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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박물관에 전시된 폼페이 유적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운명의 그 날, 피할 새도 없었던 시간 속에서 굳어버린 사람들. 누군가는 혼자였고 누군가는 아이를 안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힘껏 껴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려웠지만 신기했고, 궁금했다. 나는 유리창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들은 그 때의 모습 그대로 내 눈 앞에 있다. 그들에게 폼페이는 믿음직한 삶의 터전이자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약속의 땅이었을텐데, 그들에게도 맛있는 것을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집이 있었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며 사랑을 속삭이는 시간들이 존재했을텐데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으로만 그들을 기억할 뿐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로버트 해리스는 베스비우스 산이 폭발하기 약 이틀 전으로 돌아가 폼페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영화처럼, 비극이 일어나기 전 도시는 적어도 눈에 보이는만큼은 평화로웠다. 더위가 막바지에 이른 8월 하순의 네아폴리스만, 해안의 화려한 저택에서 대부호들은 휴가를 즐기고 있었지만 노예에서 해방된 암플리아투스의 집에서는 끔찍한 행사가 시작되고 있다. 뱀장어를 양식하는 양어장 곁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남자 노예. 그는 암플리아투스의 집에서 키우고 있는 물고기들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물고기들이 죽어 떠오르면서 그 벌을 받게 된 것이다. 뱀장어가 가득한 곳에 던져지게 된 상황. 자기 잘못이 아니라 물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외치는 그를 살리기 위해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는 25만 인구에게 물을 공급하는 아우구스타 수도교의 책임자 아틸리우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암플리아투스의 거대 양식장에서 나기 시작한 유황 냄새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아틸리우스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 전임자의 행적과 함께 도시에서 감지되는 이변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베스비우스 산으로 향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운명의 날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폼페이]는 베스비우스 산의 화산이 폭발한 대재앙 이후가 아니라 비극이 일어나기 이틀 전의 아틸리우스의 행적을 따라 폼페이에 일어난 사건을 우리 앞에 되살려놓는다. 암플리아투스의 저택에서 유황 냄새를 맡고 시작된 아틸리우스의 조사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작가가 아틸리우스트의 입을 빌어 사건 전체를 설명하고 있는 느낌이다. 작품의 반 정도는 폼페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짚어나가는 분위기로, 상상하기가 힘들어서 이해하는 데 조금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뒤에 실려 있는 참고문헌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참고했는지, 방대한 자료를 읽고 이 한 권의 작품을 쓰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영화 예고편만으로 영화와 책을 비교해본다면 책에는 소설임에도 극적인 느낌이 부족한 대신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그 날을 반영하려는 의식이 엿보인다. 코렐리아와 아틸리우스의 로맨스보다 아틸리우스가 심상치 않은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든지, 사라진 전임자의 자취를 좇는 부분이 더 부각되어 있다. 그리고 시작된 비극. 그 비극의 묘사에도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되었는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작품을 소설의 입장에서 볼 것인지, 폼페이에 일어났던 사건의 자취를 좇아가는 기록물로 볼 것인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스릴러 장르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작가인만큼 소설적인 요소가 적은 데 대해 실망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로버트 해리스이기 때문에 [폼페이]를 쓸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참고한 방대한 자료도 자료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작품에 어떤 부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폼페이]를 다른 역사 스릴러처럼 써냈다면 오히려 그것이 무리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라져간 사람들, 흘러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지금도 이런데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어쩌면 그것이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며 후회하지 않도록, 나의 시간이 유리창 밖에서 그들을 바라볼 때처럼 안타까움을 남겨서는 안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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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하고 탐욕스런 인류에 대한 로고스의 상실과 불카누스(불의 신)의 징벌에 대한 이야기이며, 서기 79년 이탈리아 캄파니아지방 고대도시 폼페이의 화산폭발일인 8월24일을 전후한 4일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베수비우스 화산폭발은 악취나는 문명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그 종교적 위엄에 인간의 왜소함과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인류의 자연에 대한 오만불손함, 그 파렴치함과 부정,욕망에 제동장치를 잃어버릴 때 자연은 엄격한 재해를 던져주었다. 베수비우스는 평화롭게 더욱 심한 재난을 인류에게 보내기위해 오래고 더디게 준비하고 있다.
