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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신태라 출연 - 황정민, 강신일, 유선, 김서형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왜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봤을까 하고 후회한 작품이다. 언제나 스티븐 킹님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에서 느낀 것이지만, 호러나 스릴러는 소설이 원작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 특히 그것이 장편인 경우에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영상화하기에는 부족하다. 대개 ‘2% 아니 20% 부족해!’ 라고 절규하게 만든다.
물론 가끔 어떤 것은 200% 부족하다고 외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을 실사화한 영화 ‘토미에’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왜 만들었냐고 한탄을 한 영화였다. 어떻게 감히 토미에 여신님을 그따위로 만들었는지……. 만약에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뜬금없다고 생각될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등장인물이나 간혹 매끄럽지 않은 연결 등등. 책에 나온 모든 설명과 심리를 다룰 수 없어서 몇 개는 건너뛰고 어떤 것은 빼먹었기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아쉬운 점이 좀 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용은 소설과 비슷하다. 보험사에 근무하는 주인공이 자살한 아이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는 그것이 자살이 아닌 부모에 의한 타살이라 의심하여 조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엄청난 일에 휘말린다. 어디선가 읽은 우스갯소리 글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주인공이 형을 구하겠다고 하지만 않으면, 형 한사람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을 구한다고 난리치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 여럿이 죽고 인생 망쳤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화도 그렇다. 그냥 보험금 내주고 자살이라고 믿었으면 그냥 그 가족만 죽었을 텐데, 괜히 나서가지고 주변 사람들까지 죽어버린 것이다. 뭐, 그 덕분에 앞으로 그들에게 살해당했을 주변 인물들이 살았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살해당한 사람들의 암매장당한 시체를 찾아서 잘 묻어주었으니, 원귀가 떠돌 일도 없고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죽은 아이의 엄마로 나오는 배우 유선씨가 참으로 연기를 잘했다는 것이다. 주인공 황정민을 노려보는 장면에서는 제대로 미쳤다는 생각에 오싹함마저 느끼고 말았다. 황정민씨는 음, 이 배우의 연기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뭐랄까……. 원작에서 느낀 주인공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아마도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느낄 수가 없었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영화가 '사이코 패스 = 미친 연놈들'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인물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나와 있지 않고, 공기 중에 떠도는 불안감이나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보다는 그냥 살인, 방화, 폭력 같은 미친 짓만 너무 부각시킨 느낌이다. 아무 말 없이 걸렸다가 끊어지는 전화나 마지막 계단 씬, 그리고 보험회사에서 보이는 죽은 아이 아버지의 행동들을 좀 더 잘 이용했다면, 긴장감을 서서히 높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었을까? 여배우의 열연에 감탄을 했지만, 그 이외에는 약간 아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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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유선이라는 여배우였다.
다만 다른 역할의 캐스팅은 좀 아쉬웠다. 그녀의 남편 역할은 뭐랄까... 좀 더 싸늘하고 도시적인 느낌이어야했다.
물론 내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원작인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린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남자의 여자 친구역도 어쩐지 사랑스럽지 않아서인지 두 사람의 사랑에 별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유선이라는 배우의 연기는 좋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여배우임에 틀림없다.
결정적으로... 결말은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설법으로 관객에게 훈계하듯 다 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니었을까.
더군다나 결말에 추락씬에서 CG도 안 되는 거라면 과감히 줄여서 갔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장함에서 웃음이 난다면 그건 잘못된 선택이다.
그래도 덫이나, 철도를 이용한 살해, 목욕탕 장면등은 칭찬을 많이 해줘야할 거 같다.
좋은 촬영에도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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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름이면 케이블 방송에서는 흉가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한다. 그
런 방송을 볼 때면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집도 그렇게 흉가처럼 변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살짝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 안전한 공간처럼 느껴지
는 그 집이라는 공간이 엄청나게 무서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우리의 마
음을 무겁게 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담쟁이가 너무나 예쁘게 자리를 잡은 오래된 농가가 있었다고 한
다. 사람이 살고 있던 그 집을 정부였는지, 아니면 지방정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
로의 생각으로 보존하고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보호할 집으로 지정하고 그 집에
살고 있던 이들에게는 보상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그 집
은 나름대로 보존하고 보호를 했음에도 사람이 떠나고 겨우 일년여만에 허물어져 폐가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그 기운이 집을 보호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말을 생
각나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집들의 무리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집들이 모여 만들
어졌고,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도 집이고,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는 곳도 큰 의미에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우리와 집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이유를 알 수 없게 무서운 기분이 드는 집들을 우리는 만나기도 한다.
검은 집은 그런 이야기다. 처음부터 그런 집이었을리는 없지만, 조금은 흔한 보험사기로
시작된 검은 집의 이야기는 작은 상해를 통한 보험금 사기에서 결국은 사람의 목숨을 빼
앗는 보험금 사기로 넘어간다. 이 정도는 너무나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인간의 어두운 마음이 평범한 집을 감싸 검은 집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느
끼게 되는 순간 그 집 자체가 거대한 악마가 된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아니 편안하고
안전을 상징하는 공간인 집이 인간의 어둠에 의해서 너무나 무서운 악마가 되어 공포가
되는 이야기가 바로 검은 집이다. 검은 집의 집은 물론 심령 공포 영화처럼 인간을 직접
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집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 어둠이 하나씩 그 집에 더
해져 어느새 그 검은 집,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된다. 그런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검은 집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