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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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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표명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의도는 존재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존재가 그 자신을 감추고 은폐하는 한, 존재에 대한 물음은 존재자에 관한 물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존재자라는 것이 모든 존재에 대한 문제의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막연하게나마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 인간존재만이 존재를 이해하는 방법론적 가치가 있다. 그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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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표명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의도는 존재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존재가 그 자신을 감추고 은폐하는 한, 존재에 대한 물음은 존재자에 관한 물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존재자라는 것이 모든 존재에 대한 문제의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막연하게나마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 인간존재만이 존재를 이해하는 방법론적 가치가 있다. 그는 이러한 인간을 현존재라 부른다. 존재의 해명을 위해서는 결국 현존재 자신의 존재론적 구조를 먼저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고 [존재와 시간]에 있어서 주요한 문제는 따라서 현존재의 현상에 대한 해석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 내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상실하는 비본래적 존재방식을 취하고 있고 따라서 현존재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불안은 특정한 대상과 특정한 이유를 가지는 공포와 달리, 그 대상도 이유도 전연 잡을 수 없는 무규정적인 것이다. 이러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현존재는 본래적인 자기존재를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본래적인 자기로서 존재할 것을 결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현존재가 본래적인 자기에로 자기 자신을 내어 던질 때, 하이데거는 이것을 투기라 하고 이러한 존재방식의 태도를 투기적으로 취하는 것을 실존이라고 한다. 즉 실존이란 현존재의 본래적인 존재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존재는 누구나 죽음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죽음에의 존재는 그의 본래성에 직면하게 되며 현존재의 본래성을 증시하는 현상은 다름 아닌 양심이다. 현존재가 이러한 양심의 소리에 청종할 때, 현존재는 본래적인 자기존재를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죽음은 현존재에게 있어서 반드시 제기되는 가능성이고 따라서 가능성에의 선구이다. 또한 양심으로 자기선택을 하게 되는 것을 하이데거는 결의성이라고 하였다. 결국 두 현상은 상호연관을 갖게 되어 '선구적 결의성'으로 통일된다. 결론적으로 그는 현존재의 존재론적 구조를 시간성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의 시간성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계기와는 달리 세 가지 존재구조의 계기, 즉 세계 내에서 이미 잇는 존재가 앞질러 존재하는 투기로써 결의에 의하여 현시하는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그의 시간성을 단절된 시간관계로 보지 않고 그것의 구체성에 있어서 즉 생기라는 근본 성격을 지니는 역사에 있어서 이해하려고 한다. 이리하여 존재자의 존재, 현존재의 존재근거로서의 존재는 그 시간성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현시되는 것이다.
k******2 2000.06.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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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존재와 존재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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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어두움에서 부터 출발한다. 존재는 가장 어두운 개념이라는 그의 말은 현존재(da-sein)의 실존상황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사이 존재(Inter esse)로 파악했다. 근데 데카르트적 이성의 명증성을 핵으로 한 철학의 오만에서 한 발자욱 더 나아가 인간 내부의 다른 측면.. 즉 감각의 논리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하이데거에게서 데카르트적 이성의
"사이 존재와 존재와 시간.." 내용보기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어두움에서 부터 출발한다. 존재는 가장 어두운 개념이라는 그의 말은 현존재(da-sein)의 실존상황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사이 존재(Inter esse)로 파악했다. 근데 데카르트적 이성의 명증성을 핵으로 한 철학의 오만에서 한 발자욱 더 나아가 인간 내부의 다른 측면.. 즉 감각의 논리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하이데거에게서 데카르트적 이성의 아성위에 쌓아진 근대 과학기술문명의 인강성 파괴현상을 존재의 논법으로 막아서는 위용을 엿볼 수가 있었다. 중세철학의 존재론적인 논변위에 세워진, 또 다른 확실성의 독단적 자기 주장이 아니라, 현존을 불안과, 무,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거꾸로 그 가능성으로 파악하여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일군의 노력이 참으로 신선하다. 러나, 신학자 틸리히가 말했듯이 인간이 존재(being)와 비존재(non-being)의 사이존재라면, 근본적으로 존재물음 에는 그 한계를 노정시킬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존재자로서의 그 존재를 기투된 현실성.. 관념의 탑을 벗어나 삶의 세계와 그 실존으로 이해했던 하이데거는 분명 현대철학의 거인이다. 그러나 그의 인간분석은 '존재'라는 그 스스로 시인했던 가장 어두운 개념에서 시작한 위용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에 대한 더욱 정제된 분석이 그에게 선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h******8 2003.02.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