작가가 무수히 인구에 회자(膾炙)되었던 폼페이의 재앙을 다시금 소설의 소재로 삼은 의미는 작금의 우리인류세계의 겸양을 잃어버린 그 방자함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은 아닌가? 귀족들의 관광과 휴양의 거점지역인 네아폴리스(폼페이,헤라클라내움,스타비아이,미세눔등)의 도시들에 상수를 공급하는 아우구스타 수도교 책임자(아쿠아리우스)로 부임하는 젊은 수도기술자 아틸리우스를 주인공으로 하고있다. 고대 로마의 물은 상상이상의 권력이자 자원이다. 로마는 물로 망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중목욕탕 시설과 공창, 그리고 발굴된 그 음란한 모자이크화와 조각상, 암각화는 그들의 퇴폐와 향락의 극한적 단면을 이야기한다. 화산 재앙의 기술적 이해와 추악한 그들의 문화에 침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배역으로서 물의 관리자는 정말 안성맞춤이다.
권력과 더러운 부정의 기반위에 쌓여진 재화의 위용을 악행과 이기적 욕심에 삶을 바치는 암플리아투스, 실종된 수도교의 전임 아쿠아리우스인 엑솜니우스 행방의 추적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탐욕과 이중성의 현실, 순수함과 악의 근원에 저항하는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 마지막까지 한 문명의 저주를 기록한 학자이자 제독이었던 플리니우스를 통해 인간사회의 그 보편적 당위성과 나약함, 그리고 후대 인류를 위한 절망적 희망의 메시지를 보게 된다. 작품의 진귀한 사실성으로부터 그들의 내밀한 문화와 도시 기간망, 선거와 정치 이면의 몰염치와 부패성, 그 화려한 규모와 시설의 현대성에 독자들은 압도된다. 오늘의 문명을 자만하는 21세기의 우리들은 그들보다 조금도 진전된 존재가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부와 권력앞에 귀족의 자존심은 버려진다. 우리사회의 노블리스오브제의 결여와 자신의 이권에만 어두운 그 어두운 양면성까지 유전인자의 돌연변이는 발생치 않고 전달되어 오고 있다. 2000년전의 고대 로마제국의 폼페이와 오늘의 우리 인류와의 오버랩이 착잡함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의 소설적 재미는 거대한 로마제국의 상수원 관리 즉, 수도관의 정밀한 네트워크, 공급되는 수량의 감소로 야기된 그 기술적 추적과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 코렐리아와의 순수한 사랑, 노예출신의 귀족 암플리아투스의 악행, 플리니우스 제독의 인간적 진정성이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의 통합된 이미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하는 날, 우리 인류는 겸허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린 모두 망각하고 있다. 다시금 베수비우스 화산은 그 폭발을 벼르고 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인류는 오만과 그칠 줄 모르는 영악스러움과 탐욕을 버려야 할 것 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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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을 책 없을까하다가 리뷰들이 좋기도 하고, 평소 히스토리 팩션을 즐겨보는터라 사게된 책... 히스토리 팩션을 좋아하는 만큼 기대도 많이한 책이었다.. 상황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였으나 그저 4일간의 행적을 기록하다가 뚝 끝난것 같은 느낌이랄까. 코렐리아와 주인공의 사랑얘기도 둘이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사랑했었다는 느낌이 전혀들지않을만큼 그저그런 관계였다가 마지막쯤에 갑자기 급반전되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매끄럽지않은 부분.. 화산폭발 당시의 상황을 더 격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길 바랬으나,, 백열;?경석?..등과같은 친숙하지 않은단어들 때문인지 와닿지가 않은점... 애초에 반전자체가 없었다는점.(화산이폭발할것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있으므로) 반전이 없다는건 히스토리 팩션에서 가장 큰 요소인 반전에서 오는 흥미를 잃었다는것... 아무튼 실망을 많이 안겨준 책이었다.. 그동안 읽어왔던 사도세자의 고백이나 뿌리깊은나무, 원행, 남한산성, 바람의화원, 천사와악마, 다빈치코드등에 비하면 뭔가 부족한느낌/. 반품하고싶었지만 이미 다읽은 책이라 차마 하지 못했다... 아무튼 책 사실분....이리뷰 조금은 참고하시길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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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이 실망이다.. 작가의 고대 로마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미루어 보아 자료 수집에 상당히 공을 들인 듯 하다.. 그러나 플롯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남여 주인공이 왜 그리 서로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다른 구성요소들도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화산 폭발 단계에 맞춰 이야기를 억지로 짜맞추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멋진 CG를 사용해서 영화로 제작하면 꽤 볼만하겠지만 책은 좀 아닌 듯 하다. 그리고 헐리우드식 유치한 감상주의는 이 책의 품격을 떨어지게 한다. 또한 번역의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생의 번역문을 읽는듯한 유치한 문체는 이 책의 또다른 문제점이다. 개인적으로 이윤기씨가 번역했다면 훨씬 탁월한 번역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띄어쓰기도 문제다.. 단적인 예로 447 쪽 중간 부분에 "거기서!"라는 문장이 있다. "거기서"와 "거기 서"는 엄연히 다른 의미이다. 전자의 "거기서"는 영어의 there 의 의미이고 후자의 "거기 서"는 stop 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문맥상 stop 의미를 지니는 "거기 서"가 올바른 띄어쓰기이다. 