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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1학년이었던가? 가물가물...)
<베르사이유의 장미> 만화책에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나름' 역사만화라는 것을 몰랐다. 그저 처음으로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다음 권이 궁금하고, 다음 권을 다 읽으면 또 그 다음 권을 찾느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니.
마이클 더다도 만화책이나 추리물을 좋아했다.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검은 고양이>를 시작으로 추리물, 공포물에 빠져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직도 그 여름방학, 우리집 거실의 돗자리 위에 엎드려, 돗자리 위에 오래 엎드려 있으면 몸을 받치고 있는 팔뚝에 돗자리 자국이 깊에 남는다. 그렇게 자국이 깊어져 한 군데가 아프면 다른 쪽으로 팔을 돌리고 몸을 비틀면서, 그래도 끝까지 엎드려 이광수의 책들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광수의 계몽소설들이 13살 소녀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그때 <흙>을 시작으로 비슷비슷한 교훈과 주제를 안고 있는 이광수의 책들을 아마도 전부다 읽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아직 어린 딸이 이광수라는 작가의 두꺼운 책들을 읽어내는 것이 신통해서 옆에서 옥수수도 쪄오고 수박도 잘라주며 궁뎅이 두드려주었던 엄마의 칭찬 때문에 읽어내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중학 시절
마이클 더다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는 중학 시절에 나는 <하이틴 로맨스> 시리즈를 읽었다.
나는 학교에서 교과서 속에 하이틴 로맨스 시리즈를 껴놓고, 집에서는 책상 서랍 안에 책을 펼쳐놓고 읽다가 엄마가 방에 들어오시면 배로 서랍을 밀어넣는 식으로! 똑같은 공식의(주로 가난하지만 발랄한 아가씨가 부자인데 성격이 건방지고 오만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 하이틴 로맨스 시리즈를 읽고 또 읽었다.
나름 문학소녀였던 나는 읽으면서도 '나라도 이런 얘기는 쓸 수 있겠다!' 생각했으니, 잘만 했으면 내가 최초의 귀여니가 될 수도 있었을지. 크흐..
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우리 세대가, 도시락을 두 개씩 갖고 다니면서 야간자율학습을 했던 우리가, 별보기 운동이라며 늦은 밤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갔던 우리가 고등학교 때에 과연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물론 읽을 수 있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지 않으면 생각없는, 한심한 청춘인 것처럼 느껴지던 시대 탓에 조세희를 읽었고, 사모하던 국어 선생님이 읊어주시던 싯귀절 때문에 황지우를 읽었다.
고교 시절에 마이클 더다는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하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고등학생들은 조금쯤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해 원인도 정확지 않은 불만과 반항심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청춘 시절
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해서 직장에 다니고, 그러다 90년대의 후반에는 결혼까지 한 나는 청춘 시절에 들어서야 드디어 제대로 된 독서를 한 것 같다.
내가 대학 1,2학년 때에는 신경숙의 아련한 소설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다가 3,4학년 때에는 김영하의 산뜻한 소설이 좋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소설보다 에세이, 특히 니어링 부부의 에세이에 감동을 받아 나도 그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꿈만 꾸어보고, 결국은 다를 바 없는 속물 인생을 살면서 처세에 대한 책, 인간 유형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한동안은 <10년 후 성공하는 아이...>나 <넘치게 사랑하고 부족하게 키워라> 등의 책들을 전공 공부하듯이 탐독했지만, 이제는 그런 책들의 목차만 봐도 주루룩 꿰고 있다 자신하는 경지에 달했다. 물론 아는 것과, 내가 아이를 그렇게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도 깨달았다.
언제나 책 읽기를 좋아하고, 가끔씩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 관심가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책 읽는 것이 제일 좋고 행복하다 생각한다.
