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
불완전한 인간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죽음을 단지 뒤로 늦출 뿐이다. 그러므로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시기를 알 수 없으므로 미리 준비해두지 않는 이상 유언(遺言)은 즉흥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들이 생전에 이룩한 업적처럼 마지막 말 또한 위대할까.
"죽음은 나팔을 미리 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을 예견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에게 최소한 '마지막 말'을 남길 시간은 부여한다." (5쪽)
유언이란 책 제목을 접하면서 '위대한 사람들의 유언은 평범한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하는 호기심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을 통해 내 삶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대부분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그들이 죽음 앞에서 남긴 말 또한 미처 준비되지 못해서인지 너무나도 짧고 때로는 엉뚱했으며 지극히 평범했다. 내가 보기엔 선남선녀의 유언과 별반 색다를 게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들이 남긴 유언보다는 성인, 왕 · 군주, 정치가 · 군인, 혁명 · 운동가, 철학자 · 심리학자 · 과학자, 문학가, 예술가, 종교인 등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많은 분야에서 활약했던 지구촌 곳곳의 위인들에 대한 작가의 소갯글이 더욱 인상깊고 유익했다.
'저자는 의학을 전공한 전문의로서 병원 근무와 언론계를 거친 뒤 30여 년 동안 <슈피겔>지의 저술자 겸 리포터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의학과 과학 분야에 관련된 많은 책을 썼으며 도핑, 비밀조직, 역사, 머리카락, 알코올 등 다방면에 걸친 분야에 관한 책도 약 20여 권에 이른다. 그는 이 <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유언>을 집필하기 위해 약 10년 동안 자료를 수집했고, 무엇보다 베일에 싸인 진실을 검증하려고 노력했다.' (책표지에서 발췌) 그의 장기간에 걸친 방대한 양의 자료 수집과 노력은 책을 읽는 내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맨 뒷면에 이름으로 검색하는 '찾아보기' 색인 목록까지 만들어둔 것을 보면 그 자료가 상당한 양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말을 후세에 남기고 하늘로 떠나간 그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은 사람이나 내가 남긴 마지막 말이 누군가에게 기록되어 후세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묻혀버린 위인들에 비하면 말이다. 유언이란 제목과는 다른 내용의 전개 때문에 왠지 삼천포로 빠진 느낌도 들고 세계사 공부를 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지만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해 많이 알려진 부분 외에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한 부분은 신선했고, 1년 전에 발간된 <유언>보다 쪽수를 줄이고 가격을 인하한 점, 종이의 질감이 좋고 디자인이 세련된 점은 보기 좋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유언을 하기 직전의 죽음을 앞둔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한 인물에 대한 일대기는 짧게 압축되어 소개될 수밖에 없었고 3~4쪽의 짧은 분량에 모두 담아내기란 다소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진실을 검증한 부분이라 그런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이 절제되어 서술되었고, 생소하고 낯선 인물에 대한 건조한 서술에 머릿속이 겉도는 느낌으로 무료하게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사견이지만 많은 사람의 유언을 짧게 다루기보다는 소개하는 인물의 수를 줄이더라도 한 인물의 일대기를 더 자세하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 알 수 없는 낯선 이름들, 그리고 그들이 내 가슴 깊숙이 스며들지 못함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아직은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 나이에 - 태어나는 것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지. 그걸 알면서도 나만은 아무 일 없기를,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며 - 죽음을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유언에 대해서는 조금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물려줄 유산이 많아 자식들 재산 싸움 할 걱정에 미리 유언을 남겨 둘 일은 없을 테고, 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사무엘 하네만의 비석에 새겨진 말(228쪽)처럼 이렇게 말하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
"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
2007/10/20
Written by Das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