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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드배치반대, 갑을오토텍의 사람들. 보금자리의 새들이 외치는 S.O.S를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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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드배치반대, 갑을오토텍의 사람들. 보금자리의 새들이 외치는 S.O.S를 들어야유병선, 고장난 자본주의에서 행복을 작당하는 법을 읽고.서평 원고를 쓰기 위해 동네의 커피숍에 와 있다.  연일 내리쬐는 불볕 더위를 피해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가게로 들어온다. 특히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 어머니가 눈에 띈다.  그들 또래끼리 아이 키우는 이야기, 남편 험담,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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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드배치반대, 갑을오토텍의 사람들. 보금자리의 새들이 외치는 S.O.S를 들어야

유병선, 고장난 자본주의에서 행복을 작당하는 법을 읽고.

서평 원고를 쓰기 위해 동네의 커피숍에 와 있다.  연일 내리쬐는 불볕 더위를 피해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가게로 들어온다. 특히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 어머니가 눈에 띈다.  그들 또래끼리 아이 키우는 이야기, 남편 험담, 요리 이야기 등을 시시콜콜 나누는 모습이 유난히 낯설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유튜브와  각종 SNS를 통해 성주 군민들의 삶과 세월호 유가족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불과 며칠전만 하여도, 불과 몇 해 전만 하여도 우리 모두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유별남 없이 살았었다.

국민 TV를 통해 갑을오토텍 사건을 접했다. 2030세대에게 관리직 모집을 말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관리직이 아닌 생산직의 업종을 수행하게 되었다. 노조에 가입된 기존의 기술직을 대신하여서 말이다. 그나마 이 생산직도 기업주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철회 가능해 보였다. 자기소개서를 몇번이나 고쳐 썼을 것이고, 거울 앞에 서서 수없이 면접 준비를 했을 그들이었다. 그들의 노력이 고작 누군가의 주사위 놀이처럼 쉽게 뒤바뀔 수 있다는데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경향신문 논설 위원을 지낸 유병선의 책을 접했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고, 얼핏 보면 웹툰 같은 표지가 친근했다. 제목에 작당이라는 어휘도 재밌었다. 본래 작당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상황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에 어울리는 데, 행복을 작당하는 법이라는 말이 역설적이게 느껴졌다. 평범하게 사는 게 어쩌다 이렇게 어려워 진 것일까?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공감이 인간의 천성이라며 타인을 생각하는 경제 행위를 강조했다. (20p)
국부론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하면 우리는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릴 것이다. 학창 시절 사회과 수업에서 줄기차게 외웠으니 그럴만도 했다. 시장의 작동법에 있어서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고, 인간의 이윤추구 욕구에 의해 자연스럽게 경제가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보통의 시장주의자들이라고 내세우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론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그의 인생에 걸친 철학을 우리가 오판한것은 아닐까?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으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한다. 연민과 동정심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35p)
모든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어떠한 연구 분과를 학자가 성공하기 위해서 선 수행되어야 할 것이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구술되는 논리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고금을 막론한 유일한 진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장의 원리에 있어서도 애덤 스미스는 인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그의 도덕 감정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같은 내용을 배운적이 없다.

 

'공감'이라는 말은 오히려 냉혹한 시장질서에 어울리지 않은 상스러운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주 사드반대 투쟁위에서 세월호도 이랬겠구나 하는 것은 본능적인 공감이었을지 모른다. 일상이 헝클어져버린 자신들이 느낀 감정을 세월호 유가족에게 투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강정마을, 천안함이라는 굵직했던 역사의 한 섹터를 엿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옥시 사태, 폭스바겐 사태와 맞물려 최근의 갑을오토텍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눈을 생기게 만들었다.  그것은 값산 동정이 아닌 공감이었으며, 그 일이 남의 것이 아닌 바로 우리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는 동네 깡패들에게 얻어맞고는 "나는 아들한테 맞은 격이다. 아들 뻘 되는 녀석과는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나는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는 식으로 자위한다. 사회적으로 생산된 삶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돌파하려는 헛된 시도가 이 지독한 각자도생 시대의 정신승리법이다. 외면하고 둘러앉기의 정신승리법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카일라시 시티아르티처럼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내가 아니면 누가"라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것인가. (106p)

