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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의 토론문화 도입으로 본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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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와 95%의 한국 교회에 추천하는 책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 target=_blank onmousedown=?MM_openBrWindow(?. newnews formmail.php?email="cG9lbWdlbmVAc3N1LmFjLmty&name=이범진','','status=yes,width=500,height=410')"">      다시 한국 교회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MBC<뉴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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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와 95%의 한국 교회에 추천하는 책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다시 한국 교회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MBC<뉴스후>에서 일부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상식’을 벗어난 다채로운(?) 모습들이 보도되면서, 기독교를 향한 강렬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호화생활과 비리 등을 고발하며 “대형 교회 목사들이 재벌 회장과 다를 바 없다”며 비판했습니다.

▲ MBC 시사교양 <뉴스후>     © 뉴스파워


거부는 타락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데 이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보도 다음 날 설교에서 거부(巨富)는 타락한 것이 아니라며 하나님을 모시고 부자가 된 것은 크나큰 축복이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맞습니다. 부자는 타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크나큰 축복의 척도가 될지는 의문입니다. 그 돈이 누구로부터 모여 축적된 돈인지에 대한 자기성찰이 전혀 없었다고 봅니다. 어린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친 꼬깃꼬깃한 천원자리들과, 거동조차 불편한 어르신들이 일주일 내내 종이를 모아 낸 헌금으로 부자가 된 것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 ‘착취’에 가깝습니다.
 
 
세상적 관점보다 못한 기독교적 관점?

한 술 더 떠서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고 있는 사랑실천당과 청교도영성훈련원은 “원로목사님들에 대한 교회의 대접은 세상적 가치의 기준으로 볼 수 없다”며 세상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비판하지 말라고 경고(?) 했습니다. 그럼 세상적 관점으로 보지 않고, 기독교적 가치의 기준으로 뒤집어서 생각해봅시다. 간이 골프연습실이 딸린 호화주택에서 사는 목사님이 기독교적입니까? 아들에게 교회를 지어주고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목사님이 기독교적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름시름 아파하던 IMF시절 매달 3천만원씩 받는 목사님이 기독교적입니까? ‘기독교적’인 것이 무엇인 저는 잘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모습은 적어도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인 가치의 기준은커녕, 세상적 가치의 기준으로도 미달되기 때문에 뉴스거리,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일부의 문제 아닌, 전체 개개인의 문제

이에 대해 사람들은 ‘일부’의 문제를 전체 한국 교회의 문제인 것처럼 보도한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5%도 안 되는 문제를 왜 전체인 것처럼 인식되게 하느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지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 95%의 정상적인 교회가 5%에 대해 아무런 바른 소리, 쓴 소리를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심하면 그 5% 교회의 모습을 목적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토론에서 항상 이기기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는 언제인가 자신이 논쟁에서 항상 이기는 방법에 대해 “상식의 자리에 서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가진 돈을 다 내어놓고, 생명을 다해 성도들을 섬기는, 상식 초월의 교회가 되어야할 기독교가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언론에게 항상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이 꼭 5%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95%의 개인 개인은 얼마나 자신의 삶 속에서 ‘상식’의 선을 초월하려 노력합니까. 우리 모두의 반성이 필요합니다.

▲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이황직 지음, 프로네시스)>     © 이범진


자정능력 회복을 위해서는 100% 모두의 소통

기득권이 응집된 5% 한국 교회이든,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95% 한국 교회이든, 다시 참 교회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토론’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함께 말하고 소통하는 ‘장’을 통해서여야만 한국 교회는 자정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협회, 토론 공화국을 꿈꾸다>는 우리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이 책은 비록 좌절된 시도이긴 했으나, 기득권에서 밀려나 있던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나아가 근대적 정치 원리의 실험장 역할을 했던 독립협회의 토론회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내 '시끄러운 논쟁'이 필요할 때

서재필은 가장 먼저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순 우리말 신문인 「독립신문」을 간행합니다. 어지러운 나라 현실에 ‘시끄러운 논쟁’이 나라를 분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서재필은 그러한 ‘시끄러운 논쟁’이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독립신문이 가져온 변화는 매우 컸습니다. 한 장의 신문을 펼치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신문을 돌려 보며, 수동적이었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논쟁을 통해서 펼치는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이러한 모습이 점점 발전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민공동회’로 집니다. 이 생생한 현장을 전하는 <독립협회, 토론 공화국을 꿈꾸다>는 한국 교회 95%를 향해 ‘시끄러운 논쟁’의 장을 마련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때 조금 더 귀담아 들었더라면...

▲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이우근 외, 샘터)>     © 이범진

95%로에게 권하는 책이 위에서 설명한 <독립협회 토론 공화국을 꿈꾸다>였다면, <뉴스후>에서 담론화 된 5%에게 권하는 책은 특별히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는 책입니다.

