고 싶어진다..

 

그런 내가 이책을 읽었다. 산을 전혀 모르는 내가.. 알피니즘을...

한마디로 이책은 산악인들의 도전 정신에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남들만의 리그처럼 멀게만 보이지만..  의지의 대담함에서 오는 충격은 굉장하다..

등반의 댓가로 손발가락 몇개정도는 가뿐히 헌납하고  때론 의족에 의지하고서라도 산으로 달려간다.. 그곳에 뭐가있는걸까? 그들은 왜 산에 오를까?

이물음에 조지맬로리는 아주 명쾌하게 대답을 했다.. 그것이  거기  있으니까....(물론 그는  에베레스트를 말한것이지만.. 이런질문에 아주 충분한 대답이다) 

하긴 왜 사랑하니? 라고 묻는말과 뭐가 다른가? 이유는 없다.. 그것에 열광하기 때문에 가는것이다.  자신을 끓게하는 그것이 거기있기때문에 가는것이다.. 전인격적인 오름.. 멋지다..

 

이책의  처음부분은 등정의시작과 그장비들의 발달이 가져온 도전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후반부는 그 역사를 빛낸 사람들에 대한 소개가 되어져있다. 간간히 보여주는 사진들과  용어설명을 도움삼아 읽다보면 이해도 훨씬 쉽다. 많은용어들중에서 비바크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비바크..... 그속에서 그들은 무엇을 꿈꾸고 어떤것들을 참아냈을까?

 

그리고등정에 대한 그들 각각의 의견들도 참으로 정리가 잘되어있다.

등정이냐 등로냐.. 첨단의 장비로 가느냐 최소한의 도구로 가느냐. 등반수단인 용구가 환경친화적이냐 아니냐.. 상업적 등반은 올바른것인가?  뭐 기타등등 이책은 정보전달적 의미와 동시에 많은 생각들을 던져준다..   그리고 분명한것은 알피니즘의 역사는 계속될것이라는거다.

우연히 읽은책 치고는 참많은 정보를 얻어간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꼭대기서 얼어터진얼굴로 피켈을 박는사람들...

산소통없이 자유등반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산을 오르는 모든 사람들..

책에 소개된 몇몇사람들의 눈빛은 그윽해보이기도하고 굶주린듯한 광기가 보이는것같기도하고..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는 이분야에 대한 이해를 아주 폭넓게 해준책이다...

한번쯤 읽어볼만 했다..

그리고....

올가을 난 엄마에게 왜 그렇게 노고봉에 다니시는 묻지않을것이다..

그리고 살짝 따라가봐야겠다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가 모두가 빈손으로 찾아간 안나프루나는  우리가 평생간직하고 살아갈 보배인것이다.

정상등정의 실현을 계기로 역사의 한페잊는 넘어가고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 푸르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p168

e*****2 2007.10.0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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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왜 오르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책
""산에 왜 오르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책" 내용보기
2009년 2월, 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트라를 등정하고 남체바자르로 하산 트레킹을 하면서 아주 멋진 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산의 이름은 아마다블람이었다. 이 산의 산세는 무척 험하여 접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산맥의 지맥인 네팔 동부의 쿰부히말에 속한 산으로 주봉의 높이가 6812m, 또 하나의 낮은 봉우리는 5563m이다. 아마다블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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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트라를 등정하고 남체바자르로 하산 트레킹을 하면서 아주 멋진 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산의 이름은 아마다블람이었다. 이 산의 산세는 무척 험하여 접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산맥의 지맥인 네팔 동부의 쿰부히말에 속한 산으로 주봉의 높이가 6812m, 또 하나의 낮은 봉우리는 5563m이다. 아마다블람의 의미는 '어머니와 진주목걸이'라는데 진주는 만년빙을 의미한다.

 

1961년 마이크 길(Mike Gill)·배리 비숍(Barry Bishop)·마이크 워드(Mike Ward)·월리 로마니스(Wally Romanes) 등이 처음으로 등정하였다. 표준 등반 루트는 남서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아마다블람 정상을 등정하려면 수준 높은 암벽, 빙벽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레이트 타워라는 험한 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려운 구간에는 고정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멋지고 웅장하지만 만만치 않은 설산 아마다블람을 바라다보면서 언젠가 꼭 한번 오르겠다는 마음속의 다짐을 하고 있었다.

