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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독서노트를 보는 즐거움이 정혜윤의 '침대와 책'을 읽은 뒤, 또다시 내게로 왔다. '문화 평론가 김갑수'... 국문학과를 나와 시인으로 데뷔하였으나,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기자 칼럼니스트, 교수이기도 하고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시네... 참으로 바쁘신 분이구먼... 읽고 나니 문학 평론가도 아니고 '문화 평론가'로 이름지어질만한 이유가 있구나싶다. 이분의 말을 빌어 '나는 김갑수씨에게 감동먹은 사람입니다' (이말 나중에 편지쓸때 써먹어야지~)
총 16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갈수록 진지해지고 갈수록 무거워진다. (참고로 챕터 1의 제목이 '성교'이고, 챕터 16의 제목은 '민족주의의 그늘'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책표지 말마따마 '쿨~'한 중년 아자씨의 연륜있는 연애,독서,음악에 대한 수다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읽을수록 '문화'를 바라보는 그의 비판과 식견에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읽어내야 할 책들이 이토록 많고, 겪어야 할 문화의 세계도 이토록 넓은 것에 갑자기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알아서 딱히 득될 것 없고, 몰라도 딱히 해될 것 없는... 어쩌면 책의 세계라는 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내가 주구장창 읽어대는 소설이나 시같은 순수문학은 말이다. (차라리 영어 신문이나 읽지.. )
갑자기 떠오르는 말... 한국인이 경계해야하는 것이 '지식욕'이라고 한다. 이번주 인터넷 신문에서 봤던가? 근데 글쎄... 책에 대한 욕심은 그냥 '지식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자아성찰에 대한 욕심이라고하면 좀 괜찮은강? 그건 그렇고, 책을 그야말로 수집하여 사진찍어 자랑하기 좋아하는 몇몇 편집증 환자 블로거님들!! 그런 종류의 욕심은 '지식욕'도 '자아성찰의 욕심'도 아니고, 내가 볼땐 '과시욕'이다. 뭐... 그렇게 함으로서 자아성찰의 끄나풀을 잡고 계신다면 할말 없지만... (사실,왠지 모르게 이런게 꼴쌍사납더라... 그렇게 안해도 너 유식한 거 알거덩...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두는건 니가 얼마나 많이 배웠냐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깨달았느냐' 야... 쩝.. 근데 나도 그걸 구별하기가 힘들어. 그것 역시 '깨달음'이 필요한 것 같아. ㅋㅋ)
김갑수씨 말처럼 독서량과 독서 능력과는 상관없이 인생에 영향력을 끼치는 책을 만나 사람이 변한다면, 그건 종교의 힘에 비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그러하다. 사람을 통해 심지어 신을 통해서도 얻어질 수 없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 책읽기를 계속한다.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색깔의 그 위안과 깨달음 그리고 감동? 그것이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울만큼 깊이 있지도, 지적이지도, 거창하지도, 문학적이지도 않지만 말이다. 내세울만한 학력도 지식도 견문도 없는 나같은 사람도 내멋대로이지만 깨달음과 감동은 먹는 법이다. 이 책을 읽으니 한없이 얄팍하기만 나의 독서량과 문학&문화에 대한 지식과 취향이 부끄럽기만하지만, 어찌하랴... 내 수준에 맞게 읽어내고 사유하고 성찰하고 감동해야지... 안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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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하게 예쁘고 어감 좋은 우리말을 놔두고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구식으로 멋을 부린' 외래어인'나의 레종 데트르'라는 책의 제목으로 인해 첫장을 펼쳐 읽기도 전에 땡감을 배어 물었을 때처럼 떨떠름한 느낌을 받은 것은 내 일찌기 겉만 번지르르한 제목을 달고 있는 책 치고 내실 있는 책을 찾아내지 못한 내 불찰 때문이리라. '나의 레종 데트르'라는 외래어로 책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한 이유로 저자 김갑수는 '토속언어에 대한 신앙심'이 없음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 우리 말을 토속언어라고 표현할 만큼 그의 언어 세계는 그리도 '범 세계적'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냥 쭉 불어로 책 한 권을 쓰시지 왜 제목만으로 그치셨는지 역시 궁금하다. 토속언어에 대한 신앙심 없음이 책 제목에만국한해서 영향을 미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김갑수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던 것은 어떤 詩를 접하고서 였는데 그 시는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그 이후 난 시인 김갑수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후 얼마전 어떤 티비 대담프로에 나와 토론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토론 주제에 대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만의 논리를 주장하는 장면을 보고 김갑수란 인물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한 번 거부감을 느낀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단순히 책을 읽는 다는 행위이기 전에 무척이나 힘든 노동이기도 했다. 각설하고, 김갑수의 레종데뜨르 즉 존재의 이유는 '책 읽기'라고 책의 여는 글에서 밝히고 있는데 과연 16개의 소제목을 따라 책을 읽다보면 여러 장르에 걸친 저자의 책 읽기 전력을 알 수 있다. 책에는 어떤 심각한 주장도 깊이 있는 논평도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 대해 가벼운 필치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내고 있을 뿐이다.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 된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내가 읽었던 책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 나오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저자와 나의 느낌들이 순간 반짝이며 교차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해 책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되기도 했다. 마치 시냅스에서 전기 전달이 이루어지듯. 책은 16개의 작은 소단원들로 나누워 있는데 그 중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처음에 나오는 '성교' 같은 시시껄렁한 소단원 보다는 뒤에서 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비록 나와는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무게감도 좀 있고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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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종 데트르
레종 데트르, 존재의 이유쯤으로 번역되는 멋진 프랑스어가 있지, 라는 말을 김갑수의 책 <나의 레종 데트르>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왜 기억에 남아있었을까?