정말 시간이 남아 도는 사람, 책의 내용과 번역이 허술하더라도 색다른 소재의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만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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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한창인 8월 하순의 네아폴리스 만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로마가 전략적으로 구축한 군항이 있던 곳에는 병사 1만과 시민 1만이 모여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당시 네아폴리스 만 일대의 아홉 도시, 25만 인구에 물을 공급하는 아우구스타 수도교에 이상이 생기고, 노예출신 귀족 암플리아투스의 자택내 거대 양식장에서 유황이 유입되어 숭어가 죽어나간다. 숭어는 노예보다 다섯 배가 더 비싼 6천 데나리우스. 이에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는 광분한 아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도 숭어 폐사 원인을 밝혀줄 아쿠아리우스(수도기사)를 찾아 나선다. 이것이 아틸리우스와의 첫 조우였다. 한편 막힌 수도관을 검사하기 위해 아쿠아리우스 아틸리우스가 로마에서 파견돼 오면서 서막은 오른다. 배경이 되는 시간대는 B.C. 79년 8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이다.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한 8월 24일 전후로 일어난 일을 팩트와 픽션을 적절하게 조화시켰다. 마치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사실감이 묘하게 돋아난다. 이야기의 전개는 사실적 진행과 함께 추리 기법이 병행되어 긴장감을 더한다. 아틸리우스의 전임이었던 엑솜니우스는 기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사실 아틸리우스의 임무 중 하나는 엑솜니우스가 사라진 내막을 캐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도 폼페이 최후의 날 까지 겨우 주어진 시간은 이틀. 그러나 사태를 파악하려는 아틸리우스를 방해하는 것은 거대한 힘을 지닌 자연이 아니다. 바로 탐욕과 이기로 점쳐진 인간들. 특히 감독관 코락스와의 갈등은 극적 재미를 더해 주었다.
저자 로버트 해리스는 케임브리지 역사학과 출신으로 BBC와 영국의 유력 일간지 리포터를 지냈다고 한다. 그는 역사적 사실 속에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완벽에 가까운 역사의 재구성과 허구적 묘미를 던져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전에 폼페이의 최후를 다룬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1834년 에드워드 조지 불워 리튼의 《폼페이 최후의 날》이다. 여기서는 귀족 청년 글라우쿠스와 연인 이오네가 폼페이 최후의 날 노예의 도움으로 재앙을 벗어난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해리스의 《폼페이》에서는 아틸리우스와 코렐리아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이에 해리스는 그 어떤 작가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설정을 작품 속에 담았다. 바로 영토 확장과 함께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가 심혈을 기울였던 아우구스타 수도교다. 당시 로마는 늘어나는 인구에 꾸준히 물을 공급해야했고 이에 근처의 산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방대한 수로와 수도교를 건설했다. 나는 이 작품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로마문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수도교의 건설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었고, 스토아 학파식의 토하도록 먹고 마시는 로마 연회의 진면목도 자세히 엿볼 수 있었다. 게다가 다양한 군상의 이면도 살필 수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의 정치와 사회의 거물들이 보이는 행태들이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너무나 닮았다. 특히 당시 4인 위원회를 구성했던 신입 행정관들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과 대처 능력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한편 지난 달 개봉된 폴 W.S. 앤더슨 감독의 《폼페이: 최후의 날》은 극적 요소를 더하기 위해 검투사 마일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화려한 CG를 구사하여 당시 베수비우스 화산의 대폭발과 폼페이의 몰락을 뛰어난 비주얼로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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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영화 정보를 검색했을 때의 감상을 단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이런 줄거리인데 따로 원작을 왜 샀지?"
영화 줄거리는 50-60년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비롯해, 고대 로마를 소재로 한 대중적 작품에서는 수도 없이 쓰인 클리셰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게 최근 제작된 영화 시놉시스인지, 아니면 고대 로마를 다룬 대자본 작품의 공통점을 찾아내 정리한 리포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막판에 베수비오 화산이 터진다는 것 말고는, 고대 로마 외에 폼페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생활풍습 등 폼페이만의 볼거리도 딱히 없는 모양이었다. 고전으로 남은 에드워드 불워 리튼의 <폼페이 최후의 날>도 아니고, 노예 출신 검투사에 귀족 상류층 계급이 사치스러운 생활하며 복수와 사랑 이야기인데, 굳이 원작 판권을 따로 구입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이런 줄거리를 가진 소설이 새삼스럽게 요즈음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뭐지?