 

지난 4월 이후 평일에 산행을 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은 항상 지리산과 설악산, 덕유산과 같은 큰 산과 근대 알피니즘이 태동한 알프스의 몽블랑 그리고 저 멀리 아마다블람과 에베레스트와 같은 히말라야의 설산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난 책이 바로 이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다. 내가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8월의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에서 합숙할 때였다. 한 교사가 이 책을 보고 있었는데 나도 잠시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과는 식사도 같이 하고 바위도 같이 타면서 알피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흔히들 말한다.

 

“산에 왜 오르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이 말은 원래 제3차 에베레스트 원정(1924년)을 떠나기 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한 청중이 “왜 에베레스트에 올라가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으니까.)”로 대답했던 영국의 저명한 산악인 멜로리(Mellory)의 명언이다. 

 

멜로리는 이 답변을 그저 시큰둥하게 말했다고 하는데 의외로 이 말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언이 되었다.

 

그렇다. 왜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현대의 알피니즘을 지배하고 있는 머메리즘(등로주의)을 제창한 머메리는 그가 쓴 책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에서 이렇게 말한다.

 

“등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정상을 오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있다.”

 

등산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 머메리의 역설이다.

 

등반의 역사는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말한 것 같이 도전과 극복의 역사였다.

인류가 산과 인연을 맺은 최초의 기록은 16세기였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초로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탐사등반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이탈리아를 침공할 때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기도 했다.

 

근대 알피니즘의 발상지인 알프스에서는 수정채취업자나 영양사냥꾼이 광물채취나 수렵 등의 목적으로 산에 오르기도 했으나 그것을 등반행위로 보지는 않았다. 산을 목표로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등반의 시작은 1760년, “몽블랑을 오르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제창하여 샤모니의 의사 미셸 파카르와 포터였던 수정채취꾼 발머가 처음으로 몽블랑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삼는다.

 

이 책은 이렇게 근대등반의 시작으로부터 베터호른의 초등정으로 시작된 황금시대, 새로운 등반방식이 등장한 알프스의 은시대, 머메리즘을 극대화시킨 직등과 인공등반으로 시작된 철시대 등으로 이루어진 1부와 히말라야와 대륙별 최고봉에 도전하는 히말라야 도전사 그리고 8000미터 거봉 도전의 시대,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는 알피니즘, 알피니즘을 빛낸 선구자들 등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은 근대와 현대의 등반사를 빛낸 산악영웅들의 활약이다. 

 

이들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머메리이다.

 

1881년 샤모니 침봉 중 가장 어려운 봉우리라는 에귀유 드 그레퐁(3,489m)을 초등한 머메리는 새로운 등반사조를 주창했으니 그것이 바로 머메리즘, 즉 등로주의다. 그것은 능선이 아닌 벽을 통해 산을 오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야 말로 등반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이었으며 벽등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제창한 머메리즘 방식의 등반을 몸소 실천했으며 오늘날의 등반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그를 가리켜 근대등산의 비조라 부른다,

 

현대등반사중 가장 커다란 쾌거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의 등정일 것이다. 이제 에베레스트 등정은 상업등반에 물들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1953년 영국 9차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인 텐징 노르가이가 초등정할 때만 해도 에베레스트는 남극과 북극에 이은 제3의 극지로 불리웠으며 이들의 초등정은 세계적인 빅뉴스였다.

 

북극점이 미국의 피어리에 의해서 그리고 남극점이 노르웨이의 아문센에 의해 정복되자 인류에게 남은 큰 모험의 하나가 에베레스트였기 때문이다.

 

에드먼드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초등정시 텐징 노르가이의 사진을 찍어주고 자신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텐징의 영웅적 등반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처음으로 오른 사람은 텐징이 아니라 힐러리 경이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초등정 이후 힐러리는 영국에서 경의 작위를 받게 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네팔에 많은 학교를 짓고 루크라에 공항을 건립하였으며 탕보체의 불탄 사원을 재건하는데 힘을 쏟는 등 네팔의 교육, 문화사업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현대 등반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을 한 명만 더 꼽으라면 그 사람은 아마 라인홀트 메스너가 될 것이다.