마이클 더다의 <오픈 북 - 부제:젊은 독서가의 초상>을 읽고 나니, 어설픈 독서가의 초상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독서 목록을 정해보거나, 독서 이력을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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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껴 써야지, 지난달 카드값이 XX만원이더라.” 아침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 게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6월 운영하던 편의점을 관둔 이후 우리 가족은 아직 생계를 위해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나는 몇몇 책들의 주문을 취소하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를 향한 쓴소리를 우린 종종 듣는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책이 높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금액이 얼마 안 된다 하여도 책을 구입하는 것은 소비 행위의 일종이다. 그렇기에 금전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이에게 독서는 사치일 수 있다. 지역 사회에 있는 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긴 하지만, 신간 도서의 구비 속도가 늦고 무엇보다도 대출을 위해선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나는 기다리다 지갑을 열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나 많은 금액을 책을 위해 매달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구입해놓고 읽지 못한 도서도 은근히 존재하는 것을 보면 나의 독서는 어디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속독을 즐기는 나의 습성(?)상 난 종종 의도치 않게 읽었던 책을 본의 아니게 또 읽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이런 내가 책과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평생의 시간이 주어진다 하여도 불가능할 것이다. 저자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다. 하지만 미국 최고의 서평가이자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하니 무언가 있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든다. 실제로 책의 뒤편에 수록된 중고생 시절 독서 목록을 보고 있자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게 정말 중고생이 읽고 이해할 수 있을만한 책이란 말인가? 대학을 졸업한지 꽤 된 지금의 나도 읽지 못한 책들을 그는 십대에 이미 읽었단다. 물론 우리 사회와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다름을 우리는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고, 현재도 많은 아이들은 오로지 입시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길 강요 받고 있다. 교과서 이외의 책을 읽는 것이 금기시되고, 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철저히 수능이나 입사 등의 목적을 위해서만 허용되는… 특히 저자의 대학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읽으며 우리나라 독자 대다수는 아마도 ‘꿈과 같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에 크나큰 진보를 가져다 준 인물로 그는 꽤나 많은 교사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언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환경을 탓하는 것은 일종의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느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복하지 않았다. 공장에서의 노동에 평생을 단련시킨 그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부유한 삶을 제공치 못했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으셨던 그의 아버지의 모습은 가부장제의 틀에 갇힌 전형적인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그랬기에 그는 끊임없이 일해야만 했고, 차라리 공장에서 돈을 버는 게 자신을 위해 더욱 유익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에 시달려야만 했다. 어떠한 책을 읽어야 좋을지 망설이는 이에게 이 책은 유익할 것이다. 그가 읽었노라 말한 대다수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훌륭한 번역본의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독서의 방법과 관련해서도 그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229-230에 걸쳐 만날 수 있는 속독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는 속독을 너무 오래 하면 눈이 아프고 심한 두통에 시달린다고 말했는데, 모든 책을 속도 내어 읽길 즐기는 내가 멀쩡한 건 아마도 집중력의 차이 때문이지 않나 싶다. 종종 눈이 흐려지곤 하는 경험을 하긴 하지만, 한 번도 두통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책으로부터 받아본 적은 없는…)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힌 부분은 따로 있었다. -L’imagination au Pouvoir 이는 1968년 유럽 사회를 뒤흔든 혁명의 모토로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이 문구를 보자마자 나는 ‘이야말로 책이 지닌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 읽는 사람의 얼굴은 다르다’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음은 바로 그 때문이리라. 책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얻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퇴행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식도락가로서 독서에 나선다는 그의 포부를 엿보면서도 나는 책으로부터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눈빛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비록 불온(?!)할지라도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으리라. 무슨 책을 읽을까를 고민하며 서고 앞을 서성이는 내게 나는 속삭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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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동안 내가 재밌게 읽은 책 중에서도 깔깔거리며 웃은 책은 아마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일게다.(글쓰기에 대한 요령도 요령이지만 나는 그의 글쓰기와 더불어 독서 편력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 웃느냐 눈물까지 흘린) 스티븐 킹의 창작론이자 독서편력기인 <유혹하는 글쓰기>를 재미나게 읽어서 일까. 마이클 더다가 누군이지도 정확하게 모른 채, 기대반 호기심반으로 젋은 독서가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오픈 북>을 덥석 구입하였다. 뭐 책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구입만 해놓고 쌓여 있는 책 위에 한권을 더한 후,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주 금요일에 우연히 98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해서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잠깐 아이들 데리가 나갔다 온 것 말고는 내내 이 책에 매달렸다.