하지만 원작 소설에 해당하는 <폼페이>는 "뻔한 클리셰만 나오니 뻔한 이야기겠지."라는 막연한 편견과 추측을 멋지게 깨뜨렸다. 이 소설에서는 폼페이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하고 만들어낸다. 고대 로마의 다른 도시, 하다못해 다른 휴양지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79년 8월의 그 날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까지, 나름대로 독특한 풍광과 휴양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폼페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연이여 펼쳐진다. 읽다 보면 말 그대로 2천년 전 로마 도시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든 조금 있으면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모두 묻혀버릴 거라는 걸 아는데, 결말을 뻔히 안다고 심드렁하기는 커녕 "아아, 이런 일이 화산폭발로 마무리되다니"라는 심정에 더욱 안타까워지는 부분으로 가득하다.
치밀한 고증과 재미는 양립하기 힘들다. <폼페이>는 드물게 그걸 잘 해낸 작품이다. 2천년 전 로마와 폼페이의 디테일이 차근차근 제시되는데, 사소한 묘사 하나하나가 생생하면서도 책에서 전개되는 사건이나 인물의 이야기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어, 저절로 몰입된다. 기본 설정만 정리해두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데, 최근 연구결과 등을 비롯해 엄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구성력이 뒷받침되니, 안 쓰던 칼을 집어들고 보호구를 착용하는 장면에서조차도 고대 로마, 그 중에서도 폼페이에서만 볼 수 있을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해낸다. 당시 폼페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음식이나, 실제로 출토된 음식을 그토록 맛깔나고 생생하게 묘사한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호화롭고 여유롭고 이국적인 휴양지만의 분위기가 한껏 묻어나는 것도 이채로웠다.
디테일이 훌륭하다고 기본 줄기가 허술한 것도 아니었다. 흔한 소재를 조립해 이렇게까지 흥미진진하고 긴박하고 감정이 고조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찬탄이 저절로 나왔다. 당시 로마의 역사와 개인의 드라마가 맞물리는 대목에서는, 팩션의 장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끄집어내며 물 흐르듯 유려하고 흥미가 흘러넘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로버트 해리스의 <폼페이>는 흔한 재료로 얼마나 멋진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으로서도 손색 없을 작품이다.
<폼페이>의 소재 자체는 독보적이거나 독특하다기보다 진부한 쪽에 가깝다. 검투사로 끌려간 노예, 호화로운 귀족 생활 등은 수십 년 전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을 정도로 익숙한 소재다. 줄거리만 보면 이런 줄거리면서 왜 일부러 가욋돈을 들여 책의 판권을 구입했는지 의아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의 고고학적 연구에 기반한 디테일과 맞물리고, 거기에 로버트 해리스의 필력까지 더해지니 지금 읽기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거듭났다. 그래, 진부하다는 건 결국 그만큼 호소력이 있기에 계속 살아남은 거고, 작가의 역량에 따라 원래 호소력 있던 소재를 더욱 호소력 있게 만들 수도 있는 거였다. |
AD 79년 8월 24일. 고대 로마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중 하나였던 폼페이는 근처에 있는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18시간만에 멸망했다. 마치 구약 성서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듯, 화려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사라진 일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칼 브률로프라는 러시아 화가는 폼페이 최후의 날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고 바로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아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은 우리들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폼페이 최후의 날'이란 소설을 쓰기도 했다. 아마도 이 작품이 소설로서는 폼페이의 멸망을 다룬 첫 소설이 아닐까 싶다. 폼페이의 멸망은 사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지라 그동안 트로이의 목마처럼 전설로만 치부되었었는데 1549년 수로 건설 도중 우연히 유적지가 발견됨으로써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임이 증명되었다. 무려 폼페이가 멸망한 지 14세기만의 일이었다. 당시 엄청난 화산재가 폼페이 전체를 뒤덮였다고 했는데, 죽은 시신들이 화산재에 뒤덮혀 마치 조각처럼 죽었던 모습 그대로 굳어진 채로 발굴됨으로써 훗날 사람들에게 그 끔찍함을 더욱 생생히 느끼게 해 주었다. 