 

1944년 이탈리아 남티롤에서 출생한 그는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등반가로 손꼽힌다. 메스너는 1978년 페터 하벨러와 둘이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등정하고 같은 해 낭가파르바트를 무산소로 단독 등정하였다. 이 일로 그는 던번에 세계적인 등반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모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6년에는 8,000미터 이상의 고봉 14개를 완등하였고 최근에는 고비사막을 단독 횡단한 바 있는 타고난 모험가이다. 그동안 <흰 고독 검은 고독>외 50여 권의 등산서적을 저술하였다.

 

책을 통해서 거칠고 높은 산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왜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리고 수 많은 산악영웅들을 만나게 되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나도 같이 그들과 함께 산행을 하고 등반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렇다면 너는 왜 산에 오르느냐”고.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어떨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왜냐하면 ‘멋진’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k****p 2009.1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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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Because It's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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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 오르시나요”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Because It's there.)” 이 말은 등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또 이 말을 한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아는 문장일 것이다. 멜로리가 남긴 이 말을 사람들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로 알고 있으나 이 경우에서 'It'은 모든 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라는 특정 산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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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 오르시나요”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Because It's there.)”


이 말은 등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또 이 말을 한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아는 문장일 것이다. 멜로리가 남긴 이 말을 사람들은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로 알고 있으나 이 경우에서 'It'은 모든 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라는 특정 산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에베레스트 3차 원정을 앞두고 있는 멜로리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강연회를 할 때 나온 말로, 맬로리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산에 가는 이유를 한마디로 함축한 불후의 명언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를테면 “너 그사 람 어디가 좋아서 사귀니”라는 주변의 질문에 ‘그가 잘생겼고 성격도 좋다’는 말 대신에 “그냥 그가 좋아”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 같다. 즉 어떤 경우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말 보다는 오히려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말이 더욱 어울리는 것 같다.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마운틴북스.2007년)에는 등산의 역사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다보니 등산과 관련한 장비나 기술의 발달 그리고 등산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영웅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어찌 보면 영웅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멋진 산의 모습과 유명한 등산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책으로 500쪽 정도 되는 굵은 책이다. 저자 이용대씨는 한국산악계를 대표하는 분으로 현재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등산을 시작한지 40년이 지났으며,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암벽 루트를 선등하는 현역 등산인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등산백과사전에서는 ‘알피니즘이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 행하는 등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알피니즘은 알프스에서 나온 단어로. 유럽인들이 알프스 지역에서 근대적인 개념의 등산을 하기 시작했기에 파생한 말이다. 만약 히말라야에서 등산이 시작되었다면 히말라야이즘이 되었겠고, 백두산에서 시작이 되었다면 ‘백두산이즘’이 되었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 본능은 20세기가 시작되자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극지 탐험을 시작한다. 미국인 피어리는 1909년 북극점에 도달하고, 그 유명한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으로 유명한 남극탐험은 1911년 아문센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극지탐험이 끝나자 사람들의 시선은 히말라야의 고봉으로 향한다.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제9차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지구상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영국이 1921년부터 시작해서 1953년까지 32년 동안 9차례나 도전한 끝에 이룩한 것으로, 그동안 15명의 귀한 목숨이 이 산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영국은 에베레스트를 ‘제3의 극점’이라고 부른다. 극점도달에 실패했던 영국인들은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업적을 높게 평가받고 싶었기에 제3의 극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국가의 자존심을 건 경쟁이었던 것이다.


1964년 8000미터 이상의 거봉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시샤팡마가 등정됨으로써 피크 헌팅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니까 단순히 산에 올랐다는 사실이 중요하던 시대가 지나가 버리고 새로운 루트 등정, 거벽 등반, 단독 등반, 무산소 등반, 동계 등반, 14개 봉 모두 등정, 한 시즌 3개 봉 등정을 의미하는 해트트릭 등 다양한 등산 방법이 시도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난 대단한 영웅은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사람이다. 등산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사람을 몰랐었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메스너는 1975년 가셔브룸 1봉을 등정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루트로 등정을 한다. 게다가 산소 용구, 고소 포터, 중간 캠프, 고정 로프를 쓰지 않는 순수한 알파인 스타일로 올라간다. 그는 알프스의 4000 미터 급 산을 오르는 방식으로 8000 미터 급 고봉을 사흘 만에 오른 것이다. 이런 등반방식은 전통적인 방법보다 몇 배나 더 어렵고, 죽음을 무릅쓴 도전이기에 메스너의 성공이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8000미터 고봉에 대한 도전 방식이 바뀌게 된다.