이 책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내가 TV가 막 용트림치던 시절의 미국의 50년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토미 드 파올라의 챕터북도 이런 시절이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방임적이지도, 무분별하지도, 사람들 사이에 믿음과 신뢰가 살아있고 순진하면서 순박했던 시절, B급 영화와 펄프 SF 잡지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60년대 혁명의 태풍이 시작되기 전의 그 고요한 시대말이다.
철강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마이클 더다는 바로 50년대에 어린시절을 60년대에는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었다. 킹이 b급 펄프 픽션도 마다하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읽은 반면에 더다는 흔히 말하는 세련된 소설 즉 명작쪽에 가까운 책들을 많이 읽었다. 킹도 그렇고 더다도 그렇듯이 미국에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마어마한 독서량이다. 아무리 그깟 대중소설가라고 깍아내리는 킹이지만 그의 마구잡이식 독서량과 그가 책에서 언급하는 작가들을 보면 그의 탄탄한 독서 세계는 무시 못 할 정도다. 더다도 어머니가 읽어주던 이야기를 듣던 어린시절을 시작으로 부모님 대출증으로 몰래 추리소설을 빌리던 어린아이가 점점 더 깊은 독서의 맛을 알고 자신만의 독서 세계를 구축해가는 10대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독서 편력기는 나름 큰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책을 타인에 의해 만나는 흥분이나 설레임이, 어두운 도서관에 쳐 박혀 쓸쓸한 해질 녁의 햇살을 보면서 읽던 책을 집으로 가져가서 읽어야하는 안타까움을 알 듯 했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벽면으로 쭈욱 둘러쳐진, 먼지가 가득 앉은 채 자신이 읽히기를 기다라는 삼중당 문고로 가득찬 도서관이 떠 올랐다. 하지만 그 책들 공부하는데 방해될까봐 책장앞에다 철재문 같은 것으로 막아 꺼내보지 못하도록 잠겨져 있었다. 공부하면서 몰래 몰래 읽었던 소설들. 마이클 더다와 겹쳐지는 부분은 바로 해질 녁 황혼으로 물든 그 순간의 세계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해질녁의 쓸쓸함으로 한껏 고조되어, 막연한 미래의 불안감과 책을 읽는 순간의 내면의 충만감으로 꽉 차 있던 바로 두 세계가 만났던 그 지점의 순간을 말이다.
더다의 독서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만이 아니다. 중학교 시절의 선생도 선생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프랑스 문학 선생 빌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침반 같은 역화를 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연쇄적으로 알 수 있지만 책의 세계란 원래 망망한 대해같아서 자칫하면 길을 잘 못 들어설 수도 암초에 부딪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끊임없이 궤도 수정을 하면서 독서하는 것도 인터넷 덕분이다. 한동안 대학 졸업하고 책에 약간 흥미를 잃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인터넷 선점 들락거리면서 얻어 들은 또는 본 책에서 지적 자극을 받으면서 요 몇년동안 책 사들이는 것을 보면 책이란 바다세계에도 등대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좋은 선생을 만나다는 것, 인생의 복권당첨이 아닐까싶다. 더다의 중고등대학시절의 독서 편력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이런 등대잡이 같은 선생의 부재라는 점이다. 단순히 그가 운이 좋은 것일까. 그건 모르지. 내 인생에서 난 지금껏 단 한명도 만난 적이 없으니깐 말이다. 오히려 지금 얼굴 한번 본 적도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은 없지만 블로거들의 독서 편력기를 따라가며 성숙해지는, 알찬 시기를 맞이하고 있으니 굳이 더다의 인생을 부러워 할거 까지야.