브률로프도, 리턴도 사실은 그 굳어진 시신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폼페이. 거기에 '당신들의 조국'과 '이니그마'로 히스토리 팩션의 대가라는 호칭을 얻은 영국의 로버트 해리스가 도전하였다. 그것이 바로 '폼페이'라는 소설이다. ![]() 리턴의 '폼페이 최후의 날'과 해리스의 '폼페이'는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접근 방법이 다르다. 리턴의 그것은 당시 유행하던 로맨스 풍을 따랐으나 해리스의 그것은 폼페이의 마지막 날, 정말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를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따라서 리턴의 소설은 많은 부분 소설가의 상상력이 들어갔으나 해리스의 '폼페이'는 폼페이의 멸망에 관련된 자연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고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픽션 부분만 상상력이 들어갔다. 그리하여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에 기반에 쓰는 픽션인 히스토리 팩션인 것이다. 원래부터 해리스는 자신의 작품을 위해 엄청난 자료를 조사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이 폼페이에는 보다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지만 이제까지 단 한번도 폼페이가 정말 어떤 식으로 멸망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그 멸망의 과정을 역사와 과학적 사실에 기반에 그 날 일어났음직한 일들을 독자들에게 충실히 보여주려고 한다. 해리스는 당시 베스비우스 화산으로 인한 폼페이의 이변을 누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까를 생각했고 아무래도 화산 활동이 지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일인만큼 그 지역의 수도를 관장하는 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당시 로마에서 물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은 폼페이 지역의 수도를 관장하는 아틸리우스가 되었다. 공식 직함은 물을 담당하는 이답게 아쿠아리우스다. 그는 전임자의 알 수 없는 실종으로 그 일을 떠맡게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맡게되자마자 폼페이 일부 지역에선 물이 마르게 되는 일이 속출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암플리아투스. 그는 원래 노예 출신이었지만 이전 폼페이가 멸망했을 때, 재건 과정을 잘 이용하여 막대한 부를 이루게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취미라고 알려진 뱀장어 양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그 뱀장어들이 집단 폐사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 일을 조사하기 위해 아틸리우스가 파견되고 그 때부터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갈등의 축이 되는 아틸리우스와 암플리아투스가 대립한다. 전임자의 실종과 기상 이변 그리고 폼페이의 물을 둘러싼 흑막. 소설은 굳이 화산으로 인한 폼페이 멸망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몇 가지의 곁가지 이야기를 곁들임으로써 텍스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폼페이 최후의 날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팩션으로도 재미있게 읽히지만 요즘 유행하는 재난 장르 소설로도 얼마든지 읽힐 수 있다. 아무튼 그냥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정확히 그 날 폼페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의 가치는 크다고 하겠다. 해리스는 당시 로마에서도 문명적으로 가장 앞섰던 폼페이의 모습을 충실하게 복원했으며 로마 당시의 사회 모습이나 생활 모습도 철저한 고증을 통해 그려냈기 때문에 당시의 실생활이 어땠는지 알게되는 덤도 얻을 수 있다. 각설하고 정말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평소 폼페이의 멸망에 궁금하셨다면 리턴 보다는 이 소설을 추천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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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물은 서로 상극이지만,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사는 필멸의 존재인 우리 인간을, 한 순간에 파멸로 몰어 넣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닮았습니다. 기독교의 성서에 의하면, 신은 세상을 한 번 절멸시킬 때에 홍수란 수단을 사용했고, 도덕과 풍속의 문란이 극에 달했던 도시 둘을 국지적으로 벌할 때에는,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는 재앙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조반니노 과레스키는 그의 소설에서 한 캐릭터의 입을 빌려 "전쟁이란 주기적으로 일어나야 마땅하다. 