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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을 다시 펼친다. 어떤 서지학(書誌學) 미스테리물을 읽다가 불현 듯 그의 소설이 심하게 그리워졌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어떤 단편을 둘러싸고 그 창작의도와 계기에 대한 당시 상황들을 촘촘히 풀어가는 미스테리물이었는데 책 속에는 아쿠다가와가 절친한 친구 키쿠치 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살짝 인용돼 있었다. 당시 도쿄제대 학생이었던 아쿠다가와는 쿄토에 있던 키쿠치에게 나츠메 소세키라는 인물이 발산하는 그 막강한 아우라에 대한 경도와 흠모의 정을 피력하면서 수고로움을 감수하고라도 잠깐 도쿄로 와 꼭 그를 만나보라며 먼 걸음을 해서 그를 잠시 만나고 가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강권하였다.
영국풍 정장을 깔끔하고 맵시있게 차려입은 사진 속 나츠메 소세키는 100여년 전의 인물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세련되었다. 인물만큼이나 그의 소설이나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은 지금 상황에 대입하여도 전혀 촌스럽고 후줄근하지 않다. "마음"의 주인공 선생네 집에서는 그때 그 시절에, 눈부시게 하얀 리넨 매트를 깔고 식사를 하며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선생이나 선생을 따르는 "나"도 그렇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렇다할 직업이나 취업에 대한 욕구도 없이 놀고 지내는 남자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하며 작중 화자 "나"의 아버지처럼 "요즘 젊은애들은 돈 쓸 줄만 알았지 벌 생각은 안한다, 옛날에는 자식이 부모를 봉양했는데 요즘 세상은 부모가 자식 때문에 늙어서도 고생만 한다..." 부모의 이런 넋두리어린 설교는 한세기 지난 지금도 내가 매일반 듣고 있는 소리다. 하숙집 따님을 향한 선생의 연심도 심히 깝깝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그의 환경과 타고난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고리타분한 느낌은 들지 않았고 자의식 과잉의 청년기를 보낸 인간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것이다.
에고이즘으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존재, 그 유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 매번 이 책을 들 때마다 가장 사무치게 와닿는 것들이다. 그런 고독이 행간마다 절절히 배어 있는 이 책에서 그러나,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랑이다. 마음을 앗아간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유일한 친구를 배신해야 했던 선생, 그런 선생 때문에 사랑을 단념하고 목숨을 끊은 K, 이렇듯 치명적인 사랑의 칼날에 스스로를 베어버린 젊음들이 나오지만 내게는 그 어느것도 뜨거운 사랑으로 전해오지 않는다.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매번 느껴지던 위화감, 연애나 사랑을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 도덕적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하고 싶어한 이상주의자로서의 작가가 뿜어내는 고뇌는 절절히 와닿지만 "무릇 사랑이란 연애란 이렇게 해야 한다"며 역설하는 그의 사랑은 아주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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