메스너는 8000미터급 고봉 14개를 처음으로 모두 오른 사람이다. 게다가 그것도 쉽게 오른 것이 아니라. 알파인 방식으로 올랐고, 또 한 시즌에 8000미터 이상의 고봉 3개를 등정하는 해트트릭도 한 사람으로 20세기 최고의 등반가라고 한다.


한국인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1977년9월에 고상돈과 세르파 1명이 에베레스트 남동릉으로 등반함으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에 이름을 올린다. 등정자 순위로는 고상돈이 초등자 이래 57번째의 등정자가 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K2 등정은 1986년 정봉완, 김창선, 장병호가 남동릉으로 등정을 한다.


2000년에 엄홍길이 12년을 소요하며 8000 미터 급 14봉을 완등 8위에 오르고, 2001년에는 박영석이 8년을 소요하며 역시 완등을 하고, 2003년 한왕용이 9년을 소요하며 14번째 완등자가 된다. 이로서 한국은 완등자를 3명 보유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완등자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야자 영웅들을 보면 8000미터 이상의 거봉을 최초로 등정한 여자는 바로 일본인이었다. 1974년 마나슬루에 나카세고, 우치다, 모리가 등정을 한다. 그리고 1975년에는 에베레스트에도 역시 일본여자 다베이 준코란 이름의 여자였다. 그녀는 세 살짜리 딸을 둔 35세의 주부였다고 하는데 그녀는 우리나라 고상돈보다 빨리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것이다. 다베이 준코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해서 “기술과 능력만으로는 정상에 설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의지력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에 소개된 영웅들에 대한 존경이 절로 생겼다. 이제는 신문이나 방송에 8000 미터 급의 등정보도가 나오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다면 어쩌면 생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n 2007.10.12.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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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피니즘, 순수한 도전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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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유명한 산악인 한스 카마란더가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을 평가절하 했다. 그는 오대장의 등반에 대해 ‘산소를 썼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며 ‘그녀는 자전거 경주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격’이라고 비판했다. 한스 카마란더는 세계 최초 14좌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파트너로 유명한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하지만 그의 비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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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유명한 산악인 한스 카마란더가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을 평가절하 했다. 그는 오대장의 등반에 대해 ‘산소를 썼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며 ‘그녀는 자전거 경주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격’이라고 비판했다. 한스 카마란더는 세계 최초 14좌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파트너로 유명한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하지만 그의 비판은 동양 산악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산소를 사용해 등반하는 건 결코 반칙이 아니다. 무산소 등정의 순수한 도전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과 산소 사용은 별개의 대상이다. 무산소 등정 예찬이 산소 등정 비난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메스너 역시 14좌 중 무산소 등정은 6봉에 불과하다. 오은선 대장의 경우 산소 사용은 에베레스트와 K2밖에 없다.

 

 

자전거 경주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는 비판은 오은선 대장이 2년간 8개 봉우리를 오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한 해 4개의 봉우리를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오대장 특유의 체력이 뒷받침되어 가능했을 뿐, 편법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오은선 대장이 8개 봉우리를 오르는 동안 베이스캠프까지 헬기를 이용한 적은 다울라기리 등정 때 한 번뿐이다. 게다가 산술적으로 봄 시즌, 가을 시즌에 두 개씩 오르는 건 결코 무리가 아니다. 오은선 대장의 경쟁자 파사반 역시 올 봄, 안나푸르나 등정을 마치고 곧바로 시샤팡마 등정을 시도한 바 있다.