교계의 원로 중진 목사님들(오늘날 뉴스후 등에서 거론되는)이, 나름대로 한국 교회에서 이름을 높인 목사님들이 한경직 목사님의 병문안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한 목사님, 모처럼 이렇게 교계 중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좋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잠시 후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목사님은 간곡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p******e 2008.12.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팩션과 역사서 사이에서 신선한 서술 방식은 좋지만…
"팩션과 역사서 사이에서 신선한 서술 방식은 좋지만…" 내용보기
본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 때는 바로 본문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책의 표지와 머릿말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그러던 중에 가장 먼저 이 책의 출판사 이름인 '프로네시스(Phronesis)'의 뜻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에 따르면 '프로네시스(Phronesis)'는 지혜 혹은 지적인 통찰을 가리키는 고대 그리스 말로 특히 실천적 지혜(Pratical wisdom)을 의미하며 소크라테스
"팩션과 역사서 사이에서 신선한 서술 방식은 좋지만…" 내용보기
본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 때는 바로 본문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책의 표지와 머릿말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그러던 중에 가장 먼저 이 책의 출판사 이름인 '프로네시스(Phronesis)'의 뜻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에 따르면 '프로네시스(Phronesis)'지혜 혹은 지적인 통찰을 가리키는 고대 그리스 말로 특히 실천적 지혜(Pratical wisdom)을 의미하며 소크라테스는 '프로네시스(Phronesis)'를 현명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프로네시스(Phronesis)'를 출판사 이름으로 선택한 만큼 지혜, 특히 실천적 지혜를 가져다주는 책을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의지를 출판사 이름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곳곳에서 글쓴이의 은사인 '박영신 교수'에 대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본인도 1학년 때 박영신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의 1학년때의 회상이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 공학도로서 인문학적 소양이 전무하던 나는 필수적으로 인문/사회쪽 교양 수업을 이수해야만 되었고 그 많던 교양 수업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대 사회와 사회학]이라는 수업이었다. 당시에는 '사회학'이 무엇을 배우는 수업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사회학'이란 학문 이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다. 결국 이 수업을 수강해서 첫번째 수업 시간이 되었는데 들어오는 교수님이 호호백발이신 것 아닌가? 이것도 놀랍지만 교수님이 들어오자마자 약 절반 정도의 학생이 그대로 일어나서 나가는 것이 더욱 더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나이 드신 교수님이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수업을 하고 결정적으로 학점도 잘 안 준다는 점은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교수님 얼굴을 보자마자 일어나 나가는 것은 교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본인의 경우 그래도 첫 수업은 들어보고 수강 변경을 고민해보자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자칭 한국 최고의 명문 사학이라는 학생들 수준이 고작 이정도라는 것이 지금도 굉장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첫번째 수업 자체는 굉장히 신선했고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수업의 교수님을 학교 자유게시판에서 검색하니 '신입생의 절반을 F를 준다느니',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무너졌을때 건축공학과 학생은 전부 F를 줬다느니'라고 학점을 굉장히 짜게 준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1학년 때에는 학점은 [out of 안중]이었다. 물론 학부대학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학과 선택을 위해서는 학점도 필요했지만 당시 흥미가 있었던 '화학공학과'√2, √3도 들어갈 수 있었던 학과였다. (물론 지금은 공대 안에서 최고의 선호 학과로 변신하였다.) 그래서 수강 변경을 하지 않으면서 학점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단지 무엇 하나라도 얻어가는 공부를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수업 자체도 힘들지만 특이한 점은 3학점 짜리 수업이라서 일주일에 2시간 수업 하나, 1시간 짜리 수업 하나를 하는데 2시간 수업은 강의하지만 1시간짜리 수업은 10명 정도로 조를 짜서 조교와 함께 2시간씩 쪽글 제출토론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래도 '학점'을 감안해야 되고 당시 인문/사회적 소양이 전무했던 나는 그다지 토론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지는 못했다. 물론 일주일에 2~3편씩 읽어야되는 논문은 꼬박꼬박 읽어서 쪽글을 써 냈지만 말이다… 이렇게 수업을 하면서 '사회학'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글쓴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사회학을 공부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사회학자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글쓴이와 달리 나는 감히 전공을 변경할 용기가 없었으며 나에게 조언을 해줄 멘토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현대사회와 사회학]은 나에게 있어서 '막스 베버'의 이름과 박영신 교수님이 한글을 사랑하셔서 소싯적에 쓰시던 Love letter에 honey나 darling 대신에   '달님, 해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기억만 남기고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연세대학교 선배에게 박영신 교수에게 물어보니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특히 "쓰레기다"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는데 외국에서 '막스 베버'만 공부하고 와서 오직 이것 하나만 가지고 먹고 사는 교수이며 고생을 안 해 봤기 때문에 이상론에 치우쳐있고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중요시해서 기독교적 윤리관에 기초를 둔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적 학자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학이라 함은 사회 구조를 연구해서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내어야 하는 학문인데 박영신 교수의 경우 오직 현실 문제의 해결책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 즉 성실하고 열심히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면 된다는 식으로 철학이 없는 주장을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와 비슷하게 이 책에서도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으며 이 책의 부제를 '서재필 위인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서재필을 훌륭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다른 의견도 굉장히 많다. 특히 독립협회를 단순히 자신의 정치도구로 이용했을 뿐이며 친미파이며 당시 지식인으로서 우월적 입장에서 계몽주의를 추구했다는 의견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윤치호에 대해서는 [윤치호 일기]등을 통해서 적극적인 친일파라고 하는 데에는 학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이 사실상의 원전으로 삼고 있는 신용하 교수의 [독립협회연구]를 읽어 보았는데 이와 비교하여 독립협회와 협성회에서 이승만의 역활이 너무 강조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책의 구성과 내용에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연구가 빈약하고 신용하 교수의 [독립협회연구]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글쓴이는 팩션과 역사서 사이에서 새로운 서술 방식을 이용하여 쉽게 독자에게 독립협회에 대해 이해하게 도와주는 점은 굉장히 신선하다. 그리고 토론의 중요성과 방법론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과거의 '만민공동회'가 현재의 '촛불시위'와 비교해서 시사점이 많아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독립협회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천편일률적으로 긍정적이라서 균형 잡힌 시각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 책을 시작으로 삼고 다른 책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독서하는 것이 올바른 지식을 가지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a******n 2008.10.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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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진행중인 독립협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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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것 중 남아 있는 게 무엇이냐 물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의 서구화되었다. 생각마저도 서구화되어 전통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이런 세태를 두고 ‘위험하다’는 평을 하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발전은 발전이라 칭하기가 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한 때 우리는 타국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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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것 중 남아 있는 게 무엇이냐 물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의 서구화되었다. 생각마저도 서구화되어 전통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이런 세태를 두고 위험하다는 평을 하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발전은 발전이라 칭하기가 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한 때 우리는 타국의 모든 것을 닮는 것을 발전이라 믿었었다. 본받아야 할 국가를 놓고 중국이다, 일본이다 등의 말이 많긴 했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모든 것을 이 땅에 이식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어쩌면 현재도 그러한 시각으로부터 우린 자유롭지 못하다.