나의 주말을 빼앗은 책이며, 어쩌면 두고두고 뒤적거리게 될 운명의 책일지도 모른다. 애너 퀸들러의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는 그저 그랬는데, 이 책 아무래도 올 2007년도 논픽션 부분에서는 최고의 작품일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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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생이다. 아이도 없다. 그러나 감히 말하고 싶다. 당신에게 아이가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이 책을 읽길 바란다. 오픈 북(이하 이 책)은 마이클 더다가 자신이 읽은 책을 토대로 스무 살까지의 삶을 반추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48년생이란다. 한 사람이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자신이 읽은 책’을 바탕으로 재구성한다는 것보다 인생을 회고함에 있어 더 고급스러운 작업이 있을까? 자신하건대, 독서는 인간이 다른 생물과는 구별되게 행할 수 있는 고차원의 전달방식이다. 또한 전(前)근대 사회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행위도 아니었다.
사람이 자신의 유년을 회고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당신은, 혹은 당신의 자녀는 어떤 방식으로 유년을 기억하겠는가?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인이지만 이민자 집안의 전형적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났다. 저자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저자보다 그의 부모의 역할에 주목하게 된다.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와 두 딸을 양육하면서 때때로 “내 피를 빨아먹고 있다”며 ‘돈 벌어오는 자’의 분노를 거침없이 분출하였고 “못과 나사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책벌레 아들을 책망하였다. 이 거친 아버지는 지혜로운 아내의 위로에 곧 쑥스러움을 느끼고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드라이브를 가자며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대신하였다. (이는 사실 너무도 우리네 아버지들과 비슷하다.)
저자의 아버지는 선이 굵고 담백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2주에 한 번씩은 가족들과 반드시 도서관에 들렀다. 그 자신은 결코 대출은 하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어린 저자에게 도서관을 소개했고 스물여섯인 나도 술렁이게 하는 몇 가지 독창적인 잠언(箴言)을 남겼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나는 신발이 없어 우울해 했지./ 그러다가 길을 나섰어./ 그런데 발이 없는 사람도 있더군.
저자의 어머니도 만만치 않다. 그의 어머니는 주어진 여건에서 독특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활용하여(그리고 매우 경제적으로) 저가에 유명 출판사의 각 백과사전을 첫 권만 확보한다. 자녀들은 A로 시작되는 과제를 받아왔을 때 인용하는 학문적 숙성에서 교사의 감탄을 샀다고 한다.
다소 장황하게 저자보다 저자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함은 사실 저자가 유년기에 읽었던 책들은 오늘날 한국에 사는 우리가 맛있게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가 얘기하는 당시의 문화적 코드들과 그가 읽어낸 몇몇의 모험소설과 추리소설들은 50, 60년대의 미국인이 아닌 21세기의 우리가 감칠맛을 느끼기에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것은 80년대 초반 태생인 내가 교생을 나가 ‘메칸더V’와 ‘GI유격대’를 모르는 지금의 고등학생에게 느꼈던 당혹감과 비슷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얘기로도 충분하다. 나의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238P이전의 이야기, 그러니까 대학생 이전의 저자의 책과 삶에 대해서만 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성인들이 혹은 고등학생이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미덕에 대해서는 나는 숨기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공유하고 싶은 욕심이다. 그럼에도 제목에서 권고한 이 책에 대한 리뷰의 목적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1) 아이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방문하라. 2) 저자는 모험소설과 추리소설의 ‘스토리’로부터 독서의 경험을 습득했다.(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가 유년과 소년기에 읽은 책들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지만 독서를 하나의 생활패턴으로 그 즐거움을 각인시키는데 주요한 기능을 했으며 그렇기에 그 다음의 책들을 주저 없이 받아들게 했다. <공산당 선언>도 <고도를 기다리며>도.)