 

 

폴란드의 산악인 쿠르티카는 8000미터 정상에 오르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여전히 8000미터는 생과사가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위험한 곳이다. 매일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가 발생하고, 영하 30도 이하의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 잠시 긴장을 늦추는 순간 가파른 절벽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올 봄에도 마나슬루에서 두 명의 한국 산악인이 실종됐으며, 안나푸르나에서도 스페인 산악인이 실종됐다. 여전히 8000미터 등정, 그리고 8000미터 14개 봉우리를 모두 살아서 오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오히려 카마란더의 비판은 오은선 대장의 여성 세계 최초 14좌 완등을 상업적으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후원사와 지나친 영웅 만들기에 몰두하는 언론사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언론사가 HD 생중계의 놀라운 성과에 지나치게 도취된 채, 연일 성공 우려먹기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이 마치 국가의 성공이자 축제인 것처럼 확대 해석해서도 안 된다. 오은선 대장 개인의 도전정신이 이뤄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 개인의 14좌 완등을 국가의 자신감과 국력으로 착각하는 모습을 보면, 60년 전으로 돌아간 착각이 든다.

 

 

실제로 8000미터 초등이 이뤄지던 1950년대, 각국 열강들은 8000미터 등정을 통해 국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등은 국가적으로 산악 행위를 지원했으며, 당시엔 중소기업 수준의 인원이 등반대에 동원되었다. 1955년 로체를 초등한 스위스 등반대를 보면 12명의 대원, 22명의 셰르파, 350명의 포터가 동원됐다. 53년 일본의 마나슬루 등반대는 대원 13명, 셰르파 23명, 포터 414명으로 구성된 대부대였으며, 미국의 마칼루 원정대는 8톤에 가까운 물자를 베이스까지 운반하기도 했다. 당시 각국은 8000미터 등정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며, 초등의 성취를 위해 전 국민적인 성원과 국가 보조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결과 K2를 초등한 이탈리아 원정대는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마나슬루를 초등한 일본팀은 2차 대전 패전으로 상심에 빠진 자국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또한 미국은 가셔브롬1 초등으로 강대국의 체면을 간신히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국가가 지원하는 대규모 등반 방식은 변해갔다. 규모는 작아졌으며. 새로운 등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산악인들은 개별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을 벌여갔고, 여기서 국가는 빠지기 시작했다. 산악인들은 높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동계 등반, 새로운 루트 개척 등 등반 스타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듯, 국제산악연맹은 알파인 스타일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1.등반대원은 6명 이내. 2.로프는 팀당 1-2동 3.고정 로프 사용 금지 4.사전 정찰 금지 5.포터나 지원조 지원 금지 6. 산소기구 휴대 금지)

 

 

폴란드 산악인 쿠르티카는 “등반가들이 8000미터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등반 가치가 훌륭한 산인데도 높이가 낮다고 해서 등반을 기피하는 것은 히말라야 등반의 질을 낮출 뿐이다.”라고 역설하고, 8000미터에 75미터 모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벽으로 꼽히는 가셔브롬4를 등정한다. 14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메스너와 두 번째 완등자 쿠쿠치카 역시, 단순히 14좌 완등에 매몰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새로운 루트와 스타일을 개척해낸다.

 

 

때문에 어쩌면 카마란더는 14좌 완등을 지나치게 영웅화하는 우리의 분위기에 일침을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결코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던 로체 남벽을 등반한 토모 체센은 등반 성공이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이런 방법으로 등반을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법으로 등반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그 동안 신비에 싸여 있던 8000미터의 신화는 사라졌다. 클라이머들은 높은 고산에서 기술적인 루트를 열기 시작할 것이다. 알파인 등반만이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때문에 토모 체센이 벽을 오른다고 해서,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이 폄하될 이유도, 비판받을 이유도 전혀 없다. 하지만 동시에 8000미터의 신화가 사라진 지금, 8000미터 14좌 완등에 열광하고 있는 모습역시 우스운 건 분명하다. 14좌 레이스 경쟁을 두고 폴란드 산악인 쿠르티카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미터를 피트로 환산한다면, 8000미터는 26240피트. 26000피트 이상 봉우리는 27개. 그렇다면 26000피트 27좌 레이스는 왜 없냐. 숫자 놀이나 기록을 수집하는 일은 알피니즘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14좌 완등이 아닌, 어디선가 묵묵히 4000-5000미터의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있는 산악인들의 발이 아닐까.

 

YES마니아 : 골드 h*****0 2010.06.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