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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에 여성작가가 쓴 글은 많지 않다. 소풍이나 식사같은 귀족 생활의 지루한 묘사와 결혼으로 끝나는 한결같은 결말에도 제인 오스틴이 많이 읽히는 건 그런 희소성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오해 마시길, 제인 오스틴을 정말 좋아한다.) 이선 프롬의 거의 백년 전에 오만과 편견이 있었다. 백년이면 엄청난 시간이다. 백년전 이광수의 소설과 오늘날 신경숙의 소설을 비교해 보면 말이다. 그러니 '오만과 편견'을 '이선 프롬'과 비교하는 건 부당하다. 그럼에도 문득 스친 생각이 있다면, 평생을 독신으로 산 제인 오스틴이 소설의 모든 결말을 행복한 결혼으로 마친 것과, 불행한 결혼과 불륜을 오간 이디스 워튼이 모든 결혼은 위선과 타협이며, 끔찍한 지옥인양 묘사한 것을 보면, 소설이 작가의 삶과 소망과 무관할 수 없음을 실감한다. 이야기의 소재는 오늘날에도 너무도 흔하디 흔한 '불륜?'이다.(언제부터 불륜이 우리에게 가장 재미있는, 속물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소재가 돼 왔던 것일까.) 이선이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젊은 여인 메티를 사랑하게 되고, 메티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 게 된다. 이 때의 이선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지만 그것도 잠시. 이를 감지한 아내 지나가 메티를 보내기 위해 하녀를 들이려 하고, 갈 곳 없는 메티와 그녀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는 이선은 동반자살을 하려 하지만, 썰매 충돌로 이선은 절름발이가 되고 메티는 영원히 걸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이선의 소망대로 메티와 한 집에 살게 되지만, 두 여자를 부양하며 그녀들과 함께 살면서, 이선은, 죽음을 결심할 만큼 사랑했던 여인이 끔찍하게 변모해 가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더 끔찍한 지옥에 갇히고 만다. 세월과 함께 닳아 버린 사랑은 서로를 구속하면서 지독하고 협오스러운 어떤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대부분의 결혼이나 연예가 그런 것임을 작가는 은근히 암시한다. 사랑이 최고선인양 무조건 찬미하는 연애지상주의자는 아니다. 저마다의 길고 쓰디 쓴 인생에 사랑이 없다면, 이디스 워튼이, 우리가, 굼꾸는 의미의 자유로움은 가능하리라. 그러나 그녀가 사랑에 빠져 보지 않았다면 '이선프롬'은 세상에 없지 않았을까. 작가에 있어 자유로움이 창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자유로움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혼은 제도와 사회와 관계가 주는 구속일 수 있지만,,, 사랑은 자유로운 영혼의 갈망 그 절정이다. 그녀가 이선 프롬에서 부정하게 되는 것이 사랑마저 인 것. 참, 것도 아이러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