<라이프니치의 ‘충족이유률’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엔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충족이유률이 무얼까, 존재하는 모든 곳엔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나는 검색작업에 돌입했고, 그 말이 바로 레종 데트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종데트르’- 프랑스어로 존재의 이유라는 뜻이고, 다른 말로는 충족이유률이라 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서재에서 김갑수의 책과 진중권의 책은 서로 교차한다. 그 교차점에서 나는 행복하다.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으므로. 아니 레종 데트르라는 말을 알기 전에 이미 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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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아요. 일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우리가 몰랐던 한국 한국사람의 추태와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알려주는 책들에 대한 호기심 전달과 기존의 책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책을 읽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여러가지의 방법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전달해주어서 참 좋아요..~~
느껴보아요~~
많은 오디오와 음악들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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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 책 참 괜찮다'라고 느낀 책중의 하나 그 책들중에 정말 괜찮아서 '이거 나중에 딴사람한테 선물로 해줘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여분으로 몇권 사놓은 책들중의 하나 김갑수씨의 에세이 형식으로 역은,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속의 책을 느낄수 있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스타일의 수필(?) 뭐....책속에 있는 내용들이야 다 다른 책들을 읽고 느낀 점들을 늘어놓은 것인지라 그 내용을 논하기에는 끝이 없겠으리라 책 이라는것이 읽는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부분들이 제각각이고 똑같은 단어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해석하는것이 틀리기에 이 사람의 느낌을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 책속에 등장하는 몇몇 책들중에 내가 이미 읽어본 책들에 대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니, 한적한 시골길에서 길동무를 만난 느낌이였다 가까이 있으며 서로 안면이라도 있으면 퇴근후에 연락해서 푸근한 선술집에서 꽁치구이 하나 가운데 놓고 이바구를 했음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또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도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고는 하지만, 아직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많은 책들을 이 책을 통해서 소개를 받을수 있어서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나도 나이 40이 되기전까지 김갑수씨가 읽은 만큼의 책을 읽을수 있을까...ㅋㅋ 아마 조만간 되지 않을까 싶다 후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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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종데트르란 존재의 이유란다. 갑자기 너무도 많은 책을 접해서 정신이 없다. 나의 시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책을 바라본다는것은 또 다른 경험이다. 사실 책을 읽기전에 다른 사람의 평가나 언론의 기사들은 피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정된 시선의 책을 보게되는 이유는 내 책 읽기의 편협함에 익숙해 지는 느낌때문이였다. 김갑수란 이름은 처음 알게되었지만, 이 분의 음악과 책을 넘나드는 향유에는 은근한 시샘이 일었다. 사실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편식은 어쩔수가 없을것 같은데 그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일들..
3. 분야별 읽어야할 책 목록 만든 일. 나름 열심히 독서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책은 "나의 레종데트르"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물론 저자의 취향이지만, 그래도! 하고 강하게 외쳐봤다.
4. 신간이 나오자 말자 사서 봐야할 좋아하는 작가 목록을 만든일. 사실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지만, 한번씩 실망을 하고 나면 다시 펼쳐 보지 않는 편인데 이제는 그 작가들에게 꾸준한 신뢰를 보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5. 내 편협한 책 읽기의 반성. 저자의 추천 책, 분야별 정리 목록, 그리고 휴가철 스타일별 책등의 목록을 보면서 사실 책과 음악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니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가 밥먹고 사는 일에 이치 처럼치열한가하는 반성도 해 봤다.
