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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자욱>은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생각하는 동화’ 두 번째 이야기인 <멀리가는 향기>보다 대체로 글의 길이가 깁니다. ‘내 자리에서 찾은 행복, 순간에서 영원으로, 차지 않는 그릇, 입 속에서 나온 장미꽃’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총 38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고민하다가 그 중에서 네 편을 골라봅니다.
○어떤 방정식 아인슈타인한테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은 누가 보아도 성공하신 분입니다. 선생님의 성공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한동안 침묵하고 있더니 간단한 공식 하나를 적어서 보여 주었다. S= X+Y+Z
아인슈타인이 설명하였다. “S는 성공이다. 이 S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X가 첫째 조건인데, X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Y는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 것, 일하는 것 자체도 생활 속에 포함된다는 것을. 그리고 Z는 ‘고요한 시간’이다.”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성공에 왜 고요한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인슈타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고요히 자기를 들여다볼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목표가 빗나가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고, 생활을 즐기되 고요한 시간을 가진다면 삶 자체가 아름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성공을 하지 않더라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지키고 가꾸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에 몸과 마음이 풍요로운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요.
○‘나뿐’ 놈들 천국이나 지옥이나 어느 것 하나 다르지 않았다. 천국도 푸른 초원이었고 지옥도 푸른 초원이었다. 맑은 물 또한 천국과 지옥 차별하지 않고 흐르고 있었고, 부는 바람 역시 양쪽 다 감미로웠다. 조물주가 차려 놓은 식탁 또한 똑같았다. 산해진미가 그릇마다 가득가득하였다. 오직 사람들만이 달랐다. 천국에는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들어갔고 지옥에는 ‘나’뿐인 사람들이 들어갔다.
사람들은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찾아들었다. 그런데 그곳의 식탁은 저만큼씩 떨어져 있어 팔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의 길이가 석 자씩이나 되었다. 멀리 있는 식탁, 기다란 숟가락과 젓가락, 식탁의 음식물을 잡을 수는 있어도 자기 입에는 도저히 넣을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지옥의 나뿐인 사람들은 음식물을 떠서 헤치기만 할 뿐 아무도 먹지를 못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천국의 나누며 사는 사람들은 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떠서 상대편을 먹이니 서로가 배부르고 화기애애하였다. 날로 지옥은 황폐해져 갔고, 날로 천국은 푸르러 갔다. 조물주가 말하였다. “내가 지옥을 만든 게 아니다. 너희들 중 나뿐인 녀석들이 지옥이 되게 하였다. 알겠느냐? ‘나뿐’ 놈들!”
내가 사는 이곳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가야할 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인 듯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자신이 느껴질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려야겠습니다.
○기적 젊은이는 기적을 보고자 하였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그의 평범한 나날이 그에게는 불만이었다.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일다가 자고, 간혹 비가 오다가 그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은 내일이 그는 불만이었다. 젊은이는 날마다 기적을 일으킨다는 도인을 찾아 나섰다. 물어서, 물어서 도인이 ‘도중도’라는 외딴 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젊은이는 그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포구에 이르렀다. 때마침 바다에는 폭풍 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여객선은 닻을 내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하염없이 부두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여인숙을 찾아갔다. 배가 출항할 때까지 묵어갈 방을 얻었다.
그 방은 여인숙의 문간에 딸려 있었다. 그것도 먼저 들어 있는 손님과 합숙해야 할 처지였다. 젊은이는 선객과 인사를 나누었다. “도중도에 사는 김 영감이올시다.” “내륙에 사는 이 총각입니다.” 젊은이는 지루하고 답답했다. 낮잠을 한숨 늘어지게 잤다. 잠에서 깨어 보니 바람에 아직도 문간이 덜커덩거리고 있었다. 노인을 찾아보았다. 노인은 개울가에서 속옷이며 양말 등속을 빨고 있었다.
“날씨가 나쁜데 무슨 빨래를 합니까?” “빨래는 바람에 더 잘 마르는 걸요.” 노인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튿날도 바다는 파도의 뉘로 하얬다. 젊은이는 안달 끝에 선술집을 찾았다. 술에 젖어서 돌아와 보니 노인은 윗목의 씨 고구마 동이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주인네가 할 일이 아닙니까?” “누가 하든 우리의 생명을 늘이는 일인 걸요.”