 

삼일천하(三日天下)로 유명한 갑신정변 후 개화파의 기세는 한 풀 꺾이었다. 갑신정변의 주체 세력들은 모두 축출되었고 기세등등해진 수구파로 정국이 들끓었다. 하지만 시대는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정도의 확고한 질서를 갖고 있지 못했다. 온갖 종류의 외세가 이 땅에 발을 디뎠고, 제국주의 세력간의 권력 양상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은 뒤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혈육을 잃은 서재필에게도 기회는 있었고, 역사가 기억하듯 그는 그 기회를 포착했다.

독립신문을 만들어 민중을 계몽하고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키려 든 그의 활동은 오늘날 대체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미국의 침략은 자원개발이라며 두둔했으며 사회진화론을 어느 정도 긍정하는 등 제국주의의 속성에 대해 완벽히 눈을 뜨지 못한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서재필과 독립협회의 활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이 책의 저자는 독립협회의 활동 중 국민주권 측면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이전까지 민중은 주권을 가진 국민 아닌 일방적으로 통치되는 신민이었다. 국왕과 소수의 양반 세력에 의한 통치권은 확고해 보였고,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반역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갑오경장으로 인해 신분제도는 폐지되었고, 법적으로나마 모든 이들은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지금껏 침묵하던 이들은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야 할지, 자유를 이해치 못하는 이들에게 자유가 종종 방종으로 이해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 표현의 기회를 활용치 못했다.

 

신문이 나오자 뒤가 컴컴한 부정을 태양 앞에 내세워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교육과 정당한 개혁을 장려하여 人智의 개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에 부정한 관리와 불량한 관원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면서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국민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다니고 있는 풍경과 또한 각 점포마다 이 신문을 펴놓고 읽고 있는 광경이란 참으로 새로운 현상이다.

 

한말 I.B. Bishop [한국과 그 이웃]이라는 책을 통해 이러한 말을 했다. 독립신문의 영향력이 실로 막대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또한 서재필이 적지 않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배재학당 및 협성회 활동 역시 서양식 토론의 효율성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그 전에는 성인의 말씀으로부터 전고를 찾아 그 뜻을 분명히 하는 경학 토론만이 존재했고, 그나마 이에 참여한 이들도 소수였다. 무엇이건 많은 이들이 함께할수록 그 파괴력이 커짐은 당연한 이치다. 만민이 모여 시시비비를 논한 끝에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는 행위가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서재필은 자신이 구상한 운동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세력간의 균형이 깨어지기 전에 강고한 국가를 건립하려 들었던 고종은 전제군주국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서재필 이후에 독립협회를 이끌었던 이들이 서재필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독립협회는 토론으로부터 벗어나 몇몇 주도자들의 목소리에 의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여의 활동이 막을 내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토론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지닌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그의 의견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는 것은 적지 않은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독립협회의 토론회가 있은 지 110년이 흐른 지금도 제대로 된 토론을 하는 이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기나긴 독재정권을 경험했고, 때론 한 가지의 의견만이 절대시되는 파시즘적 세태와 우린 만난다. 하지만 그 때마다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존재하는 걸 보면 우린 분명 더 나은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성숙한 토론문화 역시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100여 년 전 서재필이 꿈꾸었던 그리고 독립협회가 지향했던 세상의 건설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달의 사락 q*****2 2007.1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