전쟁은 지상으로부터 그 모든 쓰레기들(scum of the earth을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신의 수단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나면서부터 부여 받은, 자신만의 존엄과,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스스로 타락시키고 모독하려 든다면, 최종적이고 전면적인 파멸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죗값을 대신 치를 수 없다는 뜻일까요. 로버트 해리스는 한 상인의 입을 빌려, "폼페이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마전이라고 해도 좋고, 아비규환이라는 말도 잘 어울립니다.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살며 꾸려 나가는 공동체의 모럴과 질서가, 이처럼 어지럽혀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명예와 가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고, 신체에 위해를 가하고, 때로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목숨을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이, 딱히 생존에의 필요나 자기 방어의 이유가 아닌, 그저 "나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뻔뻔스럽게도 떠듭니다. 애매한 죄를 뒤집어 씌워, 그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 아들에게 사형(私刑)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 시신은 개처럼 내다버리고, 그 모친에게 다시 노예를 소유한 주인의 권한으로 태형을 내립니다. 이 모든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도시에서 대단한 부(후반부에 나오지만 이 부[富]라는 것도 실체가 없는, 카드로 쌓은 집처럼 기만과 허위 위에 구축한 허상에 불과합니다)와 권력을 장악한 덕에 모두의 두려움을 사는 세력가입니다. 알고 보니,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남의 노예로 부려지는 천한 신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때 남의 노례였다가 해방된 자보다, 제 노예에게 더 가혹하게 굴 수 있는 주인은 없다."고요. 우리 속담에 나오듯, 호되게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가장 못된 시어미가 된다는 건, 암플리아투스(악명의 아우라 가득한)를 코그노멘으로 삼고, 자신을 한때 소유했던 주인 포피디우스의 이름를 제 노멘으로 삼는, 상인이자 브로커, 가공할 음모가의 예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이겠습니다. 물이란 우리 인간에게 생명력 유지의 근원입니다. 물은 그 모든 더러움을 정화하는, 궁극의 매질이기도 합니다. 물은 우리에게, 본연의 도와 자연의 순리를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물을 다루는 아쿠아리우스라는 직분을, 황제의 칙명을 받고 파견된 아틸리우스는 사심 없이, 굽힘 없이 수행합니다. 아직 젊고 세파에 오염되지 않은 그는, 우연히 저 세력가의 딸, 어찌 그런 아비에개서 저련 순결한 영혼이 그 소생으로 나왔을까 싶은 처녀 코렐리아와 만나게 됩니다. 아니, 수로의 업무를 관정하는 그가, 물의 정상적인 흐름으로 사회와 자연의 이상, 병리를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그가, 물로써 세상에 큰 말썽을 일으키고 그 혼란을 틈타 제 권세와 영향을 확대하려는 썩은 악한의 딸과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 해야 맞을지도 모릅니다. 제 아비;가 행하는 극악한 행태를 보다 못해, 작은 도움이라도 얻을까 해서 규중으로부터 발벗고 나오다시피한 이 당찬 처녀의 눈빛을 접한 순간, 청년 아틸리우스는 이미 자신의 숙명이 어느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는지 직감합니다. 고정된 신분제가 사회 질서 근간을 지배하는 사회는, 잘만 운용되면 각자가 제 분수를 알고 자기 위치를 지킴으로써(守分) 공영과 안정을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른바 벼락 출세자, 근본 없이 신분의 사다리를 껑충 뛰어오르려는 자가. 인륜을 무너뜨리려는 주범으로 지탄을 받습니다. 누백 년을 이어 오던 공화제가 마침내 그 기능 발휘의 한계를 드러내고 주저앉은 자리에, 야심가들이 일확의 요행을 거머쥐려는 흐름까지 더해져, 제정이라는 낯설고 오리엔트적인 시스템이 갓 자리하여 혼란과 시행착오에 빠져 있던 이 무렵, 종래 로마를 지켜 오던 명문 귀족 가문은 이제 품위와 청렴성을 상실한 채 총체적 무기력에 빠지고, 이 암플리아투스로 상징되는 신흥 출세가들은 사회의 기강을 유린하며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제 배를 채우려 듭니다. 선량한 시민과 민중은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습니다. 아틸리우스와 코렐리아는, 각각 청렴과 재능, 선의와 모성으로, 파탄의 구겹 지옥에 빠진 로마에 그 구원의 일말 불씨를 지키는. 연오랑 세오녀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들이 이기면 세상은 못내 위기에서 한숨 돌리는 것이고, 이들이 패배하면 그 순간 미래는 억겁의 파멸로 사라집니다. 