2)에서 유년기의 독서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는 즐거움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다. 눈여겨보길 바라며 다소 장황하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저녁이 절반쯤 지나갔을 때, 어머니가 한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는 나를 발견하고서 코카콜라와 부드러운 호밀빵에 달콤한 피클을 얹은 햄 샌드위치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 크리스마스를 결코 잊지 못한다. 아주 추운 밤이었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매혹적인 책을 읽은 것이다. (중략) 아, 그렇게 보낸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그것은 워즈워스가 말한, 인생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한 점의 시간(a spot of time)'이었고, 잡티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완벽한 행복의 시간이었다.”(99p)
십 세를 전후로 한 한 인간에 대한 기억으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보다 더 호젓한 기억을 당신 혹은 당신의 자녀는 갖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교사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나는 저자가 받은 문학교육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독서를 너무 평범하지 만은 아닌 뚜렷한 취미라고 밝힐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각자의 몫을 충분히 챙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권말의 저자가 십대에 섭렵한 책 목록은 경우에 따라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찾아보기>에 제시된 저자들의 목록을 본문과 대조하면서 참고하면 이 책의 진가를 맛볼 수 있을 것이고 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독서 그 자체에 재미를 느낄 줄 아는 독자라면 저자의 문학적 재능에도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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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즐거운 장면은 어머니가 사주셨던 계몽사 문고였다. 멜빌의 [흰 고래 모비 딕]으로 시작되는 총 50권짜리 양장본 전집은, 비록 뒤의 50권은 장만하지 못했지만, 내 유년기 최대의 보물이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300원에 팔던 문고판 홈즈 시리즈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리어카에서 슬쩍 사봤던 빨간 책은 이제 먼 추억이 되었다.
마이클 더다는 유년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자신이 읽었던 책들의 연대기를 만들었다. "당신이 무엇을 읽는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무엇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말은 저자를 포함한 우리 책벌레들의 비밀스런 암호가 아닐까? 호메로스의 [율리시즈]에서부터, 우연히 습득한 외설서적에 이르기까지, 더다의 독서편력은 부러움과 질투를 불러 일으킬만하다. 하지만, 후기에 적은 자신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배부른 투정으로 들린다. 그는 가장 경제적으로 유복했던 50년대와 정서적으로 풍요로왔던 60년대를 관통하지 않았는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패기가 허튼 소리로 들리지 않았던 시절, 문학과 예술이 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살았으면서,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피곤했다고 불평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짓 아닌가? (하긴 존 웨인을 아버지로 둔 우디 알렌을 상상한다면....)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저질번역은 이 책의 최대 오점이다. 번역을 맡은 이종인은 전문 번역가(!)라는 데, 우리나라에서 진짜 전문가가 몇 이나 될까? (최근 단골 이발소에서 이발을 했는 데, 3대째 이발을 하는 이발사 영감님은 "한국에 이발 명장은 전부 대통령 전속 이발사인 데, 대통령 머리를 깎은 게 어떻게 명장의 자격으로 이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셨다.)
번역을 할 때는 되도록 원문을 싣고, 번역하는 단어는 이미 국내에서 널리 쓰는 단어를 선택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게 좋다. <리틀 블랙 삼보 Sambo>는 <꼬마 검둥이 삼보 (Little Black Sambo)>로, <위협적인 데니스>는 <개구쟁이 데니스 (Dennis The Menace)>로, <아메리카의 정의연맹>은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 (Justice League of America: JLA)>, <솔로몬 왕의 광산>은 <솔로몬 왕의 보물 / 솔로몬 왕의 동굴 (King Solomon's Mines)>로 번역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고유명사 번역은 더 한심한 데, 옮긴이는 조셉 콘래드를 조지프 콘래드로 쓰면 더 지적으로 보일 거라고 착각했나 보다. 그럴 거면 차라리 유제프 테오도르 콘라트 코제니오프스키라고 쓰시지? (프랑스 영화<[Le Grand Bleu>의 국내개봉제목 <그랑 블루>가 떠오른다.) '이리호의 호안'은 '이리 호수의 방파제'로 번역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창작을 하든 번역을 하든, 자기가 읽어도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라. 그게 안 되면, 다른 직업을 찾든가... 최소한 구글검색만 해도 이런 실수는 줄일 수 있는 요즘도 발번역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에서 독서가로 산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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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류(책을 사랑한 사람의 독서일기 같은...)의 책을 선택할 때는 '나는 어느시기에 무슨 책을 읽었다.'라는 단순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 책이 그 당시의 작가에게 어떤 감동을 줬고, 그래서 그 책이 작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 책으로 인해 작가는 어떤 경험을 했고... 등등의... 좀 더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공감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책이다.
책 소개 글처럼 마이클 더다의 유년 시절부터 20세까지의 삶을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통해 회고 하고 있긴 한데, 굳이 따지자면 책을 통해 회고 한다기 보단 회고하다보니 책 이름도 들어 간, 딱 그 정도의 책이다.