6. 일본소설에 대한 편견에 대한 해소. 물론 이 이일은 최근에 나온 훌륭한 공감할 수 있는 일본 소설들을 읽으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었지만, 저자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임에도 여러가지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다양한 책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에게도 여러 책들이 주는 의미가 존재의 이유가,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또 하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서 부러운 사족은 나는 과거 7,80년대를 산 사람처럼 친구들과 모여서 시대를 논하고 문학을 논하고 사회를 논하던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청소년들은 있을까? 광화문 어느 쪽방에서 그런 낭만아닌 낭만을 추구할 만한 여유와 용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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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눈치 챘겠지만 이책의 저자가 아닌, 영화 <태백산맥>과 드라마 <태조 왕건> 등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중견 배우 김갑수였다. 설마 그분이 낸 책은 아닐테고, 어떤 분이실가 하는 궁금증에 저자의 이력을 쭉 훑어본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각종 신문사에 서평과 티비에서 책관련 프로그램 진행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는 문화평론가로 불리고 있다. 꽤 유명한 분이신 것 같은데 라디오는 고사하고 신문, 티비와도 별로 안 친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편협한 책읽기만을 일삼아 온 나는 이제서야 이책을 통해 그를 처음 만났고, 이책을 통해 그를 기억하게 됐다. 이제 내가 기억하는 김갑수는 두 명이다. <나의 레종데트르>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이야기하지만 책만 이야기하진 않는다. 책을 위한 책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책이야기에 더 가깝다. 각각의 꼭지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저자는 거침없이 늘어놓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거나 다른 생각들을 들려주기 위해 '책'을 사용하고, 책을 거론하며 자신의 의견을 펼친다. 때론 한 권의 책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여러 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의 책이야기에는 '문화평론가'라는 그의 직함이 뿌듯할 만큼 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그중엔 읽어봤거나 들어본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낯설고 생소하다. 나의 편협한 책읽기를 잠시 나무라며 이것저것 책제목을 적어둔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전문 잡지의 글들을 자주 찾아 읽는데, 전문가들인 영화평론가들이 쓴 글에는 어려운 전문용어와 꽈배기 같은 난해한 문장이 단골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쉽게 쓰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 영향인지 어느새 내 머리속엔 '전문가의 글 = 어렵다'라는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문화평론가가 썼다는 이 책, 솔직히 지겨워서 졸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웬걸, 졸기는 커녕 너무 재미있다. 멈추지 않는 그의 입담 때문에 내 눈은 글의 숲을 달리고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숨가쁘다. 주절주절 말장난하는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반짝이는 지성으로 돌변하여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그의 말솜씨는 매력있다.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다. 어려운 전문용어와 난해한 문장 따위로 고생할 일도 거의 없다. 조금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자신의 생각도, 온갖 책들을 인용하며 그 생각을 관철시키는 능력도 모두 시원시원하다. 물론 그런 그의 생각에 모두 동조하진 않지만. <나의 레종데트르>는 시, 소설, 고전, 일본소설은 물론 음악, 여행, 유행, 나라와 민족, 영혼 등 여러 주제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낸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책을 맛볼 수 있다. 또한 그가 꺼내는 다양한 책이야기를 읽으며 책이 다루지 않는 분야는 없다는 사소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기도 했다. 이책이 다루고 있는 분야들 모두 제각각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온갖 책들에 대해 거론한 '재미나는 인생'과 저자의 강추목록에 대한 내용인 '운명', 꼭 읽고 싶은 책을 알려준 '돌아오는 여행', 타인의 시선으로 본 우리의 모습이 있는 '한국 까발리기' 등이 특히 인상깊었다. 가장 도발적인 주제로 책을 시작한 '성교'는 흥미롭긴 했지만 저자와의 생각의 차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책 속에 다른 책을 만나는 것은 독특한 재미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책을 소개 받거나, 같은 책을 대하는 다른 시선을 찾거나, 책과 책 사이에 미처 알지 못했던 관계들을 발견하는 등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이책 또한 다양한 책속의 책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자꾸 읽을 목록이 늘어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수십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나다양한 책읽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책이라 생각된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읽어도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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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의 모습이 너무나 한심해보일 때 하는 말이 있다. “왜사니?” 라고 한마디 던지게 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 말을 하게 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하게 될까? 그저 웃자고 하는 말로 넘기며 밥먹을려고 산다고 할지 아니면 좀 더 깊게 생각해서 다르게 이야기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김갑수씨의 말은 바로 독서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존재이유. 그것이 바로 독서란다. 나에게 존재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아직은 그 답을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할지도. 이분처럼 독서라고 이야기하기엔 나의 독서량이나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직은 어린아이 수준에 불과하기에 차마 독서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이처럼 [나의 레종데트르]라는 이 책은 저자의 책읽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6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동안 그가 읽은 책들이다. 무목적성 읽기를 했다는 저자답게 그가 읽은 책의 분야가 다양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아닌 자신에게 말걸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유아적인 독서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더불어든다. 물론 독서라는 것이 읽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동과 받아들이는 지식들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 것 같아 부아가 치민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책 읽기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도전의식도 가져본다. 언젠가는 책읽기를 존재이유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리고 좀 더 깊게 작품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책에서 얻어갈 수 있기를 말이다. 이 책의 내용에 모두 공감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책읽기는 너무나 당당해서 부럽다. 세상의 비난을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펼칠 수 있는 그의 책 읽기는 자신만의 확고한 독서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부럽다. 아직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싶은 내겐 이렇게 당당하게 펼칠 수 있는 책읽기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부러운 이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내가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듣다보면 그가 가진 지식들에 놀라게 된다. 서평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지금도 서평을 쓰며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서평이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또 다시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을 보며 책을 읽고 싶지만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몰라 헤메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저자와 같은 느낌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그 나름대로 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또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