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를 위하여>는 가장 황석영다운 서간체 소설로 이루어진 성장소설입니다. 주인공 김수남은 공부를 잘하지만 소심한 겁쟁이로서, 반장 영래가 폭력으로써 급우들을 억압하는 부조리에 대해 항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병아리 교생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씨와 꿋꿋한 정의감에 큰 감명을 받아 반장 영래 패거리에 맞서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폭력에 대항하는 용기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 소설은 발표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상징이 잘 드러나 있는 알레고리 소설입니다. 유신체제가 억압과 공포정치로써 발현되던 1972년도의 이야기이니, 지금의 학생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겠지만 독재정치가 극도로 사람들의 자유를 짓누르던 숨막히던 시절을 절묘하게 표현해 낸 빼어난 작품입니다.
아이들은 가끔 힘센 아이들로부터 매를 맞거나 모욕을 당하면서 자라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용기 있게 대처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반 전체에 극심한 공포를 심어주면서 폭력을 제도화하는 불량한 아이들로부터 돈을 뺏기거나 뭇매를 맞는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년시절은 이런 악동들과의 한바탕 드잡이와 말다툼이 뒤섞이며 서로 복대기면서 흘러갑니다.
하지만 이것이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면, 그 사회의 중심에 서서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대다수 민중들을 억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들 혹은 지배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불과 십 수 년 전까지 그와 같은 엄혹한 시절에 속했습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최고 권력을 거머쥔 영래 같은 우두머리 밑에서 우쭐거리는 종하 같은 자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를 일컬어 ‘호가호위’라고 말합니다.
약한 존재들은 이들의 부당함을 잘 알면서도 항변 한번 제대로 못합니다. 항변을 못한 채 평화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노예 상태의 평화이므로 진정한 평화라 할 수 없습니다. 항변을 하다가 힘센 자들에게 얻어터지고 설사 피를 흘린다고 하면, 그것은 결코 굴욕이 아니며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행사하는 참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소설 <아우를 위하여>는 힘센 자들에게 억눌린 채 맞이하는 굴종의 평화보다는, 힘센 자들에게 온전한 자기 목소리를 내다가 매를 맞는 저항의 몸짓이 훨씬 당당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자기 표현의 완결성이 담겨 있음을, 마치 형이 동생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서간체로써 잘 묘사한 알레고리적 성장소설입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
|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문학,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휴이넘의 「교과서 한국문학」 80권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거장들을 만나볼 수 있다. 황석영, 박완서, 박경리, 조정래, 김원일, 공지영, 이문열 등등 내로라하는 유명작가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한국문학을 좀 더 쉽게 풀어내셨다. 문학은 사람의 삶을 다루는 일을 기본으로 하기때문에, 상상이 아닌 현실적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문학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한국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교과서 한국문학」 80권을 모두 소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문열의 「들소」,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 이렇게 4권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를 읽어보았는데 중학교2학년 국어교과서 듣기(2) 2-5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문학(3) 단원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연계되어 학습적으로도 아이들에게 무척 도움이 된다.
이 책 한 권에는 황석영의 여섯 작품이 실려있다. 하나는 '아우를 위하여', 둘은 '금단추', 셋은 '지붕 위의 전투', 넷은 '잡초', 다섯은 '가객', 여섯은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이다. 모두 단편 작품이어서 아이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초등4학년 딸래미는 처음 읽을 때 왠지 어렵고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 읽다보니 이야기가 재미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문학을 미리 읽어보았다면서 좋아하기도 했다.
'아우를 위하여'는 군대에 간 형이 아우를 위해 자신이 초등학교때 했던 첫사랑 경험을 편지 형식으로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힘이 센 영래라는 친구의 등장, 늘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리를 비우시는 담임 선생님, 영래를 따르며 반아이들을 괴롭히는 몇몇 아이들때문에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생기는 갈등 관계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하지만 교생 선생님의 등장으로 형은 그 분을 사랑의 감정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 분으로 인해 용기를 내는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이야기 속에서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작품에서도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서 겪게 되는 아이들의 실상과 예술과 정치의 비극적 관계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문학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데 여러가지 흥미로운 장치를 두어서 아이들이 읽기에 부담이 덜되고, 작품에 관한 집약적 해설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어려운 용어에 대한 각주가 달려 막힘없이 읽을 수 있게 한다. '만화로 세상 엿보기'에서는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의 재미있는 만화컷으로 아이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알고 가자, 논술거리', '한눈에 작품 살펴보기', '선생님과 나누는 작품이야기', '짚고 가자, 논술 해설', '국어를 알면 논술이 보인다'의 다양한 장치로, 이야기들의 전반적인 맥을 짚어주고 좀 더 확장된 사고를 할 수 있는 안내를 충분히 해주고 있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의 논술력이 저절로 생겨지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거의 모두 아이들 논술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딸래미 친구들 중에도 벌써부터 논술 학원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는데 난 독서를 통해서 충분히 논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 한국문학' 시리즈가 적당한 것 같다. 아직 4권만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아이에게 나머지도 보여줄 생각이다.