더다의 자서전에 가까운 이야기 사이사이 그때 나는 무슨 책을 읽었다. 정도로 책은 그저 간단히 언급하는 수준이고 그나마 어린 시절 이야기도 재미나게 읽히지는 않는다.
에필로그 이후에 붙어 있는 마이클 더다가 읽은 책 목록을 훑어보면 이 아저씨... 책을 참 많이 읽긴 많이 읽었다.
어떻든 책 끝의 리뷰들이 워낙에 좋아서 재미없게 읽었다는 내가 좀 이상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별로인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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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스트>지의 북리뷰 담당기자이며 서평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실공히 이 시대의 책읽기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저자의 어린시절은 과연 어땠을까. 이 책<오픈북>에서 저자 마이클 더다는 책과 함께한 자신의 어린시절, 사춘기, 그리고 대학생활을 회고하고 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위 고수의 독서일기를 들여다 볼수 있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수 없다. 마이클 더다는 러시아계 아버지와 슬로바키아계 어머니 사이의 이민자집안에서 태어났다.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 그리고 '작은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배다른 여동생들까지 포함해 세명의 여동생들과 함께 자란 어린시절은 어떻게 보아도 유복하고 좋은 환경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허약하고 뚱뚱하고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어린 더다의 가장 친한 친구는 독서였다. 어린이용 모험소설부터 만화책, 백과사전에 이르기까지 더다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치웠다. 부모님이 간간히 사다주는 책으로는 넘치는 독서욕을 충족시키지 못해 사촌의 책을 빌려와 밤새워 흥분해가며 읽어내려가고, 가판대에 몰래 쭈그리고 앉아 신간을 독파한다던가 책 한권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모습은 책좋아하는 우리네 또래 어린이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책을 세권씩 세트로 모아 봉지에 담아 파는 책을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으로 맞추기 위해 칼로 봉지를 몰래 찟어 안에 내용물을 맞바꾸는 장면에서는 왠지 이해할수 있을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사춘기에 접어 들어 소위 야설을 몰래 읽고 난 뒤의 감상이라던가, 이제껏 읽어온 책들과는 다른 고난이도의 문학작품을 소화해 낸 뒤부터는 어린이 소설을 읽기 힘들게 되었다는 고백은 나의 경우와도 흡사해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퓰리처상 수상자의 독서에 대한 애정만은 어린시절부터 남달랐다. 자신이 읽은 책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곱씹어보고... 청소년기, 대학시절을 거치는 동안에도 독서는 저자의 삶에 더욱 깊이 파고든다. 아니 저자가 독서의 바다속으로 스스로 더 깊이 헤엄쳐 들어갔다고 해야 맞을것이다. 만져보고 싶고, 직접 해보고 싶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으로 가득했을 그 시절에도 저자의 가장 큰 관심은 독서였다. 결국 그것이 전공이 되고 그것으로 인해 삶의 영감과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만나, 저자는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할수 있는 곳에서 이름을 떨치는 그런 인생을 지금 살고 있다. 어렸을때는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쓸정도로 책벌레라는 소리를 듣다가도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쯤 되면 벌써부터 빡빡한 학교 교육에 짓눌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수 없는 우리아이들의 현실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더더군다나 요즈음에는 독서 말고도 어린 아이들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것 같다. 오히려 고등학생쯤 되는 나이에 독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게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해야할 일, 흥미를 사로잡는 것들이 주위에는 넘치고 넘친다. 독서에 애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지속해 가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저자의 말마따나 자서전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본인의 이야기를 조금은 신비화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홍보하는 다른 자서전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그 중심에 독서라는 행위가 놓여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 책을 읽는 방법,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책등등...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만큼 수수하고 정겹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다. 간간히 나에게도 추억이 있는 책의 제목이 나올때면 퓰리처상 수상자와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고 감동이던지. 책읽기를 썩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재미있는 회고록을 읽고 있다보면 분명 어딘가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무리 책을 안좋아한다고 해도 어릴때 만화책 한권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테니까. 그 책읽기의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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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책을 읽어왔습니까? 혹 처음 읽은 책은 기억하시나요?” 내가 처음 스스로 읽은 책은 두산동아 백과사전이었다. 대부분의 전집류의 구매가 그러하듯 우리 집 역시 아버지가 친구 분의 부탁으로 사오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무렵의 어린아이에게 성인용 백과사전은 그저 그림을 보기위한 놀이감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동화전집을 보고 ‘이렇게 얇고 재미있는 책도 있구나.’