카일라시 시티아르티는 인도의 아동 권리 운동가이다. 그는 201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소영웅주의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난돌이 정맞는다는 두려움이 무엇인지도 지극히 안다. 그러나 역사에서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알고 기꺼이 모난돌이 되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적어도 자신이 모난돌이 될 수 없다면 그 모난돌을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

행동 없는 수사, 실천 없는 말들만 난무하는 세상이 '텅 빈 말들의 무덤'이 되어버렸다는 개탄도 나온다. 보수와 진보, 민주주의와 독재, 저항과 시민조차 빈말이 될 위기라는 이야기다. 공감과 연대를 확장하고, 각자도생의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혁신일 터이다. 이러한 사회적 혁신을 외면한 채 '불능의 정치'만을 탓하고 선거의 판세만 다지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거나, 할 수 있는게 없다며 시민정신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108p)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프레임속에 '각자도생'이라는 사생아를 낳았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2014년 4월 16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골든타임을 넘겨 생때 같은 우리 아이들과 평범한 삶을 영위하던 우리의 가족을 잃었을 때 우리는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몇 개월도 못되어 귀찮은 일이 되었다. 가끔 안타까운 일이다는 식의 쉬운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난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위안을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이 포기되는 것이 싫다고 솔직히 시인하는 것은 어떨까. 정권이 바뀌면 지금보다 살기 좋다는 그럴싸한 안위로 제2 제3의 세월호와 사드, 옥시, 폭스바겐, 갑을오토텍이 나오지 않을것이라는 말만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깃발을 들고 데모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만 믿지 않는다. 공감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이 아닐까. 자신의 일상이 파괴되지도 않는다. 기억하는 것은 단지 매체에 이 사건이 오르락 내리락 할때 잠시 묵념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기억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1960~80년대는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외우게 하고,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임을 따르지 않는 일체를 역사적 사명을 거스르는 불순물로 취급했다. 일체감과 충성심을 강요한 헌장에 '국민'은 있어도 '개인'은 없었다. 요즘이 "돈 나고 사람 났다"의 세상이라면, 헌장의 시절은 "국가 나고 사람 났다"의 세상이었다.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의 대오에서 벗어나는 '다른 생각'은 가차 없이 배제되고 처벌되고 경멸되었다. (200p)

애국 애족할 국민은 늘 복종을 강요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항거는 매국이자 반역이었다. 그것은 20세기 한국의 역사이자 21세기의 자화상이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국민 개개인이 국가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제1조의 원칙이 여기에 있다. 법의 가장 최상위라는 헌법을 초월한 그 무엇도 있을 수 없다. 개개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오직 헌법에 의해서만이다. 거기에는 특권이 있을 수 없다.

1990년대 자본시장 자유화에 대한 일종의 '이중운동'으로 전개된 브라질의 연대경제운동은 2003년 '연대경제 정부정책결정자포럼'과 민간 주도의 '브라질연대경제포럼'이 결성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이는 다시 룰라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2004년 브라질 고용노동부 산하에 '연대경제청'의 신설로 이어졌다. 브라질의 연대경제는 사회적 경제의 풀뿌리 조직 네트워크와 열린 협의체로 지탱된다. 27개주에 주 단위 연대

경제 포럼과 전국 120여 개의 지역 연대경제포럼이 '연대경제기업 전국회의'를 구성한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대회에 온국민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이 어떻게 경제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오직 메달 몇 개를 더 획득하는게 우리의 정신적, 민족적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보고서와 맞물려 장기적인 경기 침체만을 보고 브라질을 평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라질은 쉽게 무너질 나라가 아니다. 그들이 잡고 있는 풀뿌리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했는가. 정치적 연대는 차치 하더라도 경제적 연대의 수준은 브라질보다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지역사회의 재건이다. 중앙 집중식의 시민 운동이 아닌, 풀뿌리 연대를 실시하기 위한 기반을 우리도 서둘러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첫 걸음은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를 교과서적인 정의가 아니라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개별화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 밑바탕에서 우리는 공감과 연대의 보금자리를 짓고, 이전의 "빠져 죽을 것인가 헤엄칠 것인가 sink or swim"의 프레임이 아닌 "사람 살려 Save Our Souls!"(205p)라는 본래의 의미로 돌아가야 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2 2016.08.0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