아틸리우스의 물이 이 세상을 정화하지 못하면, 신의 섭리는 이제 대지로부터 그 분노의 총체로 불기둥을 뿜어 올릴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암플리아투스 역시 타락한 사회 체제의 희생양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포피디우스의 집에서 노예살이를 하면서, 그 안주인은 물론 남성인 포피디우스에게까지 성적 유린을 당했습니다. 인간 존엄을 말살하는 노예제가 빚은 모순과, 성적 모럴의 타락이 극에 달한 사회의 퇴폐상이 이중주로 빚은 괴물이라고 해도 됩니다. 어려서 이처럼 지독한 상처를 안고 살아남아야 했던 그는, 성인이 된 후 집요한 복수심과 오차 없는 무자비로, 그 모든 상흔을 치유하려 듭니다. 예전의 주인은 이제 거주할 주택이 없어 노예의 자비와 호의를 구걸해야 하고, 노예의 딸을 신부로 맞는 가문의 치욕을 자기 代에 겪어야만 합니다. 암플리아투스는 법률 지식에도 밝아서, 결국 가격(家格)의 세탁이라는 제 속셈만 만족시킨 채 이 옛 주인을 축출할 꿍꿍이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린 시절의 깊은 한이 풀린다고 착각하지만, 죄 없는 자신의 딸은 일개 도구로 비참한 운명을 다시 밟는다는 점에서, 이런 결과는 그 아비의 비운을 곱절로 재생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귀 영화나 권력 같은 것은 다 인간의 미망이 빚은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적으로 착취당한 자는 엉뚱하게도 정치적 권력과 사디즘적 가학을 통해 제 존재를 회복하려 들고, 허영심은 가득하나 남들에게 인정을 기대만큼 받지 못한 자는 허황되고 과장된 언설로 지식을 포장하려 들고, 능력이 없어 제 자리를 정하지 못한 채 타지를 방랑하는 자는 느닷 타인을 모해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자신을 찾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이 빚는 촌극에 불과합니다. 폼페이의 고사, 아니 실화는, 고대 로마의 한 풍속도를 징그럽고도 은밀한 쾌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화석화된 게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생한 샘플로서 우리 현대인을 무섭게, 활화산처럼 격한 모습으로 질타하고 훈계하는 절대자의 계명으로 다가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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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2012'란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2012년 12월에 지구가 멸망한단 예언에 관한 영화였는데...후덜덜했죠 정말 스케일이.ㅠㅠ 극장에서 지진나고 땅이무너지고 해일이 나는 장면 보고 있으니 정말 무섭더라구요... 사실 실제로 저런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겁나기도.ㅠㅠ
그런데...오래전에 실제로 비슷한일이 있었다면?? 말입니다.. 로마 최고의 휴양도시였던 '폼페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사건... 올해, 영화로 개봉대기중이던데.. 검색해보니 등장인물은 다르더라구요..
'폼페이'는 인공도시입니다.. 원래 존재하던 도시가 아니라, 황제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항구도시'로 세계 최대의 로마함대가 머물고 있으며 아름다운 해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휴양을 즐기고 있었죠..
그렇지만, 원래는 도시가 존재하기엔 척박한 곳이라... 가장 중요한 수도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로마 시대의 '수도시설'은 정말 대단했지요...
'네아폴리스만'의 아홉개 도시 25만명의 식수를 담당하는 '아우구스타 수도교' 그곳의 책임자가 갑작스럽게 실종되자.. '아틸리우스'는 새로운 책임자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를 싫어하고 특히 '코락스'는 그를 증오하며 번번히 걸고 넘어집니다.
한편...폼페이의 귀족 '암플리아투스'는 자신의 노예를 처형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 노예가 엄청난 고가의 물고기를 집단으로 패사시켰기 때문이죠..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는 수도교의 책임자인 '아틸리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아틸리우스'는 양식장의 물에서 '유황'냄새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벌여지고 있음을 알게 되죠
'코락스'는 '아틸리우스'의 행동을 해군 총사령관인 '플리니우스'에게 고발하지만.. 지혜로운 '플리니우스'는 '아틸리우스'를 체포하지 않고 그들은 같이 무슨일이 벌여지고 있는지 조사하게 됩니다
참...폼페이를 발굴했을때...사람들은 일상생활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재난은 피할수도 없을정도로 갑자기 들이닥친..ㅠㅠ
참고로...팩션이지만... '플리니우스'는 실존인물이라고 하네요...그는 폼페이의 비극 당시 구조작업을 하다가 질식되어 죽고 이상한 징조를 눈치챈 '소 플리니우스'가 정치가가 된후, 역사가인 '타키투스'에게 편지로 '폼페이'의 멸망의 참극에 대해 보냈다고 합니다..그래서 기록으로 남겨져 있죠..