란 생각에 부러워했었다. 그래도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더다 보다는 나은 환경이었을지 모른다. 더다는 알파벳 ‘A'로 시작하는 백과사전뿐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비싸다는 이유로 나머지 책을 반품했기 때문이다. 더다는 철강노동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홀로 독서에 열중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더다는 추리소설에서부터 인문, 고전, 포르노그래피까지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는다. 학창시절에는 독창적인 서평으로 선생님을 당황케 할 정도였다. 이후 책에 대한 열정은 계속 이어져 <워싱턴포스트지>의 북리뷰 담당기자로 활동한다. 1993년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반 상인 퓰리처 상을 수상한다. 오픈북은 더다가 어린시절부터 대학교 3학년까지의 생활과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크게 유년시절, 중학시절, 고교시절, 대학시절의 4부로 이루어져있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겪는 고민과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읽었던 책들을 시기에 따라 함께 소개한다. 글의 초반부에 가정환경을 언급하면서 어떻게 책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배경을 제시한 덕분에 ‘마이클 더다’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책 뒷부분에는 더다가 10대에 일기장에 적어둔 도서목록을 실었다. 이를 통해 당시의 더다가 어떠한 관심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책을 다룬 도서는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크리스티아네 취른트의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책>처럼 책을 소개하는 도서, 장정일의 <독서일기>처럼 서평을 중심으로 한 도서도 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처럼 독서가로서의 생활을 담은 책, 최근의 <헤럴드 블름 클래식>과 같이 여러 고전의 내용을 모아둔 도서도 있다. 이에 반해 <오픈북>에서는 자서전과 책소개를 혼합하여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독서인생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더다는 다양한 방면의 책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사서교사의 입장에서는 항상 양서와 악서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더다의 글을 읽고 있으면 독자가 어떤 마음으로 그 책을 읽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으로 칭송받는 스탕달의 <적과 흑>도 누군가에게는 연예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폭넓은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가감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만의 판단 잣대를 형성할 수 있다. 나만의 잣대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문제에 마주치더라도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리는 열쇠가 되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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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주제 전환이 빨라서 내용이 복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졌고,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더다 씨가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가 수많은 책을 흡수하며 지금껏 살아오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듯이, 자신 속에 축적된 지식의 보고를 살펴보고 그 중 일부를 고르고 골라 풀어내는 작업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안, 꼬마 마이클에게, 소년 마이클에게, 청년 마이클에게 깊은 호감과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작품 초반, 서양 어린이의 세계와 한국 어린이의 세계는 아주 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을 수록, 우리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그렇고 그렇게 엇비슷 하듯이, 시대와 공간을 꿰뚫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치열한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책다운 책을 몇 권이나 봤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네요. 온갖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은 자주 들여다 봤어도 이름난 소설 책이나 시집은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모두들 정석 책을 파고 들던 때, 홀로 고고하게 앉아 문학 서적을 읽던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 아이는 무척 공부도 무척 잘하는 아이였는데, 아마 마 더다 씨처럼 풍부한 독서력과 이해력이 바탕이 되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그대로 책을 계속 읽어왔다면, 아마 더디 씨처럼 엄청난 독서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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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좋은 책을 내는 일은 흔하다.그런데 아직까지 서평가가 좋은 책을 내는 것을 본 적은 없다.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서평가들이,정확하고 예리하게 책의 장단점을 집어 내는 사람들이 정작 본인의 책은 형편없다는 것처럼 실망스러운게 있을까.아니 그건 실망스럽다기보단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는게 옳을 것이다.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다면 적어도 단점만은 피해 갈거라 믿게 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