사흘째 되는 날에야 폭풍 경보가 풀렸다. 바람이 지고 해가 높이 떠올랐다. 노인은 속옷을 갈아입었다. 양말을 바꿔 신었다. 들창을 열어서 볕을 들였다. 씨 고구마 동이에서 새순이 쏘옥 나왔다. 그러나 젊은이한테는 여전히 맛없는 하루였다. 어제와 다름없이 여전히 발에서는 고린내가 났고 내장 속에서는 술 트림이 올라왔다.
여인숙을 나서면서 노인은 물었다. “젊은이는 왜 그 섬에 가고자 합니까?” “도인을 만나고자 해서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 도인을 만나려 하십니까?” “날마다 기적을 행하고 있다니 그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입니다.”
노인이 부두 쪽으로 발을 옮겨 놓으면서 말하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기적을 보았소이다.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여 의롭게 살면 그날이 곧 기적의 새날이요, 그렇지 못하면 반복의 묵은 날입니다. 이번에 나와 함께 지낸 사흘이 당신이 보고자 한 그 도력의 전부이니 따로 더 볼 것이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시구려.”
‘아마추어는 책을 읽고, 전문가는 생활 속에 들어간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사소한 것’은 ‘특별한 것’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자주 잊습니다. 오늘의 하나가 내일의 수십, 수만 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 하나 쉽게 넘기지 못하겠지요. 반복의 묵은 날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습니다.
○독수리 봉우리 지혜의 산이 있었다. 이 산에 사는 새들에게는 한 살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섣달 시험에 합격하면 한 살이 얹어지나 실패하면 한 살이 줄어든다. 우두머리는 곧 나이가 가장 많은 새인데 이 산에는 늙었어도 시험 때문에 나이가 적은 새들이 수두룩하다. 근래에는 지니고 있는 나이가 줄어들까 봐 시험을 피하는 새들이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하얀 점박이 독수리만은 줄기차게 시험을 치렀다. 어떤 섣달에는 나이가 늘기도 하였지만 어떤 섣달에는 오히려 줄기도 하였다. 그는 요령 부족으로 우두머리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그의 도전만큼은 아무도 따르지 못하였다.
이번 섣달에도 하얀 점박이 독수리는 시험장에 섰다. 시험관이 물었다. “가장 좋은 마취제는?” “잠입니다.” “아니다, 일이다. 일에 몰두하면 잡념이 없어지는 거야.”
시험관이 두 번째 문제를 냈다. “행복한 삶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틀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여야 한다.”
시험관이 세 번째 문제를 냈다. “고통받는 친구가 생겼을 때는?” “위로하여야 합니다.” “그런 반응은 못된 인간들도 할 줄 안다.”
하얀 점박이 독수리가 물었다. “그러면 정답은 무엇입니까?” “반응보다는 행동이어야 하지. 그곳으로 달려가서 네 것을 나누어야 해.” “지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겠군요. 앎과 삶이 같아야…….” 하얀 점박이 독수리는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이후부터 하얀 점박이 독수리는 섣달이 되어도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려지지도 않았다. 큰 눈이 내린 뒤 어느 날이었다. 소리개가 하늘 높이 떠서 보니 바보 새들이 모여 사는 빈 산봉우리에 선 채로 죽은 독수리가 있었다. 바로 그 하얀 점박이 독수리였다.
한 살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합격해야 얻어지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몇 살일까 질문하게 됩니다. 젊었어도 나이가 많은 이일 수 있고, 늙었어도 나이가 적은 이일 수 있으니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지겠어요.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쳐내고 도전하는 자신이어야 하는데 쉽게 지치고 안주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삶을 즐기되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실망이 생긴 마음의 자리에는 희망을 품고서 거듭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디서든 기적의 새날처럼 최선을 다하여 의롭게 살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바로 지금이 나의 이 세상 전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요. 오늘에 갇혀 있지 말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성장하는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를 읽으며 마음이 가벼워지고 여유로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름다운 글이 시간을 초월하여 살아간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우면서 그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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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여년 전에 정채봉님 글을 대하고 너무 간결하고 음미하는 얘기여서 늘 보고 또 보았던 책입니다 지인이 요새 치매예방으로 시를 외우신다해서 이 책을 선물했습니다.제가 소장하고있는 책은 누렇게 변했지만 늘 다시 읽어도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아이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를 찾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찬찬히 음미하느라 책장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오래 걸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