곧 개봉될 영화는 과연 어떤 내용일지.. 그리고 '폼페이'의 참극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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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고대 로마에 관심이 많아서 <폼페이>의 출간을 무척 기다려왔다. 신문에서 폼페이 유물 발굴 관련 기사가 날 때마다 이런저런 상상을 많이 해 봤는데, 이 책을 접하고 나니 그 상상력이 배가되면서 훨씬 재미있어짐을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하지 않던가? 책은 화산 폭발이 있기 이틀 전부터 시작된다. 각 챕터마다 시간이 기록되어 있어서 내용이 훨씬 박진감이 느껴지고 흡입력도 커진다. 로마에 관한 여러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로마인의 정신과 로마인의 건축물. 언제 봐도 매력 있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매개가 되어주는 수도교도 그 일부분이다. 많은 건축물이 그러하듯이 수도교에는 로마인의 정신이 많이 깃들어 있다. 그런 만큼 그들이 갖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사실, 그 시대에 그런 수도교를 만들어 각 도시에 물을 공급해내겠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로도 높이 평가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용맹스럽고 대단했던 로마인들도 자연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몇 천 년을 견딜 만한 건축물을 만들 기술은 있었을지 몰라도 코앞에서 일어날 자연 현상에 대한 대비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당시는 과학적인 증명과 검증보다는 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시대라서 화산 폭발이 있기 한참 전부터 이상 징후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폼페이 시민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설사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하더라도 그건 단순히 신이 진노했으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다는 정도의 미봉책으로 그치고 만다. 아니, 생각해 보면 이상 징후를 있는 그대로 감지한 사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아틸리우스 전임자로 일하다가 실종되었던 엑솜니우스이다. 그는 시칠리아 동부 지방 출신이라 관련 경험과 지식이 있어서 수도교 본관이 막히고 땅이 흔들이고 유황이 퍼지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화산 폭발에 대한 긴장감이 제일 흥미를 끄는 부분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엑솜니우스의 행방을 찾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색다른 묘미를 제공해 준다. 그가 폼페이 시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암플리아투스와는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 당시로서는 ‘물’이 ‘돈’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터라 권력 암투와 비리의 온상이 되었을 것은 자명한 일. 그의 실종 또한 이런 비리와 연관되어 다른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아틸리우스가 잠깐씩 염려한 것처럼 거액을 챙겨서 도망을 갔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내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인물이 두 사람이 더 있다. 하나는 암플리아투스의 딸이며, 아킬리우스의 마음을 움직인 여인 코릴리아이고, 또 하나는 해군 제독 플리니우스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삶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선각자라고 할 수도 있다. 당시의 여자들의 지위를 보면 코렐리아는 아버지의 다른 소유물과 크게 다르지 않는 위치였지만, 그녀는 용감한 여전사처럼 아버지에게 맞서기도 하고, 대항하기도 한다. 그리고 플리니우스는 지적 호기심과 열의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아마 수많은 플리니우스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방안에 앉아서도 먼 옛날 고대 로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직접 보는 것처럼, 듣는 것처럼 이렇게 실감나게 접할 수 있으리라. 수많은 역사와 사건을 뒤로 하고, 마침내 폼페이에 대폭발이 일어나고, 폼페이의 시민들은 거리 곳곳에서 뜨거운 유황불과 가스에 질식하여 살아있는 화석이 되어 갔다. 막강 권력을 자랑하던 암플리아투스도, 집채만한 덩치로 사람을 위협하던 마사보도, 매음굴을 휩쓸면서 돈을 챙기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있던 아프리카누스와 단단한 체격과 리더십이 있던 브레빅스도 모두 그 불폭풍을 피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불폭풍은 산소 부족으로 금새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 짧은 순간 수백명, 아니 수천명, 아니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폼페이라는 시 전체를 텅빈 유령도시로 만들었다. 그렇게 죽음의 도시가 된 폼페이 시내에 화산재가 내려앉고 그 위에 다시 돌덩이들이 굴러와서 언제 도시가 있었냐는 듯이 흔적조차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수 백년이 흐르면서 그 곳에 도시가 있었다는 사실도 점점 잊혀지고, 그 기억이 사라질 즈음에 그 위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이 살게 되면서 예전의 폼페이는 완벽하게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다가 18세기 초, 공사장 인부에 의해 당시의 유물이 발견되면서 오늘날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다시 세상 사람들 앞에 그 큰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그 유물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남녀가 꼭 껴안고 있는 유골이다. 조작된 것이다~ 아니다~ 하며 끝없이 진위 여부에 대해 세간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충분히 있음직해 보인다. 읽는 내내 그 연인들이 아틸리우스와 코렐리아라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결론에 그들이라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울 것 같고, 또 두 사람이 그렇게 죽는다는 게 싫어서 제발 아니길 바랐다. 다행히 두 사람은 아니었지만, 결론부의 마지막 말이 살포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너무 억지스러워서 분별력 있는 사람들은 그저 꾸며낸 이야기로 치부해버렸다’라는 말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다 할지라도 두 사람이 어디론가 잘 피신을 해서 알콜달콩 잘 살았으면 싶다. 그리고 폼페이 인근 어딘가에 그들의 후손들이 먼 옛 조상들의 무용담을 전설처럼, 이야기처럼 그렇게 하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며칠 동안 <폼페이>에 푹~ 빠져 있어서일까? 갑자기 그 유적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 진다. 내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폼페이의 유적을 찾아서 이탈리아로 가고 싶다. 그와 함께 내년에 개봉될 거라는 <폼페이> 영화도 꼭 챙겨서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