|
|
한국 문학...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진 담임 선생님은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영웅같은 상징적 존재이며, 그런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꼭 닮은 영래라는 인물이 선생님의 권력을 대리 행사한다. |
|
휴이넘에서 나온 교과서 한국문학의 책들이 집에 몇권있다. 예전에 감명깊게 읽었던 것들을 우리 큰아이에게 읽힐 생각에 주문한 것들인데 다시 한번 읽으면서 학생들을 위해 쉽고 재미나게 쓰여져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작의 두툼한 책 두께와 작은 글씨체,많은 글밥으로 우리의 한국문학을 접하는데 있어서 다소 겁을 먹었던 초등고학년 학생들이 아주 반길만한 책이 아닐수 없다. 이번에 읽게 된 황석영님의 [아우를 위하여]는 처음 만나본 작품이다. [아우를 위하여]외에도 '금단추','지붕 위의 전투','잡초','가객','북망,멀고도 고적한 곳'5개의 작품이 담겨있다. 전쟁직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서 그 시대의 암울함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맘속에 흐르는 설렘과 슬픔,따스한 정서도 함께 전해진다. [아우를 위하여]에는 형이 아우에게 편지쓰는 형식으로 전개가 되는데 이를 서간체 소설이라고 한다. '아우를 위하여'에 나오는 주인공 수남은 어릴 적부터 가져왔던 노깡(하수도 공사 등을 위해 시멘트 따위로 땅에 묻은 시설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다. 그 두려움과 동시에 반장 영래의 탄압과 횡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방관자로서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담임 선생님은 학교일엔 도통 관심이 없고 부업에만 정신을 쏟으며 아이들에게 자율학습을 자주 시킨다. 힘센 자(영래)의 편에 선 아이들을 곱게 바라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대항도 못한채 지내다가 어느날 병아리 교생선생님으로 부터 따스하고 정의로운 충고의 말을 듣고 용감히 맞서게 된다. 더불어 노깡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한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급장 영래와 그의 주위에서 알짱거리는 종하나 따돌림이나 폭력이 두려워 그를 옹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흡사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영웅에 대한 맹신적인 복종이 어떤 인간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 무조건적인 숭배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든다. 한 작품이 끝날때마다 선생님과 나누는 작품 이야기가 있고 뒷부분에 논술워크북이 있어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어 논술에도 많은 도움이 될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바로 내세우고 바른 인성을 품은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청소년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소설이다.
|
|
이 작품은 예전에도 두어 번 읽은 바 있다. 그러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대비되는 소설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잠시 짬이 나기에 학교 도서관에서 가져와서 읽으면서 형이 동생에게 보내는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어느 시대나 역사는 되풀이 되는 듯하다. 문제는 문학에서는 반란자들을 곧잘 응징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응징을 받기는커녕 대를 이어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소설은 여러 면에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대비되는 소설이다. 그것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아우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강압적인 영래의 권력이 각성한 반 아이들의 힘에 의해 무너짐 (교생선생의 조언) * '나'는 학급에서 벌어지는 형태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다가 교생선생으로 인해 영래에게 맞서게 됨 * 반 학생들의 각성에 초점을 맞춤 (지도자의 조언) * 강압적인 석대의 권력이 반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담임선생의 힘에 의해 무너짐 * '나'는 석대에게 저항했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는 석대에게 투항함 * 반학생들의 중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춤(지도자의 영도) 처음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아우를 위하여』는 무언가 아쉬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 작품이고, 『아우를 위하여』는 1972년 작품이다. 왜 사람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아우를 위하여』에서 많은 것을 가져온 표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는 않았을까?
같은 내용을 써도 작가의 인생관이나 시각에 의해 다르게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황석영 씨는 민중을 긍정적으로 그리면서 그들의 힘에 의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았고, 이문열 씨는 민중을 우매하게 그리면서 뛰어난 영도자에 의해서만 개혁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와 같은 시각은 황석영 씨나 이문열 씨의 현재의 행로에까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나 개인적으로는 『아우를 위하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비교한다고 해도 아쉽게 느낄 작품이 결코 아니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아우를 위하여』를 뛰어 넘은 성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느꼈다. |
|
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